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 - 작가와 함께 대화로 읽는 소설
오정희.이태동 지음 / 지식더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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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별사 - 홀린 글 읽기를 정리하며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 오전 6시 30분쯤 눈이 번뜩 뜨였다. 무언가 꿈속에서 예지와 전조로 가득찬 어떤 계시라도 받은 듯 아련한 떨림이 온몸을 감싸 돌고 있었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지난밤의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기도 전에 책상 위 모니터 앞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무정’, 춘원 이광수가 썼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소설, 파란 커버의 두꺼운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내 기억에는 이 소설을 산 적도, 읽은 적도 결코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꿈일까, 잠시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으려 할 때, 어머니가 불현듯 들어왔다. ‘벌써 일어났니? 밖에 누가 책을 많이 버려놨더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네가 책을 좋아하니까, 깨끗한 걸로 하나 주워왔다.’ 평소 어머니는 내가 책을 사 모으는 것을 마뜩치 않게 여기셨다. 방 두 면이 책장으로 가득차 있는 것도 모자라, 내 방 발코니에 또 책장이 두 개나 더 비치되어 있으니, 어머니로선 책 좀 그만 사라고 성화를 부리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런 어머니께서 갑자기 책을 구해오시다니, 그것도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소설인 ‘무정’을. 깰 때부터 무언가 전기에 지린듯한 전율로 가뜩이나 몸서리치며 일어났기 때문이었을까? 그 책이 마치 기억할 수 없는 지난밤의 계시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책의 커버를 살펴보았다. 고교생이 읽어야할 논술필독서,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책 커버 귀퉁이의 광고멘트 같은 조그만 그 글귀에 눈이 멎었다. 그리고 갑자기 5년 후에 논술카페를 운영하면서, 고교생을 가르치고,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선연히 눈에 그려졌다. 5년, 내가 이제껏 내 마음대로 산 대가로 진 빚들을 갚아야할 5년이라는 시기, 그렇지만 사실 그 5년이란 기간은 빚을 갚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그런데 5년 후 내가 어떤 돈으로 카페를 운영하면서 고교생들에게 논술수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예감이며, 환시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은 5년 후 결혼을 했을 때라는 가정이 따라붙었다. 사실 그 가정 속엔 어머니가 평소 늘 하시던 말씀이 포함되어져 있었다. ‘네가 결혼만 하면, 집이든 뭐든 다 해주겠다.’라는 어머니의 입버릇 같은 말씀들, 평소 그 이야기들을 나는 늘 흘려들었다. 왜냐하면 애당초 결혼할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까지도 온갖 방황과 낭만이라는 미명 하에 얼마나 나는 어머니의 속을 끓이고, 또 얼마나 금전적으로 손을 벌려왔단 말인가? 그런데 왜 그때 그 순간 나는 아주 당연하게 결혼과 어머니로부터의 도움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5년이라니? 내 삶 가운데 단 한 순간이라도 이제껏 내가 그러한 기간을 두고 무언가를 계획했던 적이 있단 말인가? 물론, 내 앞에 그 어떤 다른 명제보다 가혹한 현실이란 벽이, 대출과 빚이란 생생한 이름의 상황이 5년이란 기간 동안 놓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껏 나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런 식으로 기간을 두고 계획을 하는 삶을 살아온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구속이란 이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아주 사소한 전조만으로도 이제껏 품어온 나의 모든 가치관을 뒤집어 엎어버릴 만큼 뇌파에서부터 시작된 아드레날린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차고 넘쳐났다. 그렇게 그 상태 그대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오전에 은행이 영업을 시작하기 전, 남는 시간에 읽고 있었던 오정희의 단편집 ‘유년의 뜰’을 펼쳤다.


 別辭, 다소 생소한 한자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앞의 별자는 알겠는데, 뒤의 글자가 도통 무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한자사전으로 찾아보니, 말씀 사자였다. 별사(別辭), 이별의 말, 벌써 제목부터 무언가 심상치가 않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글은 그러한 심상치 않은 구석을 전혀 숨길 의도를 감추지 않고서, 묘지를 향해 시나브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멈춘 곳은 ‘신작로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딱 그 시각이 은행영업 시작을 위해 내가 마지막 점검을 하는 시각이기도 했고, 이상하게도 그 지점이 아침부터 마법에 걸린 내게 무언가 앞으로의 새 길을 제시할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날은 구정연휴를 앞둔 날이었다. 그러하기에 어떤 의미로 새해를 앞둔 마지막 날이 되기도 할 것이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뇌까렸다. 그리고 평소처럼 후문을 연 뒤, ‘정문 오픈합니다.’란 멘트를 외치고서, 정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의 대부분 신권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날 우리 은행에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만 원짜리 신권이 발행되질 않았다. 때문에 신권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헛걸음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게 오전부터 은행에 사람들이 쉬지 않고 붐볐다. 대기표는 계속 열 명을 넘어서, 스무 명 가까이 됐고, 기계들은 그날 내 기분처럼 미쳐 돌아가는지, 번호표 모니터가 고장 나고, 세금공과기마저 전혀 돌아가질 않았다. 아마 평소라면 이 대란에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을 토하는 고객들로 넘쳐나고, 나도 쉴 새 없는 고객들의 요청에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로 내가 그 모든 상황을 조정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졌고, 아니 나를 위해서 마치 그 상황이 조성된 것처럼 여겨졌고, 실제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어떤 고객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장 난 기계 덕에 내 할 일이 줄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 그랬을 거라 여겨지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한 번 어떤 믿음에 불타오르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자신의 힘을 뛰어넘는 힘과 열정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이 말을 쭉 불신해왔지만, 그리고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그날의 일들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바쁜 와중에도 나는 고객들에게 커피를 타주거나 차 한 잔을 대접할 여유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날따라 몸이 불편한 손님들이 많이 왔는데, 그때마다 창구의 한 여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평소 같으면 다소 차가운 느낌의 그 아가씨와 그런 눈맞춤에도 나는 별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녀가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처럼, 몸이 불편한 손님들을 자신의 창구로 모셨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문득 나는 내 논술카페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감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갑작스럽게 뜨거운 마음으로.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에 대한 그 불현듯한 감정으로 아침부터 시작된 내 막연한 예감에 대한 궤짝이 맞아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그날 모든 상황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나를 위해서 운명처럼 예비된 기분이었다. 그 때문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힘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은 시간마저 내가 조정하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누군가가 말한 시간의 상대성 이론처럼 시간은 내가 마음먹는 순간 천천히 가기도 하고, 눈 깜짝할 새 흐르기도 하는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전혀 현실적일 수 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점심시간인 12시가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먹은 뒤, 커피 한 잔에 담배를 태우면서 시간을 때우다, 1시 정각에 은행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오전부터 내내 오정희의 별사의 ‘신작로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는 글귀가 목구멍에 걸려, 책을 들고서 전에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던 멸치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점심을 먹으며,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 안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어져 나갔다. 낚시를 하러가서 사라진 한 남자와 낚시를 하러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덤을 방문한 여자의 이야기, 그런데 이야기는 교묘하게도 두 남녀의 이야기가 한 날 벌어지는 것처럼 써서 두 남녀가 전혀 관계가 없는 듯 표현하면서도, 두 남녀의 이야기의 교합지점을 만들어놓음으로써 두 남녀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종국엔 그날의 이야기가 백중에 벌어진 일이라 하면서, 우란분재, 망자의 날, 달은 밝아 만월이라 정리하고 있다. 마치 두 남녀 모두 망자이었어도 전혀 상관없었을 것처럼, 덩달아 나도 망자인 것처럼, 그날 숱하게 은행을 혼령처럼 떠돌던 손님들이 내게 있어 망자였듯이.


