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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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살았던 시골집이 지금도 기억난다. 당시는 우리 가정은 힘든 시기였다. 아버지는 하시던 사업이 힘들어지셔서 집을 비울 때가 많았고, 어머니 역시 계속 일을 다니셔서 집에 없으실 때가 많았다. 집에 혼자 남겨져 있을 때면 주로 집의 뒷마당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햇볕이 들지 않았던 그곳은 어둡고 습했지만 또한 아늑했다. 그곳에는 주로 장독대나 못쓰는 가구들이 쌓여 있었다. 어느 날인가 그곳에 있던 가구 중 하나의 바닥을 들춰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끔찍한 것들을 마주했다. 지렁이. 지네. 바퀴벌레. 당시에는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온갖 벌레들이 그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인지 그 후에는 그곳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성장하면서 가끔 그때의 장면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 내 마음이 마치 그 집의 뒷마당 같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다. 온갖 징그러운 벌레들이 꿈틀 거리만큼. 그때는 내 마음이 그렇게 어둡고 습했다.

 

아일린이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그녀 안에서도 이런 어마음을 보았다. 소설 속의 아일린은 X 빌이라는 마을에서 사는 젊은 여성이다. X빌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나도 모른다. 소설의 배경상 그녀가 동경하는 보스턴과 가까운 미국 뉴잉글랜드의 어느 작은 동네 정도로 생각된다. 그곳은 춥고 습했으며 눈이 많이 내렸다. 1963년 24살의 아일린은 X빌에서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와 산다. 그녀와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은 어머니가 죽은 후 거의 청소를 하지 않았기에 항상 먼지와 쓰레기가 쌓여 있고, 주방엔 음식들이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그녀가 일하는 무어헤드라는 소년원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잡혀 온 곳에서는 온갖 학대와 폭력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아일린은 그런 것이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외적인 상황 때문이었을까. 아일린 안에는 자기혐오와 긴장감과 분노, 조급함과 같은 온갖 어두운 것들이 가득차 있었다. 그럼에도 아일린은  철저히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감추며 살아간다.

 

"나는 마음이 불안할 때 외모를 다듬으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실은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강박적으로 신경을 썼다. 내 눈은 초록색에 조그마한데, 당신이 날 보았다면 그다지 친절해 보이는 눈이라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특히 더 그랬을 테고. 나는 언제나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그렇게 전략적이지 못하다. 머리에 핀을 꽂고 칙칙한 쥐색 코트를 입은 모습을 그때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이 무용담에서 단역에 불과한 인물로 예상했을 것이다. 성실하고 침착하고 따분하고 무관한. 멀리서 보면 나는 수줍고 온화한 사람처럼 보였고, 때로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욕을 했고 얼굴을 붉혔고 꽤 자주 진땀을 흘렸으며, 그날만 해도 신발이 부서질 뻔했다. 나는 정말이지 지루하고 생기 없고 무엇에든 면역된 가식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은 항상 격분했고 부글부글 끓었으며 내달리는 생각과 살인자 같은 정신으로 살았다. 심드렁하게 서성이며 칙칙한 표정 뒤로 숨는 일은 쉬었다." (P 18)

 

그녀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름 그녀만의 탈출구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성적인 몽상이 있다. 그녀의 성적인 몽상의 대상은 주로 무허헤드의 소년들이나 직원들이지만, 주된 대상은 랜디이다. 소년원의 교도관인 랜디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멋진 남성이다. 그녀는 시간 날 때마다 랜디의 집 앞에 서성이며 랜디를 관찰한다. 그러다가 가끔 슈퍼마켓이나 옷 가게에서 사소한 물건들을 훔친다. 그녀의 또 하나의 탈출구가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몰던 낡은 닷지 자동차이다. 이미 고장 날 때로 고장나서 자동차 안으로 매연이 들어오지만, 그녀는 한 겨울에도 문을 열고 그 차로 달린다. 랜디와의 성적인 몽상이 상상 속에서의 도피 공간이었다면, 현실에서 그녀의 유일한 도피 공간은 아버지의 낡은 닷지 자동차이다.

