일본! 작게 보고 크게 보고 - 핑크색 뇌를 가진 라틴계 한국인, 그가 본 일본이라는 나라
박경하 지음 / 행복에너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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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부터 이야기하자면 기계공학과 출신이면서 일본을 알고 싶다는 욕심으로 일본의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다시 마케팅을 전공했다. 내용으로 볼 때 오리온의 일본법인 사장으로 지내면서 느꼈던 점을 책으로 쓴 듯하다. 일단 책표지에서 만나게 되는 저자의 온화한 인상이 너무 좋았다. 핑크색 뇌를 가진 라틴계 한국인이라는 말을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공감하기도 했고. 책의 제목이 시선을 끌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중에 '知彼知己百戰不殆' 라는 말이 있는데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러울수록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얽힌 두나라 사이에는 수도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다. 그것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역사로. 그러니 한국에게는 그야말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나라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관계는 끓을래야 끓을 수 없는 관계다. 책을 읽으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저자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뉴스! 보고싶지 않아요. 보면 속이 끓어요... 러시아가 무시하고, 중국이 무시하고, 일본조차도 무시하고, 우리 3류 정치인들과 추종세력들은 서로 삿대질이나 하고 있고, G8, G20에 초대되어도 무시당하고, 나랏님의 잘못도 있지만 우리 모두가 먼저 사랑해야겠지요. 용서해야겠지요. 자기네들의 이권만을 위해서 무조건 여론 조장하는 거짓 애국자들의 모함에서 탈피해야겠지요.(-166쪽) 오죽했으면 저런 마음이 들었을까 싶어 괜시리 미안해지기도 한다. 나부터도 뉴스보기가 싫어지는데 나라 밖에서 들여다보는 이의 심정이야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책을 열면서 은근한 기대감이 있었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역시 첫장은 역사부터 시작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운동으로 스모와 유도가 있다. 그들의 國技이기도 한 유도가 먼 사무라이시대부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땅에 무릎을 꿇어 절을 하는 일본 무사들의 극진한 예의 문화인 도게쟈土下座가 지금과 같은 세상속에서도 통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들이 사무라이정신으로 버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괴물중에 코가 긴 탱구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의 자만을 상징하는 일본의 괴물이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하긴 800만의 신이 있다는 일본의 신앙을 생각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오래전 닛코에 있는 도조구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보았던 잠자는 고양이 眠り猫가 왜 거기에 있는지 궁금했었다. 이제사 이 책을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밖에도 일본사회의 여러면을 이 책을 통해 볼 수가 있는데 한국의 사회와 거의 비슷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사회문화는 '和'를 기본으로 한다.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는 말이다. 육아만 보더라도 한국의 육아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책을 읽는 내내 껄끄러웠던 점이 있다. 상당히 가벼운 문체때문이었다. 재미있게 쓰려고 한 것인지,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 말자는 속뜻이 담긴 것인지 모르겠으나 읽기에는 좀 그랬다. 그때문인지 몰입도가 떨어졌다. 뒤로 갈수록 비지니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역사와 문화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버거운 면이 없지 않았던 듯 하다. 하지만 배우면 좋을 그런 말이 있어 메모를 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혹은 비지니스관계에서 알아두면 좋을 말이 아닌가 싶다. 물론 선택과 판단은 자신의 몫이다. /아이비생각

 

横堀と 深堀... 옆으로 파기와 깊이 파기

広がりよりは奥行きが重要... 옆으로 벌리는 것보다 깊이 파는 것이 중요

やらせてみる 해보게 하라! 그래도 안되면

教えてやらせる 가르쳐서 시키고... 그래도 안되면

やってみせる 해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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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TV쇼닥터에게 속고 있다
이태호 지음 / 오픈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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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다던 건강식품의 배신'이라는 말이 보인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건강식품이 우리를 배신한 건 아니다. 그것을 이용한 사람들이 배신했을 뿐. 몸에 좋다고하면 뭐든 먹어치울 수 있는게 인간이라는데 뭔들 못먹을까 싶다가도 昨今의 행태를 보면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우리가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에서 산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으로 이익만을 좇는 모습은 보기에 흉할 정도로 심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본다면 어떤 정보에 관한 거짓과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철저히 자신의 몫이 아닐까?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이나 흉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옛날에 비해 늘어난 수명때문일까? 좀 더 편한 세상을 꿈꾸며 살기 때문일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 묻기 힘겨운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프지도 않고 그저 건강하게만 살수는 없다. 게다가 늙은 몸으로 건강하게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生老病死야말로 인간이 겪어야 할 삶의 형태인 까닭이다.

