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뜬 날

 

 

  눈이 부시게 번뜩거리는 용, 어두운 그림자 너머 포효하는 맹수와도 같은 그 무언가, 그리고 그 두 마리 동물과 비견될만한 커다란 쥐새끼 한 마리였던 거 같다. 사실, 이렇게 세 마리의 동물이었는지, 아니면 검은 그림자들을 그렇게 추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동물들이 나와 내 두 친구들의 어떤 운명 혹은 천명을 표징 하는 무언가라고 믿었던 거 같다. 몹시 초조했다. 딱히 운명을 믿는 건 아니지만, 자기 삶의 어떤 단서를 보게 된다는 기대감이란 감출 순 없으니까. 먼저 한 친구의 운명 전언이 들려왔다. ‘뜨거운 태양을 삼켜라.’ 그 친구의 표징은 아마 용이었던 거 같다. 용과 태양이 어떤 상성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 전언은 내 가슴속을 떨리게 했다. 왜냐하면, 이 전언엔 내가 평소 갈구하는 지극한 모순이 담겨있는 까닭이다. 누가 뜨거운 태양을 삼킬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삼킬 수 있다면 그 속은 얼마나 새까맣게 타들어 가겠는가? 이번엔 내 차례다. 과연 나에겐 어떤 전언이 내려질까? 더욱 커지고 긴 포효 소리와 함께 더더욱 커진 그림자가 길고 짙게 드리워지며 꿈에서 깼다.

 

  6,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이었다. 무언가 꿈속에서 어떤 예지와 전조로 가득찬 계시라도 받은 듯 아련한 떨림이 온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책상 위 모니터 앞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유년의 뜰’, 유명한 어느 여류 소설가의 단편집이었다. 전에 문학 품평 모임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어서 아는 작가이긴 했지만, 사실 시큰둥했다. 그래서 그 작가의 책을 산 기억이 없다. 모임에서 다룬 단편 하나 고작 읽어봤을 뿐, 그 이상 읽은 기억도 없다. 그때 어머니가 내가 깨어난 기척에 방으로 들어오셨다. ‘벌써 일어났니? 밖에 누가 책을 많이 버려놨더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네가 책을 좋아하니까, 깨끗한 거로 하나 주워왔다.’ 평소 어머니는 내가 책을 사 모으는 것을 마뜩잖게 여기셨다. 방 두 면이 책장으로 가득한 것도 모자라, 내 방 발코니에 또 책장이 두 개나 더 있으니, 어머니로선 책 좀 그만 사라고 성화를 부리는 게, 당연한 일일 거다. 그런 어머니께서 갑자기 책을 구해오시다니, 게다가 유년의 뜰이란 제목이 무언가 꿈속의 풍경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왜냐하면, 꿈속의 두 친구는 이제는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있는 어릴 적 친구들이고, 친구들과 연관된 동물들의 상징도 두 친구에 대한 내 무의식의 투영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너무나 은처럼 빛나고 강철처럼 늘 당당했던 은철이란 친구, 그리고 공부는 잘했지만 피부질환으로 또래에 비해 나이가 들어 보였던 태근이란 친구, 두 친구는 나와 학교 내에서 성적 라이벌인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 여기서 다소 비합리적이고 생뚱맞긴 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조금 도용하면 은철이를 내 양심과 이상의 영역인 초자아로, 그리고 태근이를 내 본능의 영역인 이드로 나름의 해석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다면 자아의 영역인 나의 상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맹수라고 기억을 변조해놓았지만, 실은 어두운 그림자에 가까웠다. 가장 거대하고 가장 짙은 어떤 동물의 형상을 닮은 그림자, 커다란 쥐새끼라고 명명한 태근이의 상징보다 오히려 더 감추고 싶은 나의 치부이거나 내가 모르는 나의 본질,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머릿속이 무거웠다. 동시에 무언가 아주 사소한 전조만으로도 이제껏 품어온 나의 모든 가치관을 뒤집어 엎어버릴 만큼 뇌파에서부터 시작된 아드레날린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차고 넘쳤다. 뭐랄까? 오늘 무언가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거나 기시감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그 반대로 이미 무언가 시작된 실타래 속에 엮어 들어간 기분이었다. 잘 모르겠다. 다만, 다소 복잡한 심정으로 평소보다 다소 일찍 은행으로 출근을 했고, 어머니가 주운 유년의 뜰이란 책을 챙겨갔다.

