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접착제와 오공본드
순간적으로 확 고착화되는 관계가 있다
서로의 살을 에고 타들어가는 열기로 맺어져
모든 손길마저 화상을 입히고서 어느 샌가
아무도 모르게 아주 쉽게 두 동강나버린다
그러나 그대 아는가?
누군가와 애착이 생기기 전 조심스레 다가가
서로의 자리를 확인하고 같은 자리를 공유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록 그 터도 언젠간 무너지겠지만 순간이 아닌
조금 오래 지속되는 그 무언가를 위해
사람들은 그토록 조바심 내며 노력한다는 사실을
몰아(몰라)
까만 듯 까막까막 까마득하게
까마귀신이 들린다
까무러칠 듯 시커멓게
윤기 나는 검은 잿빛으로
퍼득거리며
짹각짹각 뚝 시간이 멈추고
어둑어둑 번쩍 섬뜩이다
아득아득 어두커니 아득하게
아둑시니 들린다
빛도 소리도 없는 무변의 세계
남은 것은 오직 거짓과 착란 뿐
더 이상 나도 나일 수 없고
당신도 내게 당신일 수 없는
사라진 기억 너머 저편의 존재
깨어나면 낯선 날 선 눈빛 뿐
결심
오랫동안 고수했던 머릿결 방향을 바꾼다
툭 튀어 불거진 상흔을 어설프게 감춘
거울 속 내 모습이 영 거북스럽기만 하다
하루아침에 결이 쉬 바뀔 수는 없으리라
내 생에 그 얼마나 많은 결이 바뀌었던가
숱한 시도와 바람들로 한결같기를 꿈꿨지만
일렁이는 걸음에도 쉬 흐트러지는 머릿결
얼마나 자주 거센 바람을 맞으며 걸어왔는지
언젠가 아버지처럼 머리숱이 다 사라지면
그때쯤 모든 결이 사라진 진짜 내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그 어떤 결도 없는 무결한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을까
아름다움에 관한 명제
아름다운 길이 가장 위험한 까닭을 그대 아는가
눈 내린 다음날 나뭇가지 위 잔설을 바라보는
그 길 위에서 그대는 미끄러지고
벚꽃이 휘날리는 화려한 봄밤 그 뒤안 어둠 너머
그대가 향한 그 길에서 그대는 혼자가 된다
너무 정결하고 아름다워 꺾이는 것이 꽃이라면
너무 고고하게 피어난 까닭으로 그 누구의 손길도
가 닿을 수 없는 사실을 그대 혹시 아실는지
그렇게 모든 아름다움이 위태롭다는 그 사실을
결 혹은 그 사이
결 바람결 꿈결 숨결
긴 치맛자락 두루두루 펼쳐진 결
살결 당신과 나의 결 그 사이
층층이 쌓인 시간의 겹과 겁 사이
단 한 번도 매만져보지 못 한 그 한결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