 그날 나는 점심시간에 마저 내친 김에 ‘어둠의 집’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어떤 까닭모를 공포와 대면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가 내게 어떤 전율을 가져다주리라는 사실을 넌지시 예감하며, 혼자서 환희에 떨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한 이삼 년 전 함께 모임을 하던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무척이나 오정희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분명 생각이 났을 거다. 그렇지 않고선 일반적인 상태에서 나는 연이 끊긴 사람에게 먼저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통 친구들에게도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한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런데 생뚱맞게 그날 오정희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바로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소주 두 병을 혼자서 마시며, 그에게 주저리주저리 그날의 무섭고 생경한 그렇지만 희망으로 가득한 예감과 예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아침 일어나면서부터의 예감부터, 갑자기 생긴 결혼할 마음과 동시에 그날 전혀 생각지도 않게 눈에 들어온 한 여자에 대해, 그리고 도저히 예상할 수도 없는 5년 후의 이야기들에 대해, 혼령이 된 기분으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다. 그는 놀란 기색이 완연했다. 어쩌면 내가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나는 1시간 동안 소주 두 병을 들이켰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생생해지고 명료해지는 내 정신과 마주해야했다. 때문에 그날 내가 그에게 한 말은 그 어떤 거짓도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반쯤 미친듯한 이야기를 혼자서 떠들 순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와는 6시쯤 만나서 10시쯤 헤어졌다. 그리고서 앞으로 새로운 길을 마주하게 될 5년이란 시간이 되기 전, 마지막 나락을 위해 나는 윤락업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것도 그날 오전부터 예견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나는 내 마지막 나락을 향해 있는 힘껏 몸부림쳤지만, 몸부림치면 칠수록 그날 불현듯 눈에 들어온 한 여자가 떠올랐다.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카페를 지키고 있을 그녀의 모습, 그리고 오전엔 글을 쓰며, 오후엔 카페에 흡연실 대신 따로 마련한 조그만 칸막이 유리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 때문인지 새벽 6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역시나 쓸쓸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그 어떤 마지막 나락도 내게 주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전날의 모든 예감들이 한낱 개꿈 같은 거짓된 예지와 예감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소 비참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 죽음 같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잠은 구정연휴 5일 동안 내내 계속되었다. 그리고서 다시 출근한 날 아침 나는 운명 같은 예감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가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그날 아침부터 스스로 혼령이 된 내 자의식이 만들어낸 환몽이었을 뿐,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예감과 전조들을 거짓으로만 치부하기엔 나는 여전히 몽환적인 인간이다. 때문에 아직도 신작로가 세 갈래로 갈라진 지점을 떠올리고 있다. 어디로 가야 그 망자의 날, 우란분재의 어원에 등장하는 목련존자처럼 아귀에 떨어진 중생(혹은 나락에 떨어진 내 자신)을 구하러 수행승에게 공양을 올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달은 밝아 만월이 되어 혼령이 되어버린 내 자신을 비추어 스스로 바라보고,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별의 말이란 떠난 사람이 아닌 남겨진 사람의 절망을 위해 스스로를 안위한 후 떠난 사람을 침묵으로 보내주는 말이듯이, 내 자신의 새로운 날들을 위한 희망이 아닌 과거의 절망을 위해 이제 스스로에게 고해야할 침묵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당분간 이별의 말로 절망하며, 다가올 희망에 대해 말없이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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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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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훌륭한 기획과 다른 마케팅으로 나온 작품에 관한 개인적 생각들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지만 나는 보통 책을 읽을 때 서평과 저자 약력을 잘 보질 않는다. 물론, 처음 페이지를 넘길 때 나오는 저자 사진과 나이 정도는 봐둔다. 뭐랄까? 첫 인상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어떤 세대인지에 대한 궁금증? 그래서 이번에 읽을 때도 역시 저자의 사진과 더불어 나이를 보았다. 1976년생, 나와 같은 나이, 그리고 다소 동안으로 보이면서, 유약해 보이는 사진. 하지만 여기서 내가 뒤에 덧붙인 유약해 보인다는 이미지는 방금 떠오른 이미지이다. 사실, 그냥 처음 보았을 때는 조금 꽁생원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대담하게 살인자에 관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데, 같은 세대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여러 소소한 이야기까지 곁다리로 펼쳐지면서, 사진으로만 판단했던 첫 인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하지만 글을 다 읽고서 품평을 써 내려가는 지금 나는 왜 갑자기 꽁생원과 비슷한 어감의 유약하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초반부 글을 읽었을 때 몰두했던 흥미로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왜 씁쓸하고 텁텁한 느낌 비슷한 개운치 못한 뒷맛에 한참을 이 품평을 쓰는 것에 대해 주저하게 되었을까?

     

  처음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욕망에 관해 아주 깔끔하게 다룬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 부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이 글의 화자가 어느 콘도에 갇혀 정체모를 회사로부터 거액의 고료를 받고서 추리소설을 쓰는 장면이었다. 화자는 여기서 세 개의 추리소설을 쓰는데, 사실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느 정치인의 인슐린 과다복용으로 인한 쇼크사와 유명 목사의 개인적 불륜으로 인한 추락사, 그리고 무더운 날씨로 인해 발생한 메탄가스 폭파사로 죽은 어느 농부의 이야기. 하지만 화자가 이 세 가지 이야기를 만드는 그 바탕이 된 출발점이 권력욕, 명예욕 그리고 개인적 죄과였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로웠다. 물론 세 번째의 개인적 죄과는 결국엔 거짓이었고, 경제적 이익의 문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여하튼 이렇게 볼 때 이 세 소설 모두 결과적으로 추리소설 공식의 출발점인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떠올린 추리소설은 화자가 직접 글에서도 언급한 시드니 셀던의 작품들이었다. 물론, 화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릴 적 셜록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만화를 보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이제와 잘 기억도 안 나긴 하지만, 분명 인간 욕망의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추리의 과정 그 자체에 중점을 두는 소설이거나 만화들이었다. 그런데 시드니 셀던의 작품들은 전혀 판이하다. 왜냐하면 이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추리보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빛바랜 기억임에는 틀림없다. 군대를 의가사제대 하고서 요양 삼아 시골에 내려갔을 때 삼촌들의 서재에 꽂힌 아주 누렇고 빛바랜 그 책들의 양질만큼. 하지만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화려했던 표지들이다. 부를 상징하는 사람 옆에 너무한 섹시한 여자와 혹은 겜블러들의 그림들이 가득했으니까. 그리고 내 기억들에 남아 있는 그 책의 결말들 대부분은 비극적 자살이거나 욕망이 얽힌 관계 속의 타살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어떤 추리소설이 주는 반전의 짜릿함보다는. 그런데 이 소설은 여기서 한 단계 진일보하여, 그러한 비극적 자살과 욕망들에 의한 타살의 배후에 존재하는 회사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회사는 누구나 읽다 보면 자연히 알아차릴 수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거대 자본주의이거나 구조주의에 관한 상징이다. 그러니 극적인 서사로 가득했던 시드니 셀던의 소설에서 분명 한 단계 진일보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현재 사회는 그러한 극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사회도 아니고, 실제로 일어나는 사회도 아니니까. 만약 정말로 어떤 죽음에 궁극적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그것은 어떤 극적인 서사보다는 거대 자본주의라는 구조에서 기인한 문제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죽음을 기획하는 컨설턴트를 설정하여, 사회의 구조에 대해 냉정한 시선으로 파헤치고 들어간 내용은 내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소설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꼭 극적인 서사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것도 다소 신파적인 설정부터 너무나 착하기 그지없는 콩고라는 설정까지? 왜 그런 설정들이 필요했던 것일까?