 

  別辭, 왜 생소한 한자 제목의 단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을까? 책 제목인 유년의 뜰은 사실 이른 아침에 읽기엔 조금 어지러웠다. 그런데 잘 모르는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 ‘이별 별자라는 건 아는데. ? 핸드폰 한자 검색 앱을 통해서 말 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별의 말이라. 제목부터 무언가 심상치가 않았다. 다른 날보다 일찍 온 탓에 바로 책을 펼쳐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글은 그러한 심상치 않은 구석을 전혀 숨길 의도를 감추지 않고서, 묘지를 향해 시나브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멈춘 곳은 딱, ‘신작로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정확하게, 그 시각이 은행 영업 시작을 위해 내가 마지막 점검을 하는 시각이기도 했고, 이상하게도 그 지점이 아침부터 마법에 걸린 내게 무언가 앞으로의 새길을 제시할 것처럼 막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은 장장 칠 일이란 긴 추석 연휴를 앞둔 날이다. 엄청나게 바쁠 거란 사실이 눈에 선했다. 오전 9시 정각, ‘정문 오픈합니다.’란 멘트를 외치고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의 대부분 신권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은행에서 일 년에 구정, 추석 딱 이 두 번의 명절에만 신권을 배부하는 탓에 오전은 거의 신권 찾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오늘 우리 은행에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만 원짜리 신권이 처음부터 아예 동나있었다. 많은 손님이 헛걸음해야 했다. 그래도 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 더욱 붐빌 수밖에 없었다. 대기표는 계속 열 명, 스무 명을 넘어, 삼사십 명을 웃돌고 있었다. 게다가 기기들은 오늘 내 기분처럼 살짝 미쳐 돌아가는지, 번호표 모니터가 고장 나고, 세금 공과기마저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아마 평소라면 이 대란에 여기저기 불평불만을 토하는 고객들로 넘쳐나고, 나도 쉴 새 없는 고객들의 요청에 정신이 없었을 게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내가 이 모든 상황을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아니, 나를 위해서 마치 이 상황이 조성된 것처럼 여겨졌고, 실제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어떤 고객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장 난 기기 덕에 내 할 일이 줄어버렸다. 사실,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한 번 어떤 믿음에 불타오르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자신의 힘을 뛰어넘는 힘과 열정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말을 줄곧 불신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오늘 일은 이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달리 없다. 그 바쁜 와중에 나는 고객들에게 커피를 타주거나 차 한 잔을 대접하기까지 했다. 원래는 은행에서 금지하고 있는 일이여서 이제껏 한 번도 그래 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하니 손님들이 무언가 여유를 찾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몸이 불편한 손님들이 많이 왔는데, 그때마다 창구의 한 여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평소 같으면 다소 차가운 느낌의 그 아가씨와 그런 눈맞춤에도 별 느낌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녀가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처럼, 몸이 불편한 손님들을 자신의 창구로 모셨다. 염치없게도 가슴이 설렜다. 이 역시 며칠 전에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그녀와 나는 은행 CCTV 기기실을 통과하는 조그만 사무실에 있었다. 갑자기 다가온 그녀가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하나하나 정성스레 애무를 해줬다. 하도 정성스러워서 깨고서도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먼저는 내가 이렇게까지 외로웠나 싶어서 가슴이 허했다. 게다가 왜 하필 그녀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종종 물건이 필요하면 서무 담당인 그녀에게 신청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 외에 우린 그다지 접점이 없었다. 그것도 그녀의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나는 한 번도 그녀를 성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은행에 처음에 왔을 때 눈에 띄는 미모라 생각은 했지만, 약간의 도도함이랄까, 냉정함이 보여,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 차도 거의 열 살 차이 가까이 났다. 오히려 내 자신이 스스로 놀란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 여자들이 이미 다 결혼한 유부녀였다는 사실이다. 하긴, 내 나이가 사십 줄에 들어섰으니 유부녀라고 해도 전부 나보다 어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거의 삼십 대 중후반의 나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나이로 따져도 나랑 맞는 건 그쪽이다. 거기에 솔직히 말하면 무언가 농염함이라고 해야 할까? 삶에 조금은 지친 그늘 속에 가려진 욕망에 대한 선망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아니, 조금 더 솔직히 표현해 그동안 봐왔던 AV 동영상의 여인들이 이제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나도 모르게 바뀌었기 때문일 거다. 어느 순간부터 퇴근하고 나서 늘 AV 동영상을 다운받고 편집하기 시작했다. 사실, AV 동영상 다운받는 일이야 누구나 하는 일이다. 그런데 편집이라고 하면, 다들 그렇게 말한다. 무슨 편집? 마치 내가 그런 일에 관련이 있지 않는 한, 전혀 할 까닭이 없지 않으냐는 그런 반응이다. 맞다. 일반적으로 그건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맞다. 하지만 아주 우스운 계기를 통해 나는 편집을 하기 시작했다. 