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리움에 관한 시
10년 만에 시낭송회를 하자고 해서
한껏 들떴는데 후배들이 바쁘다고
취소하겠다 전한다
그 후 자꾸 나를 피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리다
시를 나눌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어쩌면 다시 본다는 기쁨이었는데
시 때문에 다시 볼 수 없다니
혼자 마시는 커피 위에
흩날리는 눈발이 떨어지고
문득 자욱한 안개를 떠올린다
모든 생각의 편린들이
시가 될 수 없어
젖은 담배처럼 불이 붙지 않고
모든 그리움의 흔적들이
젖은 담배 연기처럼 피어나질 못하고
그래도 불을 켜고 연기를 뿜고
명제
스탠드 옷걸이 맨 위에 걸린 바지가 떨어져
마지막 걸이에 걸려 위태롭게
바닥에 반쯤 널브러져 있다
누군가는 나 대신 거리에 낙엽을 쓸고 있는 가을
마지막 걸이에 걸린 옷 같은 내 마음이
쓸어도 쓸어도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투성이 같아
빨아도 빨아도 질척거리는 걸레의 얼룩 같아
푸석푸석하고 찝찝한 그 뒷맛이
내내 씁쓸하고 안쓰럽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바지를 털고 다시 입을 것이란
그 자명한 사실을
바람의 소리
찬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옷소매가 내내 펄럭이다
꽁꽁 얼어붙는다
대기에 맺힌 바람이
옷깃에 스며든다
언제 어느 때 바람이
내게서 떠나갈까
맺힌 바람이
적을 둘 곳이 없어
슝슝 성성 흉흉 헝헝
숭숭한 소리를 낸다
속눈썹
눈 안에 자꾸 무언가 걸려
손마디 등으로 눈을 부빈다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는데
자꾸 눈시울만 불거져
눈물이 똑똑 흘러내린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렇게
흘러내리다 보면
괜찮을 거라고 기다려보지만
계속 눈 안에 자꾸 무언가 아려
손가락으로 눈을 들쑤신다
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대체 그깟 게 뭐라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
몸에 병이 생기자 어머니는
자신이 어릴 때 나를 때려서 그렇다고
연신 자신 탓을 하신다
기억 회로의 어딘가가 고장났는지
가끔 기억을 잃어버리는 나는
언제 어머니가 나를 때렸는지
기억하지 못 한다
큰 빚을 지고 어머니께 가면
어머니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면서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매 번
대신 빚을 갚아주신다
언제 어머니가 내 빚을 갚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