 

그런데 어느 날 랜디나 닷지 자동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탈출구가 갑자기 그녀 앞에 등장한다. 교도소에 교사로 새로 부임한 리베카라는 여성이다. 타고난 아름다움과 교양, 그리고 세련된 패션 감각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리베카는 부임한 날부터 아일린에게 호감을 보여준다. 그동안 무어헤드에서 아일린에게 호감을 보여 준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리베카의 관심에 아일린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것 같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초대한다. 그때부터 사건은 겉잡을 수없이 흘러간다. 그것이 바로 소설 초반에서 말하는 그녀가 X빌을 영원히 떠나게 되는 이유이다.

 

소설은 마치 컬트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소설의 중간까지는 온통 흑백뿐인 영화가 이어진다. 눈 내리는 습하고 쇠락한 시골 마을인 X빌.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먼지 쌓인 어둡고 더러운 집. 소년들을 학대하는 소년 교도소인 무허헤드. 그리고 닷지 자동차를 타고 이 배경 사이를 이동하는 아일린. 온통 단조로운 흑백의 화면들이 느리고 지루하게 이어져 간다. 그러다가 소설 중반에 리베카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만이 다채로운 칼라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아일린을 비롯해 온통 모든 사람들이 리베카에게 집중한다. 리베카는 알듯 모를 듯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말들을 남기며 접근한다. 그리고 리베카는 아일린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화려하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리베카의 집은 의외로 어둡고 더럽다. 그곳에서 이제 흑백영화는 온통 빨간색의 피로 뒤 덥히는 공포 영화로 변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가 왜 이런 구성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소설은 거의 말미에 이를 때까지, 즉 리베카가 나타나고 아일린이 리베타의 집에 초대되기까지 특별한 사건이 없이 진행되다가, 폭발이 일어나듯이 갑자가 사건이 분출이 된다. 그러기에 이 부분까지 읽을 때 조금의 지루함을 느낄 수가 있다. 초반부터 조금 더 속도감 있는 소설을 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은 작가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쓰기 위해서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말미에 일어나는 리베카를 통한 반전은 이 소설을 읽어준 독자에 대한 서비스 정도이다. 작가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어 한 것은 아일린이 어떤 사건으로 X빌이란 마을을 떠났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이 읽혀지기 위해 작가가 어쩔 수 없이 독자와 타협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오테사 모시페그라는 작가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일린 안에 있던 그 어둡고 습한 마음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누구 한 명에게도 사랑받지 못한채 철저히 지저분하거 어두운 공간에 버려진 한 여성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녀의 자기혐오와 성적인 몽상,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분노 등을 들여다 보는 것은 마치 시골집 뒷편의 버려진 가구의 바닥을 들춰보는 것 같은 끔찍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집요하게 아일린이라는 여성의 어둡고 습한 마음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그것을 들춰보라고 요구한다. 소설의 스토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들춰보는 독자들을 위한 미끼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아일린의 어두운 마음을 들춰보라고 말하는 것일까.

 

소설은 이제는 74세의 할머니가 된 아일린의 시점에서 24살의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나이가 든 아일린은 이제 자신은 그 전의 아일린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때의 자기혐오와 조급함, 분노에 사딜리던 아일린이 아니라, 이제는 한결 여유로워졌고 평안해졌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진행해 가는 74살의 아일린은 24살의 아일린을 혐오하거가 끔직해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나를 비롯한 독자들처럼 그 어둡고 습한 마음을 들춰보기를 주저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따스하고 친근한 마음으로 그때의 아일린의 마음을 들춰본다. 그때의 자기혐오, 조급함, 분노, 세상에 대한 증오를 품는다. 심지어 그녀의 말투에서는 이 모든 것을 그리워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성탄절날 영원히 떠나 온 X빌 마을, 정리도 하지 못하고 떠난 무어해드의 자신의 책상. 심지어 성탄절날 아침 술 취한 채로 그 더럽고 먼지나는 집에 두고 온 아버지까지. 나이 든 아일린은 젊었을 때의 아일린처럼 덤덤히 말하지만, 그 안에는 24살의 아일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겉으로 그리워하지조차 못한다. 그랬다면 그녀는 무너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시의 자신을 회상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어둠을 들춰본다. 후회나 원망, 미움과 분노가 아닌 그리움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그것을 권하고 있지 않을까.