    

  바로 위에서 나는 여러 가지 의문들을 던졌지만 사실 이 글에 관한 가장 큰 의혹은 마지막 질문에 있다. 왜 그렇게 너무나도 거대하게 착한 콩고라는 설정을 두었냐는 점이다. 사실, 소설이기에 어느 정도 서사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설정에 다소 신파적이기는 하지만 현경과 예린의 대비되는 등장은 나쁘지 않았다. 이로써 얼마든지 회사와 개인의 얽힌 문제들을 풀어갈 수도 있었고, 또 회사의 실체에 대해 궁극적인 질문들을 던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콩고로 화자는 떠나버린 것일까? 여기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글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고릴라를 보고 싶었다고. 이 부분은 이 글 전체를 읽다보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바가 있다. 고릴라가 의미하는 바가 처음에는 매우 원초적이고 욕망으로 대변되는 모습으로 나오다가, 나중에는 순수로의 회귀를 의미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왜 생뚱맞게 콩고란 말인가? 물론,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던 바는 알고 있다. 저자는 거대 자본주의 담론에 대해 다루고 싶었고, 그래서 굳이 애초부터 고릴라라는 복선을 깔아 콩고까지 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로써 콩고가 가진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누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왜 갑자기 그렇게 착한 척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까지 실컷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떠벌려놓고, 그 실체이면서 허상인 회사에 대해 말해놓고서. 갑자기 무슨 구호단체 광고처럼 콩고의 절망과 대비되는 우리 사회의 위선에 대해서 떠벌린단 말인가? 왜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말로 그렇게 쉽게 무마해버린단 말인가? 조금 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회사의 실체와 허상에 대해 파헤쳐 들어갈 순 없었단 말인가? 글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상념들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 솔직히 너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내 머릿속을 휩싸이게 한 상념은 이렇게 착한 글에 대해 그리고 착한 글을 지향하는 저자에 대해 실망하는 내 자신이었다. 왜냐하면 최근 나는 도덕적인 끈을 풀어버렸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몸소 체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도덕적인 끈이라는 것이 어떤 자명한 논리가 없더라도 존재할 수 있도록 그 당위성에 대해 생각할 필요를 느꼈다. 그런데 착한 글을 보고 실망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분명히 이것은 자가당착이다. 그럼에도 개운치 못한 이 뒷맛에 지금도 실소 비슷한 허망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다. 그렇다면 만약 이 글이 콩고라는 설정이 없이, 현경과 예린으로 조금 더 회사의 실체와 인간의 욕망의 부분에 대해 파고들었다면 달랐을까? 물론, 이는 콩고라는 뜬금없는 설정보다 더 어려운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더 치밀해야 하고, 더 밀도 있는 서사가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 느끼는 이 씁쓸한 뒷맛과는 조금은 달랐으리라 예상해본다. 물론, 그렇다하여 화자 말대로 거대 자본주의에 대해, 이 거대한 구조주의 사회에 대해 어떤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것도, 서사가 주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결론이 흐지부지한 글이 될 공산이 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어떤 글이 하나의 지향성을 갖고 그 방향으로 치달을 때 갑작스러운 반전으로 도피하여 독자를 허망하게 만드는 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기에 오히려 서사로써 조금 더 회사의 실체와 허상에 대해 접근했다면, 생각해볼 거리를 더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대충 글을 마무리해야할 것 같다. 분명 재미있고 흥미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너무나 착한 반전 때문에 김이 다 빠진 콜라를 마신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역으로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 범하지 말아야할 반전이란 미학의 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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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뜰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4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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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뜸부기 - 과한 개인적 투영을 담은 나의 주접거림



 혼자 고무줄을 넘으며 쨍쨍히 노래를 부르던 계집애가 제풀에 흥이 식어 판자문 앞에 팔짝 주저앉자 사내아이는 이미 움직임을 멈춘 풍뎅이를 손바닥 위에 얹어 계집애의 눈앞에 들이대며 딱딱한 갑각 속에 감추인 연기빛 날개를 들춰보였다.

 이걸 땅속에 묻고 일곱 밤이 지나면 예쁜 나비가 될 거야.


 오정희, 최근 내가 이 작가에 사로잡혀버리는 바람에 다른 작가의 글들이 눈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오정희 작가의 글만 줄창 읽은 것은 아니다. 그간 나는 꾸준히 바이링궐 에디션에 나오는 작가들의 글을 읽어왔고, 그 중 몇몇 작품들은 품평을 써서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좋은 글들이었다. 그런데 오정희 작가의 어떤 강렬한 이미지들이 쉬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종내 품평을 쓸 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내 개인적인 여러 가지 사정들도 곁들여져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은 그런 내 개인적인 사정을 심각하게 과장하여 투영시켜 읽고서 쓰게 되는 그런 글이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글에서는 (전에도 늘 그래왔지만) 전혀 어떤 객관성의 담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달아나자.”

 오빠가 한 자락 바람처럼 서늘하게 내게 말했다. 나는 무서움을 감추고 어린애다운 교활함으로 짐짓 천진하게 웃으며 크게 물었다. 어디까지 와있니.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로 오늘도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 아직 돌아오시질 않는다. 그럴 때면 오빠와 나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매일 이런 문답놀이를 한다. “어디만큼 와있니?” “고개 하나 넘어섰다.” “어디만큼 와있니?” “개울까지 와왔다.” “어디만큼 와있니?” “신작로까지 와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날 오빠는 내게 달아나자고 했던 것일까? 물론, 글속 화자의 말처럼 유년의 기억이란 건 빛 바랜 천연색 사진처럼 대단히 암시적이고 몽롱한 분위기와 비슷한 것이어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한갓 공상이었는지 분명치는 않을 것이다. 내 어릴 적 기억도 사실 이와 비슷하다.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신 아버지의 부재와 늘 일하러 나가시는 어머니, 그 때문에 시골로 내맡겨졌던 기억, 심지어 7살 이전까지 내 사진은 돌 사진을 제외하고서 단 한 장도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7살 때의 사진이란 것도 어찌나 어두운 그늘을 얼굴에 품고 있는지. 어릴 적 너무 바보 같아서 시골에서 사슴 그림을 보여주며 사슴다리는 네 개라고 백일을 가르쳐줘도 자꾸 잊어버렸다는 나, 그때까지 신발도 제대로 혼자서 신을 줄 몰랐던 나,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을까? 달아나고 싶다고? 그 어딘가로?


 어머니가 말하는 엉뚱한 귀신이라는 것은 오빠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이미 씌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무렵의 오빠를 생각하면 허리에 단도를 여섯 개씩이나 차고 다녔다는 연개소문, 혹은 지나간 시대, 노혁명가의 자전 속의 소년을 연상케 되어 슬며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언젠가부터 모든 소년은 꿈꾸기 시작한다. 자신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아니, 이미 주인공이라고. 그래서 때로는 젊은 베르테르가 되어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보고, 때로는 이 세상의 믿을 수 없는 부조리함에 맞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뜻 모를 혁명과 이상을 순진하게 꿈꾸며 믿기 시작한다. 내 경우에는 중학교부터 그 엉뚱한 귀신이 씌인 것 같다. 어릴 적 너무 저능아여서 걱정이었다는 나는 놀랍게도 초등학교 때는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하는 우등생이 되었다. 유난히도 내게 애착이 강한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한글을 못 뗀 나를 억척스럽게 하루 4시간씩 붙잡고 한글을 가르치시고, 사방팔방 다방면으로 학원을 보내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너무 일찍 조숙해져버린 나는 중학교 때부터 엄마, 아빠라는 말 대신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중2 때부터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사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왜 그렇게 바둥거리면서 공부를 하고, 또 그렇게 겨우 힘들게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갔다, 졸업을 해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차피 죽을 건데. 그 때문이었을까? 도덕 시간에 반공을 목적으로 배우는 공산주의 사상에 유난히 나는 관심을 가졌고, 그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빨갱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내가 인생의 회의를 느낀 자체가 공부에 대한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촉발된 염증이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런 경쟁을 과열하는 사회가 아닌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라면 인간이 덜 고통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아마 순진하게도 그렇게 믿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너무 깊게 내려앉은 내 절망감은 나를 좀먹어 들어가 그 어느 것도 믿지 못하는 염세주의자로 변질시켜버렸다. 그렇게 허무한 감정으로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절망 대신 희망이라는 단어를 전적으로 신봉하게 되었다.


