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 인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상상력과 창의력
월터 아이작슨 지음, 신봉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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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우리 시대의 천재들을 보면 존경심을 넘어 경이감마저 든다.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나와는 다른 천재성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올라가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예술가들의 생애나 그들의 작품을 접하면, 이들을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의 언급만으로도 그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그가 생전에 만들었던 수많은 발명품과 시대를 앞서갔던 창의적인 생각들을 접하다 보면 '이 사람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사람이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책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생각들이 산산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나 아인슈타인, 벤저민 프랭클린과 같은 위대한 창의성을 가진 사람들의 전기로 유명한 전기 작가이다. 그가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쓰면서 스티브 잡스가 가장 존경한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빈치에 대한 전기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동안의 고리타분한 천재성 예술가의 전기와는 전혀 다르다. ?이 책은 다빈치의 평범성에서 출발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의 핵심은 어떻게 평범한 인간인 다빈치가 천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조성의 원천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의 노트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노트에 그림과 함께 필기했다. 한 장마다 빼곡히 그림과 글로 쓰인 그의 노트는 몇 만 페이지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지만, 지금은 4분의 1 정도인 7200페이지가 전해져 온다. 저자는 당시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렇게 기록해 두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현존하는 7200페이지 이상의 노트는 레오나르도가 기록한 전체 분량의 4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500년의 세월이 흐른 이 기록은 스티브 잡스와 내가 회수할 수 있었던 1990년대 잡스의 이메일과 전자 문서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레오나르도의 노트는 창조력 응용의 기록을 낱낱이 제공하는, 그야말로 놀라운 뜻밖의 횡재라고 할 수 있다." (P 150)

 

 

그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각의 진화의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는 처음부터 천재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갈고닦고 준비했음을 보여 준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 그가 끊임없이 그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반복해서 연습하고 있음이 그의 노트에서 나타난다.

 

"이 노트의 아름다움은 막연한 생각, 반쯤 완성된 아이디어, 덜 다음어진 스케치, 윤색되지 않은 논문 초고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레오나르도의 널뛰는 상상력, 근면함이나 규율과는 거기라 먼 총명함과 잘 어울린다. 그는 종종 자신의 노트 메모를 정리하고 다듬어 책으로 내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예술 작품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과 꼭 닮았다. 그는 많은 그림 작품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논문 초고를 붙들고 가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거나 문장을 다듬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완성된 글을 대중 앞에 내놓지 않았다" (P 152)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식을 그대로 암기하고 주어진 일을 단기간에 빨리 완성하는 그런 천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낙제점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발전시키고, 또 예전의 생각과 새로운 생각을 접목시켰다. 저자는 바로 이런 레오나르도의 창의성이 천재성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가 이렇게 창의성을 가졌던 이유를 그의 출생환경에서 찾기도 한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공증인으로 유명한 가문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유명한 공증인들을 배출했고, 만약 다빈치도 사생아가 아니었다면 제도화된 교육을 받고 공증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생아였기에 12세가 되기 전까지는 피렌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했고, 제도화된 교육은 주판 교육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런 자유로운 어린 시절과 함께 12세 때부터는 아버지의 부름으로 피렌체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의 피렌체는 모든 혁신적인 기술과 예술이 모인 곳으로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모두 모여 있었다. 저자는 특히 레오라르도가 그 시대의 건축가인 저 브루넬리스키와 알베르티가 다빈치의 창의성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브루넬리스키는 얼마 전 알쓸신잡이라는 방송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피렌체의 대성당의 돔을 설계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 후 14세에 이르러 베르키오라는 화가 밑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 시기에도 그는 단순히 스승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의 협업의 과정에서 스승과 다른 독특한 창조성의 그림을 그렸다. 특히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작품에서는 스승이 그린 생동감 없는 천사와 그가 그린 생동감이 넘치는 천사가 유달리 차이가 난다.

