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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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나에게 당신은 이제부터 6개월동안만 살 수 있습니다, 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겨 내가 침대위에서 누워있어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이 '만약에'라는 말이 가끔은 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 이후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그냥 한번 해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병원엘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폐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의사로부터 6개월밖에는 살 수가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 남자, 어떻게 했을까?  거꾸로 뒤집어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답은 미리 보여주었으니까. 그 남자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고 연명치료를 원하지도 않았다. 천명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이제 남은 시간동안 내 안의 나를 찾아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스토리는 뻔하다. 그 뻔한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가 관건이다. 죽어가는자에게 포커스를 맞추던가 아니면 보내야 하는 자에게 포커스를 맞추던가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둘을 모두 담아냈다. 그것도 절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와 그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잘 찾아내고 있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하고 너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으냐고 은연중에 묻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저 그런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피해가지 않는 그 남자의 소소한 현실 때문이다. 아름답게 덧칠하지 않는 그 남자의 일상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주 편하게 다가오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않은 그 남자의 일상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남겨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혹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고 싶어할 터. 하지만 이 남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결코 좋은 모습만 기억하지 말고 이런 것도 나였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남자에게는 아내가 있고 아들과 딸이 있고, 애인도 있다. 그리고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인연을 끊고자 했던 형들도 있다. 얽혀있는 모든 관계들이 하나의 실패에 실처럼 감겨져가는 과정에서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가끔 내가 침대에 누워지내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런 내 삶에 미련을 갖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한다. 그러니 내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에 대한 미련도 갖지 말아달라고. 이 책속의 주인공은 나와 동갑내기인 마흔 여덟살. 평범한 셀러리맨이다. 그의 병을 알게 된 아내가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 더 많이 살아달라고 말했을 때 그 남자의 대답은 내가 괴로워도? 였다. 굳이 옮긴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것은 양쪽 모두의 이기심이라는 말에는 공감한다. 내 마음 편하자고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내 마음 편하자고 미련두지 말고 나를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어쩌겠는가 말이다. 연명치료를 거부했던 주인공은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보기로 한다. 살면서 가슴속에 맺힌 것이 어디 한 둘일까마는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살았으며 무엇을 잊고 살았는가를..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아프게도 했었다는 것을.. 나와 얽혀있으나 내가 모르고 있는 일도 있었다는 것을.. 뒤돌아보는 삶은 누구가 아프다. 아니 그럴것이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래전에 김정현의 <아버지>라는 소설로 인해 안락사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속의 주인공처럼 어느날 갑자기 내려진 시한부선고앞에서 아버지는 말했었다. 좋은 모습만 기억되어지고 싶다고. 그러니 안락사를 원한다고.. 모두가 반대를 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어쩌면 그렇게 자기 하나만 생각하냐고,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느냐고...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의 고통을 앞에 두고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남겨진 아이들과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그리고 남편을 그렇게 보내고 난 후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많은 말들에 대해서. 그러나 아내는 선택했다. 그리고 고통없이 맞이하는 죽음.. 지금 생각해보면 책 속의 아버지를 또 한번의 힘겨운 여정속에 몰아넣고 싶어하지 않았던 작가의 배려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어쩌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대변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하지만 이 책속의 주인공은 달랐다.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끝까지 가족과 함께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기에 남아있는 시간동안이라도 함께 하고 싶었던 또하나의 아버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남자의 남은 시간들은 정말 행복했다.