하드디스크 용량의 한계, AV 동영상을 하도 숱하게 다운을 받았더니, 용량 초과라는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그래서 용량 확보를 위해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저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매일 쏟아지는 숱한 AV 동영상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로 다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외장 하드를 사게 됐고, 그 과정에서 나의 편집에 대한 집착은 점점 묘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나는 작품명을 반드시 기입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마이너스 표시를 해두면 여자의 성기가 선명하게 보이는 작품이고, 없으면 모자이크 처리된 작품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편집할 때 반드시 처음에 옷을 입은 장면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옷은 또 다른 성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마 여자들도 본능적으로 이를 알기 때문에 화장이 아닌 패션이라는 또 다른 치장이 생겨났을 것이다. 아니면 나와 같은 이런 남자들의 욕망의 투사 때문에 생겨났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어떤 옷을 입었느냐가 성욕을 자극하는 부분이 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나는 괜찮은 AV 배우의 경우엔 여러 옷을 입고, 여러 상황 설정을 한 작품을 수집한다. 여기서 여러 설정이란 강간, 비 오는 날, 한여름의 땀나는 장면, 온천, 여러 명에게 당하는 M 성향에서 여자가 우위를 차지하는 S 성향까지의 모든 작품 종류를 아우른다. 물론, 이 역시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처음에 나는 키스 신이 많은 정상적인 체위의 작품들을 좋아했다. 소위 가정물이라고 말하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옷의 다양성만큼 설정의 다양성이 중요해졌다. 욕망의 범위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넓혀져 갔다. 다만, 내가 그럼에도 가장 꺼리던 건 여자의 S 성향 작품들이었다. 뭐랄까, 기본적으로 나는 내가 수동적인 게 싫었다. 어차피 AV 동영상이라는 게 자위하기 위해 보는 작품인데, 여기서 수동적일 이유도 없을뿐더러, 진짜 성관계에서도 내가 수동적인 건 별로이다. 때문에, 그녀와의 꿈은 사실 내가 그리 좋아하는 상황도 아니고, AV 동영상에서도 거의 없는 설정이다. 그저 호기심으로 한두 개 정도 있는 정도? 하지만 그날의 꿈은 나의 기본적인 욕망 인식의 틀을 바꿨다. 어쩌면 욕망을 발현하기보다는 지금 나는 욕망이라는 이름을 통해 위로받고 싶은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언뜻 들었다. 거기서 아주 살짝만 더 나아가면 연애에 대해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욕망의 변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상황이란 건 그야말로 바닥을 기는 형국이 아닌가? 젊을 적부터 다소간의 역마살 때문에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던 내가 마흔쯤이 됐을 때 남은 건 빚투성이였다. 그래서 빚도 갚을 겸 세상에 대해 조금 더 알 겸, 겸사겸사해서 은행에 들어왔다. 하지만 배운 건 대출하는 방법뿐이었다. 생겨 먹은 게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관심을 가지려 해도 돈에 대한 관심이 생기질 않았고, 빚만 더 늘어났다. 무려 오 년이란 시간을 빚을 갚아야 겨우 지금의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하지만 오 년이란 시간을 이제껏 나는 어느 한 곳에 머물러 본 경험이 없다. 여자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것이 오랜 시간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 믿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고백해본 적도 없다. 동거 비슷하게 지냈던 여자에게 했던 말이란 게 고작 너를 진짜로 사랑하고 싶다.’라는 말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말이 내게 있어 최고의 고백이었던 거 같다. 왜냐하면, 사랑을 믿지 않는 내게 있어 최고의 가능성은 사랑 없는 관계의 가능성이었고, 그 가능성의 시발점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씨앗이었을 테니까. 그 때문인지 여자들은 쉽게 떠나갔다. 사랑을 애초에 믿지 않는 내게 결혼이란 단어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까닭이다. 사실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결혼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결혼한다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 하는 은행 창구 여직원에게서 갑자기 연심을 느끼다니, 내 자신이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다. 대체 오늘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걸까? 끊임없는 내 사념 탓인지, 아니면 나를 위해 그 모든 시간이 준비된 탓인지, 눈 깜짝할 사이 정각 12시 점심시간이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먹은 뒤, 커피 한 잔에 담배를 태우면서 시간을 때우다, 1시 정각에 은행에 들어갔을 거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너무 생각들이 뒤엉켜 음식이 잘 목에 안 들어갈 거 같다. 아니, 사실은 아침에 읽다 만, ‘신작로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 내내 목에 걸렸다. 결국, 끼니를 거르고, 근처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서 다시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 안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갔다. 낚시하러 가서 사라진 한 남자와 낚시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덤을 방문한 여자의 이야기, 여기서 이야기는 교묘하게도 이야기가 마치 한 날에 벌어지는 것처럼 써서 두 남녀가 전혀 관계없는 듯이 표현하면서도, 두 남녀 이야기의 교합지점을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종국엔 그 이야기가 백중에 벌어진 일이라 하면서, ‘우란분재, 망자의 날, 달은 밝아 만월이라 정리하고 있다. 마치 두 남녀 모두 망자이었어도 상관없었을 것처럼, 덩달아 나도 망자인 것처럼, 혹은 오늘 숱하게 은행을 혼령처럼 떠돌던 손님들과 나와 눈을 맞춘 그녀 역시 내게 있어 망자여도 상관없는 말투로, 그렇게.