 군에서 제대한 오빠는 그 무렵 정부에서 한창 장려하던 양돈에 손을 대었다. 늙도록 주정뱅이 술치다꺼리나 하며 험하게 살겠느냐는 오빠의 설득에 따라 어머니는 술집을 정리하고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기고 안양 교외의 오백여 평의 부지를 샀다.


 누구에게나 모든 것이 장밋빛 희망으로 붉게, 파랗게 물들어 보일 때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부가 장려했던 양돈 사업이 한낱 허황된 꿈이었을지 어떻게 알았으랴? 아니, 모든 것이 바로 눈앞에 장밋빛으로 붉고, 파랗게 흐드러져 피어있는데, 어떻게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고 바라볼 수 있겠는가? 정부의 장려로 경쟁이 심해진 양돈 사업으로 인해 오빠는 무작정 수입종을 사댔지만, 수입종 돼지는 뜻대로 잘 자라주지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양돈업이 대기업화 되면서 영세업자들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오빠는 끝까지 버텼고, 그 결과 집안에는 빚만 남게 되었다. 아마도 내게는 고교시절 2년이 그러했으리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교회를 다니면서, 구원을 믿고, 희망을 믿게 되면서, 너무나 급변하게 된 나는 급기야 신학대를 가겠다고 집에 선전포고를 했다. 사실, 그 이전 한 집안의 장손으로 제사상에서 절을 하지 않았을 때부터 그러한 전조는 예상된 바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아버지가 젊을 적 신학대의 꿈을 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월남전에서도 군병으로 지내며 남몰래 신에 관한 소망을 꿈꿨다는 그 사실을. 18년 만에 처음으로 시도한 내 가출 때문에 아버지는 17장의 긴긴 편지로 내게 자신의 숨겨온 과거를 털어 놓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나는 내가 원하는 신학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가진 것이 없어지자 오빠는 더욱 허황해졌다.

 하루에도 몇 가지씩 사업 계획을 세웠다가 허물고 다시 세우면서 별반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나 어머니에게 설명을 늘어놓거나 사장을 육촌아저씨로 둔 친구를 만나 다시 계획을 짜며 우리 형편으로는 꿈같은 오백만 원, 천만 원 소리를 거침없이 해대는 것이었다.


 신학교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나는 내 마음의 진실이란 문제 때문에 신이란 진리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되었다. 사실 어쩌면 진리와 진실이란 동전이 양면과도 같은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인 듯하지만, 실은 결코 마주할 수 없는... 마음의 진실에 집착하는 순간, 진리는 마음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커다란 부피가 되어 마음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잃어버린 진실은 뿌리와 줄기를 잃어버린 가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토록 나는 성서의 포도나무 줄기 비유에서 가지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목마른 까닭으로 메말라버린 잘린 가지가 불태워져야 하나의 온전한 줄기와 뿌리를 갖춘 나무를 이룰 수 있다고, 때문에 잘린 가지의 모순은 온전한 구원을 존재케 하는 선조건이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말들이 이미 너무 허황되며,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란 사실을. 그럼에도 놓을 수 없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여전히 쉽사리 놓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지만 삼년 전 수도원을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나는 어떤 의미에서 이 잘린 가지에 대한 나의 집착을 버리게 되었다. 그냥 어차피 불태워질 것이 숙명이라면, 혹은 그렇든 그러하지 않던 간에, 이미 잘린 가지는 가지이기에, 잘린 가지로서 자유를 누리면 된다고, 그냥 마음으로 수풀에 걸리고, 떨어지고, 밟히고, 뒹굴러 다니고, 그런 것이 아마 잘린 가지일 것이라고. 불태워지고 나발이고 그런 건 다 아무 소용없는 관념의 놀이일 뿐이고, 결국엔 줄기의 이야기를 가지의 이야기로 변주한 역으로 줄기에 대한 집착이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로 인해 내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는 대신, 인생의 무거운 짐들을 걸머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손에 천원권 지폐 서른 장의 부피가 가핏하게 느껴졌다. 우편물이 밀릴 때이니 사나흘 후에나 오빠에게 닿을 것이다. 어쩌면 일주일 후가 될지도 모르고 오빠는 그 동안 누이동생에게서 올 변변치 않은 액수의 송금을 걸고 둘러쓴 빚을 감당치 못해 벌써 어디론가 달아나버렸을지도 몰랐다.


