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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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의 주요 흐름을 형성하는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은 플라톤에서 유래합니다. 플라톤 시대의 그리스 지역에서는, 인간의 영혼은 원래 신적인 본성을 가졌는데 육체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신성(神聖)이 훼손되는 위기에 빠졌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영혼을 정화하는 일이 지상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 영혼의 원래 고향은 동굴 밖 형상들이 존재하는 빛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영혼이 천상으로부터 추락해 동굴 속(현상세계)에 유배되어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사랑하는 이성적인 영혼이 육체에서 비롯된 욕망과 감정을 극복해서 천상의 이데아를 깨쳐야 합니다. 이것이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입니다.(글의 출처:네이버지식백과)


책을 읽는데 엄청 오래 걸렸다. 처음엔 읽을 만 했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이 책을 괜히 읽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슬슬 밀려 든다. 사실 지금까지 읽었던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이 쉬웠던 건 아니다. 전체적인 전개는 어렵지 않으나 그 흐름속에 담겨있는 의미가 상당히 크고 깊다. 평생을 도자기 빚는 일만 해 온 도공 시프리아노 알고르의 삶은 소박하다. 딸 마르타는 아버지의 눈길만 보고도 감정을 알아챌 만큼 살겹다. '센터'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열흘마다 집으로 오는 사위 마르살도 시프리아노 알고르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다. 이들은 곧 마르살이 '상주경비원'으로 진급을 하게 되면 '센터'에서 제공하는 아파트로 들어갈 계획이다. 이 책의 주요 배경은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스러운 곳 '외곽'과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센터'이다. '센터'에는 쇼핑몰과 놀이동산 등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날이 갈수록 '센터'는 인간성까지 파괴해가며 자본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팔고 싶지만, 우리가 반드시 팔아야 하는 물건을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더 좋겠습니다.. '센터' 전면에 붙여진 포스터의 말이다. !!! 도공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자신의 집이 있는 외곽에서 도자기를 빚어 '센터'의 백화점에 납품을 하고 있었지만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자기를 매장에서 빼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당장 일을 잃게 된 그가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 찰흙인형이다. 마르타와 함께 인형 천 이백 개를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사위 마르살의 진급으로 인하여 '센터'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늙은 도공의 삶이 어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두 개의 동굴은 상징성을 지닌 듯 하다. 시프리아노 알고르가 백화점에서 빼낸 도자기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저장하는 마을 한쪽의 동굴과 아파트 지하에서 발견 된 또하나의 동굴이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동굴이 바로 플라톤의 동굴이란다. 약간은 뜬금없기도 하고 뭐지? 하는 기분도 든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다루었다는 이원론이라는데 쉽지 않다. 마지막부분에서 '센터'의 아파트를 나온 마르타와 마르살이 이미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되돌아 오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그리고 그들은 떠나기로 한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떠날 수 있을까? 아무리 '동굴'을 발견했고 또한 그 '동굴'속의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도 결국 '현실'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하는 것, 각박함 그 자체, 절실함 그 자체를. 삶의 또다른 이름은 '처절함' 혹은 '타는 듯한 목마름'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문장의 표현력이다. (여기서 또 한번 번역하시는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많다. 그 작품들 중에서 <수도원의 비망록>,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읽어보았다. 매혹적인 글 맛이 참 좋았었다. 인간의 허울을 어쩌면 그렇게도 신랄하게 벗겨내며 비판할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했었다. 꾸밈없는 직설적인 문체가 작품마다 상당히 독특한 맛을 느끼게 만든다. 현실인 듯 허구인 듯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속성을 마구 파헤치고 있음이다. <동굴>은 <눈먼 자들의 도시>와 더불어, 특정 시대와 장소를 넘어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 성찰이라는 사라마구의 후반기 문학적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라는 책의 소개글이 눈길을 끈다. 읽었던 작품들의 구성은 단순하다. 하다못해 등장인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메세지의 울림은 깊고 강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후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지 않는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다. 그만큼 인간의 속내를 잘 파헤친 글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인상깊은 구절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책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말할 가치가 없거나, 딱 한 번만 말하면 되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 가치있는 다른 말의 자리를 차지해 버릴 것이다. 그 말이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불러올 수 있는 결과 때문에 그렇다.(-48쪽)

세상에 거짓이 얼마나 많은지, 어딘가에 진실이 조금 있기는 하겠지만, 진실은 계속 변한다. 그리고 진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진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혹시 그럴듯한 거짓말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117쪽)