 

"두 천사를 비교해보면 레오나르도가 스승을 어떻게 뛰어넘었는지 알 수 있다. 베르키오의 천사는 멍해 보이고 얼굴도 밋밋하다. 유일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라고는 자기 옆에 있는 훨씬 생동감 넘치는 표정의 천사에 대한 감탄뿐이다. 케네스 클라크는 이렇게 섰다. '그는 자기 동료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방문자 처럼 처다보는 듯하다. 사실 레오나르도의 천사는 베로키오의 천사가 절대 진입할 수 없는 상사으이 세계에 속해 있다." (P 85)

 

 

그 후 이 책의 서론에서 나오는 대로 서른 살에 밀라노 통치자에게 편지를 보내어 밀라노로 이주하며 그곳에서 '최후의 만찬'이나 '모나리자'같은 대표작들을 그리게 된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동작의 한순간을 그리는 것을 뛰어넘어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순간 속에 담긴 동작을 묘사하는 것과 더불어, 레오나르도는 '모티 델라니마(moti dell'anima)', 즉 영혼의 동작을 전달하는 솜씨가 탁월했다. 그는 '그림 속의 인물들은 관람객이 그들의 태도를 통해 그 의도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져야 한다"라고 했다. [최후의 만찬]은 이러한 금언이 잘 반영된,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생기 넘치는 작품이다." (P 363)

 

 

또 최후의 만찬은 당시의 최신의 기법이 적용된 그림이다. 그 기법을 소실점이다. 당시에는 막 원근법이 발전되기 시작했고, 레오라르도 다빈치는 소실점을 통해 그 원근법을 완성한다.

 

"[최후의 만찬]의 원근법에서 단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소실점이다. 레오나르도는 이것을 '모든 선이 모여드는 하나의 점'이라 했다. 이렇듯 멀어지는 선들은 예수의 이마를 향한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름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 벽면 중앙에 작은 못을 박았다. 우리는 예수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뚫린 못 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방사선상으로 퍼지는 가느다란 선들을 벽면에 새겨 넣었다. 이것은 천장의 들보, 태피스트리 꼭대기 부분 등 가상의 방 안에서 서로 평행하는 직선을 잘 보여주고, 이 직선들은 점점 멀어지면서 그림 속 소실점으로 수렴한다." (P 368)

 

 

이 책을 읽으면서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이라는 팝 케스트를 통해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들었었다. 방송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창의성을 얻은 과정을 이야기하며 한국의 교육과정을 이야기한다. 한국을 비롯해 현대인들이 배우는 교육은 근대이후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동자와 군인 등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성보다는 주입식 암기 교육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받다 보면 창의성이 사라지고, 현실에 주어진 일만 빠르고 능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이것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면 천재도 평범한 사람이 된다고 한탄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학업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천재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창의성을 개발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노트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창조성을 개발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와 방식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단순히 한 명의 위대한 천쟁의 일생을 따라가는 전기가 아닌,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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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불꽃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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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강원도나 오지를 여행하다 보면 동굴 탐사를 하게 된다. 몇 백만 년 전 용암이 흘러서 만들어낸 길고 깊은 터널을 따라, 혹은 영겁의 세월 동안 계속된 침식작용을 통해 만들어 긴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온갖 신비로운 형상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동굴 속에서 광장만 한 넓은 장소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기어서 겨우 몸 하나만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만나기도 한다. 방문객을 위해 만든 작은 등불들이 없었다면 칠흑 같은 암흑이었을 그곳을 작은 불빛들을 따라 걷다 보면 두려움과 비슷한 경이감들을 느낀다. 그리고 동굴 출구의 빛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을 읽은 경험도 이런 동굴 탐사와 비슷했다. 이 책의 화자인 킨보트 교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킨보트인지, 카를 왕인지, 아니면 나보코프 자신인지 모를 존재의 내면 깊숙한 동굴을 탐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때로는 화려하고 현란한 문장에 매혹되기도 하고, 때로는 도저히 무슨 뜻인지 모를 난해한 문장과 해석 속에 갇혀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럭저럭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누군가의 내면 깊숙한 곳을 힘겹게 빠져나온 듯한 안도감마저 들었다.