 나는 근래 은행대출을 받기 위해 부단히 애를 먹고 있다. 청원경찰을 하게 되어 알게 된 카드대출 대환대출인 햇살론을 받기 위해 연일 초조하게 신경이 곤두서 있다. 총 3개의 카드대출 약 1700만원, 카드 두 개로 받은 현금서비스 약 200만원. 하지만 나의 빚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러한 빚 무더기에 이르기까지 각종 카드돌려막기를 하기 위해 대학 후배들에게 거의 1500에 가까운 빚을 졌다. 그럼에도 이번 카드 값을 감당할 수 없어 또 대학 후배에게 칠백 이상의 돈을 빌려야 한다. 그래야 겨우 은행대출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누군가는 그렇게 큰돈도 아닌데 뭔 엄살이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보통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학자금 융자로 혹은 집을 사기 위해 일 이억 이상의 대출을 받아, 그 빚을 갚기 위해 평생 빚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니까. 하지만 나의 빚은 그런 현실적인 빚에서 결코 기인하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돈 자체에 무관심하여 씀씀이가 좋지도 않고, 계산에도 밝지 않아 돈을 모으는 방법도 모르기는 한다. 하지만 내가 가정이 딸린 것도 아니고, 이제까지 계속 백수로 지낸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빚이 늘었겠는가? 첫 번째는 여자 문제이다. 아니, 섹스에 대한 기갈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나는 자주 돈을 주고 성매매를 하는 업소에서 몸을 풀었고, 그곳의 여자들과 따로 밖에서 만나보기도 하고, 인터넷 채팅을 통해 장기간의 조건만남도 해보았다. 처음에야 물론 그런 곳에 가는 데에 일종의 개인적 수치심과 모멸감이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자신을 합리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순간, 순간 진실하면 된다고. 아니, 어떤 면에서 분명 나는 그러했었다. 업소의 여자를 따로 밖에서 만났을 때도, 장기 조건만남을 했을 때도, 나는 진실하려 했고, 때문에 내가 그 여자들을 내 손으로 밀어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도원에서 내려와 내 자신에 대한 이제까지 무거운 관념적 짐을 내버리게 되자, 그 고삐의 끈이 완전하게 끊어져버리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그전보다 더 섹스에 집착하게 되었다던가, 그래서 더 돈을 많이 쓰게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왜인지, 무슨 이유인지, 정확하게 아직 밝혀낼 순 없지만, 내 마지막 고삐였던 순간의 진실함마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새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내 관념의 고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경험에 의해 입증된 이야기다. 수도원에서 내려와 업소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된 나는 그 여자와 밖에서 만나는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밝혔지만,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번에도 개인적으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냥 몇 번 만나다 시들해지겠거니, 뭐 이런 식의 생각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의 농밀한 몸에 완전히 내가 빠져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그녀가 내가 만난 최고의 섹스 파트너였느냐?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단지 너무 외로웠을 뿐이었다. 물론, 섹스라는 게 대다수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너무 외로웠고, 그러한 때에 그녀는 내게 너무나 큰 위안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까지와 관계가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업소를 그만두겠다며, 크리스마스에 줄 목도리를 평생 처음으로 짜본다고까지 말하는 그녀를 나는 처음부터 아예 믿지를 않았다. 아니, 그냥 처음부터 배반을 생각하며 만났다. 내가 그냥 외로워서 지금 그녀에게 집착하는 거니까, 조금만 좋은 여자가 나타나면 그녀를 배반하게 되리라는, 시작부터 벌써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만난 것이다. 사실, 누군가는 이 대목에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 대수냐고? 대다수의 남자가 그렇지 않느냐고? 모르겠다. 모든 남자를 집단으로 묶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속속들이 알 수도 없는 나는 최소한 개인적으로 그래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여기에 일정부분 그녀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냥 평범한 직종의 여자도 아니고, 업소에서 만난 여자이고, 사실 이 문제보다 더 큰 것은 나와 만나며 너무나 별난 일들이 많이 일어나, 툭 하면 울고, 짜증을 내고 했으니까. 게다가 빚으로 허덕이고 있는 내게 갑자기 돈을 꿔달라지 않나, 일하고 있는데 혼자서 문자 보내서 헤어지자고 했다가, 미안하다고 했다가. 밖에서 못 만나는 날에는 외로우니까 업소를 와달라고 자꾸 생떼를 부리고. 결국, 애초에 그녀의 몸만 보고서, 배신을 꿈꾸며 그녀를 만났던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여자에게 그만 만나자고 말했다. 도저히 네 성격 받아줄 수가 없다고. 지금 생각해도 이건 잘한 일이다. 그녀로 인해 내가 쓴 돈들과 또 늘어난 빚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 숨이 나오니까. 하지만 왜 나는 이렇게 변한 것일까? 왜 이제는 누군가를 순수하게 그냥 몸만 좋아하더라도 배신은 꿈꾸지 않는 그런 인간도 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데 정말 내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던 것은 그녀와 헤어진 뒤의 일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다른 여자와 섹스를 잘 못하게 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몇 달간 그런 증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녀와 헤어지고서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심지어 발기가 되어져 한껏 달아올라 여자와 삽입하는 도중에 갑자기 그녀 생각이 나서, 섹스를 그만둘 정도였다. 그것도 돈 주고 간 업소에서. 그러면서 무언가 적을 두지 못하게 된 나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휴대폰 게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실,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게임에 돈을 쓴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다지 그때까지 컴퓨터 게임도 별로 즐겨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전 국민이 다 한 번씩은 해봤다는 스타크래프트조차 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무심코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천 원짜리 소액결제를 클릭하면서부터, 다음엔 오천 원, 그다음엔 만 원, 그다음엔 오만 원, 십만 원, 이런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클릭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게임 내에 최고 레벨에 오르고자 천만 원도 넘게 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한 게임에서 그렇게 다 쓴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한 게임에서 한 육칠백, 그리고 그다음 게임에서 또 그 정도. 하지만 문제는 그 처음 게임을 지우기 전 나의 상황이 지금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그때 나는 후배들에게 빌린 돈들도 여간 적지 않은 때였는데, 게임으로 인해 수백을 써서 카드 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카드대출을 손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첫 게임을 지울 때 나는 정말 단단히 결심을 했었다. 이미 그 게임에 수백의 돈을 들인 상태였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나의 레벨은 최상위권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다시는 이따위 구멍 난 항아리 물 붓기 식의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서 게임을 지웠다. 하지만 게임이란 것이 금단현상 같은 것이 존재하는 줄 그때 나는 미처 몰랐다. 허황된 마음을 채울 길 없어, 잠들기 전 각종 애니메이션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늘 손의 허전함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엔 돈 안 드는 게임을 하자는 식으로 다시 자기합리화를 하여, 몇 가지 게임을 해보았다.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만 내 허황된 본성이 또 다시 폭발하고 만 것이다. 아무리 먹어치워도 허기진 내 허황된 기갈의 본성이.


 나는 한 고비, 한 고비, 전락이라고나 말해야 할 오빠의 변모를 볼 때마다, 지금보다는 돼지를 기를 때가, 그보다는 혈서를 품고 다닐 때가, 아니 그보다는 여선생의 비로드 치마에 얼굴을 묻을 때가 더욱 좋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755만원이라는 카드빚을 선결해야, 은행대출을 받을 수가 있어서, 그동안 내게 900만원이나 빌려주었던 후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것도 나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돈을 꿔준 돈을, 안 갚아도 돼요, 형, 이런 말을 덧붙여 말하던, 그런 미더운 후배이다. 그 이전에 나는 그 후배에게 백, 이백, 그다음에 또 이백, 그리고서 마지막엔 사백만원을 차례차례로 빌렸다. 빌려줄 때마다 후배는 괜찮다며, 그까지 마이너스 통장 대출이자 얼마 안 되니까, 신경 쓰지 말라면서 되레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빌려줄 때는 후배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형, 빌려드리기는 하는데요. 저도 이게 쉽게 빌려드는 건 아니에요. 형도 그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속으로 반드시 마이너스 대출 이자까지 갚아 주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전화를 하게 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물론, 언제나 이번이 마지막, 마지막이라고 늘 다짐했고, 늘 그렇게 후배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그 마지막을 연발해야만 되는 상황이 올 줄 어떻게 내가 알았겠으며, 아니 상황을 이렇게 악화시킬 줄 알면서도 왜 그랬던 것일까. 하지만 결국 내가 비빌 언덕은 후배들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미더운 후배이기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는 후배도 무리가 따르는 모양이었다. 나 때문에 벌써 진 빚이 천만 원이 가까우니, 자신이 개인적으로 융통할 수 있는 돈이 따로 있을리도 만무했고,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빌려서 나를 꿔줘야 하는데, 내가 봐도 밑 빠진 물 붓기 식인 나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럼에도 후배는 내게 너무 미안해했다. 그리고 다른 후배들에게 연락을 종용하면서, 내게 희망을 잃지 말라며, 나라도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해왔다. 그런데 그 게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였다. 대학시절 가장 그 지리멸렬한 삶의 불안정성과 권태로움에 대해 토로하며 신과 삶에 대한 회의를 이야기했던 후배가 나에게 이제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그 사실이. 그때 나는 그 후배와 밤새워 가며, 그래도 우리가 마지막 시구에 남겨둘 희망의 가지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어떤 마른 나뭇가지 하나가 그저 수풀 위에 툭 떨어져, 어느 이름 모를 새가 진짜 가지인 줄 알고 모르고 앉아도, 그런 것이 희망이며 신비이지 않겠냐며, 열렬히 말했던 그 사실이. 그러던 내가 이제는 쉽사리 어떤 희망의 단어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그 현실이.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아니, 왜 이렇게 떠밀려오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 어디서부터 그 언젠가부터 왜......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는 차라리 수산업에 손을 대어 한때 재미를 보았으나 왕창 망해버렸다는 호기와 허언으로 어느 날 불쑥 내 앞에 나타날 오빠와 맞닥뜨릴 것을 나는 바라는 것이 아닐까.


 후배와 통화를 하며, 문자를 주고받은 그날, 다행히도 다른 후배 둘이 나에게 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우연하게 나는 그날 알라딘 서재에서 오정희 작품인 ‘중국인 거리’에 대해 썼던 품평이 이 달의 작품으로 뽑혀, 이만 원이란 상금이 내게 주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록 예전에 어느 문학 사이트에서 이 달의 작품으로 자주 뽑힌 적은 있었지만, 내 글로 상금을 받은 적은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 때문이었을까? 수천의 빚에 시달리고 있던 내가 호기롭게도 후배들에게 그날 그 사실을 떠벌리며, 비록 지금 빚에 쪼들리고 있더라도 지금 받은 상금 이만 원에 그 모든 빚 문제가 해결된 기분이라며, 또 다시 허황된 망발을 했던 것은. 하지만 나의 그 망발에도 불구하고 그날 나와 통화했던 후배와 다른 후배들은 함께 기뻐해주며, 그 이전 밤새워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시절 그 이야기에 대해 내가 글로 남겨주기를 순진하게도 그들은 내게 여전히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나이 41살에 고작 2만원이란 상금을 글로 타본 내게. 그러면서 우리는 실제로 마주할 날을 기약했다. 예전처럼 밤새워 무언가를 소진하듯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할 수 있는 그런 한 밤을.


