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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회복하는 인간 Convalescence ㅣ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24
한강 지음, 전승희 옮김, K. E. 더핀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3년 6월
평점 :
회복하는 인간 - 무척이나 더디고 아린 공감이라는 회복에 대해
요 근래 나는 한강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제법 읽었다. ‘몽고반점’을 기점으로 해서 ‘여수의 사랑,’ ‘노랑무늬 영원’, 그리고 그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까지. 아직, 비록 ‘채식주의자’와 ‘붉은 꽃 이야기’ 등은 읽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그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점은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순전히 ‘몽고반점’ 때문이었다. 소소한 일상적 소재에서 성적인 에로티시즘과 예술적인 원시성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그 소설을 통해, 어쩌면 소설을 일종의 관념적 실험의 가상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는 한동안 쉬 지울 수 없는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 때문에 한국소설 가운데서는, 어떤 스터디 모임에서 토론하기 위해 쓴 품평을 제외하고는, 거의 최초로 내 자의로 감흥에 못 이겨 품평을 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중 더욱 나를 잔잔하게 파고든 소설은 그다음 읽은 ‘회복하는 인간’이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전혀, ‘몽고반점’과 다른 이 소설의 매력에 대해 뭐라고 서두를 꺼내면 좋을까? 아니, 지금 또 다른 의미로의 회복을 꿈꾸는 내게 있어서 이 ‘회복하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더 이상 치기어린 자학이 아닌 혹은 타인을 향해 풀어내는 내 응어리이거나 고름덩어리가 아닌, 어쩌면 무척이나 더디고 아린 공감이란 회복에 대해, 마흔을 정확하게 내일 앞둔 이 시점에서 잔잔히 가슴에 스며들도록 천천히 풀어낼 수 있을까?
소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잠깐 스무 살 때 내가 처음으로 썼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무척이나 치기어린 자학 그 자체이었기에 그 이유로 실체 없는 소설적 대상에게 무척이나 공격적이었던 그 소설에 대해. 그 때문에 어쩌면 내 가장 아린 치부이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버릴 수 없는 애착으로 남아있는 그 소설에 대해. 사실, 내 첫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는 별로 없다. 이야기라는 담화 그 자체도 부재한데다, 그 이유로 구성 또한 애초에 부재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소설이 담아내고 싶었던 내용은 간단하다. 내 순수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느 날 거리에서 잠든 ‘나’는 깨어나 보니 존재하지도 않는 ‘내’ 누이의 얼굴을 닮은 여자와 마주치게 된다. 그러면서 여자와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섹스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 섹스를 통해 궁극적인 환희를 맛본다. 그렇지만 궁극적인 환희는 또 다른 섹스에 대한 욕망을 낳고, 또 다른 섹스는 지속될수록 자연스럽게 ‘권태’를 낳는다. 아니, ‘나’는 환희의 절정의 순간, 더 이상 절정이 지속될 수 없음을 예감하고, 여자를 찢어 죽인다. 다만, 여기서 소설이라는 무차별한 자유의 공간적 허용에 의해 ‘나’는 ‘자신’의 커다란 성기를 부풀려 여자의 몸을 꿰뚫어 버리는 설정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으로 두 동강난 여자를 ‘나’는 부풀어진 성기만큼 가득찬 두 손의 아귀힘으로 갈가리 찢으며, 여자의 난자한 몸뚱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끔찍함에 여자의 찢겨진 한 덩어리 한 덩어리 모두 꾸역꾸역 씹어 삼키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역겨움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구토를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수십 번의 구토를 통해 여자를 게워내보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여자는 ‘내’게서 깨끗하게 게워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구토를 하면 할수록, 여자는 더욱 ‘내’ 안에 가득차오를 뿐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제 ‘자신’을 스스로 찢어발기기 시작한다. 다리를 찢어발기고, 몸을 찢어발기고, 얼굴을 찢어발기고, 찢어발기는 손을 찢어발기고, 마침내 ‘나’는 ‘자신’의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바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바람이 된다. 그리고 마음껏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그러다 어느 냇가에서 헤엄치고 있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남자를 경험해보지 못한 풋풋한 소녀 그 자체이다. ‘나’는 장난삼아 바람의 애무로 소녀를 건드려본다. 