내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대표작인 [롤리타]를 통해서이다. 대부분 사람이 롤리타를 처음 읽는다면 내가 느꼈던 그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롤리타는 '험버트 험버트'라는 이상한 이름의 중년 남자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죽기 직전에 어린 여성에 대한 자신의 성적 집착에 관한 기록을 남긴다. 소설은 마치 험버트 험버트라는 남자의 실제 기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그의 어린 여성에 대한 집착을 읽으면서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 어린 여성에 대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어둡고 더러운 도시의 뒷골목에서 여자아이를 돈으로 사는 부분에서는 혐오감까지도 느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보코프가 일부러 이런 혐오감을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험버트 험버트의 스스로를 혐오감 있게 묘사한다.) 그러다가 곧 어린 여성에 대한 마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주인공에 대한 애처로운 고백을 읽으며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험버트 험버트의 시선으로 '롤리타'로 불리는 12살짜리 어린 여자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여기까지 끌고 가는 나보코프의 솜씨가 너무 현란해서 읽는 사람은 무기력하게 나보코프의 가리키는 방향을 볼 수밖에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이 나보코프의 놀음에 놀아나 것 같아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런 소설적 독해의 경험은 [창백한 불꽃]을 읽기 전까지 [롤리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창백한 불꽃]을 읽으면서 [롤리타]는 양호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롤리타]라는 배를 탔을 때 지독한 파도를 만나 배멀미를 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창백한 불꽃]을 만나 폭풍우 속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 그때의 경험은 잔잔한 파도였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창백한 불꽃] 시집과 주석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시의 부분은 고인이 된 셰이드 교수의 시이고, 후반부는 그 시를 해석하는 킨보트 교수의 주석이다. 머리말 부분에서는 킨보트 교수의 이 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는 이 책이 진짜 시집과 해설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책의 머리말에서는 킨보트 교수의 셰이드 교수에 대한 존경심과 그 시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금세 자신의 주석이 이 책의 핵심임을 이야기한다.

"관례에 따라 주석은 시 다음에 오지만, 주석을 먼저 훑어보고 그 도움을 받아 시를 읽어보길 독자에게 권하는 바이다 - 중략 - 단언컨대, 내 주석 없이 셰이드의 시만으로는 인간적인 사실성을 갖지 못한다." (P 35)

이쯤 되면 이 책이 정말 시집과 해설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롤리타의 초반의 험버트 험버트의 독백을 기억나면서 벌써부터 내가 멀미 나는 배에 올라탔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네 편으로 된 셰이드의 [창백한 불꽃]이라는 시가 소개된다. 시는 마치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새의 시각에서 셰이드가 살았던 집과 그의 인생을 내려다보는 시각에서 시작된다.

"나는 죽은 여새의 그림자였다

창유리에 비친 거짓 창공에 속은

나는 잿빛 솜털의 얼굴이었다 - 그럼에도 나는

계속 살아서 날아다녔다, 창유리에 비친 하늘에서.

집안에서도 마찬가지, 나는 돌로 만들곤 했다.

나 자신을, 나의 램프를, 접시에 놓인 사과를

밤의 장막을 열어 어두운 유리에 비친

모든 가구가 잔디밭에 위에 떠 있도록 했다.

그리고 얼마나 기뻤던가, 눈이 내려

어렴풋이 보이던 잔디밭을 덮더니 쌓이고 쌓여

의자와 침대가 정확히

눈 위의, 저 밖의 크리스털 나라에 세워졌을 때!" (P39)