 

사실 이런 책이 나올 거라는 건 짐작했었던 일이다. 다만 생각보다 조금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나 싶을 뿐. 수도없이 많은 건강식품이 우리 주변에서 서성인다. 누군가의 한마디로 인해 불쑥 우리 앞으로 나서기도 하고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정보로 인해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우리의 뇌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것이 내게 맞는 것인지조차 생각하지 않고 그저 좋다고 하니 나도.... 이런 심리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뭐 그래서 기업들이 돈을 벌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하게 말해 광고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광고는 어쩔 수 없이 포장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포장만 푸짐한 선물세트도 수없이 보아왔다. 일단 홈쇼핑 쇼호스트들의 말투부터가 껄끄럽다.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그 모습은 볼 때마다 짜증을 유발한다. 몇 번의 실패끝에 얻은 건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내 몫이라는 거였다. 집안을 살펴보니 철분제와 칼슘제, 눈에 좋다는 루테인이 전부인데 이마저도 심리적인 효과를 기대해서 먹고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거나 오르내리고 있는 것들은 많다. 게르마늄이 몸에 좋다고 너도나도 목걸이나 팔찌를 하고 다닐 때가 그리 먼일은 아니며, 아사이베리나 아로니아를 안먹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떠들어대던 것도 오래전 일은 아니다. 하루에 물을 몇리터정도 마시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떠들어 너도나도 텀불러 하나씩을들고 다니게 하고, 세상에 있어서는 안될 것처럼 커피를 매도하더니 이제는 또 커피가 어디어디에 좋다고 마셔야 한단다. 음이온이 좋다고 편백나무를 들썩거리던 일은 하루이틀만의 일이 아니며, 신이 내린 열매라는 최상의 칭찬을 들었던 노니는 어떤가? 작두콩이 좋다고하면 어김없이 마트에 작두콩이 깔렸다. 저자의 말처럼 기업과 쇼닥터들의 배만 불리워준 꼴이다. 백수오에 크게 놀랐고 라돈에 크게 놀랐지만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우리의 뇌는 아마도 그런 논란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이 아니라해도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잠깐 분노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먹거리로 장난을 치는 업자들에 대한 처벌 역시 강해져야만 한다. 하긴 항상 뒷북만 치는 정부부처의 한심한 직무유기가 더 큰 문제이기는 하다. 뻔히 보이는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사기에 가까운 상술은 계속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책을 읽다보니 몇번이나 속에서 불이 난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당장 식약처로 달려가 그 담당관련자들을 패주고 싶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에 따른 자괴감은 어떻게 해야할지.... 몸에 좋다고 확실하게 믿었던 검은콩의 효능에 배신당했다는 사실에 한번 놀랐고 유전자변형식품, 즉 GMO가 떠도는말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또한번 놀랐다. 이 책은 진즉 나왔어야 했다./아이비생각

유산은 유산균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몸속에서도 생성되는 물질이다. 프로바이오틱스가 면역력이 약한 미숙아, 노인, 중증질환자 등에게는 자칫 '균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프로바이오틱스로 면역이 과도하게 증가한 상태에서 장 점막이 손상되면 그 사이로 균이 들어가 균혈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

온전한 콜라겐이나 젤라틴은 분자량이 커 단백질의 형태 그대로는 피부나 소화관에서 흡수되지 않는다. (-29)

코코넛오일은 그저 기름의 한 종류일 뿐이다. (-36)

해독주스에 해독기능은 없다. 그냥 과채주스일 뿐. (-42)

MSG는 다시마로부터 발견되었다. 개발된 이후 현재까지 100년 넘게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조미료이며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MSG를 안전한 성분으로 인정해 우리나라처럼 유해성 논란이 없다. MSG는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화학조미료가 아니라 미생물 발효에 의해 생산되는 아미노산에 해당한다. (-85)