그런데 거기에 반응하는 소녀의 몸짓에 그만 빠져들어, 거센 바람의 애무로 소녀를 절정에 빠져들게까지 만든다. 그러다 그것도 ‘권태’로워, 바위가 되고 싶은 마음에 바위가 된다. 바위가 된 ‘내’ 위로 흥건히 젖은 소녀가 곤히 잠든다. 그리고 소녀의 손녀가 그리고 또 손녀가, 그렇게 수많은 소녀와 소년들이 수없는 시간 속에서, 이제 바위가 되어 아무 감각도 시간도 잃어버린 ‘내’ 위를 지나쳐간다. 그러다 또 다시 그 모든 것이 ‘권태’로워진 ‘나’는 상상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신이 된다. 신이 된 ‘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만든다. 남자와 여자는 신이 된 ‘내’가 보기에 아름답다. 그리고 ‘내’가 만든 세상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남자와 여자는 다시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또 사랑을 해서 세상은 이제 신인 ‘내’가 만든 남자와 아이의 자손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에게 신인 ‘나’는 필요치가 않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협심하여 신인 ‘나’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더 이상 ‘자신’의 상상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상상 속 인물들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내’ 죄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심판관이 ‘나’라는 사실이다. 거기서 순간 ‘나’는 이 모든 상상이 혼돈 속에 빠져버렸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리고 혼돈을 없애기 위해선 일곱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옛 이야기를 떠올리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구멍’들을 뚫는다. 눈, 코, 입, 귀, 성기, 항문, 그리고 마음... ‘구멍’은 점점 커지고, 마침내 그 ‘구멍’ 속에 ‘나’는 혼돈과 함께 사라져간다. 그러다 ‘나’는 눈을 뜬다. 눈을 떠 바라본 공간은 ‘자신’의 방 천장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일어나 세수를 하러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며 이빨을 닦다, 갑작스레 ‘허탈’한 마음에 칫솔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렇지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며, 커다란 ‘구멍’과도 같은 ‘허무’라는 그 무엇이 이제 ‘자신’을 안온히 지켜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굳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끔찍하게 난자한 토사물과도 같은 내 첫 소설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는 지금 지극히 내 개인적인 공감과 회복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내 처음이었던 본질로 되돌아갈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면 좋을까? 여하튼 이 소설은 정확하게 말하면 스무 살 때 신학대를 다닌 후 회의를 느껴, 부모님 몰래 2학년 1학기 등록금을 빼돌리고서, 무작정 집을 나와 1년 동안 방황을 하면서 구상을 하고 초안을 쓴 후, 정확하게는 군대를 제대하고서 스물 셋 때쯤 썼던 소설이다. 그러니까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온 몸으로 체감한 후 쓴 소설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방황의 과정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절실하게 사랑한 후 헤어져보기도 하고, 또 방황을 위해 서울에서 목포까지 그리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작정 걸으며 여행도 해보고, 그러다 학교 동아리 방을 근거지로 해서 한두 달 동안 책 속에 파묻혀도 보고, 자취를 하면서 생계를 위해 노가다를 하며 근근이 살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수도원으로 도피하여 몇 개월 동안 살다가 군대에 들어가 1년도 채 안 되어 허리를 다쳐 의가사제대를 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경험들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내가 느꼈던 것은 내가 무언가 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새처럼 나는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는 사실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군대에서 허리가 다치고서 제대를 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무언가 내 청춘이 찬란했던 만큼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는 허탈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무언가 회복해야한다는 강박감을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경계 사이에 있었다. 때문에 내 첫 소설은 그러한 내 개인적 절망과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때 그 나이만큼의 방식이었을까? 