 

"본 리뷰는 출판사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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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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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때 친한 후배가 있었다. 참 순수한 친구였다. 사람들에게 따스하게 대하고 농담으로 항상 분위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의 고민상담을 잘 들어주고 따스한 위로도 잊지 않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군에 입대를 한 후 거의 3년 동안은 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복학한 그를 만났을 때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랐었다. 그는 3년 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것에 시니컬하게 반응을 하고, 상대방의 말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고 혼자 멍하니 딴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어떤 선배와 사소한 언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뛰쳐나갔다. 과연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하게 했을까. 가끔 그 친구를 생각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그 친구가 겪었을 끔찍한 일들이 상상이 된다. 군대의 어두운 곳에서 심한 구타를 당하고, 내부만의 구석에서 온갖 욕설과 핀잔을 듣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내가 떠올리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끝내 그의 고백을 듣지 못해서 그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라 워터스의 [나이트 워치]라는 소설을 읽으며 그 후배를 떠올렸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1947년의 배경으로 6명의 런던의 젊은이의 삶을 묘사한다. 거리에는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가 여전히 방치되어 있고, 아직도 전쟁 흔적을 털어버리지 못한 제대한 군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겉으로는 모두들 안정을 되찾은 것 같지만 사람도 거리도 여전히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기였다. 그중 유독 여섯 명의 사람들만이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나름 전쟁 후의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쑥 불쑥 그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나와 현실에서 뛰쳐 나가고자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평화에 불안해 하고, 지금의 삶을 마치 꿈 속의 삶처럼 현실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소설의 초반에는 그들의 과거에 대한 언급이 너무 희미하기에 그들의 자학적인 생각들과 행동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겪었을 끔찍한 일들을 혼자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이들은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이 소설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전쟁 후의 1947년을 배경으로, 그다음에는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을 배경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전쟁이 막 시작하던 1941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여섯 명의 인물들이 겪은 전쟁의 광기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는지를 역 추적한다. 소설의 시작은 '케이'라는 여성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결국, 케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인간이 됐단 말이지. 벽 시계도 손목시계도 죄다 멎어서, 주인집 현관으로 들어서는 불구자가 누군지를 보고 시간을 가늠하는 꼴이. (P 11)

 

케이는 짧은 머리에 잘생긴 청년 같은 외모를 주는 여자였다. 그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지만, 그의 말투나 행동에서 그가 상류층 출신이며 군대와 관련된 일을 했음을 추측하게 한다. 그녀는 계속 거리를 방황하며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결국 전쟁의 시기에 같이 일했던 미키라는 여성을 찾아가 자신의 상태를 고백한다.

 

케이는 뒤로 푹 물러나 앉아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에 고개를 돌렸다. "우리뿐 아니라 수천수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죄다 똑같은 일을 겪었어. 누군가를 혹은 뭔가를 잃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런던 거리 아무 데서나 손을 뻗어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다들 연인을 잃거나 아이를 잃거나 친구를 잃었다고. 근데 난...... 헤어날 수가 없어. 미키. 거기서 헤어날 수가 없다고." 케이는 비참하게 웃었다. "헤어나다니. 이 표현 진짜 웃기다! 사람의 애통함이 무슨 무너진 집인가, 지천에 수북이 깔린 잔해를 헤치고 일어나 다른 멀쩡한 곳으로 나와야 한다니...... 키미, 나는 건물 잔해 속에서 길을 잃었어.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문제는 애초에 나갈 생각도 없다는 거지. 아직도 내 인생 전부가 그 잔해 밑에 깔려 있는데......" (P 148-9)

