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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참하라 - 상 -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ㅣ 우리역사 진실 찾기 1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 이 노래 모르는 사람 나와 보시라! 아니 요즘애들말고 우리처럼 7,80년대에 공부했던 사람들중에서 말이다. 국사시간이면 어김없이 조선시대 왕의 순서를 외우기 위해 노래를 불렀었다. 저자의 말처럼 정말 우리의 삶에 아무런 쓸모도 없던 왕의 순서를 왜 외웠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 또한 교육의 힘인 것을.. 그렇다면 그 27명의 왕중에서 과연 제대로 된 왕은 몇명이나 있을까?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 명군으로는 세종, 정조로 2명을 뽑았고, 밥값을 한 왕으로는 광해군, 효종, 태종, 세조, 영조로 5명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죽값을 했다고 한 성종과 숙종까지 합쳐 겨우 9명이었다. 그 나머지 18명의 왕들에 대해서는 얼뜨기, 멍청이, 소인배, 덜 떨어지고 모자란 무능한 왕이라고 평가를 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소인배로 선조와 인조가 찍혔는데 굳이 이 책을 읽어보지 않는다해도 조선사를 조금 읽어본 사람이라면 반대를 하지 않을 것 같다.
책의 제목 '왕을 참하라'를 보면서 내심 통쾌함을 느꼈었다. 몇 권의 조선사를 읽으면서 왕이나 지배계급들로 인해 열받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정말 울화가 치밀어서 책을 집어던지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아주 훌러덩 까발려진 조선사앞에서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진즉에 성리학이나 유교가 죽고 실학이 컸어야 했다고 무릎을 치게 된다. 그리고 또하나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가 지금껏 사실이라고 알고 있었던 역사적인 일들이 만들어진 소설이었다는 말이다. 그 유명한 이야기 함흥차사가 소설이었다? 이성계를 모시러 갔던 사람들이 죽은 것도 아니었고, 이성계는 무학과 성석린의 권유로 도성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성계의 손에 죽은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것처럼 民話나 野史속에 담겨져 지금까지 사실인것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속에서는 주저함없이 다 까발려져 있다. 물론 역사야 승리한 자가 쓴다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했다. 아무리 치부를 감추고 싶었다고는 해도 책장 자체를 칼로 뜯어냈다거나 아예 지워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작태다. 하지만 인간이었기에 그럴수 있다고 한수 접어주자. 그런데.. 자꾸 읽다보니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니 역시 명군이었다는 세종과 정조의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이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자부심을 갖는다는 훈민정음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어 참으로 고마웠다.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놔두고서 처음엔 상말글이라는 의미의 언문,언서,언어 등으로 격하되었고, 여자들이나 아이들 그리고 천민이었던 중들이 사용한다하여 '암클' '아랫글' 또는 '중글' '절글'이라 불렸단다. 그러다가 "하나밖에 없는 위대한 글'또는 ' 큰 글'이라는 뜻으로 19세기 말 국어학자 주시경이 처음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고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인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니 참 기가 막히는 일이다. 최만리같은 자들이 세종에게 올렸던 상소문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한다. '지금 이 언문은 신기한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중 하나가 한글날이 없어진 거다. 전세계에서 문맹을 퇴치하기 위하여 헌신한 단체나 개인 기관들의 노력을 장려하기 위해 유네스코에서 제정한 상이름이 '세종대왕상'이라는 것만 봐도 우리는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만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런 상이 있는줄도 몰랐다!) 하루를 더 쉬고 안쉬고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한글에 대한 중요성을 그렇게해서라도 심어보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말을 만들어 쓰고 있는 우리가 너무 주인의식이 없어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이다. 