내 소설 속에서 나로 대변되는 ‘나’는 ‘구멍’과도 같은 ‘허무’ 사이로 도피해버림으로써 ‘회복’과 ‘공감’이 아닌 다시 ‘나’에게로 회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똬리를 뜨는 작업을 의미한다. 아니, 애초에 이 소설엔 어떤 ‘회복’과 ‘공감’이라는 키워드도 뉘앙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나’로 가득 채워져 있을 뿐이다. 그러하기에 주인공인 ‘나’는 ‘나’를 탈피하기 위해 실체 없는 대상인 얼굴도 모르는 누이와 섹스를 하고, 그 속에서 느낀 ‘권태’감에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여자’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발기발기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마치 ‘자신’의 몸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처럼 ‘바람’이 되고, ‘바위’가 되고, ‘신’이 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그 ‘자신’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키워드는 언제나 ‘권태’가 등장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도 ‘내’가 ‘바람’, ‘바위’, ‘신’으로 대체된 것처럼, ‘권태’는 ‘구멍’과 ‘허탈’, ‘허무’로 변주되고 있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 속에는 ‘나’ 그리고 ‘권태’만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머지 대상들은 모두 실체 없는 관념적 실험의 대상일 뿐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의 스무 살의 방황은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연장되었다. 작년 38살이 되던 해, 21살 때 살았던 수도원을 다시 갔다가 오기까지. 장장 17년이라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작년 수도원을 올라갔을 때, 어쩌면 모든 상황은 21살 때 상황과 비슷했다. 다시 여자와의 연애에서 실패했고, 갑자기 삶 그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져 그냥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동시에 이제까지 내가 붙잡고 살아온 ‘신’이란 ‘화두’에 관한 밑도 끝도 없는 의문들이 들기 시작했다. 다만, 단 한 가지 달랐던 것은 ‘화두’의 차이였다. 21살 때는 말 그대로 막연했다. 오직,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고 그래서 그 길 끝에 존재하는 신이라는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내겐 신 자체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하지만 그 길이며, 길 끝이자, 진리인 신 대한 내 마음의 ‘진실’에 관해선 의문투성이였다. 즉, ‘진리’ 그자체가 아닌, 갈피를 잡을 수도 없고 수시로 변덕스러운 내 ‘마음’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때문에 여행 도중에 ‘길’과 ‘길 끝’이 아닌, 그 ‘길’과 ‘길 끝’을 메우고 있는 ‘길옆’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더욱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내 ‘진실’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 하고 버거운 판에 ‘길옆’이라니? 그 오만가지 풍경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길을 이루고 있는 것은 길이 아닌 ‘길옆 풍경’들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는 젊은 애가 안쓰러워 밥을 챙겨주는 어르신들, 노가다 판에서 어린 나에게 삶의 무게를 가르쳐준 아저씨들, 나와 함께 스물 살의 방황을 하던 중고등학교 친구들, 함께 신에 대해 고민했던 선배들 등등. 마치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지려고 나 혼자 떠났던 여행이었건만, 그래서 나 혼자 걷고 방황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건만, 오히려 역으로 세상이 결코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더군다나 그것들은 내가 그때까지 믿고 있던, 그리고 알고 있던 ‘신’과 ‘구원’의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집안의 반대를 뿌리치고 선택한 신에 대한 문제를 그렇게 간단하게 지울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길옆’이라는 그 오만가지 풍경들을 내 방황하는 ‘마음’이 빚어낸 ‘실체’가 아닌 단순한 ‘현상’으로 해석하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방황의 끝에 일종의 ‘천국에로의 도피’로 감행한 수도원에서 6개월의 생활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것은 단지 금세 피었다 지는 ‘꽃’이란 ‘존재’의 문제도, 그렇게 사라져가는 모든 ‘존재’의 ‘현상’의 문제도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의 매순간은 살아있는 충만한 경험이었고, 동시에 ‘변화’라는 실재하는 ‘존재’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살면서 나는 매일 조금씩 계절이 바뀌어가는 산의 빛깔을 보면서, 나뭇잎의 여린 잎맥들을 보면서, 함께 조금씩 변하고 조금씩 그 변화들을 수용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그 때 내가 제대로 내 삶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던 것은 수도원에서 나온 후 내 삶의 극명한 ‘변화’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오자마자 한 달도 채 안 되어 군대를 가서 의가사제대를 하기까지, 그리고 다시 신학대에 복학하기까지, 나에겐 아직도 많은 방황과 시련이라는 큰 폭의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차츰차츰 그곳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오히려, ‘변화’라는 그 자체에 휘둘리면서, 그렇게 차츰차츰 그곳은 내게서 먼 기억으로 멀어져갔다. 