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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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accustomed Earth To walk on the Earth

 

 

 최근 마지막에 본 책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그전에 읽은 책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인데, 내가 읽은 철학책 중 가장 최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억에 이십 대 때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처음 1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기복제이다. 그런데 그 복제가 400페이지 빼곡하니, 읽는 도중에도 내가 왜 이따위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허세와 잘난 체에 그만 내가 체증에 걸린 기분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문득, 소설이 그리웠고, 그래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어 들었다. 비록 표절 시비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름 재밌었다. 다만, 너무 예전 책이라 그런지 조금 구태의연한 설명이 많긴 했다. 그리고 접한 책이 바로 이 책, 길들지 않은 땅(개인적으론 익숙지 않은 땅이 더 원제가 가깝다고 생각하지만)이다. 사실, 처음에 원제가 그저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표제에 영어로 ‘Unaccustomed Earth’로 되어 있어서, 원제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하튼 한 가지 의문이 든 건 왜 한국 제목을 그저 좋은 사람으로 했는지 의문이 든다. 일단, 내가 여기서 읽은 소설 중 가장 별로였다. 물론, 개인적 취향 문제이지만, 알코올 의존도에 대한 강력한 외국인의 혐오증 정도를 알려 줄 뿐, 솔직히 제목이 왜 그저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출판사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제목만 따온 것 같은데, 솔직히 이런 부분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작품을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이 있는데, 왜 굳이 이러는지,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조금 아쉽다. 여하튼 잡설은 여기서 끝내고, 글 전체에 대해 조금씩 평해보려고 한다.

 

 처음 길들지 않은 땅에서부터 이 작품집에 대한 좋은 예감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커다란 이야기가 아닌, 잔잔한 일상과 그 속에 감추어진 가족 간에 갈등과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어서 좋았다. 두 번째 작품인 지옥-천국은 정말 마지막이 압권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불살라지고 싶지만, 혹은 불살라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삶과 가족에 관한 부분이 노을과 연결되면서, 이웃의 이제 한참을 보셨지요.’로 마무리되는 장면이 훈훈하면서도 무언가 애잔한 기분이 들었다. ‘머물지 않은 방’, 역시 마지막 부분이 좋았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마지막을 섹스로 끝내는 게 뭐가 좋냐고 하면 별로 할 말은 없다. 다만 이 글에서 중요한 지점은 마지막 심장의 고동이 아닐까 싶다. 섹스 그 자체보다, 더 이상 무언가 기대할 게 없는 것처럼 보이던 부부가 약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자문해본다. ‘그저 좋은 사람아무도 모르는 일은 재미는 있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디서 이 소설의 의미를 찾아야 할지, 조금 더 솔직해지면 재밌다는 점도 조금 모자란 소설들이란 느낌이다


 2부 헤마와 코쉭은 그 제목도 모르고 지나치다가, 마지막 뭍에 오르다를 보고서, 이 소설들이 처음부터 조금씩 연결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한 해의 끝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었다. 작품 자체가 좋았다기보다는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한 이유이다. 친구의 와이프가 죽으면서, 친구 아들이 극심한 방황을 하게 되어, 조금 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이 작품의 코쉭보다는 훨씬 어린 나이이고, 어른도 어찌할 수 없는 중2병의 시기인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개인적으로 나는 친구에게 차라리 여자를 만나서 대신할 엄마를 찾아주는 건 어떠냐고 이야기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조금 내 생각이 무르지 않나 싶다. 다만, 조금 나이가 들면 코쉭이 자신 아버지를 보면서 또는 아버지가 코쉭을 바라보면서, 그 모든 일을 가능케 한 치트라에게 감사하듯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뭍에 오르다는 조금 아픈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익숙지 않은 땅을 살아가던 누군가는 수장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그 사람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아프다. 하지만 이것이 일상이고, 삶이고, 소설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뭍에 오르지 않고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아주 사소한 그 일상들이 쌓여 삶이 되는 것이고, 결국 하나의 어엿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본다. 이런 의미에서, 조금 더 내 일상을 소중히 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때론 슬퍼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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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한소은 외 지음 / 한국소설가협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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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신춘문예 총평

 

 