 

  ‘별사를 다 읽고서도 시간이 남아, 내친김에 어둠의 집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어떤 까닭 모를 공포와 대면했다. 사실, 처음 이 책에 제목을 펼쳤을 때 나는 별사보다는 이 어둠의 집이란 제목에 더 눈이 갔었다. 왜냐하면, 같은 제목으로 쓴 내 시가 있기에, 어떻게 풀어갔을지 궁금함이 있던 차였다. 그런데 이 어둠의 집은 나의 어둠의 집과 많이 달랐다. 아니, 완전히 달랐다. 내 경우 어둠의 집을 벽돌은 금강석으로 하고 천장은 특수 알루미늄으로 덮어 빛 하나 새지 않도록 밀봉을 하더라도, 컥컥 숨을 토해낼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촛불 하나를 숨겨 두고서 그 촛불로 불 지른다면 기꺼이 뜨거운 불구덩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곤 있지만, 그래도 컥컥 숨을 토해낼 거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여류 작가의 어둠의 집은 훨씬 더 음험하고 거대한 그림자와 같았다. 마치 내가 오늘 꿈에서 본 알 수 없는 그림자의 형상처럼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 , , 떨어지는 집안의 물 떨어지는 소리, 어떤 면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은 이 소리가 오히려 지난 추억을 지우고, 어둠의 섬광을 뚫고 빛나는 형광등이 유령처럼 살아있는 창백한 사람들의 얼굴을 비춘다. 어디선가 느껴보았던 이 감정,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당혹스러웠다. 어둡고 빨간 조명 속에 물비린내로 가득한 안마방에서의 열패감, 그 어둠의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 뇌리를 스치던 수많은 생각들, 왜 갑자기 지금 떠오른 것일까? 사랑에 대해 다시금 재고해보기로 한 하필 지금, 그리고 또 한 가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알던 이 작가의 전혀 다른 이미지이다. ‘동경’, 구리거울에 빗대어 흐릿해진 추억과 죽음이 가까운 늙음에 관한 이야기, 물론 맥락상으로는 비슷하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 동경은 윤동주의 참회록동경과 교차하여 혼란스러운 데다, 한 사람의 뚜렷한 이미지와 혼동되어 있다. 3년 동안 같이 문학 품평 모임을 하다가 나간 세월님에 대한 이미지, 그는 참 따뜻한 감성의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문학을 선망했고, 그로 인해 오히려 실망하여 나갔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가 바로 이 여류 작가였고, 모임에서 기성 작품 중에서 추천했던 작품이 동경이었다. 당시, 나는 이 작품을 평하면서 내가 함부로 늙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어 윤동주 참회록동경을 비견하여 감상문을 썼었다. 문득, 그가 보고 싶었다. 너무 좋아했던 사람이라 나간 것이 안타까워 생각나기도 했겠지만, 그 따뜻한 감성이 오늘따라 너무 그리웠다. 하지만 나간 지 벌써 3, 갑자기 연락한다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도 오늘은 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날이다. 전화했을 때, ‘세월님은 다소 놀란 기색이 완연했다. 모임에 있을 때에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데, 3년이 지나 연락을 받으니 당연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평소 마시지도 않던 술을 마시며, 아침부터 그날 내내 사로잡힌 무섭고 생경한 예감과 예지에 대해 떠들어대질 않나, 그 자신이 좋아하던 여류 작가의 이중성에 대해 내 자신도 이해하질 못할 이야기를 해대니, 그는 적지 않게 당혹해했다. 아니, 사실 그가 거북스러워한 정체는 이미 자신이 뒤돌아선 자리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장광설이었을 것이다.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기에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대기업 직장을 다니면서도 필사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고, 가정에 충실하면서도 습작을 매달 썼다. 그렇지만 거기엔 어떤 한계가 있었다. 모든 사물을 따뜻하게 바라보려고만 하는 시점이라든지, 혹은 어떤 비일상도 결국엔 일상으로 되돌리는 틀이라든지, 결국 본인 자신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글쓰기를 포기한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 글쓰기는 글 쓰는 자체에 몰입하는 연극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일상의 범주의 틀을 깨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선, 아주 가끔은 실제 일상의 틀을 깰 필요도 있다. 하지만 탄탄한 직장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그에게 일상을 깬다는 일은 무리였을 것이다. 아니, 모임에 있는 사람들과 있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부담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심각하게 비일상적인 하루를 겪을 확률이 조금 더 올라가게 마련이니까. 그렇지만 내 입장에선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세월님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지 않을 수 없었다. 뜬금없이 치솟아 오른 사랑이란 감정과 양가감정으로 안마방이라는 어둠의 집을 향해가는 내 발걸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무지 내 자신도 알 수 없었을뿐더러, 나에겐 누군가 공범자가 필요했다. 아니, 고해가 필요했다. 그래서 떠오른 이가 세월님이었다. 더이상 내 주위에 어떤 접점이 없고, 무언가 이 모든 실마리와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 그렇지만 그는 더이상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가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이 느껴졌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에겐 결국, 허공에 붕 뜬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위가 현재 어떤 합리성도 논리도 없는 모순 그 자체란 사실을 깨달았다. 미안한 기분에 그렇게 두 시간쯤 혼자 떠들다 9시쯤 그와 헤어졌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나는 늘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발길을 헤매다 결국엔 안마방에 종착하고 만다. 오늘부터 다시 사랑을 믿기로 했지만, 그래도 아직 남은 관성을 나는 이길 수 없음을 이내 깨닫는다.