그러다 작년에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서, 아니 모든 것을 일부러 짓뭉개 놓고서, 문득 그곳이 떠올랐다. 다시, 천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피어오른 것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나는 너무나 변해버렸다. ‘신’ 자체에 대한 ‘화두’도 흐릿해진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고, 그러니 당연히 내 마음의 ‘진실’이니 뭐니 하는 ‘화두’ 또한 남아있을 리가 만무했다. 더군다나, 신학대 때부터 교회를 안다닌지도 꽤 되어 벌써 방황한 햇수만큼 17년 동안 발길을 끊어, 예배도 미사도 더 이상 내게는 빛바랜 문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수도원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다행히도 수도원은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물론, 그 중간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곳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서약을 거부하여, 1년 서약기간을 다 마치지 못하고 약 10개월 만에 내려와야 했지만, 여하튼 그곳에 사는 동안 나는 다시 21살 때처럼 나 자체로 온전하게 그곳에서 충실한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 올라가기 전 내가 가지고간 두 가지 ‘화두’를 어느 정도 해결하였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 문제였다. 신학대를 졸업하고서 나는 신학대학원 입학하지 않았다. 어차피 신학대를 다니는 동안 교회도 제대로 다니지 않은 내가 신학대학원을 올라갈 이유는 애초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신학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목사로서의 길을 포기했기에 남들보다 더욱 내 진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포기의 이유에 대해 내 나름의 절실한 고백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포도나무 가지 비유’를 통해 나에게 필요한 고백의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포도나무 가지 비유’는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포도나무의 줄기이기 때문에 그 줄기에 접붙여있지 않는 가지는 마르고 썩어서 포도나무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 접붙여있지 않는 가지는 잘려서 버려져 불태워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한 마디로, 생명의 공급처가 되는 줄기에 가지는 접붙여져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관심을 갖고 본 부분은 생명이 되는 줄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잘려질 가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잘려질 가지는 목마른 이유로 메마른다. 그 이유로 나무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가지가 잘려졌을 때 그 가지는 불꽃으로 피어나, 생생이 살아있는 나무에게 ‘죽음’이라는 혹은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희생’이라는, 생생한 표상으로 늘 되살아지게 된다. 물론, 이것은 ‘생명’과는 반대되는 관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정통적인 방식을 벗어난 문학적 해석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나는 잘린 가지다.’라는 고백을 통해, 과감히 신학대학원 진학을 포기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고백을 바탕으로 내 길을 찾아가려하였다. 내가 불살라질 수 있는 곳, 새하얗게 불타 ‘죽음’이란 표상으로 타인들에게 생생이 살아질 수 있는 그런 곳... 그리고 나는 그곳을 내 문학적 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막연했기 때문이었을까? 신학대를 졸업하고서 1~2년 동안은 나름 열심히 글을 쓰면서 몸부림쳤지만, 마치 잘린 가지가 불살라지기 전 바람에 날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온전하게 뿌리내려 땅에 살지도 못하는 것처럼, 나는 생계와 글이란 현실 속에서 10년이 넘게 방황하며 글을 포기하게 됐다. 아니, 사실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실상 30대 들어와서 내가 쓴 글은 단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든 나는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글’이란 불살라질 공간인가? 아니면 ‘삶’이란 생생한 생활의 공간인가? 이 양단간에 물음 가운데 선택할 계기가 필요했다.