시는 50 페이지가 넘는 꽤 긴 내용이다. 길고 암시적인 단어들로 나열되어 있기에 의미가 잘 이해가 되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쉽게 읽혔다. 문제는 시 뒤에 이어지는 훨씬 많은 분량의 주석 부분이다. 흔히 시의 주석은 시를 잘 이해하게 위해서 시의 의미를 해석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킨보트가 해석하는 셰이드의 시는 시의 의미보다는 주로 킨보트의 주관적인 이야기뿐이다. 마치 '험버트'가 '로'라는 어린아이에게 집착하듯 킨보트가 당대의 위대한 시인은 셰이드를 존경심이나 열등감과 같은 감정으로 흠모하는 시각이 나와있다. 롤리타에서 변형된 다른 집착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젬블라'라는 나라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한참을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당황하게 되었다. 킨보트는 시 속의 단어들 속에서 젬블라의 역사, 문화, 자연 풍경 유추하며 이야기하다가, 젬블라의 혁명과 쫓겨난 카를 왕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말이 좋아 유추이지, 그냥 킨보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와 끼워 맞추는 억지식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읽으면서 젬블라의 이미지에서 러시아의 이미지를 카를 왕에게서 로마로프 왕조의 마지막 왕 니콜나이 2세 정도는 떠올릴 수 있지만, 과연 '젬블라'라는 나라 이야기를 왜 이토록 장황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석의 중간중간에서는 킨보트 자신이 젬블라 태생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중반부터 시의 주석은 내용은 점점 젬블라에서 쫓겨 도망 다니는 카를 왕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무언가 조금씩 이상해진다. 카를 왕의 이야기에서 카를 왕의 은밀한 어린 시절 이야기, 독특한 동성애적 성적 취향, 젬블라 왕궁에서 혁명군에게 감금되어 있던 상황, 왕궁 지하 통로를 통해 혼자 탈출하여 산을 넘어 도망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를 왕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냥 킨보트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편하지만, 심지어는 카를 왕이 자신의 아내였던 '디사'라는 여인에 대한 꿈과 그 꿈에 대한 감정까지 이야기할 때는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디사에게 품었던 감정은 어느 정도였을까? 친근한 무관심과 차가운 존중, 신혼 초에도 어떤 감미로움이나 흥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연민이라든지 마음의 고통 또한 느낄 리 없었다. 그는 그저 무심하고 매정했으며,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꿈속에서는 내심 사이가 틀어지기 전이나 후나 똑같이 대단한 보상을 해주곤 했다. 그는 표면적인 삶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녀에 대한 감정이 보증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통렬하게 그녀의 꿈을 꾸었다. 주로 그녀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을 대 꾸었는데, 그녀와 아무 관계없는 근심이 잠재의식의 세계에서 거녀의 이미지를 띠고 나타났다. 전쟁이나 개혁이 동화 속에서 불사조가 되어 등장하듯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이 꿈은 그녀에 대한 칙칙한 산문 같은 그의 감정을 강렬하고 특이한 시로 탈바꿈시켰고, 꿈을 깬 후 잦아든 그 시의 파동은 하루 종일 눈이 부시도록 번쩍이며 그를 괴롭혀서 에는 듯한 그 격통과 찬란함을 - 다음엔 격통만을, 그다음엔 그 번뜩이는 반사상만을 - 다시 떠올리게 했지만, 살아 있는 셀제 디사를 대하는 그의 모든 태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P 257-8)

이쯤 되면 내가 셰이드의 시를 읽고 있는 것이지, 시와 상관없는 킨보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잃어버린 왕국과 시간에 대한 애절함을 가지고 있는 카를왕의 내면을 보고 있는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러시아를 떠나와 유럽과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 나보코의 버림받는 어둡고 차가운 내면을 헤매고 있는 것이지 헛갈리는 상황이 된다.