 

  약간은 어둡고 침침한 붉은 조명, 이곳에 오면 왠지 모를 물비린내와 매캐한 담배 냄새가 어우러져 포근하면서도 텁텁한 기분이 든다.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대학 졸업쯤이었다. 학교 채플 출석수가 모자라, 기도원에서 1주일 동안 보충하는데, 조교들과 다툼을 벌여, 그냥 중간에 나와버렸다. 기분도 찝찝하고 분도 가라앉지 않아, 이리저리 헤매다 이곳에 들어왔다. 그전에 많은 집창촌을 가봤지만, 이런 업소는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여자들이 몸에 로션을 바르고, 몸으로 안마를 해주는데, 기본이 묘했다. 그래서 한 번, 두 번, 오다가다 이곳을 단골로 삼게 되어, 그냥 주체할 수 없는 날이면 이렇게 나도 모르게 여기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 처음엔 여자들이 그렇게 몸으로 안마를 해주는 게 좋았는데, 점점 귀찮아졌다. 뭐랄까, 애정이란 게 전혀 담겨있지 않은 상업적 느낌이랄까? , 사실 이런 곳에서 애정을 갈구한다는 자체가 웃긴 얘기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조금 진짜처럼 해주는 여자들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만 지명하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런데 이게 또, 이런 곳 여자들의 특징이 한 곳에만 오래 머무를 수가 없는지라, 2, 3년 주기로 지명하는 여자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중에 한둘은 바깥에서 볼 기회가 없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그냥 이곳에서 보는 거로 내 선을 그어놓는 게, 안전하다고 느꼈던 거 같다. 최근 한동안 빚도 많고, 지정했던 단골녀도 없어, 이곳을 온지 조금 뜸했다. 그래서 무언가 처음 오는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아니, 처음 보는 여자와 바로 옷 벗고 섹스를 한다는 게 얼마나 데면데면한 일인지, 늘 이럴 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바로 섹스를 하는 것보다는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키스도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렇게 해주면 나는 그 여자를 바로 단골녀로 지정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여기 와서 무슨 이야기고 나발이고, 게다가 웬 키스란 말인가? 그러면 나는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1분도 안 되어 찍 사버리고 만다. 그 때문에, 더욱 허무해진 나는 연장을 해서, 조금 더 어떻게든 해보려 하지만, 역시 대부분 똑같은 결말에 허무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래도 오늘 여자는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나에게 자신과 연장하지 말고, 다른 여자를 소개해 줄 테니 한 번 그 여자와 해보라고 권유를 해줬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조금 망설였지만, 마다할 이유도 없어 그냥 받아들였다. 새로 들어간 방에 여자는 여간 곰살맞은 게 아니었다. 조금은 통통하지만, 얼굴은 귀염 끼가 제법 있었고, 말투도 사투리가 약간 있는 게 더 애교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내게 키스를 자연스럽게 허락해주어, 섹스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 한 이삼십 분쯤 섹스하고서 사정을 하니, 여자가 다소 놀란 기색으로 이야기했다. ‘자기, 생긴 거랑 다르게 잘하네?’, ‘뭘 잘해? 다들 이 정도쯤은 하지 않아?’, ‘아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거의 다 10분도 제대로 못 해.’, ‘나도 원래는 거의 10분 안짝이야. 그런데 자기가 키스도 해주고, 잘 대해주니까 자연스럽게 잘 된 거야.’, ‘정말? 원래 나 키스 거의 잘 안 하는데, 오늘 사실 나 달뜬 거 같아?’, ‘달 떠?’, ‘, 왜 있잖아. 여자 생리가 거시기할 때 막 하고 싶은 그런 거.’, ‘, 또 그런 것도 있었구나. 처음 알았네.’, ‘자기, 여자 안 사귀어 봤어? 그런 것도 모르게.’,‘사귀어 봤지. 그래도 그런 건 잘 안 물어봐서, 잘 몰랐어.’, ‘여하튼 나 완전 달 떴어. 어떻게 할 거야? 자기 때문에 달아오른 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연장할 테니까, 걱정 마.’ 이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리드에 따라 연장을 끊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정말 그녀 못지않게 달뜬 날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정을 하려 해도 사정이 되질 않았고, 발기한 성기는 조금도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1시간 마감 콜이 울릴 때까지 사정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자기, 진짜 완전 변강쇠네. 안 힘들어?’, ‘몰라, 나도 오늘 왜 이러는지. 오늘 자기가 아니라 내가 달떴나 봐.’, ‘난 힘들어 죽겠어. 그런데 자기 괜찮아? 이렇게 가도?’, ‘그럼 어떡해? 자기가 입으로 한다고 해도 나 안될 거야. 얘기했지만 입으로 하면 오히려 내 건 그냥 죽어.’, ‘미안하네. 조금 찝찝하고.’, ‘괜찮아. 다음에 또 올게.’, ‘알았어. 기대할게.’ 그녀를 그렇게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제 비가 멈추고, 먹구름에 가린 달빛에 조금 어스름했다. 무언가 아직 다 해갈하지 못한 기분이라 답답했지만, 방법이 더 없었다. 나에게 2번의 안마방 연장은 이미 이번 달 생계에 큰 지장을 줄 것이 뻔하다. 