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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평점 :
불교신자이건 아니건 사찰을 찾는다는 자체에 대한 의미는 조금 남다를 수도 있을게다. 일단은 유래깊은 사찰들이 안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과 그 의의를 우리가 모른 척 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가하면 자연을 찾아나설때마다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 또한 사찰이다 보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한번쯤 사찰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보았으리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개인적으로 불교라는 종교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까닭에 배우고자하는 욕심을 부려보았으나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은 배우는 것보다 행하는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은 그 욕심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중이기도 하다. 한때 유적답사 동호회 활동을 하였던 탓에 많은 사찰을 다녀보았다. 특히나 역사적인 배경을 안고 있다고 하면 어김없이 찾아가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깊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그야말로 수박겉핥기식이었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야 했으니 하는 말이다.
사찰을 찾으면 가장 먼저 건축물에 대한 것부터 논하기 시작한다. 어느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언제 무슨 일로 소멸되었다가 다시 창건되었는지, 그 건축물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등등등... 그리고 나서 그 사찰이 안고 있는 문화재에 눈을 돌린다. 역시 그것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 문화재가 안고 있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또한 구전되어지는 이야기들, 민화나 설화를 예로 들어가며 열심히 그것에 대하여 알아가곤 한다. 그것이 안고 있는 참뜻보다는 이론적으로 책에서 배운 것들을 확인하고 돌아갈 뿐이다. 어찌되었든 불교라는 종교가 안고 있는 경전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경전에 대한 거리감이 약간은 좁혀질 수도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어렵다고 생각했었던 것들이 저자의 재미있는 해설로 좀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책을 읽다보면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사찰의 평면적인 모습보다는 처마밑 공포에 조각되어진 작은 동물이 왜 그곳에 있어야만 했는지, 석탑의 부분부분에 걸친 해설을 보면서 각 단마다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부도들에 얽힌 사실들을 하나둘씩 알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아하~를 외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그것이 그곳에 있어야만 했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서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야말로 사찰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저자의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도편수와 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라는 설화가 깃들어 있는 전등사 나신상에 관한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웅전 처마밑에서 네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는 나신상.. (강화 전등사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보게되는 조각상이다) 그 모습이 전생에 원숭이들을 살리신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원숭이들의 끝없는 존경심을 나타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변심한 여인에 대한 도편수의 복수라는 다분히 통속적인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알려져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아주 재미있는 해설로 다가가는 저자의 말솜씨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무언가를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사찰을 찾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많이 궁금했던 것은 탱화였다. 화려한 단청.. 그리고 법당의 안팎을 빙 둘러가며 그려져 있는 그림들.. 그 그림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늘 그것이 궁금했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일상적인 그림에 관한 설명은 그리 많지가 않은 듯 하다. 십우.. 보통은 심우도라고 하는 그 그림을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애를 태웠었는지... 본성을 찾는 불도의 수행경로를 소를 찾는데 비유하여 설명하는 그림이긴 하지만 그것을 알기까지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그림중의 하나였었다. 심우 (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입전수수(入廛垂手)... 지금도 사찰에 갈 때마다 기회가 되면 찾아보게 되는 심우도지만 탱화를 보는 눈이 틔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책속에서 정말 반가웠던 부분중에 하나가 바로 사천왕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무서운 모습의 사천왕상을 통해 법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설은 재미있기도 했다. 그 밖에도 여러 부처상에 관한 이야기라거나 흔히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인 범종이나 석등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들도 참 많았다. 윤장대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것인지, 혹은 명부전의 그림들이 보여주었던 많은 의미들.. 파격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수미단,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단을 떠받들고 있는 사자나 원숭이와 같은 동물들의 모습, 그저 단순히 비석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부도에 관한 설명, 16나한이나 오백나한 그리고 천불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자세, 백중과 49재에 얽힌 이야기등..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책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찰마다 그림으로 표현되어져 있다던 부처님의 일대기 또한 새로웠다. 과연 석가탑과 다보탑이 안고 있는 깊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알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나를 심히 부끄럽게 만든 한권의 책... 단 하나의 조각상일 뿐인데도, 단 한점의 그림일 뿐인데도 그 안에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정서를 담았다던 이야기들을 접하고보니 새삼스럽게 감동이 인다. 비켜가지 않고 숨기려하지 않았던 그 솔직함 앞에서 잠시 숨을 멈춰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좀 더 많이 찾아내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볐을 저자의 마음씀씀이가 너무 고맙게 다가온다. 내게는 정말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고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