삶이란 온갖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항상 균형을 사랑한다. 만약 삶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면, 모든 구름 뒤에는 한줄기 밝은 빛이 있을 것이고, 오목한 곳에는 반드시 볼록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226쪽)

우리는 책을 선반에 꽂아두거나, 트렁크에 넣어두거나, 먼지가 쌓이고 좀이 슬도록 내버려두거나, 어두운 지하실에 처박아두기도 한다. 몇 년이 지나도록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주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은 전혀 개의치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내용물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도록 입을 꼭 닫은 채.(-248쪽)

곧 익숙해지겠지. 우리는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가 직접 이 말을 할 때도 있다, 곧 익숙해지겠지. 우리가 이 말을 할 때나 다른 사람들이 할 때나 진심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겐 체념을 가능한 한 당당하게 표현할 방법이 달리 없다. 적어도 다른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익숙해질 때까지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되는지 묻지 않는다.(-334쪽)

우리는 예절이라는 것의 그물망에 사로잡혀 있어, 예의 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거미줄에 (-336쪽)

사랑이 사람들을 결합시켜 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다 결합시켜 주는 건 아냐 (-3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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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정호승 지음 / 시공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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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한 편의 詩가 우화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쓰게 된 책이라고 한다. 동화나 우화는 아주 작은 이야기를 통해 아주 큰 울림을 준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어서 좋은 것이 동화나 우화일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맑고 향기로운 생각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동화나 우화일거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선뜻 이 책에 손을 내밀었다. 이 무더위를 가볍게 식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평소에도 자주 필사하곤 했던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역시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책을 읽는 내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라는 詩가 자꾸만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마도 많은 사람이 암송하는 시 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만큼의 가치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 삶의 가치'다. 책띠의 말을 보자면 이렇다. 이 책은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가, 그 가치를 통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화의 방법으로 성찰해 본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내 존재의 가치를 찾아 그 가치에 순명함으로써 뜻 깊은 인생을 완성하시길 기도한다... 작가의 말이라 한다. 그런데 왠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조금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의 말미에 그러니 너도 너의 가치를 알아 그 가치에 알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반복하고 있다. 작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는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똑같은 천으로 태어나 누구는 행주가 되고 누구는 걸레가 되었다는 것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본 적이 있고 들은 적이 있었을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있다. 그럼에도 저마다의 가치가 다르다는 이야기...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보다 구도의 길을 가고 싶은 사람에게 권해야 할 듯한 그런 느낌? 너무 큰 기대를 했었나? 물론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것이다. 답이... 너무 어렵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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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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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20일 E411 고속도로에서 보았던 개에게...

우리가 버린 개, 가엾은 개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런 개를 생전 처음 보았기에 그 충격이 더 컸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문장이다. 어떤 개가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치명적인 사고를..... 그것을 보고 여섯 사람이 멈춰 섰다. 달리던 차를, 달리던 자전거를.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개가 진짜로 버려진 개였는지, 그 개가 실제로 존재했었는지조차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그 여섯 사람의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개의 이야기. 그 개를 보았던 날 문득 찾아왔던 어떤 감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머문다. 고속도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던 개는 여섯 사람에게 무엇을 묻고 갔을까?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힘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개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었고, 그 개를 통해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인식했다는 것이다. 여섯 사람 모두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트럭 운전사도, 좋아하던 여신도를 찾아 헤매는 늙은 사제도, 애인과 이별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여자도, 일하던 가게에서 해고 당한 동성애자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과부와 모든 불만을 먹는 것으로 해소하던 과부의 딸도 그 개를 통해 소리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사냥개 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질주하지만 사냥개 떼는 없다'는 말이 우리의 현실을 빚댄 말이 아닐까 싶다. 힘든 시간은 우리를 외롭게 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없는 현실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말했던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누구도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강요한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는 저 고속도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는 개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묻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고,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제목만 보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이 책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다. 책의 뒷표지에 써있는 추천글조차도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어차피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테니까. 다만 이 책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만은 살짝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 날은 개의 날이었을까? 허상과 같은 개를 달리게 하여 자신의 살을 돌아보게 하였으나 고작 여섯 사람만이 차를 멈추었을 뿐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서글프게도 이 책에서는 아웃사이더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희망을 말하기에는 왠지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시간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차라리 그 개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섯 개의 이야기마다 붙여진 소제목이 자꾸만 시선을 붙들었다. '별 수 없음'을 인지하고 결국엔 '영원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던 이야기의 끝에 희망보다는 절망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이 남아 있다. 역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기에는 가볍고 밝은 이야기가 제격인가? 차라리 그냥 단순히 잃어버린 개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더 좋았을까? /아이비생각