그런데 여기서 더 연장한다면 또 카드 현금서비스를 이용해야 하고, 그러면 줄지 않은 나의 빚과 함께 더불어, 나는 또 카드 돌려막기까지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몰리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잠을 자려 해도 잘 수가 없었다. 아직 해갈하지 못한 욕구로 몸은 뒤척이고, 동시에 은행에서 사랑을 느낀 그녀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나 모순된 이 몸과 정신의 분리가 나를 다시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일으켜 세운다. 거기엔 수백 아니 수천 가까운 AV 여배우들이 나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마우스 버튼만 누르면, 나는 언제든지 그녀들을 관음하며, 자위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위는 이럴 때 언제나 가장 빠르면서도 안전한 방법이다. 이상하게도 자위할 때면 성행위를 할 때보다 훨씬 빨리 사정한다. 맺혔던 정액을 훌훌 풀어낸다. 그런데도 자꾸 그녀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안마방의 그녀인지 은행의 그녀인지 더 이상 분간을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한 명은 바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다른 한 명은 만나고 싶다고 하여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기 나 또 왔어.’, ‘내 이럴 줄 알았어.’,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힘들게 안 할게. 나 집에서 이미 한 번 빼고 왔어.’, ‘아니, 힘든 건 괜찮은데, 나도 오늘 어차피 몸이 달아올라서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까. 계속 자기 생각나더라.’, ‘정말?’, ‘.’, ‘그럼 다시 한번 뜨겁게 해볼까?’, ‘에구, 밝히기는.’ 그녀를 품에 안고서 천천히 키스를 한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은 나의 성기의 귀두에 닿아 이제 슬슬 문지르면, 발기가 되어야 할 텐데. 이게 무슨 문제인지 잘 서질 않았다. 아무래도 집에서 자위하고 온 게 영향이 있는 거 같다. ‘, 이상하네. 아까는 그냥 손만 대도 벌떡 서더만, 지금은 왜 그래?’. ‘집에서 하고 와서 그런 거 같아. 괜찮아. 안 해도. 그냥 이렇게 안고 키스만 해도 좋아. 그러다 자연스럽게 서면 하는 거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그녀는 내가 하자는 대로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 때문인지 나도 마음이 편해져 술술 이 얘기 저 얘기를 떠벌렸고, 정말로 안 해도 괜찮은 기분까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1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고 이야기만 한 것도 그런데, 다시 연장을 끊으니 무언가 미안하고 찝찝한 기분이 그녀 마음속을 지배한 것 같다. ‘자기, 오늘 보니까 웬만해선 잘 안 될 거 같아. 그러니까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괜찮아?’, ‘뭔데? 말해 봐?’, ‘그런데 좀 변태 같은 짓인데 괜찮겠어? 솔직히 나도 오늘 정말 하고 싶기도 하고, 자기도 잘 안 되는 거 보니까 좀 그렇기도 하고.’, ‘변태 같은 짓?’, ‘, 좀 말하기 부끄러운데.’, ‘뭐가 말하기 부끄러워. 이미 여기서 서로 볼 장 안 볼 장 다 봤는데, ?’, ‘나 좀 맞는 거 좋아하는데.’, ‘? 맞는 거?’, ‘, 이런 얘기한다고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나 사실 누가 나한테 막 욕하면서 엉덩이 때리고 하는 거 엄청 좋아해.’, ‘정말? 진짜로?’, ‘.’, ‘그럼 지금 나한테 그거 해달라는 거야!’, ‘, 안 돼?’. ‘아니, 안 될 건 없는데.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잘하고 못 하고가 어딨어?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되는 건데. 일단 조금 상상해 봐.’, ‘상상?’, ‘, 이런 건 익숙해지려면 일단 상상하면서 좀 미리 머리로 연습을 해야 해.’, ‘알았어.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볼게.’, ‘일단 상상해 봐. 처음에 내 엉덩이를 살짝살짝 치는 거야. 그러면서 이 씨발년 엉덩이가 맛있게도 생겼네 하면서 내 엉덩이를 꽉 깨물어 줘. 내가 소리를 지르면 좋아서 지르는 거니까, 바로 자기 자지를 넣어서 뒤치기 해줘. 내 머리카락을 뒤로 확 당기면서 씨발, 죽어, 죽으라고 하면서 계속 세게 넣어.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거야. 평소 안 해봤던 거 중에 뭐 해보고 싶은 거 없어?’, ‘? 해보고 싶던 거?’ 머릿속에 여러 가지 AV 동영상 장면이 맴돌았다. ‘목 조르는 거 해보고 싶어?’, ‘?’, ‘.’, ‘그건 나도 안 해봤는데. 알았어. 그럼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목을 졸라봐. 대신 너무 힘들면 내가 벽을 칠 테니까, 그때는 살살해.’, ‘알았어.’, ‘그렇게 하다가 내가 달아오르면 자기한테 항문에 넣어달라고 할게. 자기 그렇게 해본 적 있어?’, ‘아니, 없어.’,‘해보면 알 거야. 기분 째질 거야.’, ‘, 나도 그렇게 얘기는 들어봤어.’, ‘자기 또 뭐 해보고 싶은 거 있어?’, ‘안에 싸는 건, 안될 테니까, 내가 하다가 마지막에 자기 입에 싸게 해줘.’, ‘입에? 자기 입으로 하면 금방 죽는다며?’, ‘아니, 자기가 입으로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자기 입에 대고 하다가 싸는 거, 안 될까?’, ‘, 알았어. 또 딴 건 없고?’, ‘모르겠어. 하다가 생각나면 그냥 해볼게.’, ‘상상하니까 어때? 