 거의 매년 하는 신춘문예 평이지만 올해는 무언가 헛헛하다. 모임에서 하는 합평을 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혼자서 평을 남기자니, 마음이 조금 그렇다. 물론, 오히려 그 이유로 지금 글을 쓰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마음속 허함을 조금 달래고 싶다.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은 조선일보의 . 신춘문예 작품들 중에서 사실 머릿속을 맴도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자극적인 작품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자극은 그 당시의 자극일 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힌다. 그런데 이 는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진실에 관한 저자의 집착이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우리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모든 풍문은 지나가는 말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풍문 가운데 진실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다. 아니, 그 풍문 가운데 진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체적인 글도 안정적이었고, 호흡도 좋은 글이란 생각이 든다. 동아일보의 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은근 이야기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게 좋은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은근 담아내려고 한 것 같은데, 좋은 소재만 가지고 좋은 소설을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잘 담아낼 수 있는 서사와 은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이 소설에 관해서 말하자면, 괜찮은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죽은 아이에 대한 부부의 심리가 잘 그려졌고,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그 심리적인 공감대를 이끌기 위한 묘사들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글쓴이의 말대로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휠얼라이먼트를 보고 드는 생각은, 아니 읽는 내내 떠올린 건,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대화들의 등장 혹은 주인공들의 인과관계가 끊긴 사고들, 아마 그런 곳에서 이런 생각이 든 게 아닐까 싶다. 여하튼 나름의 색깔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신문의 체조합시다.’ 경우, 약간 어설픈 스타일을 따라 하려다 실패한 작품 같은 느낌이다. 토끼탕, 칼갈이, 페도라 등,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겉돌고, 각자의 소리를 내지만, 먹음직하기보다는, 버석거리는 느낌이었다. 주제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평을 하자면, 올해 최고의 수작은 로 뽑고 싶다. 다른 소설과 조금 차별화된 점도 많았고, 호흡 자체가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이런 소설 정도라면 신춘 이외에도 계속 좋은 작품을 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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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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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가장무대회에로 초대

 

 

 오랜만에 재밌는 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솔직히 추리 소설은 언제나 재밌다. 그런데 평소에 왜 자주 보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만약 자주 보게 되면, 어떤 기시감으로 추리 소설이 재미없어질지도. 하지만 지금 추리 소설의 초짜인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매우 재밌게 읽었다.

 