 혼자 고무줄을 넘으며 쨍쨍히 노래를 부르던 계집애가 제풀에 흥이 식어 판자문 앞에 팔짝 주저앉자 사내아이는 이미 움직임을 멈춘 풍뎅이를 손바닥 위에 얹어 계집애의 눈앞에 들이대며 딱딱한 갑각 속에 감추인 연기빛 날개를 들춰보였다.

 이걸 땅속에 묻고 일곱 밤이 지나면 예쁜 나비가 될 거야.

 계집애는 심드렁한 낯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매번 사내아이의 말에 따라 죽은 풍뎅이, 잠자리 따위를 헝겊에 싸서 묻었건만 일곱 밤의 금기 후에도 나비는 날아오르지 않고 축축한 땅속에서 냄새 나는 진물과 곰팡이로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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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 인간에 대한 예의 Human Decency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4
공지영 지음,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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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예의 - 이제 그만 미안해하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는 운동가를

술 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란 걸


그가 부르다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 영미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면, 왜 늘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떠올랐던 것일까? 1995년 내가 대학 1학년 때쯤 이 책들이 한참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로 오늘 두 책의 초판을 검색해보니 똑같이 1994년이었다. 그런데 두 책을 읽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이기 때문에, 그래서 짧다는 이유로, 아마 군대를 제대하고서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오다가다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공지영의 소설은 내가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그토록 선후배들에게 거론되었음에도 단 한 번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냥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왠지 비슷하거나, 똑같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리고 나의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나는 이제야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빌어먹을, 80년대. 한 번도 내가 초대 받지 않은 그들만의 잔치, 그들만의 인간에 대한 예의.


 비록 내가 지금 빌어먹을, 빌어먹을 하며 연신 조그맣게 발음하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1980년대의 운동권에 대해 감히 매도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실제로 접해보진 못해 알 순 없지만, 내 부모님 고향은 전라도 나주이고, 그 때문에 광주혁명 때 위협사격으로 총알 자국이 선명한 집안의 장남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1987년 6월 항쟁 때 아버지는 대학생들의 데모를 내게 옳다고 가르치셨다. 뉴스에서도 선생님들도 모두 저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줬는데. 그리고 어느 지방선거 때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투표를 독려하며 기호 2번의 팸플릿만 내게 들이민 적도 있다. 또, 아직도 우리 어머니는 전라민국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하신다. 나 또한 그 때문인지 혹은 어릴 적부터 키워온 반골 기질 때문인지, 줄곧 기호 2번만 찍어왔으며, 스스로 약간 좌 쪽이 아닐까하고 의미부여를 종종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복지국가가 되어 잘 규격화된 사회보다는, 분명 부익부 빈익빈의 이 극단적인 사회적 구조가 빗어낸 온갖 구멍들을 더 사랑할 것이며, 이곳에서 더 잘 적응해온 그런 인간인 것을. 그리고 대체 뭐가 그렇게 미안하단 말인가? 노동운동을 하던 후배들과 끝까지 하지 못하고 도망친 것이 그토록 미안했단 말인가? 그들이 단 한 번도 따뜻한 수돗물이 나오는 집에서 살아본 적 없는 것과 자신이 그러한 삶을 누려온 것이 대체 왜 미안한 이유란 말인가? 그래서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온수와 보일러가 죄라도 된단 말인가? 왜 모든 것들에 그렇게 미안해하고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작가 자신도 그리고 나도 우리도 모두 이 사회에서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데.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겪은 그들만의 80년대를 내가 감히 떠나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내 20대를 부인하지 못하듯, 그리고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함부로 말살시킬 수 없듯이, 우리 역사에 분명하게 존재했던 80년대를 지울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서 그 80년대에 피해자였던 우리 아버지는 그 시대에 처음으로 가입했던 연금보험을 타면서 기뻐하고 계시며, 우리 어머니는 전라민국이라고 자랑스럽게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말하지만 그것이 남들에겐 쉬 발설해서는 안 되는 단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신다. 그렇게 사람들은 변했고, 당연히 변한다. 그런데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또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사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 마치 내 울분과 짜증을 토하듯 글을 써내려갔다.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은 이런 말들이 아니었는데, 다시 무언가를 되바라보고자 했는데, 그들의 80년대를 통해 나의 문학에 대해, 그리고 무언가 지워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 그런데 정말 그것이 무엇인지 글을 쓰면 쓸수록 점점 흐릿해져 간다. 공지영이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이민자라는 새 시대의 독특한 인물과 권오규라는 낡은 시대의 민주투사와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듯이, 그렇게 점점 나의 초점은 흐릿해져 간다. 왜 나는 그토록 80년를 쉬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 왜 지금도 지나간 우리들의 얼룩에 대해서 쉬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일까?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서? 맞다. 일단은 가장 이 부분이 큰 사실이다. 게다가 나는 공상주의자다. 그러니 과거라는 현실보다는 과거에서 파생된 신화나 상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기질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나는 이러한 80년대이거나 80년대 이후의 한국문학 감성 때문에 한국문학 자체를 멀리해왔다. 문제의 발단은 이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왜 그토록 그 감성을 멀리해왔는지 스스로 공감했고, 또 나의 20대 때의 판단이 옳았음에 스스로 만족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이유로. 어쩌면 이 글속에 나는 이민자라는 인물과 나는 비슷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글이라는 것이 언제나 과장되어 포장할 수밖에 없어 글속에 이민자란 인물은 조금 재수 없게 표현되어있다. 스물하나의 나이로 대한민국 국전 대상, 대학 졸업 후 뉴욕 등지에서 대성공을 거둔 화가임에도, 갑자기 어느 날 성공의 허망함을 느껴 맨 발로 삼 년 간 인도를 여행하고, 아프리카 스케치 여행 등을 하다가 어떤 깨달음이 있어서 고국으로 돌아온, 글에서 표현한 그대로 정말 꿈같은 이야기의 대상이니까. 그냥 스물하나의 나이에 신학에 대한 회의로 1년 방황하고 이후 목장, 공장, 배를 탄 내 기행쯤은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맥락은 분명히 같다. 이미 더 이상 투쟁할 대상이 없어진 인간이 느끼게 되는 감성이란 건 배부른 허망함이라든가, 회의라는, 그리고 그 때문에 정말 꿈같은 방황일 뿐이라는. 그러하기에 우리는 모른다. 배고프다는 절망감과 절실함에 대해? 그리고 거기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사실 여기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배고픔을 모른단 말인가? 어느 시대에겐 삶의 회의와 허무감에 대항하여 싸우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그것은 왜 삶에 대한 투쟁이 아니고, 삶에 대한 허기진 욕구가 아니란 말인가?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조금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며, 그들이 그 큰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음을 잊지 못해, 아니면 감당하지 못해, 마저 정리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분명 그것은 옳은 이야기이다. 나라는 하나의 자아에 국한되어 우리라는 커다란 자아를 혹은 우리라는 집단 무의식에 이르지 못하는 개인이란, 결국 사회에서 잉여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이 그들의 뒷이야기를 정리해가듯, 나라는 개인이거나 우리 속에 속속들이 숨어있는 나 같은 개인들이 각자 나름의 이야기들로 힘겨워하며, 이전에도 지금도 결코 대항할 수 없는 커다란 구조 속에서 때로는 맞서 싸우며, 때로는 억울해하며, 그렇게 발맞추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을.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의 미안함에 내가 미안해야할 까닭을 느끼지 못하듯, 그들이 스스로 변한 자신에게 백 번 후회한들, 그렇게 미안하다고만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는 것이 삶이라는 혹독한 현실인 것을. 그러니 이제 그만 미안해하자. 아니면 그만 미안한 척 하자. 그저 담담하게 앞으로 다가올 현실들을, 진짜 삶의 이야기들을 소리내보자. 천천히 담백하게 그렇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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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 중국인 거리 Chinatown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1
오정희 지음,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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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거리 -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의 파장이 주는 충격과 여운!