 

도대체 케이는 전쟁터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던 것일까. 그녀는 전쟁터에서 어떤 끔찍한 것을 겪은 것일까. 비록 겉모습일지 몰라도 모두들 다 회복해서 아무렇지 않게 사는데 왜 그녀만 이토록 괴로워하며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케이뿐만이 아니다. 헬렌이라는 여성은 줄리아라는 여성과 동거하며 끊임없이 그녀에게 집착한다. 비브는 다정한 레지라는 유부남과 만나다가 어느 순간 레지에게 폭발하며 소리를 지른다. 누구보다도 어둡게 사는 사람은 덩컨이라는 남성이다. 덩컨은 비브의 남동생인데 철저히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양초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과거에 알던 프레이저를 만나자 갑자기 공포에 빠진다. 과연 무엇이 이들의 영혼을 이처럼 처참하게 파괴했을까. 

 

1944년을 배경으로 하는 2부가 시작되어서야 그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1944년의 런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독일 폭격기들이 폭탄을 투하한다. 건물이 송두리째 날라가고 사람들은 그 폭탄에 몸이 찢겨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된다. 케이는 미키와 함께 구급 대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폭발로 폐허가 된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며 폭파된 건물 속에서 시신과 부상자들을 접한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에서 흘린 피로 얼굴이 보이지 않고, 심지어 폭탄에 몸이 갈가리 찢긴 시신들을 접한다. 그러면서도 사랑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른 청년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초반에는 전혀 연관이 없던 것 같던 이들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쟁 시기에 이리저리 관계를 맺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런던에 폭탄이 떨어지던 날, 그 폭탄과 함께 케이를 비롯한 사람들의 삶이 산산조각 나는 그 진실이 밝혀진다.

 

이 소설은 시간의 역구성을 통해 케이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쫓아가기에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이들이 전쟁 때 어떤 상처를 당했는지를 이야기하고, 그로 인해 이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이야기했다면, 그래도 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 올라가며 그들이 경험한 끔찍한 전쟁의 시대와 그 시대의 광기로 인해 상처들을 발견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2차 세계대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유대인이 그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묻지 말아 달라!"

 

보통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를 한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느냐? 어쨌든 그곳에서 무사히 돌아왔지 않느냐? 그러니 너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렇게 않게 적응하며 살아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렇게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잃어버리고 와야 하는 것이 있었을 텐데. 사람들은 왜 그 잃어버린 것을 외면하려 할까. 그들이 통과했을 전쟁터의 폐허 같은 끔찍한 공포를 왜 외면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에 여러 가지 아픔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때로는 일제시대와 태평양 전쟁 때 위안부나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겨우 생명만 가지고 돌아온 사람들. 6.25전쟁 때 가족들이 처참히 죽임을 당하고 자신만 살아남은 사람들, 군사정권 때 고문하고 학살로 가족이나 자식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배가 침몰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까지.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말한다. 살아남았으니 그냥 살아가라고. 그들이 과연 그냥 살아갔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케이를 비롯한 5명의 사람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전쟁의 상처를 잊으며 서서히 회복되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여전히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그리고 앞에 언급했던 그 후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는 다시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자신의 이전의 모습은 그 군대의 어둡고 힘들었던 시간에 놓고 변해버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라 워터스는 우리에게는 [핑거 스미스]라는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스릴러로 유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역사를 배경으로 시대와 인물들을 묘사하는데 탁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라 워터스의 진짜 놀라운 점은 시대와 상황으로 인해 찢겨진 인간 내면의 모습을 너무도 끔찍하리만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트 워치]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시대의 광기, 그리고 그 전쟁의 공포와 광기 속에서 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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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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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홍콩에서는 성난 군중들이 홍콩 행정부와 중국 정부에 대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100만 명이 모여서 대규모 시위를 하다가, 이제는 200만 명으로 그 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홍콩 인구가 600만 명이라고 하니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저들을 그토록 분노하고, 그토록 절박하게 했을까? 겉으로는 범죄자 인도 조약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점점 자신의 자유와 삶을 압박해 오는 중국 정부의 손길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점점 평범한 삶에서 밀려 나가 절벽으로 밀려나고 있는 자신들의 삶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조남주의 신작 [사하맨션]을 읽으며 계속해서 닥지닥지 붙은 홍콩의 건물들 사이로 몰려드는 군중들이 연상되는 이유는 왜였을까?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가진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정하지 않은 어느 나라의 도시에 대기업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공장들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점점 기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결국은 도시마저 인수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가 아닌 국가, 유엔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를 통제하는 독립 국가가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국가를 '타운'이라고 부른다. 타운은 철저히 비밀에 감춰진 7명의 총리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그 총리의 결정사항은 총리 대변인을 통해 타운 주민들에게 발표된다. 타운의 점점 경제적으로 번성하지만, 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자유를 빼앗아가고 자신들의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업에서 일을 하거나 전문직을 가진 사람에게 시민권을 주어 L로 구분하고, 시민권은 없이지만 2년짜리 체류권을 주어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을 L2라고 부른다. 그리고 L에도, L2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은 철저히 사회의 낮은 계층으로 살아가게 된다.

