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추억이거나 그리움에 대해
좁은 신학교 앞동산에서
우리는 밑도 끝도 없는 신에 대해 말하며
누군가는 이 세상의 모든 예술에 대해
누군가는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에 대해
각기 다른 말로 떠들며
신학교 뒷산 마루에서 몰래 담배를 피며
그 담배에 실려있는 우리 반역의 함의를
아무도 모르게 봉화로 피어 올리며
그것이 우리의 밝고 빛나게 타오르는
낭만이란 사실을 만끽하며 그렇게
그렇게 모든 젊음이 타들어가도록
긴긴 밤들을 지새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우리 누구도 감히
신에 대해 말하지 아니하며
그 빛나던 예술도 사르트르의 실존도
반역의 낭만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더 이상 빛나는 청춘이 아닌
빚내는 현실을 엄연히 마주하며
누군가는 두 아이의 아빠로
누군가는 한 직장의 책임자로서
서로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야기에 주억거리며
서로 무언가 할 말을 애써 찾고 찾다가
우리가 결국 그 시절을 재탕하며
또 우려먹고, 또 우려먹으며 되새김질하는 까닭은
결코 우리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때문은 아닐 거다
더 이상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완전한 타인이 되어버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드문드문 간혹 생각나더라도
안부를 묻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실체 없는 추억을 그리움으로 안주삼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 그 사실을
실체 없는 관계의 끈을 그렇게
이어가고 있다는 그 사실을
그렇게 받아들일 뿐이지만
난 아직도 늘 누군가가 그립다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