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 날벼락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늘 담배를 피우면서

새똥이 떨어지는 걸 두려워한다

왜 새똥이 두려운 걸까

맞아서 죽는 것도 아니고

몸이 찌릿하게 고통스러운 것도

아닌데

득실거리는 세균에 대한 혐오가

새똥에 대한 공포로

실은 그 속에 감춰진 동족에 대한

혐오를 마주하게 된다

담배 연기로 도시의 매연으로

더 이상 고기로도 먹을 수 없는

새들에 대한 연민이

우리들에 대한 혐오와 연민으로

그리고 여전히 담배를 태우는

나에 대한 혐오와 연민으로

변주하여 빙빙 돌아 돌아

다시 새똥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른하늘 위 공포를 달고서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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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에 관하여

 

 

우리는 모두 맛보지 않은

부드러운 비누 향의

혀끝으로 전해지는 쓴맛과

싱그러운 샴푸 향 속에

감춰진 역겨운 뒷맛

그리고 빨랫비누의 퍽퍽하고

무미건조한 맛없음을

알거나 기억하고 있다

누구도 배우지도 않았지만

누구도 보지도 못했지만

우리는 모든 사물들의 맛을

상상하며 몸서리치곤 한다

그런데 왜 사람이 아픈 건

공감할 수 없는 걸까

왜 사람이 슬픈 건

공유할 수 없는 걸까

왜 누구도 상상하지 않고

누구도 몸서리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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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과 소녀

 

 

아파트 입구에 선

소녀의 시선이 물끄러미

목련 나무 위에 핀

목련꽃으로 향해 있다

아련한 기다림의 눈동자에

설렘으로 소녀를 상상하며

감상에 젖다가 잦아드는데

엄마를 보고 팔짝 뛰는

소녀의 발랄한 뒷걸음이

마스크 안에 감춰진

목련보다 화사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어여쁜 소녀야!

언젠가 여기 아저씨처럼

혹은 지나가는 아줌마처럼

떨어지는 목련에 목멜 때

더 이상 화사한 미소를

지을 순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목련이 진 그 자리에

다시 목련이 피고

화사한 미소를 지을

또 다른 소녀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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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 관한 노래

 

 

별에 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별이 되고, 나만의 별을 찾아

하나의 의미 있는 몸짓이 되고 싶습니다

별이 너무나 멀어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처녀자리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만 존재하고

견우와 직녀, 은하수와 오작교처럼

옛날,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

더 이상 누구도 별을 노래하지 않지만

어린 왕자가 발견한 소행성 B612

얼마나 많은 이들이 꿈을 꾸었는지

당신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별에 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별이 되고, 나만의 별을 찾아

하나의 의미 있는 몸짓으로 남고 싶습니다

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멀리서

늘 빛나며 아직도 나와 당신을 기다리는

별에 관하여 노래하고 싶습니다

꿈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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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이 닦기

 

 

얘야! 자기 전엔 이빨을 꼭 닦아야 한단다

닦지를 않으면 나이 들어 틀니를 해야 해

자기 이빨이 아니면 얼마나 불편한지 아니?

엄마! 칫솔질할 때마다 토악질이 나와요

얼마나 괴로운지 이를 닦기가 힘들어요

얘야! 네가 나를 닮아서 위가 좀 약하구나

하지만 세상을 살려면 비위가 좀 있어야 한단다

뻔뻔하게 토악질보다 더한 발악질도 해야 해

엄마! 토악질을 하고 나면 잠이 다 달아나버려요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이는 바람이 너무 무서워요

얘야! 네가 나를 닮아서 예민하고 겁이 많구나

나도 네 아버지 뒤척이는 소리에도 흠칫 깨고

갑자기 네 걱정에 잠들지 못하기도 한단다

그런 날이면 선잠이라도 청해보렴

선잠을 자다 보면 언젠가 깊은 단잠을 자게 될 거야

엄마! 깊은 단잠을 자면 정말 아침이 달라지나요?

이빨을 닦아도 더 이상 토악질하지 않게 될까요?

얘야! 네가 나를 닮아서 너무 잔걱정이 많구나

우선 오늘 하루라도 이빨을 닦고 자려무나

그다음 일은 늘 그다음에 생각해야 해

엄마! 엄마는 너무 강하고 억척스러워요

저는 엄마처럼 넘어오는 슬픔을 쉬 삼킬 수 없어요

얘야! 너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란다

너무 걱정하지 마렴

내 귀여운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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