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하는 세계사 - 12개 나라 여권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들
이청훈 지음 / 웨일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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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은 그 나라가 걸어 온 시간을 압축해 담고 있다... 책 띠에서 보여주는 말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도 여권을 유심히 본 적이 없다. 그냥 하나의 통과의례에서 필요한 도구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여권에 관심을 두고 세심히 살펴보게 되어 책까지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참 호기롭게 보였다. 도대체 이 여권에 뭐가 있다는거야? 새삼스럽게 여권을 꺼내들고 들춰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내 여권에 어떤 그림이 인쇄되어있는지. 해외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세세하게 여권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을까? 저자 이청훈은 출입국 관리 공무원으로 20여 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그 시간동안 많은 나라의 여권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여권속에 들어있는 그 나라만의 역사를.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조금은 진부하게까지 느껴졌다는 게 솔직한 말일 것이다. 말만 바꿨지 그동안 숱하게 보아왔던 세계사와 뭐가 다를까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자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만큼 재미있게 보았다는 것이다. 이 작은, 단 몇 쪽에 불과한 여권안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니.

 

'도깨비'라는 드라마로 다시 보게 된 캐나다부터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인도까지 모두 12개국의 여권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캐나다 비행기에 그려진 것이 단풍잎이라는 것도 드라마를 통해서 알았다. 단풍잎이 캐나다의 고유성을 상징하는 오래된 소재라는 건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더 알고 싶어서 찾아보니 18세기부터 축복받아온 자연과 환경을 상징하면서 캐나다 자체를 상징하는 국가적 문양이라고 한다. 실험 결과 바람에 날릴 때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모양이라서 채택되었다는 말이 보여서 살풋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가장 시선을 끌었던 나라는 일본과 뉴질랜드, 인도였다. 일본의 우키요에는 자포니즘이란 말을 생성할 정도로 유럽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문화중의 하나였다. 그러니 우키요에에 대한 일본의 자부심이 여권에 표현되었을 것이다. 고사리를 국가의 상징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뉴질랜드의 역사도 흥미로웠다. 그야말로 고사리 예찬론이 아닐 수가 없다. 고사리는 잎의 앞뒷면 색깔이 달라 옛날 마오리족 전사들은 고사리를 이정표 삼아 전진했고 또 돌아왔다고 한다. 고사리의 앞면은 초록색이지만 뒷면은 은색으로 일종의 야광 물질 역할을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뉴질랜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오리족의 후손이다. 국기의 디자인으로 고사리 무늬를 채택할 것인가를 두고 국민투표를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들에게는 고사리가 주는 의미가 상당히 큰 모양이다. 캐나다 국기도 원래는 유니언 잭이 들어가 있었지만 1964년 의회 투표를 거쳐 지금의 단풍잎 국기로 바꿨다는 걸 보면 그 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죽기 전에 한번은 가고 싶은 나라 인도. 인도는 내게 그런 나라다. 인도의 국가 문양이 이채롭게 눈에 들어온다.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있는 네마리의 사자상, 그 아래 힌두어로 쓰여져 있는 '진리만이 승리한다' 라는 하나의 문구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 보여진다. 인도는 사실 힌두교의 나라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불교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불교는 흔히 포용의 종교라고도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다. 그런 위대한 사상을 배출할 수 있었던 나라에 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대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도영화나 한번 보면서 그 아쉬움을 달래봐야지,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의 한 단면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새롭게 다가온다.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남겨준 책이다. 더 많은 나라가 소개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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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롭게 쓸데없게 - 츤데레 작가의 본격 추억 보정 에세이
임성순 지음 / 행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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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다. 정말 그런 때가 있었다. 작가는 그걸 추억팔이라고 했다. 추억을 글로 써서 책으로 냈으니 결국 추억팔이라는 말일 터다. 그럼에도 나에게만큼은 썩 괜찮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가끔 되새김질하던 그 때의 기억을 작가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팔았던 탓이다. 어렸을 때 자주 보았던 만화를 떠올려보니 슬그머니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옛 것에 사람들이 심취되는 듯 하다. 뭐 그렇다고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옛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겨우 몇 십년 전의 이야기들이다. 머리가 네모지게 생겼던 녀석의 말썽을 그렸지만 그 노래만큼이나 다시 생각해보면 웃지못할 우리의 이야기였던 <검정고무신>은 지금 보아도 웃음이 절로 난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나는 이미 테레비 앞에 앉아 <은하철도 999>를 보고 있었다. 구석기시대 사람처럼 생겼던 귀여운 포비를 보기 위해 <미래소년 코난>을 즐겨보았고, 유난히 무서웠던 만화 <요괴인간>도, <황금박쥐>나 <우주소년 아톰>도 엄청 재미있게 봤다. 기운 센 천하장사 <마징가Z> 보다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없던 힘도 생겨나는 <짱가>나 <전자인간 337>을 더 좋아했고, 돔의 천정이 열리며 날아오르는 <태권V>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캔디>를 보겠다며 동생녀석과 매번 싸우기도 했었다.

