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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digilog (보급판 문고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글쓴이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이 있다. 지금 살펴보면 아마도 그가 <신한국인>이라는 작품을 냈을 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 한국인을 말한다'라는 제목을 내세워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가 각인되듯이 내게 다가왔던 까닭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리도 힘찬 메세지를 전해줄 수 있었는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은근히 글쓴이의 작품에 유혹을 느꼈던 것이.. 개인적으로 쓸데없이 말줄임을 하는 표현들을 싫어했던 터라 처음 digital 과 analog 가 하나로 합쳐져 Digilog가 되었다는 말 자체에는 약간의 거부반응이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컴퓨터와 가까이 지내고 있으니 한번쯤은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접지 못했다. 그렇게 만난 <디지로그Digilog 선언>은 역시 글쓴이의 역량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처음 디지로그Digilog란 말을 들었을 때 도대체 뭐지? 했었다. 디지털digital 이면 디지털digital 이고 아나로그analog면 아나로그analog지 도대체 디지로그Digilog가 뭐야? 아나로그analog인가 디지털digital 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세상을 살면서, 아니 이제는 모두가 디지털digital 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회의 흐름속에서 아나로그analog를 그리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디카가 좋아 모두 디카를 들이대지만 언제고 원하면 볼 수 있는 사진, 그리고 어느곳에서나 공유하고 싶어하는 함께 했던 흔적들을 컴퓨터라는 장치속에만 묶어두기엔 우리의 감성이 너무나도 아쉬웠을 게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인화하기를 원하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설명해야만 할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민족의 젓가락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국도 쓰고 일본도 쓰는 젓가락문화가 무에 그리 새삼스럽다고? 했었던 사람들이 그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우리의 젓가락 문화를 다시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 안에 담겨진 것이 더 크고 더 깊기 때문은 아닐런지.. 그것에 대한 답을 아주 명쾌하게 만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IT(정보기술)를 RT(Relation Technology 관계기술)로 바꿔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누가? 젓가락 문화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이! 도대체 젓가락 문화가 어떤 것이길래? 그것이 지니고 있는 정(情)과 믿음(信)의 힘..이란 저자의 말에 어쩌면 고개를 갸웃거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말은 역설적으로 아주 대단하게 들려온다. 저자의 말처럼 하찮은 젓가락에 무슨 그렇게 대단한, 거창한 철학이나 의미를 부여하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조근조근 설명해가는 말을 듣다보면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지기도 한다.
디지로그Digilog가 태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참 많았던 것 같다. 천리밖의 모습도 볼 수 있었던 천리안으로 공주의 병을 알게 된 왕자, 그러자 천리마를 가진 왕자는 둘을 태우고 공주가 있는 성으로 달려갔고, 불사의 약초를 가지고 있던 왕자는 그 약초를 공주에게 먹여 공주를 살려냈다는 '세 왕자의 수수께끼' 와, 돈많고 못생긴 동쪽 남자와 가난했으나 얼굴이 잘생긴 서쪽 남자의 청혼을 받게 된 한 처녀의 '동가숙서가식' 에 얽힌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일례로 들려주던 그 이야기속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할 숙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 보였다.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것 모두를 소유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현실속의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라는 말에도 일단은 공감한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말의 겹침 현상이 또하나의 기술로 보여지게 되는 겹치기 기술.. 우리의 저력.. 타지인에게는 청룡열차를 타는 사람들로 비유되었다는 우리의 극단적인 모습 또한 말에서나 행동에서나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대단함으로 평가해버리고마는 저자의 말에는 역시 힘이 들어가 있다. 비관보다는 희망을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저자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 기호에 대한 풀이도 흥미롭다. 각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기호..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람들은 @기호를 '달팽이'라고 부르며 독일 사람들은 '원숭이 꼬리', 폴란드나 루마니아 사람들은 '작은 원숭이', 터키에서는 '귀'라고 부르기도 하고, 핀란드로 가면 '원숭이 꼬리'가 '고양이 꼬리'로 바뀌게 되고, 러시아로 가면 '개(소바카)'로 둔갑하기도 한단다. 