 

"주민 자격은 갖추지 못했지만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자격 심사와 건강 검사를 통과하면 L2 체류권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체류권과 같은 이름인 L2로 불리며 2년 동안 타운에서 살 수 있다. 그것뿐이다. 일단 2년은 쫓겨날 걱정 없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L2를 원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건설 현장, 물류 창고, 청소업체 같은 힘들고 보수가 적은 곳들이다. 2년의 체류 기한이 끝난 후에도 계속 타운에 남고 싶다면 다시 심사를 받아 체류권을 연장해야 한다. L2 대부분은 주민 가격이 되지 않으나 고향을 떠날 수 없어 2년마다 모역적인 자격 심사와 건강 검사를 받고 L2 체류권을 연장해 가며 타운에 남은 원주민과 그런 L2들이 양육의 의지 없이 낳은 아이들이다. 진경은 L2도 못 되었다. '사하'라고 불리었다. L도 L2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마땅한 이름도 없는 이들, 사하맨션 주민이라서 '사하'인 줄 알았는데 사하맨션에 살지 않아도 '사하'라고 했다. 너희는 딱 거기까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P 15)

 

[사하맨션]은 이렇게 디스토피아적 공간인 타운을 배경으로 사하맨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진행이 된다. 이들 대부분은 L이나 L2의 삶에서 밀려난 인생이거나, 타운 밖에서 여라 가지 이유로 밀려든 인생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진경과 도경도 마찬가지이다. 진경은 원래 타운 밖에 있는 국가로 불리는 타운 밖의 공간에서 살았었다. 허드렛일을 하는 진경의 아버지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호하며 이사업체에서 짐을 포장하고 나르는 일을 한다. 진경의 어머니는 어느 날 이사 집 일을 하다가 높은 계단에서 떨어져 죽는다. 모두들 사고사라고 하지만, 도경은 어른이 되어 이사업체 사장을 찾아간다. 도경은 그 사장을 칼로 일곱 번 찌르고 진경과 함께 도시로 밀항을 한다. 그리고 사하맨션에 숨어든다.

 