비타민과 미네랄보조제가 건강상의 이득이 없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94)

하루에 사람이 마셔야 할 정해진 물 권장량은 없다. 우리 몸은 탈수증세가 오기 한참 전에 이미 수분을 보충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물을 많이 마시면 피부가 촉촉해지거나 피부가 좋아진다는 과학적 근거도 아직 없다.(-100)

항암식품... 실제로 면역력을 높여주는 식품은 없다.(-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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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강희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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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도입부에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완득이>였다. 완득이와 담임 선생님의 관계가 조금은 익살스럽게 그려지긴 했지만 베트남 출신 엄마와 난쟁이 춤꾼 아버지의 이야기가 보태지면서 짠한 여운을 남겨 준 영화였다. 사실 우리 주변의 소외계층을 그린 작품은 많다. 미혼모를 다루었거나 다문화가정을 다루었거나. 대표적인 작품이 <도가니>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이다. 관심... 관심이라는 말은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그만큼 관심을 갖는다는 건 중요하다. 늘 단일민족을 말하는 한국이지만 이제는 그만 그 틀을 깨고 나올 때도 되었다. 당장 살고 있는 주변을 둘러본다면 타국인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지구촌이란 말만 들어도 그렇다.

카니발... 축제라는 의미로만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말속에 그렇게나 무서운 의미가 담겨있을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찾아보니 이런 말이 나왔다. 사람을 먹는, 미개인의, 혹은 잔인한 사람, 야만적인 사람... 이 작품의 話者 예슬이는 투렛증후군이다. 저속한 언어로 말하는 외설증과 남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반향언어증, 특정 단어를 반복적으로 발음하는 동어반복증의 음성틱이 심하다. 그 힘겨운 아이의 입을 빌려 필리핀에서 경상도의 산골마을로 결혼이주민이 되어 온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도축업자, 나쁘게 말해 백정이다. 개도 잡고, 닭고 잡고, 돼지도 잡는다. 그것도 원시적인 방법으로. 그러다보니 그녀가 살아야 할 집은 마을과도 떨어져 외진 곳에 있다. 당연히 이웃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엄마는 필리핀에서 대학을 중퇴했다. 공부도 잘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결국 어느날 아빠와 심하게 다툰 엄마가 사라져버리고 아빠는 우물을 메웠다. 작품속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한 딸의 의심과 불안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 누군가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더듬거리며 저속어로 시작을 하니 약간은 껄끄러웠다. 그럼에도 진심을 다해 자신의 마음과 지나간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예슬이에게 이내 공감하게 된다. 그 껄끄러움이 오히려 더 많은 느낌을 전해줄 때도 있다. 솔직히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힘들고 더러워서 싫다고 한 일들을 그들이 하고 있는 까닭이다. 공사현장을 가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고, 병원의 간병인, 식당노동자, 공장노동자,.. 농촌은 또 어떤가. 저자의 말처럼 한국사회는 변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그들을 이방인으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라고해서 우리보다 못할 이유는 없다. 살기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 말도 안통하는 타국에서 버텨내고 있는 그들... 그만큼 씁쓸한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는 장편소설 <유령>으로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세계문학상 당선작들에 관심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 책은 바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회적인 문제, 특히 우리가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더욱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책을 덮는다.  한국은 끝없이 분류해서 계속해 타인을 만드는 나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를 한국에서 교육시키면 안된다. (-188쪽) 보면 볼수록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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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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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전체 먹을거리로 보면 100% 자급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에너지 기준으로 보면 현재의 자급률은 40%대이다. 외국에서 먹을거리를 안 가져오면 60%의 한국인은 굵어 죽어야 한다. 농업 빈국이다. 한반도의 자연환경에서는 유기농은 생산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한반도에서 유기농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정의롭지 못하며 비윤리적일 수 있다.(-58쪽) 비타민이니 미네랄을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이 떠든다. 대중이 원하는 딱 그 수준의 말을 해야 지위와 명예, 돈을 얻는다는 것을 '배웠다는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71쪽) 음식물 쓰레기가 엄청나게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40%대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외국에서 먹을거리를 가져오지 않으면 열명중 여섯명이 굶어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나라의 현실을 부정하면서까지 버려지는 식생활의 형태는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작금의 현대인들은 왜 그리도 건강식품에 연연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TV만 켜면 나오는 수많은 홈쇼핑에서 무엇이 어디에 좋다고 하면 즉시 마트에 그 식품이 깔리고 너도나도 그것을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해도 자신에게 맞아야 한다. 그러나 지속성이란 명제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게 잠깐 머물다가는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버리고 이내 또다른 건강식품이 홈쇼핑 채널의 화면을 다시 채운다. 유기농도 그렇다. 우리의 현실적인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된 유기농이 가능하기는 할까? 늘 그런 생각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속이 다 후련해진다. 누군가는 입바른 소리를 해야하는 까닭이다. 무엇이 되었든 즐겁고 맛있게 먹으면 그게 보약이다. 그게 내 지론이다. 남들은 100년이상이 걸려 이루었다는 산업화를 우리는 30년만에 이루어 한강의 기적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작금의 우리 삶의 형태는 뭔가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너무나도 많다.

