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한 덩어리

 

 

동네 편의점 그늘 쉼터 옆

이름도 생소한 고압 정유기

철책 너머 한 귀퉁이에

조그만 약과 한 덩어리를 보고

참새 한 마리가 날라왔다

짹짹, 짹짹거리며 쪼아 먹는데

어디서 알고 왔는지

여기저기서 참새들이 날라온다

다 먹지도 못 할 거면서

그 거 조금 붙어 먹어보려고

여기저기서 싸움이 붙는다

짹짹, 짹짹거리며 마치 투계인양

종종걸음으로 퍼덕이면서

서로 얼굴을 쪼아대기 시작하는데

그 사이를 피해 몰래 주워 먹는 놈

그걸 또 쪼아서 빼앗아 먹는 놈

여기저기서 정말 가관이 아니다

이러보아도 저리보아도

그 놈이 그 놈 같고 저 놈 같은데

그래도 그 안에서 제일 센 놈이

모두 쫓아내고 혼자서 독식한다

다음날 참새들은 어데 간 데 없고

개미들이 한데 달라붙어 있다

며칠 후 약과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누가 다 먹어버린 걸까?

참새일까? 개미일까? 시간일까?

아니면?

다 꼴 보기 싫어 누가 치워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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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추억이거나 그리움에 대해

 

 

좁은 신학교 앞동산에서

우리는 밑도 끝도 없는 신에 대해 말하며

누군가는 이 세상의 모든 예술에 대해

누군가는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에 대해

각기 다른 말로 떠들며

신학교 뒷산 마루에서 몰래 담배를 피며

그 담배에 실려있는 우리 반역의 함의를

아무도 모르게 봉화로 피어 올리며

그것이 우리의 밝고 빛나게 타오르는

낭만이란 사실을 만끽하며 그렇게

그렇게 모든 젊음이 타들어가도록

긴긴 밤들을 지새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우리 누구도 감히

신에 대해 말하지 아니하며

그 빛나던 예술도 사르트르의 실존도

반역의 낭만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더 이상 빛나는 청춘이 아닌

빚내는 현실을 엄연히 마주하며

누군가는 두 아이의 아빠로

누군가는 한 직장의 책임자로서

서로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야기에 주억거리며

서로 무언가 할 말을 애써 찾고 찾다가

우리가 결국 그 시절을 재탕하며

또 우려먹고, 또 우려먹으며 되새김질하는 까닭은

결코 우리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때문은 아닐 거다

더 이상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완전한 타인이 되어버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드문드문 간혹 생각나더라도

안부를 묻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실체 없는 추억을 그리움으로 안주삼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 그 사실을

실체 없는 관계의 끈을 그렇게

이어가고 있다는 그 사실을

그렇게 받아들일 뿐이지만

 

난 아직도 늘 누군가가 그립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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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서류철

 

 

갓 돌 지난 우리 조카는

동요를 들려주면 춤을 춘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나는 파란 서류철로 부채질하며

나비의 날개 짓을 흉내 낸다

그때마다 조카는 서류철을 만지며

나를 따라 나풀나풀 나래짓한다

동네 배 밭 앞 카페가 생겼다

그냥 하릴없이 책을 읽다

담배를 피러 바깥으로 나오면

체험 텃밭 위로 나비가 날아다닌다

명치끝에서 목 위를 타고 울컥한다

언제쯤 우리 조카는 나비를 보고

울컥거리는 설렘을 알게 될까?

책장 속 푸른 서류철 안에서

나비가 쏟아져 날아오는 꿈,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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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발톱

 

 

언제부터 속살 깊이 박힌 걸까?

자르면 자를수록 깊게 파고들어

파내면 파낼수록 찐한 통증이 되어

어디가 살이고 어디가 발톱인지

어쩌면 너무 오래돼 뭉툭한 발톱은

자르지 않고 그냥 갈아내야만 할 뿐

그렇게 고이 가만히 내버려두면서

속살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뿐

그렇게 내성이 생기어 아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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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접착제와 오공본드

 

 

순간적으로 확 고착화되는 관계가 있다

서로의 살을 에고 타들어가는 열기로 맺어져

모든 손길마저 화상을 입히고서 어느 샌가

아무도 모르게 아주 쉽게 두 동강나버린다

그러나 그대 아는가?

누군가와 애착이 생기기 전 조심스레 다가가

서로의 자리를 확인하고 같은 자리를 공유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록 그 터도 언젠간 무너지겠지만 순간이 아닌

조금 오래 지속되는 그 무언가를 위해

사람들은 그토록 조바심 내며 노력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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