 재미의 이유를 굳이 밝히자면, 첫째는 설정의 탄탄함이다. 모든 추리 소설이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하튼 이 소설에선 연쇄 살인이라는 첫 설정이 등장한다. 이 단서는 범인이 남긴 쪽지이다. 쪽지에 남겨진 건 숫자뿐인데, 소수점까지 잘 계산해보면 위도와 경도를 가리키고 있다. , 연쇄 살인범의 예고 살인이다. 세 번의 살인 사건 후 네 번째 살인 사건의 예고 장소로 나오미가 근무하고 있는 호텔이 지정되었다. 이에 형사 본부에서는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프런트를 맡는 닛타를 중심으로 많은 형사들이 파견되어 호텔리어로 위장하여 잠복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반전이 있다. 며칠 동안 일하면서 닛타는 이 사건이 어쩌면 연쇄 살인으로 위장한 개별의 사건이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곧 형사팀에서는 이 사건이 인터넷을 이용한 각 개인의 사전모의 살인 사건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 네 번째 살인 사건의 인물이 있음을 예측한다. 하지만 사전 주동자인 네 번째 인물에 관해선 추측할 단서가 아무것도 없다. 결국, 호텔에서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일은 호텔 측에 있어선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사건이 호텔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발표만 해도, 범인이 이 사건을 단념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 일로 주인공 나오미와 닛타는 다소 갈등을 일으키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범인을 찾는데, 서로 협조하여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혼식 피로연 소동으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 가운데, 범인인 요코는 유유히 손님으로 위장하여 나오미의 생명을 위협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고, 닛타와 나오미의 재회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제 의미적으로 재밌는 부분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는 이 소설의 설정인 인터넷 살인 사건이라는 부분이다. 만약 이 부분이 실제로 그런 식으로 존재했던 묻지마 살인 사이트였다면,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 소설은 요코가 치밀하게 자신의 살인을 위장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설정으로 반전을 준다. , 어떤 익명성에 대해 기묘하게 떠올리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 익명성을 이용한 한 인간의 치밀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익명성의 부분은 동시에 마지막 살인 사건의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다. 호텔리어로서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는 나오미는 요코가 임신한 채 자신의 남자친구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이유로 당연히 숙박하고 있는 손님의 신상 명부에 대해서 밝히지 않았고, 아니 아예 손님을 위해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요코가 유산을 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요코는 복수를 다짐하면서 전체적인 계획을 짰는데, 마지막 날 결혼식 피로연의 사건까지 익명성을 이용하여 신부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유유히 나오미에게 예전처럼 자신의 모든 안내를 부탁하면서, 살인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만약, 닛타가 이 모든 사실의 연결고리를 풀지 못했다면, 나오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죽어갔을 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이 소설이 이렇게 여러 반전이 있지만, 결국 범인에 관해선 사전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는 점이다. , 추리 소설의 기본적인 전통과 공식에도 충실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닛타와 나오미의 미묘한 신경전과 줄타기는 이 소설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여하튼 이를 통해서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매스커레이드(Masquerade) 호텔인지 알게 된다. 솔직히, 처음에 그냥 한글만 보고 뜻도 생각 안 하고 읽다가, 갑자기 호텔 이름이 코루테시아 도쿄라길래,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다 읽고서 제목을 다시 보니, 이해가 갔다. 가장무도회 혹은 가면, 이 호텔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자, 현대 사회의 이름의 아닐지,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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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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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하루키적인 소설에 관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본 건 당연히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그 당시에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상당히 재밌게 봤다. 본 시기도 고등학교 때이거나, 대학생 초기였으니, 감수성도 풍부했을 터였다. 그리고서 본 작품이 단편 걸작선을 보고, ‘태엽 감는 새는 보다가 포기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일본 작가들과 비교해 조금 실망했다. 일단, ‘단편 걸작선의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애 이야기거나, 혹은 음악 이야기 같은데, 내 머릿속에 이음새가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태엽 감는 새의 경우는 너무 지겨웠다. 솔직히, 읽다 포기했는지, 1권을 읽었는지조차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하튼 그 이후 그의 베스트셀러 작품인 해변의 카프카‘IQ84’는 보지 않았다. 그 전에 작품이 전부 재미가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첫째는, 한동안 칸트와 키르케고르의 약간은 지루한 자유와 불안에 관한 철학 개념들을 쭉 보다가, 오랜만에 본 문학적 감성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둘째는, 이전과 달리 내가 조금 더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면서, 하루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느 정도 이음새의 연결고리를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소설은 서두가 중요하다. 단편집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돌베개에란 작품이 처음부터 내 가슴을 후벼팠다. 특히 마지막 시구 벤다/베인다/돌베개//목덜미 갖다대니/보아라, 먼지가 되었다란 이 구절은 이 소설의 백미라 생각한다. 다소간의 감정의 빈한함으로 목마른 내게 충분히 아린 통증을 심어주었다. 세 번째 작품인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란 작품이 이전까지 내가 이해하지 못한 하루키식의 음악 소설이었다. 일단, 앞에서 말했듯이 예전에 나는 전혀 이런 음악적 기반이 없었다. 재즈도 잘 몰랐고, 더군다나 보사노바라니, 아마 무슨 헛소리인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십대 중반부터 이런 류의 음악을 제법 들어온 나는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솔직히 재즈와 보사노바가 완전히 안 어울리는 장르는 아니다. Chet Baker 같은 경우, 보사노바의 가장 유명한 연주자인 Stan Gets와 협연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좋은 협연이라 말하기엔 좀 그랬다. 뭐랄까, 둘의 특징이 모두 사라져버린 느낌이랄까. 그런데 찰리 파커라,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찰리 파커의 특유의 경쾌한 트럼펫 소리가 파도 소리를 닮은 보사노바의 음악을 완전히 묻어버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는 건, 작가의 좋은 권력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상상력이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위드 더 비틀스였다. 아마 이 또한 개인적 사정 때문이라 생각한다. 글 속에 나온 여자 친구의 오빠와 비슷한 공포를 내가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이 글이 촘촘히 잘 짜인 구성의 전개로 이루어진 글이라 말하긴 힘들다. 우연의 우연을 더해, 거기에 감성을 더해, 쓰인 글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 무언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이 글이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B급 마이너의 정신으로 읽기에 좋은 글이었다. 나름 유쾌했다. ‘사육제는 다시금 내게 숙제를 안겨준 글이다. 물론, 글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 글에서 나온 교향곡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하지만 역시 내게 있어 교향곡의 벽은 너무 높아서, 못생긴 여자와 주인공의 수준 높은 대화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사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나름 진중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애에 대한 지극한 이상이 표현되었다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게도 한다. 그렇지만 이 고개를 갸웃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글에 매력이라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일인칭 단수는 지독한 자기 성찰의 한 단면으로 쓰인 소설이라 여겨진다. 어떤 면에선 위드 더 비틀즈에서 나온 여자 친구의 오빠와 같은 공포가 작가 내면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전체적으로 이번 단편집을 통해 하루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하루키 소설이 다른 일본 소설보다 잘 팔리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떠올렸다. 첫째는 덜 어둡다는 점이다. 정서적으로 극단적으로 어둡거나 혹은 변태적인, 대표적 일본 소설들과 달리 하루키의 소설은 어조가 담담하고, 나름의 유머가 있다. 그런 점에서 부담이 확실히 덜 하다. 둘째는, 나름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든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또한 나이가 들면서, 점차 무르익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나라 사람이 보기에 가장 정서적으로 안정된 일본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여러 면에서 괴리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특유의 덤덤함과 유머 감각이 이런 부분을 잘 중화시켜서, 우리에게 조금은 더 친숙하게 읽힌다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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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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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너무 짙거나, 숨 막히는