육류업체들은 한국인의 삼겹살 선호를 앞으로도 계속 부추길 것이다. 한국인이 삼겹살에 이미 입맛을 깊이 들인 것이 그 첫째 이유이고, 마진 좋은 수입 삼겹살로 돈을 벌 기회가 육류업체들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넉넉하게 주어지는 음식을 맛있다고 여기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넉넉함의 기준은 자본이 결정하게 되어 있다. (-83쪽) 육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부아가 치미는 말이다. 우리가 삼겹살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좋은 부위는 수출하고 그들이 가져가지 않는 맛없는 부위를 국내에서 소비해야 했기때문이었다는 것은.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나을텐테 우리가 먹어치우는 삼겹살이 부족해서 다른 나라에서 수입까지 한다고 한다. 그러니 저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익을 앞에두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사회라는 건 이미 정해진 사실이다. 맛없는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쌈이 필요했고, 그 삼겹살은 우리의 문화가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부대찌개나 내장탕의 유래와 다르지 않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편집된 기억을 두고 개인의 것은 추억이라 하고 집단의 것은 역사라고 한다. 추억이나 역사란 것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현재 우리의 욕망이 실현될 수 있게끔 과거의 일을 가져와 스토리를 붙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56쪽) 인간의 뇌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기억이라는 것은 편집된다. 그리고 한번 믿은 것은 웬만해서는 바꾸려들지 않는다는 우리의 뇌처럼 속이기 쉬운 건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것이 '스토리텔링'이라는 옷을 입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완료되어 가던 때, 농부들이 도시로 와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현대적인 삶에 지친 그들이 고향의 맛을 그리워했고 이에 맞춰 언론은 거기에 맞춘 프로그램과 기사를 내 보냈다. 그 욕구가 과해져서 음식 역사의 조작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영광 법성포 굴비, 강릉 초당두부, 의령의 망개떡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굴비란 '등이 굽은 조기'라는 뜻이다. 조기를 짚으로 엮어 매달면 구부러지게 되는데 그 모양새를 보고 구비조기라고 하였다는 말이다. 한국전쟁 후 전쟁통에 남자를 잃은 집안의 여자들이 호구지책으로 두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초당두부의 시작이다. 그런데 왜 나는 당시의 사대부가 두부만드는 일을 했다는 말을 왜 의심하지 못했을까? 그 발상부터가 무리였던 이야기를 바보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니! 망개떡의 시작은 일본의 카시와모찌였다. 일제강점기에 이 떡이 우리 땅에 들어왔고, 그 흔적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향토음식의 유래와 역사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조작되었다. 서글픈 것은 그 조작의 주체가 중앙 또는 지방의 정부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향토음식은 1980년대 '개발품'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마져 조작된다는 사실이다. 관료주의적 형태가 작금의 우리에게 얼마나 맞지않는 옷인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거짓은 진짜인듯 보여지게 포장되어져 당당하게 우리앞에 선다. 정부의 힘을 믿고. 학창시절에 혼분식장려가 있었다. 있는 집 자식들은 도시락의 쌀밥 위에 살짝 보리밥을 얹어 쌀밥을 가리곤 했었는데 선생님은 그걸 또 헤집어 잡아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너도나도 가난했던 시대의 일이다. 그런데 그 시기에 밥그릇의 크기를 정부에서 규정하고 그것을 어기면 행정적인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국민의 밥량을 줄여서라도 쌀 자급률을 늘리고자 했던 정부의 모양새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해서라도 뭔가 이룩했다는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했던 슬픈 역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너무나도 많은 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변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임진왜란 후 도망갔던 관료층들에 의해 허울뿐인 제사의례가 생겨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상차림이 나오게 된 것은 길게는 가정의례준칙 같은 게 나온 일제강점기이고, 짧게는 한국전쟁 이후 가정생활백과나 가례집 등이 보급되면서부터의 일이라고 한다. 사실 저자의 말처럼 유교사회에서는 양반이외의 사람들은 조상에게 예를 올릴 수 없었다. 