둘째는, ‘천국’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내가 수도원을 올라가는 일은 어떤 핑계와 이유를 대더라도 도피나 다름없었다. 말 그대로 다시금 ‘천국에로의 도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러한 도피를 그 전에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래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21살 때 그곳으로 도피를 했고, 또 그 도피를 통해 무언가 나름 얻은 바가 있었다. 물론, 17년이란 시간 동안 모든 것이 퇴색되어버려, 그곳에서 느꼈던 내 충만했던 감정을 재현해낼 어떤 기억도 흐릿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나는 그곳이 내게 있어 ‘천국’이었다는 기억을 갖고서 그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21살 때와는 사뭇 다르다. 아무리 내가 그때를 ‘천국에로의 도피’라고 표현했다고 해도, 그 당시엔 나는 그것을 예감하지 못했다. 그저 끝없이 이 공간 저 공간으로 공간이동을 하다 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살면서 깨닫게 된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분명히 그곳이 천국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천국에 대한 배반의 화두를 가지고 있는 내가, 접붙여진 줄기로부터 벗어난 ‘잘린 가지’인 내가,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이율배반이었다. 때문에 내게는 그곳에 들어갈 명분이 필요했다. 물론, 모든 삶을 일부러 뒤엉키게 만든 후 감정이 이미 그곳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도 명분도 무의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무 살 때처럼 그렇게 막연하게 그곳으로 향하는 내 걸음이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화두를 다시금 떠올리기 위해 내 안에 오래된 물음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를 펼쳐 들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물음이 존재했다.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광야에서 마귀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혹의 장면이다. 산 위에 있는 예수에게 마귀가 다가가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떨어져 보라. 그러면 성서에서 나온 대로 당신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돌부리에 채이지 않도록 지켜주시지 않을 것이지 않느냐?”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한다. “사단아, 물러가라. 성서에선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묻는다. 왜 그리스도는 그때 산에서 떨어지지 않았을까? 만약 그 때 그가 모든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면, 그리고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뿌리박힌 대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완벽한 몸을 얻었을 텐데. 동시에 그때 그가 돌을 떡으로 바꾸었다면 인간은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의 굴레로부터도 자유로워졌을 텐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마귀에게 절하여 세상의 모든 권세와 부귀를 가지게 되었다면, 인간도 신으로부터 벗어나 모두 완벽한 천국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동시에, 그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는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에 대해 반박한다. 왜냐하면 그 천국은 존재하더라도 인간의 한계 밖에 주어져 있어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이유로 인간에게 침 뱉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그런 천국이란 이유로. 때문에 나는 수도원에 올라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과연 내가 이 천국에서 침 뱉을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 걸까?
