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알려준 정답과 스스로 고른 오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사람은 오답을 선택하면서 그 자신이라는 한 인간을 쌓아가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을 먹고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더라도, 누군가 몰래 물에 타놓은 그 약을 모르고 먹게 되는 것과 스스로 복용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 그건 희망 같은 게 아니었다. 그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끈 같은 거였다. 자궁 안에서 모체와 태아가 탯줄로 연결된 것처럼, 날 때부터 생과 우리 사이에 연결된 그 무엇. 배신당하고 또 배신당해도 쉽게 놓을 수 없는 어떤 것. 놓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것. 지긋지긋한 생 이게 다 뭐라고. 내일, 그게 또 뭐라고. 씨발, 그게 뭐라고 진짜.
얼굴을 보며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 P298
어째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지? 나는 여지껏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살아왔다. 아무 이유 없이 살아야 한다니. 그리하여 결국에는 태어난 것을 원망하면서. - P12
이경은 달빛과 뒤섞인 구름 속에 서 있었다. 산을 보려면 구름 아래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속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위에 있어야 해요. 기댈 데 없이 허술한 상운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