 

 

  이 기묘한 파장과 같은 충격과 여운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근래 청원경찰 일을 하면서 제법 익숙해진 까닭에 나는 오전 9시 이전 그리고 오후 4시 이후 남는 시간에 하루에 단편 두 편 정도를 읽을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그동안 놀려두었던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을 한 권씩 보고 있다. 사실, 처음 이 에디션을 산 이유는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을 읽고서 받은 어떤 여운 때문이었다. 게다가 말 그대로 Bilingual이라는 사실이 영어 과외를 하는 내 입장에선 매력적이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쉬 오래도록 붙잡을 수 없었던 까닭은 한국문학에 대한 내 깊은 불신과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사실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재미없고, 진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십대가 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조차 할 만한 견식이 내겐 없었다. 거의 수능 첫 세대였음에도 나는 남들처럼 한국문학 단편집을 제대로 읽은 적조차 없다. 물론, 그렇다하여 남들보다 덜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은근히 내 자랑이지만 이것저것 마구잡이식으로 많이 읽다 보니, 굳이 수능을 대비해 무언가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역으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배운 것도 안 것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십대 초반에 지식을 폭식하면서 접하게 된 서양문학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여기에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신학을 전공했고, 그 때문에 관념적인 내용이 풍부한 소설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십대 중반쯤 접하게 된 일본문학은 내게 완전히 우리나라 문학에 대한 패배감과 절망감을 가져다주었다. 쪽바리라고 무시하며 깔보았던 그네들은 벌써 20세기 초에 페티시즘에 관한 소설을 쓸 만큼 자유로웠던데 비해, 민주화를 달성한 90년대 중반을 지나서도 여전히 민주화 운동에 대한 후일담 혹은 항상 그 비슷한 패턴들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이런 내 절망감은 아주 쉽게 우리 문학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거의 한국문학을 보지 않았다. 때문에 실제로 지금 현재 내 한국문학에 대한 수준은 교과서에 실린 소설을 조금 더 아는 수준일 뿐이다. 이로 인해 내가 참여하고 있는 문학 모임에서도 언제나 나는 우리나라 소설가들 이야기나 작품 이야기가 나올 때는 말을 아낀다. 뭐 아는 소설가가 없고, 아는 작품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런 나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겨우 손에 붙잡게 된 책이 이 에디션에 있는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였다. 그나마 이청준 작가에 대해서는 나도 조금이나마 접해본 경험도 있고, 나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청준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이제까지 내가 본 그의 작품 중 ‘병신과 머저리’는 단연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었다.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청원경찰이 되면서 남는 시간에 이 에디션에 실린 작품들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알던 한국문학 그대로의 자화상과 마주하는 기분을 지우긴 힘들었다. 만약 내가 오정희 작가의 이 ‘중국인 거리’를 읽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그런 기분 때문에 이 에디션을 읽는 것을 중도에 포기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정희 작가의 ‘중국인 거리’가 준 기묘한 파장과 같은 충격과 여운을 마주하고서, 그동안 내가 편파적으로 대했던 우리 문학에 대해 반성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이 설명할 수 없는 여운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 내가 편파적이었기에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던 감정들에 대해 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설명해야할 당위성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얼마나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끈기 있게 해나갈지 자신은 없지만, 이 과정을 겪어야 내 글이 한 발자국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지금 이 순간은 가득하기에, 가능한 한 이제야 우리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몇 개의 글들을 써내려가고 싶다. 하지만 그 첫 발, 그 첫 발이 오정희란 사실은 내 발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왜냐하면 오래도록 무엇을 써야할지 알 수 없었던 이유로, 나는 지금 서론에서부터 무언가 빙빙 돌려가며 내 망설임을 주절거리고 있는 까닭이다. 왜 하필 오정희일까? 그리고 왜 하필 이 ‘중국인 거리’란 말인가? 또 이 설명할 수 없어 횡설수설하는 기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정희란 작가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지금 속한 모임에서 ‘동경’이란 작품으로 합평을 했을 때였다. 아마 거의 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사실 지금보다 그때는 더욱 한국 작가에 대해 알지를 못해서, 내 한국 문학에 대한 이해수준은 고교생 수준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정희라고 했을 때, 당연히 누구를 말하는지도 몰랐고, 동경이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올린 단어는 윤동주의 ‘자화상’의 구릿빛 ‘동경’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이었는지 실제로 품평을 썼을 때 나는 오정희 작가의 ‘동경’을 윤동주 시인의 ‘동경’과 빗대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동경의 이미지는 전혀 공유되지 않는 대칭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다만, 노년의 입장에서 더 이상 무언가 반성할 것이 없어 마주할 수 없는 ‘동경’에 대해 젊은 내가 이러니저러니 쓴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어불성설이라 느껴, 젊은 윤동주의 감성으로 ‘동경’을 이해해보고자 했던 발로였다. 하지만 어찌됐던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오정희란 작가가 무언가 특별한 감성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후 읽어보아야겠다고 속으로 새겨두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시 마주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중국인 거리’, 사실 제목 자체에서는 별 기대감이 없었다. 그리고 서두에서도 별다른 기대를 갖기엔 무언가 주목을 끌만한 인상적인 요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가졌던 오정희 작가에 대한 기대, 그리고 무언가 한 문장 한 문장 예스럽지만 단아한 느낌이 드는 문장에 홀려 한 장 한 장 넘겨갔다. 그럼에도 사실 내용은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저 그 시대의 작가들이 매상 그랬던 것처럼 자기네들만의 추억담일 뿐. 게다가 여성 작가라서 그런지, 어떤 내용의 기승전결도 무언가 뚜렷이 없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인지도 잘 파악이 되지를 않았다. 그런데 단 한 문장, 마지막 단 한 문장이 이 모든 소설에 대한 내 인상을 바꾸어 버렸다.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이었지만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어두운 벽장 속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初潮)였다.

 

  초조? 초조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제까지 그런 이야기를 쓴 건가? 처음에 나는 한문을 잘 몰라 초조가 초조한 감정을 표현하는 초조(焦燥)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그렇다하기엔 이야기 전체가 버성거리게 느껴져, 허무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래서 한문으로 초조(初潮)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초경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초조라 사전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로 인해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파장 같은 충격과 여운을 갖게 되었다. 대체 왜 초경이라는 그 사실 하나로 이 소설이 내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일까?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다시 한 번 가지며, 먼저 두 가지 내 개인적 취향을 전제해두고 싶다. 하나는 여류소설에 대한 내 지나친 환상과 호감이다. 이는 아마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정에 대한 내 개인적인 목마름과 그리움의 이유 때문이라 생각해본다. 다른 하나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소설에 대한 내 개인적 선호도이다. 이 또한 사실은 설명하기 애매모호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처음 글이라는 것을 시작했을 때 시(詩)라는 기반에서 시작했고, (비록 그것이 고교생의 일기장에 서사형식 대체형식으로 쓰인 것뿐에 불과할지라도) 그 때문에 여전히 나는 시적인 글쓰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적인 글쓰기라니? 대체 이것이 무슨 어불성설이란 말인가? 일찍이 이십대 초에 오에겐자부로를 통해 나는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이론적인 열망이었다. 실제로 오에겐자부로 글들은 전혀 시적이다 말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역작이라 내 개인적으로 평하는 ‘타오르는 푸른 나무’에서는 그러한 열망이 담긴 상징적 요소들이 종교적 코드와 함께 글속에 살며시 비쳐져 있을 뿐이다. 다른 글들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그 열망만은 내게로 고스란히 전이되어 오랫동안 나는 그러한 글들을 찾아 헤매왔다. 그리고 이는 나의 어떤 개인적인 방황과 함께 궤를 같이 하여, 틀이 없고 정형화되지 않은 글에 대한 탐독으로 바뀌어갔다. 더불어 매우 관념적이고 추상화된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가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이라 느낀 글이나 영화는 몇 편 되지 않고, 그나마도 매우 관념적인 종교적 색채를 짙게 띠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정서의 시가 아닌 이계의 말로 적혀진 시의 정서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시는 번역이 불가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시의 정서란 언어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우리는 랭보니 보들레르니 하는 시인들의 시에 경탄하며, 그들의 비극적이었던 삶에 대해 깊이 연민할 수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의 시대에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아울러 하나하나 새겨진 그들만의 언어를 우리가 이해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문화와 시대가 아닌 그들의 시대와 문화로 빗은 시를 더욱 잘 이해한다 할 수 있을까? 아니, 더 좋아할 수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제까지 내 경우에는 분.명.히.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정희 ‘중국인 거리’를 접한 지금 나는 처음으로 우리 문학에서의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을 마주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이제야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이 이런 글의 형태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감히 던져본다.