미치 앨봄의 <단 하루만 더>라는 소설을 떠올린다. 나와 얽힌 모든 관계. 그 관계들의 연속성이 몰고왔던 많은 일들.. 자신을 아프게 했고 힘들게 했던 일들에 대해 왜 그랬어야만 했는지를 알게 되는 찰리의 단 하루.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서서히 아물어가는 상처들..  사람은 역시 그런가보다. 죽음을 앞에두면 (그것이 가까운 지인의 죽음이라면 더욱) 마음 켕기는 일부터 해결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 책속의 주인공과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과 딸의 의연함속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만약에, 라는 말을 앞에 두고서 하는 말이었지만 많은 공감을 찾아낼 수 있었던 까닭은 주인공 남자의 선택이 내가 늘 이야기해왔던 선택이었던 까닭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눈가의 눈물을 훔치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 있다. 관계.. 그 관계의 틀 속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얽혀 있을까? 내 삶속에서 풀어야 할 숙제들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프게 했던 사람들도 참 많을 것이다. 엉키지 않는 삶을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과 불행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가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해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맞이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나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내가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내가 말했다. 만약에, 내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당신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 아주 멀리가는 여행말고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아. 내가 평소에 가고 싶어했던 곳들을 기억해서 나를 데리고 함께 가 줘. 들어줄거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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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녀는 저런 물건을 돈 주고 살까?
브리짓 브레넌 지음, 김정혜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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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신이라는 게 있다. 나는 사실 그 지름신이라는 말이 사전에까지 올라가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그저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아이들의 말일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있다. 앞뒤 안가리고 바로 사는 사람들이 믿는 가상의 신. 참 재미있다. 그런데 이 신의 권력이 대단하다. 한번 강림하시면 도무지 마음을 다잡지 못하니.. 언젠가 방송 토크쇼에 나온 남자패널이 부부싸움하고 나온 날에는 영락없이 카드승인 메세지가 뜬다고 했던 그 말이 생각나 웃는다. 그 남자 하는 말이 그런데 그 액수라는 게 몇 천원 아니면 1,2만원 안짝이라 웃고 넘어간다던 그 말을 들으며 한쪽으로는 좀 찡했던 순간이기도 했었다. 여자라는 게, 아니 주부라는 것이 그 지독한 지름신마져도 이겨내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갖고 싶다고 무조건 살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그랬다는 말이다.

내게도 가끔씩은 지름신께서 강림하신다. 그런 경우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심적으로 뭔가 채우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나선 후회를 한다. 차라리 비싸더라도 제 값주고 제대로 된 걸 살 걸 하는... 반품하라고? 웃기는 소리다. 이 위대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가, 그리고 유통구조가 그렇게 세련되지 못한 까닭에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 사람은 다 안다. (반품이라는 말속에는 내 마음에 상처내기라는 속뜻도 숨어있으니...) 왜 이런 말을 시작했는가 하면 바로 이 책의 제목이 사람들의 그런 심리상태를 말해주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내 심리상태를 한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다. 결코 그런 상태를 이야기해주고 싶어 이런 글을 쓴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속에서 만난 주제는 "왜 그녀는 저런 물건을 돈 주고 살까?" 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문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케팅의 전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녀를 향해 "왜 그녀는 저런 물건을 돈 주고 살까?"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 수 있습니다.. 뭐 이런 얘기란 거다.

쉽게 말하자면 성의 심리학이다. 이 책속에서는 젠더 심리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성의 심리가 이러하니 이런 작전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성공할 것입니다, 하는 말처럼 들린다. 내 말이 틀린 것 같다고? 소비자를 주요 성장 동력으로 삼은 대부분의 기업에게 여성심리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여성은 소득주체인 동시에 소비주체라는 말에 유념해야 한다. 노인여성이 늘고 있고, 빅사이즈 여성이 늘고 있다는 말도 잊으면 안된다. 여성은 기능적인 세부사항보다 제품의 혜택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는 말에도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아하, 그래서 여성들이 덤으로 뭘 하나씩 준다고 하면 개미처럼 줄을 지어 서있었던 게로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것들중에서 하나씩 체크해 본다면 거기에 중심적으로 자리잡은 것이 바로 여성들일 경우가 많은 듯 하다. 할아버지는 할 일없이 눈치보는 노년을 살아도 할머니는 아직까지 할 일이 많아 괜찮다는 말도 있지않은가 말이다. 식생활이 서구적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이건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바쁜 시간을 이리저리 쪼개 쓰다보니 음식만들기에 시간을 좀 줄이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바라보더라도 빅사이즈의 여성이 늘고 잇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건 완전히 여성탐구생활같다!)