내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답을 얻은 것은 의외로 아주 작고 사소한 경험에 의해서였다. 내가 수도원에 올라갔을 때는 1월쯤이었다. 그곳은 강원도 태백에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어서, 그맘때쯤이면 눈이 엄청나게 내린다. 그 때문에 한동안은 눈을 삽으로 퍼내는데 종일 시간을 허비해야하기도 한다. 그리고 3월 때쯤이면 조금은 이르지만 봄맞이 준비를 해야 한다. 강원도의 겨울 산속 생활이란 게 대개 그렇게 비슷한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봄맞이 때쯤 해서 내게 한 가지 작업이 맡겨졌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 건물 뒤편의 땅을 파서 수로를 내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수도원이 50년 가까이 되면서 지층이 겹겹이 쌓여 그 건물 뒤편 땅이 건물보다 1미터 넘게 올라가, 봄이 되면 겨울에 쌓이고 얼었던 눈이 자연스럽게 해동되면서, 건물 안에 스며들기 때문이었다. 사실, 말이야 간단했지만, 일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땅이 너무 꽁꽁 얼어붙어, 드릴도 들어가질 않았고, 곡괭이도 전혀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삽질만 가능했는데, 파야할 깊이가 1미터가 넘고, 길이가 10미터가 더 되니, 10년 넘도록 모든 사람들이 알고서도 손을 놓고 있었던 터였다. 거기다 건물 뒤편이 한 사람이 들어갈 자리 밖에 되질 않아서, 여러 사람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아니었던 것도 한 몫 거들었다. 때문에 자청하긴 했지만, 나는 약 보름 동안 말 그대로 건물 뒤편에서 나 홀로 사투 아닌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런데 어이가 없던 것은 언 땅도 만만치 않은데, 건물 뒤편이 암반이라서 그런지 땅속에 얼마나 큰 돌덩어리가 많은지, 이건 거의 언 땅이 아닌 돌과의 전쟁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돌에 대한 내 질문 중 한 가지 답을 얻게 되었다. 무엇이냐면, 돌은 돌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땅을 파면 팔수록 돌은 자연 사라지고, 진흙이 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이유로 그곳이 배수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즉, 돌이 흙 가운데 섞여 있어야 자연스럽게 배수가 되고, 물이 스며들 공간이 존재하는데, 흙만 존재하는 공간엔 흙과 물이 뒤섞여 진흙탕을 만들어 놓을 뿐, 물이 흐를 수도 그렇다고 다른 어딘 가로 빠져나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건물의 방수를 위해 나는 진흙탕을 밟으며, 돌을 파내며, 또 파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내 온 몸은 돌과의 사투로 여기저기 긁힌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나는 ‘돌’이란 존재의 또 다른 관념적 이유를 발견해냈다. 그것은 내 개인에게 있어선 예수가 마귀의 시험 때 산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돌’이란 것은 무릇 자연스럽게 사람이 부딪쳤을 때 사람을 다치게 하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고난과 시련을 거부하고 산 아래로 예수가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그 땅 위에 안착했다고 생각해 보자. 대체 그렇다면 우리에게 ‘돌’이란 시련과 고난의 의미는 무엇이 되겠는가? 동시에 그와 같은 이유로 ‘돌’이 ‘빵’이 되어버린다면, 우리의 대지는 우리의 삶은 무엇을 위한 삶이 되겠는가? 만약, ‘돌’이 그렇게 사람을 다치게 만드는 강도가 없고, ‘빵’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물이라고 치자. 그래서 온 세상에 널려있는 ‘돌’이란 ‘부귀’와 ‘권세’를 우리가 이 땅에서 모두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또 가정해보자.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이해 불가한 세상 아닐까? 그리고 그 때문에 누구도 침 뱉을 수 없는 세상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천국은 분명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삶을 벗어난 그 무엇이 아닐 것이다. 아니, 도리어 우리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는 ‘돌’이란 시련과 고통일 것이다. 즉, 돌이 돌이듯이 천국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 그 자체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너도나도 모두 침을 뱉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권리일까?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일까? 사실, 아직도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나에게 그런 권리가 있더라도 내가 그곳에 침 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수도원에서의 삶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걸음을 걸었는지 되새겨보게 되었다. ‘글’이란 불살라질 공간을 찾는다고 고백해놓고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그곳을 두려워했는지, 얼마나 나도 모르게 불살라질 공포에 시달렸지, 내내 생각해보게 되었다. 대체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그리고 왜 나는 그곳에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천국에 쉽게 침 뱉을 수 없을 거라고, 그런 인간일 거라고 믿게 된 것일까?
당신은 직경 일 센티미터 남짓한 구멍들을 보고 있다.
당신의 부어오른 양쪽 복숭아뼈 아래, 정강이에서부터 내려온 인대가 발등으로 막 꺾어지는 자리에 그 구멍들은 뚫려 있다. 왼쪽의 구멍 안으로 보이는 회백색 물질을 가리키며 의사가 말한다.