자기 벌써 섰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아주 부드러우면서 농도 있는 톤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 때문인지 이제까지 전혀 꿈쩍도 안 하던 내 성기가 그녀의 이야기 흐름에 따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벌써 발딱 섰잖아. 할 수 있겠네.’ 마음이 무언가 찝찝했지만, 이제 와 거부할 방도가 없었다. 이미 내 몸이 그녀가 말한 그 모든 것을 너무나도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말한 대로 그녀와 뒤로 하는 자세에서 시작했다. 그녀가 요구한 대로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엉덩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가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질렀다. ‘씨발년아! 죽어!’, 발설하며 그녀의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박동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거기에 맞춰 그녀의 신음도 커졌다. 천천히 그녀 목으로 내 손을 가져갔다. 너무 세게는 말고, 그렇지만 약하지는 않게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녀의 힘겨운 신음이 새어 나오지 못하고 내 움켜쥔 두 손에 진동으로 맴돌았다. 그 진동이 거세질수록 내 아귀에 힘이 더 들어갔고, 내 피스톤 운동도 거세졌다. 마지막 내 두 손아귀로 그녀의 목울대의 힘줄을 거세게 움켜쥐었지만, 그녀는 힘에 겨운지 몸을 뒤틀다 결국엔 벽을 쳤다. 그대로 엎드려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다시 섹스를 시작했다. 거의 절정에 달했을 쯤 그녀의 항문 속으로 내 성기를 넣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이 온몸에 저릿하게 느껴졌다. 금세 거의 바로 사정하기 직전까지 갔다. 엎드려 있는 그녀를 급히 돌려, 콘돔을 벗기고, 그녀 목으로 내 성기를 가져갔다. 미친 듯이 그녀 입속으로 내 성기의 피스톤 운동을 하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죽어, 제발 죽으라고. 씨발! 제발 죽어달라고!’ 동시에 내 정액이 그녀 입속으로 넘쳐흘렀고, 그녀는 힘에 겨웠던 듯 살짝 내 성기를 깨물었다. 그리고 조금 역겨웠는지 세면대에 가서 입을 헹궜다. 금세 돌아온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을 내 성기로 가져와, 더 나올 것도 없는 정액을 모두 훑어냈다. 머리가 주뼛 서는 기분이었다. ‘, 좋다. 나 처음이야 여기서 이렇게 한 거.’, ‘나도 처음이야. 아니, 이런 식으로 한 자체가 처음이야.’, ‘어땠어?’, ‘솔직히 말하면 너무 좋았는데, 잘 모르겠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게 무슨 말이야? 좋으면 좋은 거고, 싫음 싫은 거지.’, ‘그러니까 좋았다는 이야기야.’, ‘, 나도 진짜 좋았어.’,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자기는 정말 좋아. 맞고 이렇게 욕 듣는 게?’, ‘.’ ‘?’라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말을 삼켰다.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기, 궁금하구나? 왜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지?’, ‘, 조금.’, ‘그럼 자기한테 다시 물어볼게. 자기는 나 때리고 욕할 때 싫었어?’, ‘처음엔 조금 그랬어. 자기도 느꼈겠지만 그래서 세게 욕하지도 세게 때리지도 않았잖아.’, ‘그런 사람이 그렇게 목을 졸라? 그리고 그렇게라도 안 했으면 자기 아직도 나하고 하지도 못했을걸?’ 맞는 말이었다. 그녀와 그렇게 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나의 몸은 이미 달아올랐고, 그녀와의 행위는 솔직히 내가 이제까지 맛볼 수 없는 쾌감을 주었다. 그런데 왜 자꾸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그리고 왜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그녀는 마지막까지 내게 살갑게 굴었다. 그렇지만 그녀도 이미 나의 마음을 눈치챘으리란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벌써 새벽 4시쯤 시간이 되었고, 비는 완전히 그치고 구름이 개어 한가위 대보름을 앞둔 달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달떴다는 말과 함께 달을 품은 여자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묘하게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뉘앙스의 이야기이다. 하나는 달이 차오르면서 음기가 절정에 달했다는 이야기이고, 하나는 그 음기를 잘 보듬는 어느 여인의 그림을 그려놓은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남자인 내게 있어 달이란 무엇일까? 서양 전설에 늘 만월이면 등장하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있다. 그 늑대는 인간이 되기도 하고, 때론 할머니로 변장하여 소녀를 잡아먹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어디에도 달을 품은 남자에 관한 설화나 전설은 없다. 아니, 내 개인은 어디서도 그런 설화나 전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결국, 남자란 존재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불명확한 구분 속에 놓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포식하고, 공격해야만 애끓는 피를 잠재울 수 있는 동물이면서도, 인간이고도 싶은, 그런 이유로 자꾸 어이없게도 사랑을 갈구한다. 