'우미'라는 여성도 나온다. 그녀의 엄마는 비교적 평범한 여자였는데, 30년 전 타운이 막 생길 무렵 우연히 대규모 시위의 주동자가 되었다. 그녀의 동생이 타던 배가 어느 날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항의하기 위해 종이배를 접었다. 그녀의 영향으로 시위가 발생하고 타운은 그녀를 시위 주동자로 몰아서 사형시킨다. 그 후 그녀의 남편은 한 쪽 눈이 다친 아이를 데리고 사하맨션에 숨어든다. 그녀가 우미다. 후에 우미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의 실험체가 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사연으로 도시의 평범한 삶에서 밀려나서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사하맨션에 들어와서 살아간다. 그들은 무허가 건물의 방에 들어가서 살고, 나름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를 위해 가며 살아간다. 그들의 중심에서 맨션을 관리하는 영감이 있다. 그 역시 어느 순간에 사하 맨션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이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진경과 도경 남매와 다른 사람들을 대하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그들을 보살핀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이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수'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소아과 의사로 사하맨션을 비롯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본다. 그러다가 도경을 만나고 그녀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녀는 도경과 함께 사하맨션에서 자리를 잡고 함께 살아간다. 도경의 도와 그의 그림 그리는 재능을 알리고, 사하맨션의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삶을 바꿀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은 곧 절망으로 바뀐다. 무허가 진료를 하고 사하맨션에서 거주했기에 곧 의사면허가 박탈되고, 모든 책임을 당한다. 결국 그녀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타운이라는 도시, 그리고 사하맨션이라는 공간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과 너무 닮아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흔히 내 주변의 사람들의 인생의 이야기와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당연시 여겨서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런 무시무시한 타운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계급들로 나누어지고, 그 계급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삶. 그러다가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수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L2가 되고, 사하가 되어 사하맨션으로 떨어지는 삶. 잠시의 동정심이나 이타심으로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나까지 그 아귀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는 삶.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와 통제로 철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처럼 한 곳으로만 달려가야 하는 삶. 소설에 묘사되고 있는 이런 삶들은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실제의 삶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삶을 만드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진경은 사하맨션을 부수고, 동생과 우미를 잡아가는 타운의 정책에 분노한다. 그래서 몰래 총리실에 잠입해 7명의 총리를 죽이기 위해 찾아간다. 온갖 소란을 일으키며 총리실까지 진입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총리 대변인은 진경을 살려 보내며 돌아가라고 말한다. 다들 그렇게 분노하다가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가서 자기 몫을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진경은 끝까지 절규하며 말한다.

 

"당신이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P 368)

 

이 소설의 저자인 조남규 작가는 몇 해 전 [82년 생 김지영]이라는 소설로 큰 이슈를 일으켰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가 편을 나눈다. 여자들이 그동안 차별을 받고 살아왔고 지금도 차별을 받고 살아있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그것이 남자들의 잘못이 아니고, 오히려 지금은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내 리뷰에 의도하지도 않는 말싸움들이 달리기를 반복했다. 결국 리뷰를 내리기도 했다. 소설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읽는 사람들 (사실은 읽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은 자신의 시각으로 소설을 해석한다.

 

개인적으로는 [82년생 김지영]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성별이 아닌, 사회가 만든 가부장적인 문화에 소외도고 짓밟힌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렇게 남의 인생을 쉽게 짓밟을 수 없다고 강변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하맨션]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은 정치적인 소설이거나 이념을 가진 소설이 아니다. 사회가 만든 시스템으로 인해 소외되고 사회의 막다른 골목길인 사하 맨션에 몰린 인생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세상이 다 그런 것이라고 말해도 누군가는 그 시스템을 깨뜨리기 위해 도전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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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웰스
앤 패칫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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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영화들을 좋아한다. 영화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에 불행을 가져다준 과거의 어떤 결정적인 사건으로 시점으로 돌아간다. 그는 그 부분만 바꾸면, 오랜 기간 자신이 겪었던 불행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눈앞에서 바로 그 사건이 펼쳐진다. 이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기만 하면 되지만, 이상하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연을 가장한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그 사건이 그냥 일어나도록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운명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과거는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철학적인 주제보다 내가 타임슬립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분명히 내 인생을 바꾼 끔찍한 사건인데, 그 시점으로 가서 다시 그 사건을 바라보니 그냥 꿈속의 한 장면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때는 감독 특유의 솜씨로 몽환적이고 모호한 아름다움을 가진 장면으로 비치기도 한다.