왜 화상을 입자마자 바로 처치를 안 한 거죠? 오른 쪽은 괜찮은데, 여기 왼쪽 피부 조직은 좀 심각합니다.
소설 ‘회복하는 인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서두로 미루어 보았을 때, 분명 이 소설은 아주 작고 사소한 상처에 관한 이야기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런데 2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구사함으로써, 어쩌면 이 소설이 1인칭 화자 자신의 상처가 아닌 2인칭 타자의 상처와의 공감에 대한 이야기임을 슬며시 예감해보게도 된다.
당시의 언니가 투병하던 마지막 삼 개월 동안 당신은 그녀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당신을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당신과 그녀가 이미 오래전부터 소원한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뿐인 친자매였음에도, 당신은 그녀의 병세에 대한 모든 소식을 어머니로부터만 전해 들었다.
평소 병이나 상처에 무감했거나 무심했던 ‘당신’은 그로인해 사소한 화상을 방치함으로써, 다소 큰 상처로 번지게 만들어버린다. 그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걷는 것도 힘겹다. 그리고 주말이면 이제 죽어버린 언니를 대신해 ‘당신’ 하나만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찾아가야 하지만, 왠지 가고 싶지가 않다. ‘당신’의 화상을 통해 갑자기 부재한 언니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당신’에게 있어서 언니는 부재라는 슬픔보다 일종의 부채감으로 남겨진 존재이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언젠가 당신은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당신과 언니, 둘 가운데 누가 더 차가운 사람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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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눈발이 쏟아질 것 같은 오전이었다. 그녀가 소파수술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당신은 대기실에 앉아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그녀를 당신이 멈칫멈칫 부축하려고 하자 그녀는 짜증을 냈다. 병원을 나와 당신이 택시를 잡자, 그녀는 뒷자석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 좀 누울게. 넌 앞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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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언니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당부할 필요가 없었다. 당신이 그 비밀을 언제까지나, 부모는 물론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끝까지 짊어질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는 만큼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당신의 언니는 그날 이 이후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당신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고, 눈조차 제대로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 후 수년간 당신은 그녀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애썼지만, 어떤 노력도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순간 그녀에게서 돌아섰다.
이 때부터였다. 언니와의 관계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은. 언니가 결혼을 하고 형부와 함께 다 같이 가족모임을 할 때도 ‘당신’이 나타나면 언니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당신’ 자신도 ‘당신’의 마음을 더욱 차갑고 단단하게 얼려버리기 위해 노력한 것은. 그리고 ‘당신’의 언니가 가족 모르게 병원의 차에 실려 오가고 있었을 때도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서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미칠 듯한 쾌감을 느꼈던 것은. 그 때문일까? 한 때 ‘당신’의 모든 것이며, 기쁨 그 자체였던 자전거를 ‘당신’은 내내 외면한다.
이제야 살아나네요.
당신의 왼쪽 발목의 구멍 속에서, 회백색 조직 가운데 샤프심으로 찍은 것 같은 불그스름한 점 하나가 생긴 것을 보고 의사가 말하리라는 것을 당신은 모른다.
아주 진행이 더디긴 하지만, 일단 이게 살아난 걸 보니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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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더디네요. 이렇게 더딘 것도 드문 케이스인데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얼굴의 의사가 미간을 모으며 헛웃음을 웃으리라는 것을 모른다.