 

그 때는 또 TV보다 라디오가 훨씬 더 인기 있었다. 동양방송의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울다가 웃다가 했던 많은 밤.. 여자성우로는 송도영이 단연 톱이었고, 배한성과 양지운이 당시의 인기 성우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눕시다 명랑하게 일년은 삼백육십오일 ♬ 이 노래로 시작하던 아차부인 재치부인이란 드라마를 재미있게 들었었는데... <밤을 잊은 그대에게>나 <별이 빛나는 밤에>,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와 같은 음악프로의 인기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노래를 듣고 싶다고 정성스럽게 엽서를 보냈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오죽했으면 예쁜 엽서 전시회까지 열었을까?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ist thing, 조앤 글래스콕의 The Centaur 는 지금도 좋아하는 노래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을 저미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다. 사이먼&가펑클의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젖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많은 극장들. 대한극장이 아마 안경쓰고 보는 영화를 맨처음 시도했을 것이다. 스카라극장, 명보극장, 국보극장, 서울극장, 허리우드극장... 단성사와 피카디리는 피맛골이 사라지면서 색이 바랬다. 종로의 추억을 책처럼 간직하고 있었던 장소들이 사라졌다는 건 우리의 문화가, 우리 삶의 흔적이 사라졌다는 말도 될 것이다. 지금이나 되니 그나마 지나간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마치 문화의 흐름을 보는 것 같다. 어느 한 단면만으로 문화의 흐름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러방면으로 추억을 팔고 있는 걸 보면 시대의 흐름이나 변천사가 느껴진다. 임성순이란 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막힘없이 읽혔던 기억을 갖고 있다. 할 말은 하고 본다,는 식의 문장들이 꽤나 이채롭게 다가온다. 보통은 책날개에 저자의 약력을 쓰는데 그 작은 지면에서조차 너무 솔직해서 탈, 인듯한 말이 보여 피식 웃고 말았다. - 내가 책을 구매하는 데 저자 약력이 영향을 준 적은 별로 없었다. 따라서 왜 이곳에 저자 약력을 적는지 잘 모르겠다. 뭐, 사실 나도 그렇다. 책을 구매할 때 저자의 약력에 그다지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도 작가처럼 특별하게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 작가는 없다. 노래가 좋고 극의 흐름이 좋고 글이 좋을 뿐이다. - 이 글은 대체로 무해하다. 그리고 이런 글들이 그렇듯 대체로 별 쓸모도 없다. 그럼에도 나름 재미는 있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몸에 좋지 않은 게 맛있고, 쓸데없는 게 재밌다. 뭐, 그렇다고해서 그렇게까지 쓸데없는 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당신의 말처럼 재미있다. 지나간 것이라고해서 모두 재미있는 건 아니다. 잉여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 책의 제목은 잉여롭게와 쓸데없게라는 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잉여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까닭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에 태어난 나로써는 작가의 추억을 살 수 있어 잠시나마 즐거웠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면 삶이 편해진다. 낙관, 자기 계발, 외향성의 신봉자들은 이런 삶이 향상성 없는 실패한 삶이라 말한다. 그리고 늘 성공을 외친다. 그러나 더 나은 것을 하려는 동기가 꼭 성공하기 위한 욕망일 필요는 없다. (-227쪽)