그러다가 다시 후반부네 이르러서는 카를 왕의 이야기와 함께 젬블라에서 온 그라두스라는 암살자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느 정도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라두스의 등장과 그의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또다시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주석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이 모든 이야기들이 셰이드의 죽음과 셰이드의 시, 그리고 그 시에 대한 킨보트의 해석의 동기들로 마쳐진다. 그러나 힘겹게 동굴의 출구에 가까워져 출구에서 비치는 빛을 보았다고 안도하는 순간, 다시금 나보코프의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그라두스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젬블라'라는 왕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인지, 카를 왕이 킨보트 자신인지, 아니면 킨보트의 환상이 만들어 낸 인물인지, 모든 것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나보코프는 소설을 다 읽은 후까지 쉽게 나를 쉽게 동굴 출구로 내 보내려 하지 않는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심리적인 해석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롤리타]를 읽고, [창백한 불꽃]을 읽고 난 후 왜 험버트 험버트나 킨보트에서 나보코프가 보이는 것일까. 화려한 러시아의 귀족 가문으로 태어나, 평생을 유럽과 미국에서 유랑하고,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음에도 영원한 이방인의 감정을 떨쳐 버리지 못했던 작가의 어둡고 외로운 내면이 소설에서 계속해서 묻어 나오는 것처럼 느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떨쳐버리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이끌로 가는 롤리타에 대한 집착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험버트 험버트나 스스로 몰락한 젬블라 왕국의 왕이라고 믿고 있는 킨보트 교수나, 어쩌면 이들은 나보코프 자신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나보코프의 문학적 자존심의 대단했다고 한다. 자신을 고리키 이후에 이어지는 러시아 문학의 정통 계승자로 여길 정도였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어를 버리고 영어로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비애감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책에서는 이런 감정들이 킨보트 교수의 주석에서 번번이 비치고 있다. 킨보트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는 끝까지 자신을 카를 왕국의 왕으로 믿고 살아간다. 진짜 그가 왕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과대망상증에 빠진 환자일 수도 있다. 그러면 나보코프는 누구였을까. 아무래도 언제 가는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멀미가 가라앉은 한참 후가 될 테지만. 비록 아직도 혼란스럽지만 나보코프가 만든 차갑고 어두운 동굴을 탐사하는 시간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이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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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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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버림 받아도 마지막까지 안아 주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관계가 비록 혈육이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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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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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내가 처음 보고 느낀 것은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집이었다. 마을 끝에 있어서 산과 마을 사이의 경계가 되는 마지막 집이었다. 집을 오르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돌계단을 올라야 했고, 그렇게 집 마당에 올라서면 마을의 집들이 대부분 보였다. 집 뒤에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피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연례행사저철 도시락을 준비해 나와 형제들을 데리고 소풍을 갔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 찍은 빛바랜 사진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때 찍은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지만, 그때의 이미지들은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어떤 때는 그때의 따스한 기억들이 불쑥 튀어나와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어떤 때는 그때의 아픈 감정, 수치스러운 감정,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정들이 튀어나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라는 존재 안에는 이런 기억들과 감정들이 뒤엉켜있다. 그것은 내 몸에서 수술이나 약물로 분리해 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내 안에 뒤엉켜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이 바로 ‘나’이고,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간다.

 

엘리스 먼로의 소설들을 읽으면 한 여성 안에 존재하는 이런 기억과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사진과 같은 여러 장의 이미지들을 만나게 된다. 전쟁 전후의 빈곤한 캐나다 시골 마을, 친근할 것 같지만 날카로운 마을 사람들의 시선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보수적 종교의 무거운 공기, 부유한 윗마을과 가난한 시골마을, 나무 건물의 낡은 학교, 그리고 그 학교의 폭력적인 선생님과 거친 학생들, 이런 이미지들이 엘리스 먼로의 뛰어난 묘사와 함께 마지 사진처럼 보여진다.  

 