오래전에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말이 화두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이 책속에서도 당신이 어디에 있든 여성은 외국인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크다는 말일게다. 남성은 계급중심의 문화를 형성하지만 여성은 관계중심의 문화를 형성한다.. 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남성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모이지만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모이지는 않는다.. 는 말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그런 말이야 왠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부부생활백서같은 데에서도 흔히 하는 말인 까닭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여성심리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라는 말은 참으로 놀라웠다. 보통의 여자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별 일도 아닌, 정말이지 쓸데없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는 말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음이다.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은가!  여성이 '본질적인 측면'보다는 '실질적인 혜택' 에 관심이 더 많다는 말에는 나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 전자제품 하나를 고를 때도 여러가지 기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판매원의 말소리는 모기소리처럼 들리지만 내가 사용하면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불편했던가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에 대한 보완점이 이러이러하다고 이야기한다면 귀가 쫑긋거리니 하는 말이다. 참 대단하다. 이 책속에서 만난 여성심리학은 정말이지 나 스스로가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두 개의 성, 그 중 하나가 소비시장을 지배한다.... 이 말은 정말이지 기업이라면 귀담아 들을 말이다. 아니 사훈처럼 정해놓고 늘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소비는 여성으로부터 비롯되어진다는 말이 헛말은 아닐테니..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프로슈머라는 말이 있다. 피드백이라는 말도 있다. 그 모두가 생산과 소비를 한데 묶는 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여성의 심리.. 내 속에 지름신이 잉태되어지는 과정은 어떤 것일까가 궁금해서 들여다 보게 된 책이 오히려 내 속을 훑어보는 계기가 된 듯 해서 왠지 기분은 좀 그렇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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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빈의 조선사 - 왕을 지켜낸 어머니 최숙빈, 그녀를 둘러싼 여섯 남녀의 이야기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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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사다. 그 조선사중에서 숙종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숙종이라고 하면 우리의 기억속에 당연하다싶을 정도로 따라나오는 여인들이 있음이니 바로 장희빈과 인현왕후, 그리고 숙빈 최씨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녀들의 이야기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숙종의 이야기일까?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숙빈 최씨에 관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녀, 최숙빈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역사속에 단 몇줄에 불과하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이 작가는 어떻게 풀어내렸을까 하는 것이 궁금했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일지도 모른다는 편견을 가슴에 안고 이 책을 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말하건데 이 책은 최숙빈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어느정도의 사탕발림을 노린 제목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모든 조건을 따져 보았을 때 전혀 그럴수 없었던 여인들이 어느날부터인가 세상을 호령하며 살았던 경우가 있었다. 아다시피 조선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출신쪽으로 자녀의 운명이 정해졌던 시대였다. 양반이었던 아버지보다 관비였던 어머니를 두었기에 미천한 신분이었던 정난정이 그랬다. 기생이었다가 그당시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윤원형의 첩이 되었고 끝내는 정경부인자리까지 올랐던 여인이다. 또한 광해군을 움직였던 김개시라는 여인이 있었고, 폭군 연산군을 품안에서 데리고 놀았다던 장녹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여자 장희빈이 있다. 장희빈 역시 출신성분이 좋지 않았음에도 자신만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말이다. 어디 이 여인들 뿐일까? 알게 모르게 세상을 휘둘렀던 여인들은 많았을게다.

그렇다면  이 책속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여인들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여인들의 조선사를 말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인들이 어떤 여인들이었는가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그야말로 뛰어난 지략가였다. 세상을 읽을 줄 알았고, 제 주변을 정리할 줄 알았다는 말이다. 비록 나중에는 제 욕심이 지나쳐 좋지않은 결말을 불러오게 되었다해도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사는 잘못되어진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도 그럴것이 세상의 역사는 승리한 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상황에 맞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긴 해도 너무나도 상식밖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것 같아 가끔은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것도 장희빈의 죽음처럼 여러갈래로 찢어져나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듯한 야사들이 많은 걸 보면 정말이지 너무하다 싶을 때가 많다. 그런 이야기들에 따르면 장희빈의 죽음은 그야말로 한편의 극이 아닐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여인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시절의 흐름을 담고 있다. 그 시절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여인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들의 처세가 어떠했는가를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듯이. 운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한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삶.. 그녀들은 한사람의 여인이었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자신만의 삶을 살지는 못했던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우호적(?)인 글귀속에서 숙빈 최씨의 삶은 그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다.  숙빈 최씨가 삶의 모티브로 삼았던 것은 항상 조심하여라! 였다. 그녀가 그랬고 그녀의 아들 연잉군에게도 늘 그렇게 교육을 시켰다. 연잉군이 누구인가? 바로 영조다. 정조를 만들어냈고 가장 오래도록 왕위에 머물렀던 그 왕인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던 그 흐름을 이 책은 말해주고 싶어하는 듯 하다.