요즘의 언론지상이나 매스컴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현상이다. 좋은 우리말대신 외래어들이 차고 앉은 자리가 너무나도 많아보인다. 뭐, 무조건 외래어를 쓰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 말때문에 자꾸만 뒤로 밀려나는 우리말이 너무 안타깝다는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마디하자면 요즘 그 줄여쓰는 말들이 나는 너무 맘에 안든다. 언제부터였는지 느닷없이 우리는 아무런 뜻도 없이 말을 줄여쓰기 시작한 것 같다. 그것도 속도전의 하나일까? 문제는 그런것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그럼 이 책속에는 왕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올까? 그렇지는 않다. 그 왕들의 배경이 되어주었던 인물들도 아주 많이 나온다. 나오기만 했나? 이름값 제대로 하지 못한 것들은 아주 씹히고 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송시열이나 이이같은 인물들도 예외없이 지독한 원칙주의자였으며 전형적인 보수꼴통으로 남과 타협을 할 줄 몰랐던 인물로 그려져 있으니... 물론 괜찮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양반,천민,노비 할 것없이 이름 올릴 수 있는 자들은 모두 올라 있다. 조선시대의 대도이야기도 나온다. 억눌린 채 신음만 하던 민심을 대표하여 나섰던 홍길동, 임꺽정,장길산이 바로 그들이다. 홍길동과 임꺽정은 잡혀 죽었지만 장길산만은 잡히지 않고 종적이 묘연했다는..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 틈에서 협객 장복선이나 김만덕 이야기는 정말 훈훈하다. 창고지기 노비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돈을 썼지만 나랏돈을 횡령했다는 죄로 형을 집행하려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빌고 혹은 울면서 그의 구명을 호소했다 한다. 천한 노비 장복선을 살리기 위하여 '속전을 냅시다'라는 한마디에 군중들이 각자 가지고 있던 돈이나 반지, 비녀, 패물들을 모조리 꺼냈다하니 실로 감동적이지 않을수가 없다. 그것도 모자라 다음날까지 모금이 되고도 남아 형을 집행하던 채제공이 그를 석방했다 한다.
옛속담에 '암탉이 울면 망한다'라는 게 있다. 거기에 빗대어 조선이란 나라를 개판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여인들을 꼬집어 정말 싸가지 없는 여인들이라고 명명한 저자의 말에는 정말 공감한다. 그중에 첫번째가 명종의 모친 문정왕후로 그녀의 수렴청정 당시 백성들의 삶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 두번째가 영조비 정순왕후로 정조가 심혈을 기울였던 모든 개혁을 모조리 엎어버렸다. 더구나 그녀로 인하여 정조를 도왔던 아까운 인재들이 엄청 죽었다니 정말 애석한 일이다. 세번째로 고종비 명성황후 민비를 들었다. 명성황후.. 일본 낭인들의 칼에 쓰러지면서도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말했다던 그 아름다운 민비에 대한 판세 뒤집기는 정말 대단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암탉들로 인하여 겨우겨우 살아나던 개혁의 의지들이 모두 짓밟혀버린 꼴이니 어찌 아니라고 도리질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빨만 까다 살아남아 권력을 거머쥔 인간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을 쥐뿔도 않고 제 새끼, 제 집구석, 제 문중, 제 당파만 어떻게 잘 처먹고 잘사나 하는 연구만 했다. 그러다보니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조선은 점점 낙후되어 갔던 것이다. (380쪽)
정말 지독하다. 어찌보면 역사를 다루면서 저렇게 상스러운 표현을 써도 되나 싶기도 한데 웃기는 건 저런 말투를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통쾌했다는 거다. 이 책을 쓰신 저자께서는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로 당쟁을 들었다. 아까운 인물들이 그놈의 당파싸움으로 얼마나 많이 희생되어졌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그런데 저 말투보다 더 웃기는 건 지금의 정치판이 어쩌면 저리도 조선시대의 정치판을 빼다 박아놓은 것과 똑같은지... 백성들이 풀을 먹는지 흙을 파먹는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싸워대는 꼴이 정말 그 때나 지금이나 한심하기가 똑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인물이 딱 한분 있다. 쇄국정책때문에 엄청 미운 사람편에 줄을 세워놓았던 대원군이다. 대원군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진실을 파헤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디 썩지않은 곳이 있을까 싶지만, 구린 냄새 풍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 것들에 대하여 감사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화된 역사만 가르칠 게 아니라 이렇게 잘못되어진 역사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