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람의 소리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소리를 낸다.

우수수 낙엽이 떨어진다.

한 자락 한 자락

밟히어 가다

나부끼어 부딪치고

부딪치어 떨어지고

고요하고


어디에도 당신은

소리 내지 아니하였습니다.




2. 시



새하얀 종이 한 장

흠 하나 내지 아니하고

남아 있어 달라고

내 자국 깊게 드리운다.


뚝뚝 떨구어지여

깊게 번지어 스며들라고

그토록 추악해진 너를

어이하라고


내가 아닌 것들로

뒤범벅 되어버린

네 흔적의 그림자가

나를 머금는다.




3. 너와의 거리



너의 발자국 오는

공간의 소리를 듣고파

가만히 눈을 감는다.


설레는 바람이 슬며시

셔츠 사이로 불어들고

어느새 입맞춤 한지

나는 모르고 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고요한 침묵이 일어

문득 두려워진 나는

가만히 눈을 떠본다.


너는 있지 아니하고

너와 멀어둔 공간만이

내 발등 온 촉수에

맴돌아 언저리에 남는다.




4. 침묵의 이유



당신의 돌아서는 긴 그림자 끝에

치인

내 머리!


그만 북받치는 설움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끝내

침묵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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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작별



당신께 가벼운 농담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침은 먹었냐고, 점심은 어땠냐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종일

당신께 가벼운 농담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골려서

삐치게 만들고, 앙탈을 부리게 만들어

당신께 가벼운 장난을 치고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툭툭 건드리듯

당신을 터치하며, 간지럼 태우듯

당신께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무거웠던 내 존재를

용서해 주세요.

그저 가벼운 농담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가벼운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가볍게 입 맞추고 싶었을 따름인데

당신은 제 무거움에 그만 질식해버렸군요.

그만 당신을 두렵게 만들어버렸군요.

그만 당신을 잃어버렸군요.

더 이상 당신께 가벼운 농담과 장난으로

입 맞추려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드문드문 그리운 당신께

간혹 가벼운 안부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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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새벽에 고양이 울음

쓰레기통속에 처박혀

빼꼼히 내밀은

창문 사이로 들려왔네.


겨우내 시린 바람은

여전히 불어왔고

얼음으로 들러붙어

창문은 꽁꽁 닫혀버렸네.


성에 낀 창틈에

이슬이 맺혀

주르륵 흘러내리다

알알이 맺혀

흐르지 아니하고

매달려 있네.

애원 한 번 아니하고

매달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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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 풍경



차창 밖 닿을 수 없어

더욱 아름다운 풍경들이

길옆을 메워갑니다.


가슴 내밀어 사진을 찍듯

온몸을 유리창에 부비면

오만가지로 뒤바뀌어가는 자화상


가질 수 없는 것을 동경하는 것은

유약한 것이라고

오직 가야할 길만을 생각하라고

남은 정거장 수를 헤아리다 보면

드문드문 꽂히는 서글픔들


지나쳐가는 모든 유약한 풍경들이

달리는 버스의 길을 내어주고

남아 있는 정거장 너머 아득한

지평선까지 길을 이루는데

언제 당신과 나는 저 길옆에 머물러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을지

지평선 너머 당신이란 그리운 이름이

문득, 노을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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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말



개나리로 희망을 말하고

물망초로 진실한 사랑을 고백하고

금잔화로 이별의 슬픔과

나팔꽃으로 사랑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무 이름도 없는 당신에게

꽃 되는 이야기 할 수 없어

나를 당신의 제물로 하여

꽃말이 되게 하시던가

당신이 나의 제물이 되어

꽃이 되어 주시던가







2. 꽃에 관한 알레르기



그대를 향한 거부의 몸짓들로

더욱 그대를 향해 옭아매져가는

이 내 걸음은 멈출 수 없는

늪입니다.

혹 그대는 아시는지?

어여삐 교태를 떨던 그대 낯빛보다

더욱 아름답던

그대 등 뒤에 스미던

내 절망을


그 모든 몸짓으로도 그대를

떨쳐낼 수 없던 것은

그대는 내 것이 아닌

다른 계절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변심



며칠 몸살이를 하다 기지개를 펴고

밖으로 나서면 온통 꽃 피는 세상

차마 부끄러워 새어나오지 못한

말들이 떠올라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마음뿐인 것을

그래도 슬며시 곁눈질로 쳐다볼 요량이면

속속들이 발가벗겨지는 내 모습

그대, 만지면 손끝으로 스며드는

선홍빛 고통의 흔적들

너무도 황홀함은 어이하여

그토록 쉽게 사라져 가는지를 아시는지

설은 고백이 독이 되어

숨죽여가는 그대를 질식케 하고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당신 때문에

문득, 때묻고 비린 살내음이 그리워집니다.





4. 지나간 계절에 띄우는 편지



가장 고귀한 이름인

당신을 향해 지금

피어나는 내 모든 거부의 몸짓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내 깊은 상흔 때문입니다.


간밤에 연하게 피어나던 홍조가

선붉게 물들어 시린 손끝으로

스며들던 순간

당신은 나려지는 것이 아니라

뜯겨지던 고통임을

내 어찌 알았겠습니까 만은

끈덕지게 눌러 붙은

당신의 빛바랜 자죽이

아침이면 거리에 널브러져

보이지 않는 귀퉁이 곳곳으로

숨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왜 나는 몰랐던 걸까요?

당신이 떠나간 것이 아니라

계절이 바뀌었을 뿐임을

왜 나는 기억할 수 없는 걸까요?

당신이 뜯겨지던 순간

나 그토록 행복했던 꿈을


다시 계절이 돌아와

당신이 내 곁에 버젓이 피어난다 해도

당신을 향한 내 모든 거부의 몸짓은

당신이 꿈꾸듯

나려지지 못하도록

뜯어내던

이 내 손길뿐입니다.





5. 꽃을 향한 염원



부드러운 입술을 포개어

달콤한 혀끝 감각을 느끼는

당신의 아랫배는

따스하게 달떠 오르고

살짝 상기되어 불그스레한

당신의 수줍은 윗볼에

나는 갓 피어나 꽃잎을 펼친

당신의 질 옆 소음순을

상상하며 굵고 단단하게

그만 발기해버립니다.


온몸으로 발열하는 당신을

하나의 꽃이라고

살짝 젖혀진 당신의 입구를

하나의 꽃봉오리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지금 짐승처럼 발기한

나의 성기도

당신을 받혀주는 줄기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듯 하늘거리며

당신 안에 흩뿌려질

나의 정액도

감히 꽃씨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의 의미 있는 아름다움으로

불리울 수 있을까요?

그렇게 당신과 같이 저도 감히

꽃이라 칭할 수 있을까요?


당신과 하나의 꽃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나의 의미 있는

아름다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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