 

[커먼웰스]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 영화는 타입슬립과 관련된 소설은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가족 소설이나 성장 소설, 자전적 소설 정도가 될 것이다. 경찰관인 픽스는 아름다운 아내인 베벨리와 살고 있다. 두 딸인 캐롤라인과 프래리 라는 두 딸을 키운다. 지방 검사보인 버트는 테레사라는 아내와 함께 캘, 앨비, 홀리, 저넷이라는 네 남매를 키우며 산다. 그런데 어느 날 버트가 우연히 픽스의 파티에 갔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픽스의 아내 베벌리와 키스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한 번의 키스가 두 가정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한국 막장 드라마의 장면들을 떠오릴 것이다. 둘 다 가정이 있는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고, 각각 배우자에게 들켜서 물건을 때려 부수는 싸움을 하고, 여자들끼리 만나서 머리를 잡고 싸우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소설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개된다. 이런 시끄럽고 끔찍하고 지저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묘한 분위기로 회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두 가정이 베벨리와 버트의 키스 이후 파탄이 난 후 50년 후의 상황에서 진행이 된다. 픽스는 암에 걸려 죽어가는 상황이었고, 픽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프래리의 시각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소설의 처음은 프래리의 세례 파티 때 초대받지도 않은 버트가 방문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왁자지껄한 파티 분위기가 묘사되고, 그 분위기 속에 진을 들고 생뚱맞게 서 있는 버트가 묘사된다.

 

"앨버트 커즌스(버트)가 진을 들고 나타나면서 세례파티의 분위기는 딴판으로 달라졌다. 픽스는 미소 띤 얼굴로 문을 열고,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그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앞쪽 포치의 시멘트 바닥에 서 있는 사람은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는 앨버트 커즌스였다. 픽스는 지난 삼십 분 동안 문을 족히 스무 번은 열어주었는데 커즌스는 그를 놀라게 한 유일한 존재였다." (P 9)

 

버트는 픽스와는 업무상으로 경찰서에서 몇 번 스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 파티에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동료 한 사람뿐이었다. 그 동료가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픽스의 파티에 갈 거냐고 물은 것이 전부였다. 주 중에 온갖 복잡한 사건에 시달리고 주말에는 임신한 아내와 세 명의 아이가 북적이는 전쟁통 같은 집을 벗어나기 위해 버트는 파티를 떠올리고 방문한다. 그냥 가기 멋쩍어 세례 파티에는 아무도 가지고 가지 않는 진을 가지고 간다. 그리고 세례 파티는 술 파티로 바뀌고, 술 파티에 오렌지가 섞이고, 분위기는 금세 이상한 분위기로 바뀐다. 그리고 그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버트와 비벌리는 키스를 한다. 6명의 아이들과 두 병의 배우자, 그리고 본인들의 인생을 끔찍하게 바꾸어 버릴 이 사건을 저자는 이렇게 매우 모호한 분위기로 묘사한다.

 

"아름다움의 발명지가 되어온 이 도시에서 그녀는 아마도 그가 대화를 나눠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을 것이고, 단연코 부엌에서 옆에 서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핵심은 그녀의 아름다움이었고, 그 사실은 분명했지만, 거기에는 그 이상이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오렌지를 하나씩 건넬 때마다 그들이 손가락 사이에 작은 전류가 흘렀던 것이다. 그는 매번 그것을 느꼈고, 그 찌릿한 불꽃은 오렌지 자체만큼이나 생생했다." (P 30)

 

어쩌면 당사자들이나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회상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그때 버트가 집에 오지만 않았어도, 그가 진을 가지고 오지만 않았어도, 진에 오렌지를 넣지만 않았어도, 둘이 같이 오렌지를 만들지만 않았어도, 둘이 닫힌 공간에 있지 않았어도... 이런 상상을 수없이 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 아픈 과거를 매우 아름다운 색깔로 묘사하고 있다.

