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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인간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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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인간 - 알레고리를 통해 보여주는 21세기의 무미건조한 구조



 한때 알레고리와 상징에 대해 집착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신학생이었던 내게 있어서 해석학적인 입장에 대한 내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고 싶은 충동에 기인했다. 그렇지만 그 때도 기본적으로 문학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접근했던 터라, 결국엔 그것은 내 문학적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어찌됐든 그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최종적인 작업방향은 알레고리와 상징의 연결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너무 방대하게 접근한 데다, 근본적으로 방향성이 서로 대척점에 서있는 알레고리와 상징을 연결한다는 것은 내 개인적 역량의 한계와 엇물려, 그저 무리한 시도와 발상으로만 끝나버렸다. 그렇다면 무엇이 알레고리고, 무엇이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두 단어에 관해 정의하기 위해선 먼저 더 큰 범주에 있는 은유에 대해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기서 나는 은유 속에 직유, 비유도 함께 포함해서 정의내리고자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은유는 어떤 사물을 낯선 다른 대상에 비교 혹은 대조함을 통해 그 어떤 사물을 새롭게 정의내리는 시도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커피라는 한 사물을 연인과의 대화라는 낯선 대상 속에 포함시켜 커피는 이제 여유와 사랑이라는 이미지로 읽히는 뭐 그런 작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와 커피를 여유와 사랑이라는 이미지로 읽는 것 자체도 너무 진부하여 비유라고 느끼기도 힘들겠지만, 여하튼 이렇게 커피를 연인과의 대화라는 전혀 다른 매개체와 비교하여 커피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작업을 은유라고 정의내리는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은유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싶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작은 범주에 속한 알레고리와 상징은 사뭇 이런 은유와 궤를 달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알레고리와 상징을 은유에 포함해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알레고리와 상징은 어떤 사물을 낯선 매개체와 비교를 통해 의미를 확장한다는 면에서 은유와 궤를 같이하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사물의 의미를 확장한다는 방식의 은유와는 확연하게 다른 방식으로 의미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알레고리의 경우는 은유가 표현하는 방식인 의미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의미의 본질로의 회귀의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알레고리가 설정해 놓은 비교대상들은 결국 그 애초의 어떤 사물에 대한 그림자 연극과 같은 기능의 방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레고리 소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카프카의 ‘변신’을 보면,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벌레인 주인공은 주위의 무관심과 홀대 속에 쓸쓸하게 죽어간다. 그렇다면 여기서 은유적으로 풀 때 주인공 남자와 벌레의 비교를 통해 어떤 의미가 확장될 수 있을까? 절망한 인간? 혹은 인간의 소외? 뭐 이런 식으로 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의미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보다는 인간 본연의 한 부분을 벌레라는 낯선 대상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벌레를 통해 인간의 의미를 확장시켰다기보다는 인간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벌레라는 낯선 대상을 끌어들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소설 속에 알레고리 비유는 일종의 현실에 대한 그림자 연극이라 흔히들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 비유들은 당연히 그림자의 실체인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결국 현실로 회귀하게 되고, 독자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 흐름에 따르게 된다. 반면에, 상징의 경우는 또 이와 완전히 궤를 달리하고 있다. 왜냐하면 상징은 어떤 사물과 전혀 생경한 대상의 비교를 통해 그 어떤 사물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유치환 시인의 ‘깃발’의 경우로 예를 들면 간단하다. 깃발이라는 사물에 시인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는 전혀 다른 매개체를 비교하여, 깃발이란 사물에 그리움을 표현하고 투영해내고 있다. 그렇지만 종전까지 우리가 흔히 아는 깃발이란 사실 무언가 전쟁터에서 승리를 위해 내거는 응원이나 의지와 같은 이미지였다. 그런데 유치환 시인에게서는 이런 깃발이 전혀 다른 이미지인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의 이미지로 치환되어 그리움이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소설에서의 은유는 알레고리와 가깝고, 시에서의 은유는 상징과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실제로 거의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작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에 읽어본 서유미 작가의 경우, 소설 속에서 알레고리를 매우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작가란 점이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에 들어왔다.



 사실, 처음 서유미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 때는 다소 진부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읽고서도 무언가 새롭다든지 혹은 신선한 느낌보다는 그냥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습작을 하는 내 입장에서 분명한 두 가지는 크게 눈에 들어왔다. 그 첫째가 앞서 밝힌 알레고리의 능수능란한 사용법이었다. 예를 들어, 그녀의 소설 ‘저건 사람도 아니다.’에서의 트윈로봇이라든지, ‘삽의 이력’에서의 두 남자의 밑도 끝도 없는 삽질, ‘당분간 인간’에서의 쩍쩍 갈라진 인간과 흐물흐물한 인간, 그리고 ‘검은 문’에서의 죄수들의 끝없는 벽돌 손잡이 돌리기와 희망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의 존재까지, 모두 현실의 우리를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 연극인 알레고리적 표현으로 읽혔다. 그리고 이 알레고리는 이 글 뒤 비평에도 제목으로 나와 있듯이(내용은 모르지만), 프랙털과 데칼코마니 사이에 놓여있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지만, ‘검은 문’의 경우는 아예 대놓고 이런 구조를 취하고 있다. 검은 문을 통과했을 때 또 다시 등장하는 감방과 검은 문을 통해 반복 재생되는 프랙털의 구조를, 그리고 원래 프랙털과 데칼코마니가 비슷한 구조의 다른 표현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전 감방과 새로운 감방의 유사 겹침 구조인 데칼코마니를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 사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당분간 인간’에서의 쩍쩍 갈라진 인간과 흐물흐물한 인간은 비교가 아닌 대조라는 기법만 사용했을 뿐, 똑같이 ‘프랙털’과 ‘데칼코마니’ 구조를 취한 알레고리이다. 나머지 작품 또한 매한가지이다. 특히, 이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소설들이 알레고리로 유명한 소설들을 다소 차용한 점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저건 사람도 아니다.’의 경우 ‘도플갱어’를 다룬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과 거의 유사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검은 문’의 경우는 카프카의 ‘문지기’란 단편과 비슷한 느낌의 글이다. 때문에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를 알고 있던 내게 있어선 읽는 재미가 반감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작가의 객관적인 시각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신경과민적인 과도함도 ‘카프카’의 절망적인 음울함도 그녀에겐 없었다. 그저 그녀는 조용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소설 속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한 채, 철저한 제 3인칭이라는 시점에서 ‘보여주기’만 할 뿐인 것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소설들은 다소 건조하고 나른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이 때문에 21세기적인 알레고리 소설로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건조함과 나른함 때문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대충 이야기를 갈무리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보여주기’만으론 알레고리의 전부를 드러낼 수 없다고 믿고 있기에, 많은 부분 배울 점이 있었음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조금 더 ‘보여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질로 회귀하는 방향의 알레고리가 되었다면, 물론 그것이 어려운 길이며 소설을 난잡하게 만들 소지도 다분하지만, 그랬다면 조금 더 소설적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상징이 지닌 새로운 의미의 창출의 시도도 여기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물론, 처음에도 이야기했듯이 알레고리와 상징은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기에 연결고리를 찾는다는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더 좋은 소설을 위해서라면 그런 위험을 한 번쯤 감수해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앞으로 내게 있어서 이 부분은 아마도 내내 풀어가야 할 숙제가 되리라는 예감을 가져보며 짧은 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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