사냥개 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미친 듯이 달려가는 개. 다만 사냥개가 없고, 아무도 추적하지 않고, 당사자만 있다. 우리도 꼭 그런 식이다. 완벽한 건강을 갖고 아주 편리한 일상적인 지식을 갖춘 젊은이인 우리들은 숨이 차도록 달린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를 추적하지 않으며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 우리를 찾지 않는다. 직업상의 이동의 필요가 냉혹한 힘으로 이동시키는 이 자동차들 안에 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인가? (-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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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한자, 한자 속 신화 : 자연물편 - 딸아 한자 공부는 필요해, 문제는 문해력이야. 신화 속 한자, 한자 속 신화
김꼴 지음, 김끌 그림 / 꿰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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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공부는 필요하다. 지금 누가 한자를 쓴다고? 라고 말한다면 그 생각부터 얼른 바꿔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불교 문화이기도 하지만 한자 문화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한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말을 이해하는가이다. 책의 표지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문해력은 중요하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한자는 모두가 어려워한다. 한자를 배우거나 공부하는 방법이 여러가지인 이유다. 먼저 부수를 배우고 익혀 거기에 맞는 한자를 공부하기도 하고, 사자성어를 공부하며 한자를 같이 공부하기도 한다. 서로 반대되는 말이나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를 엮어서 외우기도 하고, 같은 음인데 다른 뜻을 가진 한자(동음이의어)를 따로 공부하기도 한다. 글자에 맞게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공부하기도 하지만 기억하는데는 연상법만큼 좋은 게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한때 치기 어린 도전으로 일본어를 배운 적이 있었다. 일본어 역시 한자로 된 글자였기에 한자를 모르면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와는 한자의 글자체가 달라 내친김에 학창 시절에 배웠던 제대로 된 한자를 공부해 보기도 했었다. 한자 공부하기에는 신문만 한 게 없었는데 지금도 옛날처럼 신문에 한자가 많이 섞여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이 책은 한자의 필요성을 깨달은 아버지가 딸에게 쉽게 한자를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책이다. 노래를 만들어 배우는 방법도 좋긴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옛날 이야기나 신화를 들려주며 한자 공부를 함께 한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에서는 해, 달, 별, 하늘의 4방위를 맡은 四神이나 비와 구름, 바람 등의 자연물에 관련한 신화가 많다. 옛날에는 인간의 모든 일이 날씨와 관련이 있었다.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다. 자연물에 하나의 상징을 붙여 그들을 달래가며 살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자연물마다 갖고 있는 이름과 이야기가 각각의 특성을 갖는다. 섬나라인 일본에 팔백만의 신이 있다는 말도 지형적인 것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뜨거운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예와 항아의 이야기, 견우와 직녀 이야기처럼 낯익은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목차에서 보면 신화한자, 비교한자, 심화학습, 요소한자 등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구분해 놓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요소한자가 가장 흥미로웠다. 國의 원형 글자가 或(혹시 혹)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或은 戈와 口의 회의자로 제정일치 시대의 최고 권력자인 임금의 입을 창으로 지키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或이 가진 '혹시'나 '만약'이란 뜻은 가차이다. 혹시 모를 적의 침입을 대비해서 지키는 모습에서 '혹시'라는 뜻으로 가차 한 것이라 한다. 그런 걱정과 의심을 하는 마음이 惑(의심할 혹, 미혹할 혹)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란 뜻일 터다. 그렇게 되니 나라의 뜻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囗(에워쌀 위)를 추가하여 나라 國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囗는 성벽을 그린 것이다. 한자 사전에서 에워쌀 위 자를 찾아 보면 圍로 나온다.부수가 囗(큰입구몸)이다. 或자가 원래 나라를 뜻하니 거기에 土를 붙이면 지경 域이 되고, 땅의 가장자리라는 뜻을 지닌 지경 境이 된다. 그래서 國境이다. 함께 해서 좋은 사람은 벗 朋, 마음과 뜻이 잘 맞는 사람은 벗 友로 표현한다는 것이 이채롭다. 비슷한 또래의 친한 벗을 이야기하는 朋友도 있다. 거기에서 오륜의 하나로 친구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다는 뜻의 朋友有信이 나왔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한자 공부는 어렵다.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공부다. 하지만 한자를 배워서 손해 볼 건 하나도 없다. 세상 이치를 깨닫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한자를 공부했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한자에 대해 바르게 배우고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런 방식도 괜찮겠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마음가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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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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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읽었다. 하나 하나 그림을 떠올리면서. '짓다'의 어근 '짓'이 집의 옛말이라 한다. 처음 알았다. 책 속에는 '집'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따스함이 공존한다. 옛말에 거적때기 같은 집이라도 내 집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집은 우리에게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 작금의 시대가 품고 있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층 아파트야 더 말 할 필요가 없다. 가끔 생각했었다. 아파트를 5층 이상은 지을 수 없도록 규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냐하면 나무보다 높지 않은 건축물이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이다. 어느 정도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탄소 중립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주제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한옥이라 정의하는 한국의 전통집에 대해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저자의 말은 울림이 크다. 저자의 말처럼 서울 가회동 민가나 북촌의 살림집이 우리의 전통 건축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 동네는 일본인들에게 이 나라 땅을 빼앗기기 싫어했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곳이다. 사유의 공간이었다던 하이데거의 오두막을 그린 그림이 시선을 끈다. 오두막 뒤에 전나무, 가문비나무가 시커멓게 서 있다는 곳. 한번은 보고 싶어진다. ​