말도 안되는 한편의 소설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책을 펼쳤지만 나는 곧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한 시대를 이끌어갔던 일곱사람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 시대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숙종이라는 왕의 모습, 그리고 그 왕을 둘러싼 여인들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조선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은 그들의 사료들.. 지자체를 행하다보니 이곳저곳에서 내노라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긴하다. 하지만 믿을만한 것은 그리 많지않은 듯 하다. 그런점들은 이 책에서도 잘 지적해주고 있다. 나는 사극보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사극만큼은 아이와 함께 보려한다는 엄마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순히 흥미위주의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아이들이 알까? 재미에만 치우친 역사가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은 듯 하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 책에 수록되어져있는 많은 예제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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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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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이사의 주장으로 책을 불사르고 구멍을 파서 학자를 묻었다는 분서갱유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모든 책을 불살랐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실용적인 책을 제외한 사상서적을 불태웠을 뿐이고 모든 학자가 아닌 유학자들을 묻었을 뿐이었다.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가끔씩은 책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보다는 해가 되는 일도 있는 까닭이다. 책을 아주 멀리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부하는 까닭에 이 책의 제목은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위험한 책.. 책이 위험하다고? 어째서? 아니 무슨 책이 위험하다는 거지? 사실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모든 책이 다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읽어서는 안되는 책도 있고, 읽지 말아야 하는 책도 있고, 읽지 못하게 막아야 할 책도 있다. 도대체 이런 책은 왜 나온거야?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은 책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닌 듯 하다.분별없이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책만이 오직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듯 의지하는 사람의 의존성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책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져서 끝내는 책으로 인해 자신을 망쳐가는 한 사람의 흔적을 쫓고 있음이다.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운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17쪽)  책에 대한 나의 열정을 보면서 남들이 말하기를 정말 책을 좋아하시는군요! 였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책을 좋아할까? 단연코 아닌 듯 하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궁핍과 망각때문에, 그리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보이지않는 고리처럼 존재하는 것이 나를 찾아오는 책들에게 부여해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에게 있어 책 한 권을 버린다는 건 정말이지 힘겨운 일이다. 빌려준다는 것 자체도 엄청 두려운 현실인데 더 말해 무엇할까.. 일종의 버팀목처럼 나를 견뎌주는 책이 고마울 뿐이다.

어쩌면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거의 진동이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철자들을 발음하곤 합니다. 책읽기란 완전한 침묵에 잠기는 일이 아니지요. 우리의 목소리가 언제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0쪽)  공감한다. 다만 침묵속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 역시도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찌보면 내 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가 있다. 어김없이 헤매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잇는 통로들을 이리저리 헤매다니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서든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래야 앞으로 나아가며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데...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그토록 힘겨운 일이라는 말일게다.