 

 

 처음 들어가는 순간부터 좋았다. 명쾌하고 단호한 정의, 정확한 심리를 꿰뚫는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이 부분이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승우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문제는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너무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다른 글은 사실 잘 모르겠지만, 특히 이 글이 그랬다. 너무 좋았던 첫 부분들이 계속 중첩되다 보니, 무뎌지고, 나중엔 사실 조금 지겨웠다.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로, 작가 스스로 글 속에서도 밝혔지만, 한 번 굳어진 인간의 신념은 쉬 바뀌지 않는다. 그런 이유를 아마 본인 스스로 잘 알았기에 그렇게 말했으리라 본다. 곳곳에 너무 강한 기독교의 박애주의와 사랑에 관한 관념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은 철학이나 종교 서적이 아닌, 소설이라는 점이다. 소설을 빌려 너무 강한 자신의 신념을 집어넣는데, 조금 눈에 거슬렸다. 솔직히 전반적으로 이야기 서사도, 이런 차원에서 약간 빈약하긴 했다.

 

 둘째는, 첫째 이유를 그대로 받아온 서사의 부족함이다. 이 글의 주요 등장인물은 형배, 선희, 영석이다. 거기에 조금 더 덧붙이면 준호와 민영 정도일 것이다. 형배는 사랑을 시작하고, 배워가는 인물로 설정해 놓고서, 선희라는 여자의 영석에 대한 모성과 같은 사랑을 이 이야기는 강조하고 있다. 글에서도 누차 강조한 넝쿨 줄기의 강한 생존력은 아마 영석의 집착적인 사랑을 암시하는 것이고, 자신의 모든 몸을 내어준 참나무는 선희의 사랑을 빗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 글에서 스토리는 거의 이게 전부다. 물론, 문학관 뒤 왕릉에서의 만남이라든지, 형배에 대한 영석에 질투, 우월감에 젖은 형배의 헛다리까지,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영석의 저 집착에 관해 너무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것도 거의 관념적인 언어들로. 솔직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 준호의 각 개인에 대한 고유한 사랑의 관념은 뭐랄까, 약간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냥 너무 은혜로운 사랑으로 가서, 갑자기 미안스러운 마음에 약간의 다른 가능성을 조금 열어두고 싶은 작가의 장난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 대해 대충 느낌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절대 내 개인적으로 이렇게 치열하게 심리를 파고들 수 없기에, 그 부분에 관해선 많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약간의 설정의 변화들이 필요해 보인다. 고아, 이혼한 부모 등, 여전히 다룰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예전 방식을 답사한 그대로 심리 분석을 가져다 쓴 느낌이었다. 그리고 문장의 부피와 밀도는 조금 더 줄일 필요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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