취향만으로 한 인간을 정의할 수는 없다. 취향을 끌고와 타인의 감수성을 재단하는 것은 취향의 수용소로 그들을 쫒아냈던 오지라퍼들과 같은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문화적 파시즘일 뿐이다. 쓸데없는 것들의 훌륭한 점 중 하나는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 예술적 수준과 미학적 완성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반드시 더 뛰어난 것을 택할 이유도, 그것을 택했다고 해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한정식을 싫어하고 국밥을 좋아한다고 해서 더 못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238쪽)

이런 글의 정석이라면 여기서 이 유배자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말을 하나쯤 해야겠지만, 그냥 끝낼 것이다. 섣부른 위로조차 오지랖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239쪽)

그냥 그렇게 끝내주어서 내심 감사했다. 저런 글을 썼다고해서 꼰대기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오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을 돌려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시대에는 말이다. 작가는 1976년생으로 2010년 소설<컨설턴트>로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작품으로는 <극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문근영은 위험해> 등이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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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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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300엔, 시간 외 수당은 없어. 교통비도 없는데 아무때나 불러내. 게다가 유령같은 '死者'를 저세상으로 보낸다는 상식밖의 일을 시켜. 이런 아르바이트라면 너는 추천하겠니? 하지만 나는 추천하고 싶어... 그런 아르바이트를 선뜻 받아들인 주인공 사쿠라가 만나서 듣게 될 '死者'들의 사연있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시급 300엔이라면 우리돈으로 3000원정도다. 하루에 4시간을 일한다고 치면 일당 12000원. 지금같이 최저임금을 논하는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명함도 못내밀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아르바이트를 받아들이고 또한 추천하고 있다. 뭘까? 숨겨둔 의미가. 궁금하긴 하지만 어쩐지 뜬금없다. 죽은 자를 저세상으로 보낸다는 게. 죽었는데 다시 죽어? 가끔 우리는 이승과 저승사이의 중간계에 대해 말하곤 한다. 환상처럼. 그런 중간계를 다룬 영화를 오래전에 본 기억 있다.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다. 그 영화의 원제가 Ghost , 즉 유령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게 된 남자가 혼자 남겨진 연인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영매를 이용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우리는 그 남자의 사랑에 매료되었었다. 유령이었던 그 남자는 자신의 연인을 지켜내고서야 저세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얼마전 웹툰을 통해 죽은자의 세계에 대한 신화적인 요소들을 아주 흥미롭게 본 적이 있었다. 영화화되어 크게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세상에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도 있듯이 저마다 각각의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무슨 미련이 남아 저세상으로 가지 못했을까? 유령으로 남은 자들을 도와 그들의 한을 풀 수 있게 해주는 사쿠라와 하나모리는 그 일을 하는 동안 자신들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원망을 풀게 된다. 결국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말이다. 반전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사쿠라에게 하나모리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기억못하겠지만 너의 기억속에 남고 싶다고. 단 6개월이었던 아르바이트 기간이 끝나고 삼년 후, 사쿠라는 기이한 현상을 겪게 된다. 그걸 보고 이성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한 적 없는데 경험한 것처럼 느끼는 게 기시감, 경험했는데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게 미시감. 네가 느낀 건 그건 일종의 미시감이겠지. 잊어버렸을 뿐 머릿속 한구석에는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야. (-351쪽) 사쿠라의 아르바이트는 현실이었을까? 리는 언제나 어딘가에 갇혀 있다. 보이지 않는 뭔가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의해. (-175쪽) 그게 운명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현재는 과거이자 미래이다.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모든 것의 흐름이 달라질 것이기에. 죽었으나 자신의 삶에 미련이 남아서 끝내 저세상으로 가지 못했던 死者들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여러가지 삶의 형태와 부딪히게 되는 사쿠라의 모습을 보면서 結者解之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기억속에 남는다는 건,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행복한 일일까?