 

  석탄을 나르는 화차가 석탄가루를 바람에 실어 온 동네를 까맣게 만들고, 겨울방학이 끝나면 여선생은 이 거리의 까맣게 화장한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 얼굴 화장을 벗긴다. 해안촌 혹은 중국인 거리라 불리는 동네, 아이들 얼굴의 탄가루만큼 아이들 내장에 가득할 회충들을 잡아 없애기 위해 해인초를 끓이는 냄새와 석회 냄새가 뒤섞인 거리, 그 냄새는 이상하게 나도 거리도 모두 노란빛의 회오리 같은 기억 속으로 젖어 들어가게 한다. 그 때문일까? 어렵사리 피난하듯, 트럭 뒤꽁무니 이삿짐들 틈에서 줄줄이 일곱째를 밴 어머니와 나머지 육남매 사이에 끼어 온 동네임에도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마치 그 몽롱한 노란빛 냄새 때문에 꿈인 뜻 마주한 젊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집 앞에 사는 치옥이네 이층집엔 매기 언니가 검둥이들과 함께 세 들어 살고 있다. 때문에 아침에 치옥이와 학교 가기 위해 치옥이네에 가면 은빛 가위로 콧수염을 가다듬는 거대한 검둥이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방과 후엔 치옥이네 이층집엔 매기 언니의 딸 제니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치옥이와 나는 매일 그곳에서 매기 언니의 신기하고 예쁜 물건들을 이것저것 만져보며, 5살이 되도록 말 못하는 인형 같은 제니를 돌본다. 그때마다 치옥이는 말한다. 나는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 매기 언니가 미국에 가기 전 자기 물건들을 전부 나한테 준다고 했어. 그런데 어느 날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미국 지프차가 치옥이네 집으로 달려왔다. 헤드라이트의 쏟아질 듯 밝은 불빛 속에 매기 언니가 반듯이 누워있었고, 검둥이는 술에 취해 있었다. 단추를 풀어헤치고 검둥이는 낄낄거리며 지프차에 실려 떠났다. 그리고 매기 언니의 모든 물건은 매기 언니 동생이 가져가버리고, 남겨진 제니는 수녀가 죽을 때 유난히 종소리를 크게 울리는 수녀원의 고아원으로 넘겨졌다. 그 때였을까? 아니면, 아이들과 미군의 칼을 장대에 꽂아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꽂고서 긴 행렬을 하던 그때였던가? 아니면, 할머니가 죽은 다음 할머니의 물건들을 맥아아더 장군의 동상에서부터 숲으로 할머니의 나이였던 예순 여섯 발자국 걸어서 닿은 나무 아래 묻었을 때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 모든 날들이었을까? 나는 이층의 덧문을 열고 슬픈 듯, 노여운 듯 어쩌면 희미하게 알 수 없는 눈길로 우리를 혹은 나를 바라보던 그를 다시 본 적이 있었다.

  해가 바뀌어 나는 육학년이 되었다. 거리는 많은 집들로 새로워졌지만 해인초 끓이는 냄새는 빠지지 않는 염색물감처럼 여전히 거리를 노랗게 착색시키고 있었다. 제분 공장에 다니던 치옥이의 아버지가 피댓줄에 감겨 다리가 끊긴 후 치옥이의 부모가 치옥이를 미장원에 맡기고 이 거리를 떠난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나는 매일 학교를 오가는 길에 미장원 앞에서 유리문을 통해 미장원 바닥 머리카락을 쓸고 있는 치옥이를 보았다. 수천의 깃털이 날아오르듯 거리는 노란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언제였지, 언제였지, 나는 좀체로 기억나지 않는 먼 꿈을 되살리려는 안타까움으로 고개를 흔들며 집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집 앞에 이르러 언덕 위의 이층집 열린 덧창을 바라보았다. 그가 창으로 상체를 내밀어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코허리가 낮고 누런빛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내게 종이꾸러미를 내밀었다. 속에 든 것은 중국인들이 명절 때 먹는 세 가지 색의 물감 들인 빵과 용이 장식된 엄지손가락만 한 등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금이 가서 쓰지 않는 빈 항아리 속에 넣었다. 안방에서는 어머니가 산고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나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숨바꼭질을 할 때처럼 몰래 벽장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한낮이어도 벽장 속은 한 점의 빛도 들지 않아 어두웠다. 나는 차라리 죽여 줘라 부르짖는 어머니의 비명과 언제부인가 울리기 시작한 종소리를 들으며 죽음과도 같은 낮잠에 빠져들어갔다.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이었지만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어두운 벽장 속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初潮)였다.

 

  시적인 요소가 뛰어난 글이기에 문장이 주는 묘미가 커서, 내용을 재구성함에 있어서 될 수 있으면 작가 그대로의 문장을 가져다썼다. 특히 마지막 세 문단은 거의 원본 그대로를 베껴 썼다. 다만, 그 기승전결의 애매함 때문에 내용의 재구성은 다소간 내가 바라본 시적 재구성이 가미되었다. 주로 남자를 의식한 부분에 대한 대목과 노란빛과 냄새에 대한 문장이 나온 부분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사실 그 때문에 중간중간 띄어먹은 중요한 내용들도 꽤 많다. 사실, 이 글은 이야기 자체를 재구성한다는 게 힘들 만큼 어떤 면에선 다소간 산만하고, 방만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장은 한 소녀의 시선에 집결되어, 그 시선으로부터 발산되고 있다. 그리고 소녀이기에, 아직 소녀는 자신에게 집결된 시선을 이해할 길이 없으며, 동시에 자신이 바라본 풍경들을 이해할 방법을 배우질 못했다. 그 모든 것들은 때문에 매우 당연한 흐름처럼, 어쩌면 그냥 추억담처럼 막연하게 우리에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란빛의 냄새로 가득한 거리에서 몽롱하게 마주한 낯선 남자와의 대면은 어쩐지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인상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동시에 그 거리에서 오래도록 살아서인지 누런빛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건네 준 선물은 왜 이 모든 결말에 대한 예감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노랗게 달떴던 유년의 빛이 붉고 끈적끈적한 풍경으로 바뀌던 날, 소녀는 벌써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덟째를 밀어내는 어머니의 난산의 피비린내를. 혹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석회 냄새와 섞인 해인초 냄새의 노란빛의 회오리와 같은 향수를. 어쩐지 자꾸만 이해해보고 싶어진다. 소녀에서 여자로의 변신에 대해. 그 막연한 끈적끈적하고 후덥덥한 절망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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