엘리스 먼로의 소설에 나와 있는 가정과 집에 대한 이미지도 마찬가지이다. 낡은 농장과 기찻길에 대한 이미지가 존재하고, 때로는 폭력적이지만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파키슨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어머니, 이런 것들이 엘리스 먼로의 소설 속에 존재하는 가정의 이미지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녀 속에 있던 삶의 경험들이 주는 이미지들이 그녀의 소설 중간 중간 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받지 못한 한 소녀의 슬픈 이미지이다.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마치 눈보라치는 캐나다의 벌판 속에 혼자 발거벗겨져 버려진 것 같은 외롭고 쓸쓸한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거지 소녀]란 소설에서는 이런 이미지가 한층 더 강하다. 소설을 통해 로즈라는 여성의 성장과정을 따라가면서 순간 순간 페이지를 멈추어야 했다. 어느 순간에는 너무나 아파서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녀가 경험해야 했던 차가웠던 세상과 삶의 경험들이 페이지의 손끝에서 전달되어 마음 속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소설은 로즈와 그녀의 새어머니인 플로의 애증관계로 시작한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죽고 가구를 수리하는 거친 일을 하는 아버지와 결혼한 여자가 플로였다. 후에 플로는 작은 가계를 운영하며 로즈와 이복 남동생 브라이언을 돌본다. 사춘기의 예민한 소녀인 로즈와 입과 행동이 거친 플로는 거의 매일같이 싸운다. 그러다가 플로가 ‘장엄한 매질’이라고 하는 혹독한 매를 로즈가 아버지에 맞는다. 플로는 그렇게 처참하게 매를 맞는 로즈를 고소해 하기보다 같이 마음 아파하고, 그런 플로에게 로즈는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느낀다. 사실 어린 소녀가 폭력적이지만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와 미운 새어머니이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유일한 사람인 폴로에게 가지는 감정이란 매우 복잡하다. 놀라운 건 엘리스 먼로가 그 모든 감정을 짧고 덤덤한 묘사로 표현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제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홀로 있는 폴로를 기억해 내는 나이 든 로즈의 시선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부엌 창가에서 차가운 호수를 내다보며 로즈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들으면 좋아할 만한 사람은 플로였다. 최악의 의심이 멋들어지게 확인되었다는 뜻으로 그녀가 세상에! 하고 말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플로는 해트 네틀턴이 죽은 바로 그곳에 있고, 로즈는 어떻게 해서도 플로에게 가닿을 수 없었다. –중략- 이삼 년 전 로즈가 양로원에 입원시킨 이후 플로는 말문을 닫았다. 플로는 스스로를 완전히 거두어들였고, 하루 종일 교활하고 심술궂은 표정으로 칸막이를 두른 침대 한구석에 앉아서 누가 뭐라 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가끔씩 간호사를 깨물어 감정을 드러내는 때를 제외하고는.” (P 47-8)

 

이후 로즈는 플로의 품을 떠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진학하고 그곳에서 패트릭이라는 남성을 만난다. 순수한 학자를 추구하는 학생으로 알았지만, 나중에는 그가 백화점 체인의 상속자인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로즈가 패트릭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그녀가 재벌이여서가 아니다.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패트릭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패트릭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진 돈의 양이 아니라 그가 주는 사랑의 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안쓰러움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믿었다. 마치 그가 군중 속에서 커다랗고 단순하고 빛나는 물체 – 가령 순은으로 된 거대한 달걀 같은, 용도는 미심쩍지만 살인적으로 무거운 물체 –를 들고 다가와 자신에게 바치는 듯, 아니 실은 마구 떠안기며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자고 애원하는 듯했다. 그걸 그에게 도로 떠안긴다면 그는 어떻게 견딜 것인가? 하지만 그런 설명에는 뭔가 빠진 것이었다. 그것은 로즈 자신의 욕구, 재산이 아니라 흠모를 바라는 욕구였다. 그가 사랑이라고 말하는(그리고 그녀 역시 의심하지 않는) 그것의 크기, 무게, 광채는 그녀를 감명시켜야만 했다. 비록 그녀가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선물이 또다시 그녀에게 올 것 같지도 않았다. 패트릭 자신도 로즈를 흠모하면서도 은근히 에둘러 그녀의 행운을 지적했다.” (P 147)

 

너무나 사랑에 굶주려 있기에 그녀는 패트릭이 가진 고리타분함과 그의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위선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랑을 거부할 수가 없다. 로즈와 패트릭의 사랑은 그녀의 삶처럼 위태위태하다.

 

그녀는 패트릭과 결혼하지만 패트릭과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위선에 못 견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일탈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패트릭과 이혼을 하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는 중년의 로즈는 치매가 걸린 플로를 돌보기 위해 다시 고향인 핸래티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했던 핸래티 마을과 플로를 이제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비록 많은 상처가 있었지만, 그녀가 어린 시절이 삶을 어느 정도 스스로 극복했고, 극복해 가고 있음을 암시하며 소설을 끝맺는다.