그렇다면 아시아는 어떨까? 중국 사람들은 쥐에다 노자를 붙여 '라오수', 일본은 '나루토(소용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아무리 봐도 달팽이나 원숭이 꼬리로는 보이지 않으니 각 나라마다의 문화적 차이라는 게 참 신기하기까지 하다. 스웨덴에서는 '코끼리 몸통'이라고까지 부른다고 하니 왜 아니 신기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뭐라고 부를까? '골뱅이'다. 그 '골뱅이'를 이야기하며 우리의 음식문화와 디지로그Digilog를 겹쳐 보이게 하는 저자의 생각이 놀랍기까지 하다. 먹는 문화와 정보문화를 대표하는 인터넷문화는 딱히 연결되는 것이 없어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기가 막히게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저자의 그 관념의 크기에 놀랄뿐이다. 그 생각을 말함에 있어 강하고 다부진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목소리 듣기를 즐겨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어려운 것들도 저자의 목소리로 표현되어져 나올 때 내게는 쉽고 편안한 느낌으로 전해진다는 것이 저자만의 강점이기도 하다.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나뉘어 펼쳐지는 저자의 무대는 꽉 차보인다. 앞마당에서 디지로그Digilog가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선언했다면 뒷마당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한껏 풀어 헤쳐놓은 듯 하다. 특히나 우리에게 실패보다는 성공의 신화로 알려져 있는 에디슨의 실패담은 커다란 느낌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성공을 위해서는 겪어야 했을 실패가 있다. 그랬기에 에디슨의 실패담은 의외였다. 그리고 그 실패담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많아보였다.
저자와의 대담에서 말했던 디지로그 증후군이란 말이 떠오른다. 숫자의 세계인 디지털digital 과 말의 세계인 아나로그analog의 동거가 가능하냐고 생각하냐던 기자의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지금의 우리는 수많은 숫자속에서 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라거나 자격증번호 따위의 나를 대신하는 그 많은 숫자들.. 그러나 자신의 수인번호 264를 언어로 전환시켜 이육사라는 필명을 사용했던 시인이 있었듯이, 386세대라는 말을 기존의 숫자적 의미와 달리 3.1절과 8.15와 6.25를 모르는 세대라는 정치 패러디로, 9.11 역시 점을 빼버리면 911 미국의 구급 비상전화번호가 되며, 그것을 다시 뒤집으면 119 한국의 비상전화로 바뀐다는 것..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911을 뒤집은 119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라는 사실.. 이렇게 아무런 뜻도 없는 숫자에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부가했을 생겨나는 의외성.. 언어를 숫자화하는 것이 디지털 문화라면 숫자를 언어로 전환시켜 우연성을 높이는 것이 바로 디지로그Digilog의 증후군이라던 저자의 대답속에는 수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는 듯 보였다. 관점의 차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닌가 말이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으니 그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도 될테다. 젓가락문화의 훌륭함이 몸에 베인 한국인만이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던 희망찬 메세지를 이 책을 통해 만나보았던 시간이었다. 정말 뿌듯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러기에게 배워야 한다던 저자의 목소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기러기에게는 따로이 대장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짐승처럼 한 마리의 보스가 지배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것은 앞에서 나는 새들이 날개를 저으면 뒤에서 따라오는 새를 위한 상승기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71퍼센트를 더 멀리 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V자 대형으로 날면 길도 잃지 않고 힘도 아낄 수 있으니... 앞선 기러기가 지치면 뒤쪽으로 물러나고 금방 뒤따르던 기러기가 앞장선다.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대열에서는 앞장서려고 싸우거나 꼴찌라고 열등감을 갖는 일도 없단다. 힘의 법칙이 아니라 순환하는 협력의 질서에 의해 멀리 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병에 걸리거나 다쳐서 대열에서 낙오되면 두 마리의 다른 기러기들이 그 기러기와 함께 대열에서 떨어져 그 기러기를 도와주고 보호해준다는 것은 인간인 우리에게는 정말 부끄러운 진실이 아닐 수가 없다. 같이 간 두마리의 기러기는 낙오된 기러기가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함께 머물고 그런 다음에야 다른 기러기의 대열에 합류하거나 자신들의 대열을 따라잡는다고 한다. 정말이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지구촌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함께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말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디지로그.. Digilog.. 새롭게 다가왔던 언어, 더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컴퓨터와 정보를 떼어놓고는 말할 수 없는 세상을 사는 우리이기에 한번쯤은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