애초에 키스를 원한다는 자체가, 궁극적으론 사랑을 원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나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물론, 여기에 덧붙일 변명과 수많은 이론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던 관계 속에서, 폭력을 행함으로써 희열을 느꼈고,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질내 성교를 벗어나 항문 성교를 함으로써, 남녀 간 사랑의 구분을 스스로 깨뜨렸다. 정작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문제에 대해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느니, 성적 소수자를 인정해야 한다느니, 수없이 쉽게 지껄였지만, 당장 내 자신의 문제로 화살이 돌아오니 고개를 돌리고 외면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이것이 너무 확장된 해석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 그동안 내가 믿은 사랑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갑자기 나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AV 동영상을 통해 조금씩 확장된 나의 모든 그 욕망을 사랑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거기서 이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폭력이 가미된 사랑도 사랑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오늘, 아니 이제는 어제 느꼈던 뜬금없던 가슴속 떨림은 무엇일까? 갑작스럽게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스스로 믿고서, 결혼에 대한 생각까지 재고했던 나의 어이없는 관념들은 다 거짓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다. 결코,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쾌감에 대해 나는 무어라 내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간과해버린 사실은 무엇일까? 왜 사랑을 추구하는 섹스에서 죽음을 추구하는 폭력으로 나는 극도의 쾌감을 느꼈던 걸까? 생각보다 답은 명확하다. 사춘기 때부터 자위를 하면서 시작된 죄악감, 그 죄악감은 다름 아닌 섹스가 사랑이 아닌 죽음에 가깝다는 인식을 자기도 모르게 가졌기 때문이다. 허공에 흩어지면서 수없이 휴지 속에 파묻힌 정액 덩어리들이 하나의 생명이 되지 못하고, 모두 매장되어버려야 한다는 사실, 여기서부터 나는 섹스에 사랑이 아닌 짙은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했다. , 하나의 생명 도달하기까지 숱한 죽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래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을 감당하기 위해, 아니 죽음을 포식하기 위해 짙은 그림자의 맹수는 달이 뜨면 늑대처럼 길게 포효하며 몬스터로 변신한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다. 빨간 망토를 둘러싼 차차인지, 아기 돼지 삼 형제인지, 그 누구이든 상관없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포식하는 것만이 맹수의 길이며, 본능이다. 그런데 알고 있는 걸까? 그렇게 득달처럼 먹어 치운 만큼 자신도 죽음과 가까운 형상으로 닮아간다는 그 사실을. 이 불쌍한 맹수는 자신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형상들 가운데 자신의 형상을 본다. 그리고 만월이면 달빛 가득한 혼령들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듣는다. 이미 자신도 그 혼령들 가운데 하나임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달이 지고 태양이 뜨는 아침이 되면, 원래대로 돌아와,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자신의 피 묻은 손을 씻고, 또 씻는다.

 

  추석 연휴 동안 나는 깊고 깊은 잠을 잤다. 꿈속에선 은행원 여자인지 혹은 누군지 모를 내 사생아들이 토끼처럼 번식하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밑도 끝도 없이 번식해가는 토끼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입을 모아 찍찍 소리를 내는 모습이 마치 쥐새끼처럼 변하면서, 땅속에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무한대로 기어올라 나왔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땅속에서 나오는 두더지를 때리는 게임처럼 쥐새끼들을 지워나갔다. 그렇게 몇 날 며칠 토끼인지 쥐새끼인지 두더지인지, 아니면 내 새끼인지 남의 새끼인지도 모를 새끼들이 수없이 번식하며, 사라져가는 꿈을 꾸다 연휴가 끝났다. 그리고 출근을 했을 때 뜬금없이 사랑을 느꼈던 은행원 여자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이 달밤에 홀린 혼령 이야기처럼 허탈했다. 그렇게 맥없이 은행 정문에 서서 가만히 은행 유리문 사이에 흐릿한 내 형체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한없이 투명하면서도 나와 비슷한 그 형체는 언젠가 거울을 통해 마주할 내 도플갱어처럼 어렴풋이 나를 마주하며 마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렇지만 나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 앞으로도 영영 쉬 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투명한 그림자라 명명하기로 하고서, 모든 꿈에서 비로소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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