상것이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조선중기에 군역을 피하기 위해 족보를 샀거나, 구한말 신분제도가 사라지면서 모두 양반이라 주장하게 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남을 따라하던 의례가 점점 구체화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제사의례가 되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지금도 정부에서 명절상차림에 드는 비용을 이야기하며 알게모르게 국민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에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책의 말미에 이런 글이 보인다. 다 읽었으면 이 책은 되도록 멀리 두라고. 괜히 읽었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했을거라고. 그러나 단언컨대 누군가는 쓴소리도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항상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는 없다. 항상 보고싶은 것만 보고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지적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별로 없는 책이라는 저자의 말과 달리 한국인이기에 도움이 된 내용이 많았다고 얘기하고 싶다. 저자를 알게 된 것은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꾸밈없이 이야기하던 저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어 손을 내민 책이었지만 시원하게 속풀이를 한 듯한 느낌이 든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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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고 미워했다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캐서린 패터슨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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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한구절같기도 하고, 유행가 가사같기도 한 책의 제목. 그리고 묘한 표지그림. 처음엔 심리학이려니 짐작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심리적인 면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은 딱 부러지는 성장소설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면서 겪어가는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성장소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희망조건까지도 완벽하게 갖추었다. 루이스와 캐롤라인은 쌍둥이로 태어났다. 몇 분 먼저 태어나 언니가 된 루이스는 몇 분 늦게 나왔으나 허약했던 캐롤라인에게 모두의 관심을 빼앗겨버린다. 그녀들이 태어난 곳은 바닷가 작은 섬이었으며 아버지는 어부였다. 그랬기에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필요했다. 이쯤되면 누가 아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는 뻔하다. 게다가 캐롤라인에게는 아름다운 목소리마저 있었으니 그녀의 노랫소리는 작은 섬마을 사람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었다. 결국 루이스는 아버지 곁에서 묵묵하게 일을 거드는 딸이 되고 그 모든 수고로움의 끝에는 캐롤라인이라는 종착지가 있었다. 그나마 하나뿐이라고 여겼던 친구 콜마저 캐롤라인에게 빼앗겨버리고 만다. 이런 이야기라면 대충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질투에 사로잡힌 소녀의 모습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섬을 떠나고 싶었으나 두려움에 떨었던 루이스에게 선장 할아버지는 말했다. 누구도 너에게 이곳에서 희생하라고 말한 사람은 없다고. 가족을 위해 떠날 수 없다는 말은 너의 핑게일뿐이라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라고. 그리고 그녀 루이스는 떠났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의사가 되었을까?

 

이 책의 짧은 소개글을 읽으면서 심리적인 면을 많이 다룬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다.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그 희생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가는 형제간의 이야기나, 비교당하면서 지냈던 시절의 아픔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끝에는 항상 이런 말이 꼬리처럼 붙게 된다. 내가 누구때문에 이렇게 살아야했는데, 라거나 누가 그렇게 희생하라고 강요했느냐, 라는 식의 꼬리. 그래서 기대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상처, 누군가의 희생에 대한 치유의 글을. 결국 선장 할아버지의 말처럼 자신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게 옳은 일일까?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누구때문에 라는 말은 핑게에 불과한 것일까? 잘 모르겠다. 엄마와 비슷한 삶의 형태로 살아 가고 있었지만 자신만의 목표를 잊지않는 루이스의 여정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기독교적인 분위가가 상당히 강하다. 저자에 대해 찾아보니 성경과 기독교 교육을 전공했으며 일본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고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로 꼽히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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