 

라이트 노블이란 말은 익히 들어보았지만 그런 형식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소설을 읽고 있는데 만화를 읽는 것처럼 왠지 전체적으로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만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상태, 그야말로 이 소설의 내용처럼 중간쯤되는 형식이랄까? 책을 읽는 사람마다의 취향이 다를 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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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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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경찰이 사건을 발표하며 했던 말,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말 중의 하나다. 그 때는 그야말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거리를 휩쓸었다. 그 때의 그 현장에는 나도 있었다. 학생 시위대들이 전철을 점령하기도 했고 거리의 보도블럭을 뜯어내 던지기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전철을 세우고 점유했으나 학생들은 시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한쪽으로는 시민들을 인도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정치의 시대였다. 그 때의 인물이 바로 박종철과 이한열이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집권층의 공개적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냈고, 군사적 통치에서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냈다. 지금의 우리는 그들을 열사 혹은 시민운동가라고 부른다. 30년 후, 그 시대를 그린 <1987>이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의 혼란스러움은 여전하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지나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할 상황이 나타났다. 오늘날 중국의 젊은 세대 가운데 1989년의 톈안문 사건에 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설사 아는 사람이 있다해도 아주 모호한 반문만 던질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면서요?" (-36쪽) 지금의 대한민국 젊은세대는 다를까?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혁명은 누군가가 앞장을 서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나 역시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後代는 先代의 희생으로 얻어낸 사회속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 위화는 근현대 중국의 역사를 열 개의 단어로 말하고 있다.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가 그것이다. 중국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국가가 과연 인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말이 왠지 씁쓸한 느낌을 전해준다. 위화는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발치사)로 일하다가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작품으로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가랑비속의 외침>,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형제>등이 있다. 자신의 피를 팔아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의 힘겨운 현대사를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위화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광두와 송강이라는 배다른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 <형제>에서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중국의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던 역사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 이후 10년만에 발표한 소설이지만 <형제>로 다시한번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의미에 공감하게 된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4쪽) 작가의 독서 이력을 설명한 글이다. 독서를 하면서 저런 느낌을 갖는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전 한 TV프로에서 김영하라는 작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작가는 어떤 것을 숨겨놓고 그것을 찾으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위대한 작품들은 어느 정도 나를 이끌어준 다음, 혼자 걸어가게 했다는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책읽기를 하면서 가끔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곤 했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힘에 이끌려 이렇게까지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 오래된 질문에 작가가 이렇게 대답해 준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이것이 바로 문학(- 108쪽) 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내 머리속에 오버랩되었던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다. 어디든 사람사는 모습은 같다, 라는 말과 함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덩치만 커져버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중국의 근현대사는 다르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톈안문 사건을 지나면서 중국은 참 많이도 흔들렸다. 그리고 참 많이도 변했다. 열개의 단어 중 풀뿌리는 나라와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렸던 민간기업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한다는 굳은 결의가 불러온 산채라는 말은 모방을 의미한다. 산채라는 말에는 모조품과 해적판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또 하나의 단어 홀유라는 말은 속임수나 헛소문 같은 단어에 합리성이라는 외피를 입힌 말로 인터넷으로 인한 昨今의 이상한 세태를 꼬집고 있다. 그 말에는 과대선전이나 오락과 같은 의미도 담겨있다. 일본과 한국과 중국은 서로 비교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걸어간 길을 한국이 걸어가고 한국이 걸어간 길을 또 중국이 똑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중국의 근대와 현대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우리도 그와 같은 일들을 겪어내면서 살아왔던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나라가 겪어낸 격동의 모습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게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옮긴이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사회적 산물이기도 한 문학이 예술인 것이지 문학의 생산자들이 예술인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지식인 집단으로 여겨지는 문인 계층, 즉 시인과 작가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예술로서의 문학에만 침잠해 있다고. 중국 지식인들의 보편적인 침묵을 문제 삼을 수 없다면서 했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위화의 이 책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를 이끌어줄 시대의 어른이 사라진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아이비생각

 