어찌됐든 상처는 회복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상처와 상관없이 삶이 살아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깊은 마음속 상처를 우리는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것일까?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채 당신은 계속 페달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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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신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간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헬멧에 고글을 쓰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자전거 레이서들을 피한다. 발목에 통증이 느껴진다. 삐었기 때문인지 화상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다. 어쨌거나 더 달릴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당신이 기쁨을 두려워한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당신은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
한동안 죄책감으로 외면했던 자전거를 타며, ‘당신’은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자전거가 ‘당신’에게 기쁨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당신’은 계속 더 달려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신’에겐 아직 남겨진 많은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에겐 지금 절망하고 좌절할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래야 ‘당신’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당신은 갈대밭 가장자리에 누워 있다. 자전거는 천변의 바위 위로 나동그라져 세차게 헛바퀴가 돌고 있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순간 당신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손과 팔꿈치의 피부가 벗겨진 게 분명하다. 땅에 부딪친 어깨와 골반이 뻐근하게 아파 온다.
이따위, 라고 중얼거리며 당신은 축축한 흙 위에 누워있다. 회백색 구멍 속의 상처 따위는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흙이 들어간 오른쪽 눈이 쓰라리다. 이 모든 통각들이 너무 허약하다고, 당신은 수차례 두 눈을 깜박이며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아야겠다. 글의 서두에서 내 지루한 청춘의 이야기를 마구 벌려놓은 데다가 깔끔한 한강 작가의 ‘회복하는 인간’을 연결지려 하니, 지금 이 순간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극단적으로 다른 두 이야기를 비교해봄으로써, 어쩌면 나도 내 회복의 단서를 발견할 것 같다는 예감도 가져보게 된다. ‘회복하는 인간’은 글의 줄거리를 설명하면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철저하게 2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첫 소설에서 순전히 ‘나’라는 틀에서 이야기 구성을 꾸려간 극단적 1인칭 시점과는 완전하게 대칭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처음부터 이 소설은 철저하게 자신의 상처를 통해 타인의 상처를 끌어들이는 타자적인 시선과 이타적인 품을 가지고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의 상처가 더욱 지속되고 커지길 바람으로써, 역으로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더욱 이끌어내며 글을 맺고 있다. 물론,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공감이 아닌 그저 자학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인간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으로 전가된다는 것은 실상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쟁터에서 손톱이 깨진 병사가 바로 옆 총에 맞고 팔 하나가 날아가 전우를 보고도, 자신의 고통 때문에 전혀 전우의 고통을 인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숱하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이렇게 본다면 분명, 타인을 향한 누군가의 자학적인 몸부림은,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병 때문에 그리고 기아 때문에 숱하게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하루 한 끼 굶는다고 하여 그 아이들을 단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미 죽어버린 언니를 위한 자학이라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 침을 뱉고, 어떻게든 세상을 바꾸어보고자 몸부림친다. 분명, 이것은 옳은 일이다. 그리고 분명히 단순히 자학하고 무력하게 기도하는 것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실천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어떤 반론도 내세울 논리도 없고, 철학도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출발점에 대해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 없이, 어떤 의미로는 자학으로 치닫기까지 하는 공감이 없이,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것이 타인을 지배하고 조종하고 싶은 권력욕과 다를 바가 대체 무엇일까?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이 세상을 올바르고 정의롭게 바꿀 수 있다면,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전부 허공에 붕 뜬 이야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제도도 사회적인 구조도 아니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오랜 방황을 하면서 본 것은 길옆을 이루고 있는 오만가지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거의 전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로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때로는 기쁘고 즐거운 얼굴로.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있는 풍경들이었기에 쉽게 다가설 수 없었고, 그 이유로 오랫동안 아마도 나는 그 거리감에 당혹스러워하며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내 안으로 그만 똬리를 틀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에게 철저하게 타인이기에 풍경으로써 비추인 것처럼, 나 또한 그들에게 하나의 풍경일 뿐 그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은 풍경이 아니다. 함께 공존하는 존재들이고, 그러하기에 함께 기쁨도 슬픔도 나누어야할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것이 비록 자학일지라도 아니면 때론 상처 주는 행위일지라도, 일단 다가서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먼저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세상이 차츰차츰 무척이나 더디고 아리겠지만 바뀌어가고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세상의 일원으로서 내 자신의 회복을 그리고 내 주위의 회복을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로 자꾸만 중얼거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