 

로즈가 패트릭과의 결혼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계속해서 성적 일탈로 자신을 망가뜨려 가는 부분에서 그녀에 대한 연민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그만 해!'라고 소리를 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소설을 덮고 나서 한참 후에서야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그녀의 기억과 감정들이 수풀처럼 그녀의 삶의 얽어매고 있었고, 그녀는 그 수풀 속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주변 사람들과 플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한층 부드러워진 그녀의 시선을 느낀다. 로즈 안에 있던 어린 시절의 로즈가 성장했음을 보여주며 소설을 마친다.

 

엘리스 먼로의 작품을 읽을 때면 항상 떠오르는 같은 한국 여성 작가가 있다.  은희경 작가이다. 처음 그녀의 단편소설인 [아내의 상자]를 읽었을 때의 당혹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탈로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워낙 젊은 시기에 읽어서인지, 읽으면서도 그녀가 왜 스스로를 그렇게 무너뜨리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도덕적인 잣대로 그녀를 판단하고 비판했었다. 그 후 그녀의 작품들인 [새의 선물]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작품들을 읽었다. 그곳에서는 마치 로즈처럼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를 위선 속에 가두어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이 나온다. 오랜 시기가 지난 후 다시 [아내의 상자]를 읽으며 갈기 갈기 자신을 찢어가면서도 살고자 몸부림쳤던 한 여성을 대면할 수 있었다.

 

엘리스 먼로의 작품들이 은희경 작가의 소설들과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엘리스 먼로의 작품에서는 따스한 소망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에서처럼 처절한 삶 속에서 냉소적인 시선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지만, 끝에는 항상 자신과 타인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특히 [거지소녀]라는 작품에서 이런 이미지가 강하다. 결국 그 시선이 바로 엘리스 먼로 자신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한때는 떠나고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 삶들이 자신의 일부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엘리스 먼로가 그녀의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주는 위로와 치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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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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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거리나 마트, 공공장소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독특해서, 어떤 사람은 너무 기분이 나쁘게 행동해서 기억에 남게 된다. 이런 일들을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한 작가가 있다. 일본 작가 가마타미와이다. 저자는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자신의 재미있는 경험을 만화 형식으로 재미있게 그렸다. 사실 만화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글이나 메모들도 많아 마치 한 사람의 일기장을 엿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우선 이 책에는 흔히 가게나 길가에서 만나는 독특한 사람들과 일화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작가가 여성이어서 그런지 유독 옷 가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아주 우아한 여성 옷 가게 주인이, 갑자기 자기 화장 지우면 남자같이 생겼다고 조금은 말하는 부분은 조금 징그럽기도 하다.

 

 

 또 갑자기 우리 딸과 몸매가 비슷하다면 옷 좀 대신 입어 봐달라는 부분에서는 남성이 나도 비슷한 경험이 많아서 공감이 많이 간다. 젊었을 때는 유독 백화점이나 옷 가게에 가면 어머니 또래 되시는 분들이 우리 아들과 체형이 비슷하다며 한 번 입어 봐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내가 옷을 입고 있으면 점원에게 저분이 우리 남편과 체형이 비슷하다면 입고 있는 옷 좀 보여달라는 분도 계시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내가 대한민국 표준체형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독특한 행동과 말을 하는 분들과의 만남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빵 가게 진열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아저씨가 어느 순간 '결심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빵 터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비록 할아버지는 아닌데, 내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최근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기에 음식의 유혹과 치열한 싸움 중이다. 가장 힘든 부분은 헬스장 밑 건물에 중국집이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허기진 배로 나오면 바로 엄습하는 치명적인 중국집 음식 냄새. 거기에다가 중국집 앞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자장면을 맛있게 흡입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보인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 역시 혼자 말고 '결심했어!'라고 외치며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데 이렇게 유쾌한 만남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디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저자가 여성이다 보니 흔히 이야기하는 변태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돈을 제시하면서 스타킹을 벗어 달라는 사람, 가게에서 은근히 성희롱을 하는 사람, 특히 일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제는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이어서 그런지, 같은 여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해 오는 황당한 경험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가 여행이나 방송으로만 접하는 일본의 문화나 골목길의 가게, 또는 여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사진과 글까지 첨부해 가며 저자의 여행과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이렇게 그림과 사진으로 후기를 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부담 없이 타인의 재미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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