1989년 톈안문 사건이 일어난 뒤로 이미 2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톈안문 사건이 중국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정치체제 개혁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중국 정치체제 개혁의 발걸음은 경제체제 개혁에 비해 다소 뒤처졌지만 여전히 개혁 과정에 있었다. 그러다가 1989년 톈안문 사건이 발생한 뒤로 정치체제 개혁은 완전히 정체되고 경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인들은 이로 인해 곧장 갈등만 가득한 현실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한쪽에는 보수 세력이 진을 치고 있고 한쪽에는 급진 세력이 버티고 있으며, 한쪽에는 정치군력이 집중되어 있고 한쪽에는 경제적 이익이 개방되어 있는 형국이 되었다. 한쪽은 교조주의가 점령하고 한쪽에서는 무정부주의가 활개를 치며, 한쪽에서는 규범을 잘 지켰지만 한쪽에서는 방탕과 무질서가 판을 쳤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 사회의 발전은 전면적인 발전이 아니라 단편적인 발전이었다. 그리고 이런 단편적인 발전은 이미 사회가 마땅히 갖춰야 할 건강을 해치고 있다. (-301,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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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一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클로드 모네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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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상사를 찾아가면 나는 법정스님보다 먼저 어느 시인을 사랑했다던 여인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남편과 사별하고 생존을 위해 기생이 되었다는 여인. 그 후로 시인 백석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신분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고 말았다. 분단이 되고 백석은 북으로 갔다. 그 여인을 향한 사모곡까지 있었을 정도라 하니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성공하게 된 여인 김영한은 끝내 백석을 잊지 못했다. 1000억원이라는 돈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고 말했다고 하니. 원래는 고급요정 '대원각' 이 있었던 곳이다.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를 읽고나서 감명을 받은 노년의 그녀가 '대원각'의 부지와 그에 속했던 건물을 법정스님에게 모두 시주하고자 했다. 극구 사양하던 스님께 10년동안 찾아가며 뜻을 밝히자 스님께서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려주셨다고 한다. 그만큼 글의 힘은 위대하다. 그 감동이 얼만큼의 크기였는지 감히 누가 알 수 있다고 하겠는가. 우리는 가끔 한줄의 글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끔 한 줄의 글귀에 위안받기도 한다.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윤동주의 시, '개'다. 단 한줄속에 저렇게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참 놀랍다. 굳이 은유적인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지는 장면이 다가온다. 이런게 詩다. 나에게는. 굳이 어려운 말로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 것보다 이렇게 바로 다가오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이런 글이 나는 좋다. 책속의 그림은 쓸쓸하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詩는 왠지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정월, 이 한겨울에 따스함을 안고 싶었기에 시집 한 권을 손에 들었는데 오히려 더 춥고 외로워진다. 겨울은 그런 계절인가 보다. 그래서 화롯불이 필요하고, 그래서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운 것일게다. 앞에서 언급한 윤동주의 詩를 행을 바꿔서 쓰면 또다른 느낌이 든다. 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이 내렸네, 라고 중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처럼 다가온다.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이 시화집에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함께 들어있다.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난 모네는 소년시절을 영국의 항구 도시인 르 아부르에서 보냈으며 18세때 그곳에서 화가 로댕을 만나 외광묘사에 관한 기초적인 화법을 배웠다. 인상파의 시작이 모네로부터였다. 그의 작품으로 <카미유(녹색옷을 입은 여인)>, <정원의 여인들>, <인상, 일출>, <수련 연못위의 다리>, <수련>등이 있다. 사진으로 보면 아하, 할 작품들이 많다. 시인으로는 윤동주外, 백석, 정지용, 변영로, 노천명, 박인환등의 작품이 실렸다. 그 중에서도 전작과 같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하이쿠였음을 다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겨울 햇살이 지금 눈꺼풀 위에 무거워라 / 다카하마 교시의 작품과, 색깔도 없던 마음을 그대의 색으로 물들인 후로 그 색이 바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라 / 기노 쓰라유키의 작품이 실려있다. 기노 쓰라유키는 헤이안 시대의 가인이고, 다카하마 교시는 하이쿠 시인이자 나쓰메 소세키에게 영향을 받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하이쿠는 접하면 접할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 윤동주의 '눈' 이다. 이 詩을 읽으니 불현듯 함민복의 '성선설'이란 詩가 떠오른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을 녹이려 가장 먼저 찾았던 따뜻한 아랫목의 이불속같은 따스함을 그려본다.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라고 윤동주는 '못 자는 밤'을 말했지만, 하나, 둘, 셋, 넷..... 밤은 길기도 하다, 고 나의 밤은 말한다.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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