저자는 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이다. 나무의 특성을 파악하고 분류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하다. 습기에 강하고 잘 썩지 않는 밤나무는 강도가 뛰어나 건축재로 사용하기에 더없이 훌륭하다고 한다. 19세기 노르웨이의 통나무집은 작지만 정겨운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염가 주택의 대량 보급이 필요했던 미국에서는 경량 주택이 일반 주택의 시작이었단다. 나무만 있다면 누구나 지을 수 있었던 집. 그런 경량 주택이 우리 나라로 유입되어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여기저기에 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값싸고 편리한 쪽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기우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나무가 천연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공감한다. 도연명이 <귀거래사>에서 읊었던 초가집이나 황희 정승이 살았다던 비 새는 집, 세 칸 도산서당, 법정 스님의 산중 토굴을 소개하면서 작고 초라하지만 빛나는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집이 재산으로 취급되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남다른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거적때기 같은 내 집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 맞춘 집이라야 하는 작금의 우리 사회는 저자의 말처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물론 아파트가 아닌 형태의 집도 많다. 요즘에 와서 많은 사람이 꿈꾸는 전원주택처럼. 이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집의 형태는 다양하다. 세기의 건축가가 지은 집, 외딴 숲속 철학가의 오두막, 휘황찬란한 왕비의 궁전, 마주 앉으면 무릎이 맞닿는 시인의 집, 골목길에 즐비하던 아무개의 양철집, 그리고 아파트. 그저 이름과 평수로만 이야기되는 아파트는 사람의 온정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지방에 갈 때마다 많아지고 있는 아파트를 품은 풍경이다. 뜬금없는 곳에 덜렁 떨어진 듯이 한 두 동 지어진 아파트의 풍경은 정말 생뚱맞다. 거두절미하고 이 책을 통해 여러 건축물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름값을 하는 건축물도 있고, 그 주인의 이름때문에 유명해진 집도 있다. 숲 속에 지어진 작은 집도 있고 멋보다는 기능과 목적에 맞게 지어진 집도 있다. 여러 형태의 집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의 발길이 얼마나 바빴을까 싶기도 하고. 사진보다는 그림으로 보여주니 조금은 이채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집을 짓는 사람이다. 8평 집으로 이사할 꿈을 가진 사람. 언젠가 나무로 작은 집을 지어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저자 역시 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무집, 이라는 말은 그 속에 알 수 없는 따스함을 품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한자부터 일반 상식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공부를 했다. 세상에서 이름값하는 건축물의 이미지를 볼 수 있었고 그에 따르는 설명은 재미었었다. 시대에 따라 혹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변해가는 집의 형태도 소개한다. 말로는 친환경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값싸고 편리한 쪽을 선택하는 인간의 모순은 영 껄끄럽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유랑자의 삶을 그렸던 영화 <Nomadland>가 떠올랐다.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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