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새벽에 고양이 울음

쓰레기통속에 처박혀

빼꼼히 내밀은

창문 사이로 들려왔네.


겨우내 시린 바람은

여전히 불어왔고

얼음으로 들러붙어

창문은 꽁꽁 닫혀버렸네.


성에 낀 창틈에

이슬이 맺혀

주르륵 흘러내리다

알알이 맺혀

흐르지 아니하고

매달려 있네.

애원 한 번 아니하고

매달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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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 풍경



차창 밖 닿을 수 없어

더욱 아름다운 풍경들이

길옆을 메워갑니다.


가슴 내밀어 사진을 찍듯

온몸을 유리창에 부비면

오만가지로 뒤바뀌어가는 자화상


가질 수 없는 것을 동경하는 것은

유약한 것이라고

오직 가야할 길만을 생각하라고

남은 정거장 수를 헤아리다 보면

드문드문 꽂히는 서글픔들


지나쳐가는 모든 유약한 풍경들이

달리는 버스의 길을 내어주고

남아 있는 정거장 너머 아득한

지평선까지 길을 이루는데

언제 당신과 나는 저 길옆에 머물러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을지

지평선 너머 당신이란 그리운 이름이

문득, 노을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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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말



개나리로 희망을 말하고

물망초로 진실한 사랑을 고백하고

금잔화로 이별의 슬픔과

나팔꽃으로 사랑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무 이름도 없는 당신에게

꽃 되는 이야기 할 수 없어

나를 당신의 제물로 하여

꽃말이 되게 하시던가

당신이 나의 제물이 되어

꽃이 되어 주시던가







2. 꽃에 관한 알레르기



그대를 향한 거부의 몸짓들로

더욱 그대를 향해 옭아매져가는

이 내 걸음은 멈출 수 없는

늪입니다.

혹 그대는 아시는지?

어여삐 교태를 떨던 그대 낯빛보다

더욱 아름답던

그대 등 뒤에 스미던

내 절망을


그 모든 몸짓으로도 그대를

떨쳐낼 수 없던 것은

그대는 내 것이 아닌

다른 계절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변심



며칠 몸살이를 하다 기지개를 펴고

밖으로 나서면 온통 꽃 피는 세상

차마 부끄러워 새어나오지 못한

말들이 떠올라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마음뿐인 것을

그래도 슬며시 곁눈질로 쳐다볼 요량이면

속속들이 발가벗겨지는 내 모습

그대, 만지면 손끝으로 스며드는

선홍빛 고통의 흔적들

너무도 황홀함은 어이하여

그토록 쉽게 사라져 가는지를 아시는지

설은 고백이 독이 되어

숨죽여가는 그대를 질식케 하고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당신 때문에

문득, 때묻고 비린 살내음이 그리워집니다.





4. 지나간 계절에 띄우는 편지



가장 고귀한 이름인

당신을 향해 지금

피어나는 내 모든 거부의 몸짓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내 깊은 상흔 때문입니다.


간밤에 연하게 피어나던 홍조가

선붉게 물들어 시린 손끝으로

스며들던 순간

당신은 나려지는 것이 아니라

뜯겨지던 고통임을

내 어찌 알았겠습니까 만은

끈덕지게 눌러 붙은

당신의 빛바랜 자죽이

아침이면 거리에 널브러져

보이지 않는 귀퉁이 곳곳으로

숨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왜 나는 몰랐던 걸까요?

당신이 떠나간 것이 아니라

계절이 바뀌었을 뿐임을

왜 나는 기억할 수 없는 걸까요?

당신이 뜯겨지던 순간

나 그토록 행복했던 꿈을


다시 계절이 돌아와

당신이 내 곁에 버젓이 피어난다 해도

당신을 향한 내 모든 거부의 몸짓은

당신이 꿈꾸듯

나려지지 못하도록

뜯어내던

이 내 손길뿐입니다.





5. 꽃을 향한 염원



부드러운 입술을 포개어

달콤한 혀끝 감각을 느끼는

당신의 아랫배는

따스하게 달떠 오르고

살짝 상기되어 불그스레한

당신의 수줍은 윗볼에

나는 갓 피어나 꽃잎을 펼친

당신의 질 옆 소음순을

상상하며 굵고 단단하게

그만 발기해버립니다.


온몸으로 발열하는 당신을

하나의 꽃이라고

살짝 젖혀진 당신의 입구를

하나의 꽃봉오리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지금 짐승처럼 발기한

나의 성기도

당신을 받혀주는 줄기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듯 하늘거리며

당신 안에 흩뿌려질

나의 정액도

감히 꽃씨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의 의미 있는 아름다움으로

불리울 수 있을까요?

그렇게 당신과 같이 저도 감히

꽃이라 칭할 수 있을까요?


당신과 하나의 꽃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나의 의미 있는

아름다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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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되는 이야기




바람이 불면 흔들리겠지


따사로운 햇발에

연붉은 네 잎사귀가

검붉게 타들어 가면

내내 목마름으로 기다리던

비가 내려와

흘러가는 꿈을 꾸겠지

심겨진 줄 모르고

걸음하는 네 요동을

놔주지 않는

단단한 뿌리 때문에

하도 그리워

바라 볼 수 없던

저 언덕 너머에

조그만 씨앗 하나 쯤

심어놓겠지


바람이 불면 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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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마지막 밤



끈적끈적했던 그 여름의 마지막

갑자기 단 하룻밤에 귀뚜라미 소리

미친 듯이 여기저기 울어대고

단 하룻밤에 스산한 바람과 함께

모든 별들이 희미해지고

단 하룻밤에 그 뜨겁던 태양은

모든 열기를 잃어버린 듯

이미 시들어버렸거나

혹은 오직 시들어 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모든 생각과 감정들이 결결이 얽히고 물들어

더 이상 방향을 찾지 아니하고

그대로 맨 바닥에 머리 자올 하나하나

길게 늘어뜨리고서 매몰된다면 함몰한다면

글쎄, 그러면 긴 겨울잠 끝에

어디 슬픔 같은 것이라도 피어나기라도 할까?

글쎄, 그러면 라면 사리가 콧구멍에 걸려

킁킁거리는 슬픔 따위를 말할 순 있을까?

혹은 목구멍에 들끓는 점액 덩어리를

그대로 그대 하얀 뱃살 위에 난사한 후

더욱 상스러운 것은 그대의 연민이라고

모두 쏟아낼 수 있을까?

갑자기 단 하룻밤에 서늘하게 식어버린

그대 몸뚱이에 옷을 입히고 꽃을 달고

단 하룻밤에 초점을 잃어버린

그대 눈가에 분을 바르고 별을 뿌리고

단 하룻밤에 시들어버린

그대 청춘에 생채기를 내고

단추를 여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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