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우산의 꿈

 

 

아직도 설운 추위 다 가시지 않은

3月의 초 봄날

꽃샘추위보다 더 꽃 센 바람에

샛노란 우산 하나 두둥실

사무실 창가 맞은편 나무 위에

자리를 틀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나뭇가지 위 우산 내려앉지 않고

샛노란 빛깔이 잿빛 되어 녹빛 되어

어느 5月의 푸르른 날 아무 빛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푸른 나무가 되는 꿈

이루어 두둥실 하늘로 올라간 걸까요?

아니면 그대로 나뭇가지가 되어

나무와 함께 대지에 뿌리내린 걸까요?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냥 어느 무심한 바람결에 떨어져

쓰레기통에 처박혀버렸을

구깃하고 꾀죄죄한 노란 우산의 꿈을.

하지만 시는 모든 이룰 수 없는

꿈의 노랫말이며

쓰레기통속에서도 푸르게 피어나야할

한 줄기 나뭇가지에 대한

덧없는 희망의 미련이거나 음률이기에

아직도 저는 눈감고

당신의 노란 꿈을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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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직유법

 

 

지금부터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직유법을 말해보려 합니다.

첫사랑을 흔히 눈과 같다합니다.

아직 유년의 나뭇가지에

헐겁게 매달린 잎사귀들이

다 떨궈져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기도 전

흩날리며 내려와 지면에 닿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리거나

너무 아득한 창공에서 녹아져

바라볼 수도 없을 테니까요.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눈발들이 쌓여

우리는 아.름.답.다.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발길에 밟혀진 눈발의

구정물 같은 눈물과 빗물에 뒤섞여 내린

진눈개비 같은 사랑이

우리들 대부분의 첫사랑과 닮은꼴이겠지요.

누군가는 그래도 어느 먼 산

누구에게도 밟히지 않고 소복이 쌓여있을

눈밭의 설원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 설원의 눈밭에

첫 발자국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긴 겨울을 이겨낸

봄의 꽃들로 사랑에 관한 노래를 합니다.

연두 빛 분홍 빛 샛노란 빛깔들로 빚어진

총 천연의 사랑에 관한 빛깔을 노래합니다.

그렇지만 채 한 달이 되기도 전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발길에 흩뿌려지는

꽃노래를 부릅니다.

가시는 걸음마다 사뿐히 지르밟으시라고

짓물러진 꽃잎의 노래를 부릅니다.

혹은 무겁게 떨어지는 한 잎의 꽃잎이거나

나중에 떨어지는 꽃잎의 생경한 풍경을

노래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보지 못한 누구도 보지 못할

꽃잎에 관한 사랑의 노래를 말이지요.

그러나 어쩌면 사랑은 짓물러진 꽃잎

그 자체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음을 알기에

죽도록 매달리지 아니하고 나락하여

밟히고 문드러진 어느 여인의

깊은 음부 같은

그리고 그 곁에 누구도 모르게

부러져 꽂혀있는 꽃줄기 같은

어느 당신의 성기일기도

그런 것이 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라.고.요?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요?

그럼 당신의 사랑에 관한 직유법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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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지어

 

 

전철 역 출구 앞에

허름한 외투를 걸친

할머니 한 분이

노오란 꽃을 팔고 있어요.

아무렇게나 자른 듯한

박스 위로 두껍게

‘프리지아’라고 써놓았어요.

프리지아, 발음이 예뻐서

자꾸 불러보게 되어요.

티 하나 없이 샛노란

그 환한 모습이 떠올라

자꾸 웃음지어 보여요.

어쩌면 그늘 하나 없는

순결한 당신을 닮아

자꾸 떠올리나 봐요.

어쩌면 깨끗한 향기가

당신의 체취와 비슷해

자꾸 생각나나 봐요.

프리지아, ‘아’ 발음이 예뻐요.

‘아’하고 신음하며 경탄하는

당신을 자꾸 떠올리게 되요.

프리지어, ‘어’ 발음이 싫어요.

‘어’하고 그냥 수긍하고

뒤돌아선 나 같아서 답답해요.

그냥 당신을 프리지어가 아닌

프리지아라 기억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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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시인이라면



만약에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매일 동네 어귀에 트럭 한 대 대놓고서

20년 동안 한결같이 회를 팔아온 아저씨의

파닥파닥 물차 오르는 생선 대가리에

탕탕 칼을 쏘고 쓱싹쓱싹 배 가르는 소리를

시에 담아

다리에 실금이 가 입원한 어느 어머님의

못난 아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몰래 병원에서 나와

둔탁둔탁 걸어오는 석고붕대의 저린 발자국 소리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타인인 그대와 나의

엷디엷은 층층 사이사이에 긴 다리를 놓아

그대와 나의 체온 사이로 영혼의 습도를 녹여서

겨울에 성에 낀 버스 창가에 그대 입김으로

한여름 하염없이 창밖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는 어느 아픈 소년의 숨결을 섞어

시를 적어 놓을 수 있을 텐데

만약에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그렇게 세상의 모든 고통의 멍에와 슬픔의 결들 사이에서

한 마리 날아오르는 새가 되어 꿈이 되어

차창 밖 갇혀버린 풍경들 속에 풍경화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잃어버린 표정들을 환하게 비추어

되살려 놓을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모르게 흥얼거리는 못다한 노래들을 

한 없이 부르게 할 수 있을 텐데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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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이 진 자리에서



허기진 숨결로 들어선

동네 어귀 산기슭에 배 밭

가슴 속 깊이 일렁이며

울컥, 싸하게 열리던 순간

천지사방에 온통 배꽃이

환하게 순백을 터뜨리고

문득 생애 처음으로 떠올린

먼 그대 생각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흐드러진 꽃잎이 떨어지던 날

흐드러지게 뿌려지던 내 욕정의 관념들을

모두 뒤로 하고

배꽃 같이 환한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사뿐히 즈려 감는 순백의 단꿈-

아스라이 사라지고

그늘 한 점 없는 배 밭 귀퉁이

언제 떨어진지도 모른

마른 아카시아 꽃잎들을 밟고서

배꽃처럼 너무 새하얘 다가설 수 없던 그대

이젠 고이 떠나가 주시기를

새하얗게 사라져 주시기를

내내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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