이 책속에서는 책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침내는 책으로 집을 지어 그 집안에서 생활하게 되는 그 남자. 너무나도 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단 한 권의 책조차도 버리지 못했던 그 남자는 마침내 책을 벽돌 삼아 집을 지었다. 버릴 수 없었기에.. 그것은 정말로 버거운 집착이었지만 그는 그 집착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듯이.. 그리고 한때 사랑했던 여인으로부터 받았던 책을 돌려달라는 편지를 받고 모든 것은 끝난다. 그 한 권의 책을 찾아내기 위해 책으로 된 벽에 구멍을 뚫기 시작 했으니.. 그 책을 찾기 위해 그의 종이집은 사라져버렸고 그와 함께 그의 모습도 사라져버렸다. 누구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책을 읽는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 권, 두 권 늘어가는 책을 보면서, 점점 높아가는 책계단을 보면서 흐뭇함을 느낄 때가 더러 있기는 하다. 나는 정말 책을 사랑하는 것일까?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기는 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면 쉬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김없이 책을 찾아 헤매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 묻기도 했다. 이런게 중독이라는 걸까? 실제적으로도 책을 보지 않고 이삼일 건너뛰게 되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 두쪽만이라도 읽어야 그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으니 중독일거라고 자체적인 진단을 내려버렸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망각하는 은총-을 입지 못해 그러려니 한다. 내게 있어서 책은 일종의 도피처다. 그러면서 책은 나만의 연고다. 상처 난 곳에 살짝 발라주면 되는 그런 것... 그러니 아주 위험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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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4 - 하늘가의 방랑객 길 없는 길 (여백) 4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길게 왔다. 드디어 마지막 길..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게 된 경위에 대해 그리고 가야산 해인사가 대장경의 원래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수천만개의 글자가 한결같이 고르고 정밀하여 마치도 한사람이 쓴 것 같다고, 서각 예술품으로서 가장 위대한 문화 유산중의 하나라고... 그리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런데 강화도에서 만들어진 이 대장경이 어째서 한양을 거쳐 가야산 해인사로 가게 되었던 것일까? 고려 현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한다는 이 팔만대장경을 만들게 된 동기가 가히 의뭉스럽게 느껴진다. 몽고의 공격으로 나라는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백성들의 삶은 참담해졌는데도 강화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잘라 바닷물에 담그고 3년을 기다려 꺼내 켜고 말려 대패질을 하고 경문을 붓으로 쓰고 그것을 칼로 한 자 한 자 새겨나가고 있었다니..  싸워서 적을 물리치기보다는 대장경을 새겨 불력의 신통력으로 몽고군을 물러가게 할 수 있을거라는 그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란 말인지..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라는데 도대체 그 생각자체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원래 강화도에 있었던 것이 한양을 거쳐 해인사로 옮겨지게 된 이유는 첫째, 해인사가 속대장경을 발간하였던 대각국사 의천과 인연이 깊었던 까닭이다. 해인사는 그가 한때 머물며 열반에 들 것을 꿈꾸었던 도솔천이라는 사실이고 둘째, 강화도가 왜구의 노략질 앞에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왜구들은 수전에도 능했지만 불교를 숭상하는 민족이었던 까닭에 이 대장경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셋째, 가야산이 신령한 곳이며 해인사가 교통이 불편한 심산유벽이어서 외적의 침입을 받지 못할 피난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불교에 의해 흥하고 불교에 의해 멸망한 그 왕국 고려는 어디에 있는가. 그토록이나 신통한 불력을 의지하여 힘겨운 경판에 경문을 새겼던 그 나라는 어디로 갔는가 말이다. 말()이 말()을 이기고 문자()가 문자()를 이기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먹지않은 소쩍새가 '솥적다' 말을 하네... 한 구절의 말이 문득 가슴속에 깊은 앙금을 남긴다. 먹지않은 소쩍새가 '솥적다' 말을 하네... 항상 길이란 그러하지 아니한가.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여 돌아가고 싶어도 온 길이 아까워 계속 나아가고 있을 뿐.. (-128쪽)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커다란 우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가 다시 불을 밝혀야 함에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고 자꾸만 뒤돌아보며 뒤뚱거리는 것은 아닌지.. 온 길이 아까워 잘 못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않은 건 아닌지.. "어떤 것이 해탈(解脫)입니까?" - "누가 그대를 속박하였는가",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 "누가 그대를 더럽혔는가", "어떤 것이 열반(涅槃)입니까?" - "누가 그대에게 생사(生死)를 주었는가" (-102쪽)  다시 생각해보아도 말과 글이 먼저가 아닌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불교를 이야기하며 더불어 기독교가 동행하였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이가 카톨릭 신자였기에 가능했으리라.. 경허스님을 따라가 그를 암송할 때마다 사제들의 암송도 함께 들려주고 있으니 여러 이름과 여러 갈래를 가고는 있지만 종교라는 참의미가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그것을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인간들이 저 좋은대로 갈라놓은 길 아닌 길이었음을 내가 알겠다. 後人..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이것을 남긴다.. 경허가 남긴 마지막 글을 보면서 경허를 뒤따르던 강 빈은 마침내 길을 찾았다. 일곱 알의 염주가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그리하여 그 자신이 그토록이나 알고 싶었던 것에서부터 놓여짐을 얻게 되었다. 그것도 해탈이라면 해탈일 것이다.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解脫)이라 한다 (-50쪽), 고 했으니...

경허라는 화두를 쫓아가는 강 빈의 힘겨운 뒷태를 쫓아 나 역시도 헉헉거리며 뒤따랐던 먼 여행길이었다. 불교라는 종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따라다녔던 그 길위에서 돌부리에 채여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너무 뜻깊은 여행이었다.  왕족의 피가 흐른다던 아버지로부터 일곱 알의 염주를 받아 들었던 그 어린나이에서부터 이제는 불혹의 나이까지 와버렸으나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던 그 알 수 없는 무거움..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단지 만공이라는 스님을 찾아갔다가 경허라는 화두를 내려받게 되었던 강 빈 교수.. 그에게 화두를 내려주었던 법명스님조차도 끝내는 그에게 말없는 이별을 고하고.. 허탈하게 돌아섰던 발걸음을 되돌려 그 무거웠던 일곱 알의 염주를 넘겨주고 돌아오던 강 빈의 가슴속은 후련했을까? 자신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내려놓고, 또한 어머니를 내려놓았으니 그는 이제 가벼워졌을게다... /아이비생각 

"어떤 것이 해탈(解脫)입니까"  "누가 그대를 속박하였는가"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누가 그대를 더럽혔는가"
"어떤 것이 열반(涅槃)입니까"  "누가 그대에게 생사(生死)를 주었는가"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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