 

6명의 자녀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두 가정은 이혼을 하고 비벌리는 두 자녀들을 데리고 버트와 함께 버지니아로 가서 산다. 그리고 버트의 전 아내인 테레사는 4명의 자녀들을 키우다가 여름이면 그 네 명의 자녀들을 버트에게 보낸다. 결국 6명의 자녀는 여름이면 함께 시간을 보낸다. 결코 행복할 수 없는 8명의 식구의 여름 날들을 저자는 묘한 분위기로 묘사한다. 8명이 시장통과같이 북적이면서 보내던 여름 어느 날 버트가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날 8명은 왜건에 끼어 타서 호숫가의 모텔에 도착한다. 그러나 정작 버트와 비벌리는 다음날 점심까지 잠을 자고, 아이들끼리만 남자 6명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호수로 여행을 간다. 캐롤라인이 아빠에게 배운 옷걸이로 차 문을 여는 기술로 버트의 차를 열고, 아이들은 거기서 총과 술을 꺼내서 호수로 간다. 호수로 가는 무더운 길을 걸으며 캘은 자신이 챙겨온 알레르기 약을 나눠주고, 아이들은 알레르기 약을 술이나 콜라와 함께 먹는다. 다른 가정의 6명의 아이들, 낯선 호수길, 총, 알레르기 약, 진과 콜라. 이런 단어들과 묘사들이 마치 현실 세계가 아닌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뜨거운 오전 태양 아래 베나들릴 네 알과 크게 꿀꺽한 진 한 모금만큼의 잠을 자게 될 앨비 옆에 그들이 마신 캔을 내려놓았다. 캘은 홀리와 새 여동생들에게서 나머지 약을 받아 비닐봉지에 넣고, 그걸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초코바가 녹기 시작했고 총은 햇볕을 받아 뜨거웠다. 그들은 그것들을 전부 다시 종이 봉지에 넣고 호수로 향했다. 호수에 도착했을 때 그들 다섯은 부모와 함께 왔다면 허락받았을 만큼보다 더 멀리까지 헤엄쳤다. 프래니와 저넷은 동굴을 찾으러 갔다가 해안 작은 숲에서 서로 뚝 떨어져 있던 두 남자에게 낚시하는 법을 배웠다. 캘은 미끼 파는 가게에서 호호스 과자 한 봉지를 훔쳤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종이봉지에 든 총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P 122)

 

이 여름날의 경험 뒤에 프래리의 시각에서 이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 여름 내내 그런 식이었다. 그들 여섯이 함께한 매년 여름이 그런 식이었다. 그 나날이 늘 재미있었던 건 아니고 대부분의 나날이 재미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뭔가를, 진짜 뭔가를 하고도 결코 들키지 않았다." (P 123)

 

어떻게 이런 묘한 시선으로 폭풍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끔찍한 시절들을 묘사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은 소설의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읽으면서 조금 풀렸다. 이 소설은 자전적인 소설이고, 작가인 앤 패칫 역시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설 속의 이야기의 화자인 프래리가 바로 앤 패칫의 또 다른 자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한 시절을 작가 역시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경험했을 것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리뷰를 쓰는데 한참을 애를 먹었다. 과연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 분위기를 어떤 단어나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모호하면서도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한 과거의 묘사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저자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인생을 후회나 원망이 아닌, 그렇다고 긍정적인 시선도 아닌, 참으로 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끔찍하고 충격적이었던 과거도 돌이켜 보면 마치 꿈을 기억하듯 모호하고 담담하며, 어떤 때는 아름답기까지 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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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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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좋아해서 자주 읽다 보니 자주 오사카나 간사이 지방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간사이 지방이나 오사카라는 지명이 많이 언급된다. 오래전에 읽은 [예스터데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역시 간사이 지방 출신인데, 도쿄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도쿄 출신이면서도 간사이 사투리를 아주 멋들어지게 구사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는 간사이 사투리로 '예스터 데이'라는 노래를 개작해서 부르기도 한다. 왜 간사이 사투리를 사용하냐는 질문에 한신타이거스의 팬이어서 함께 응원하고 싶어서 사투리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소설을 읽으며 간사이 사투리가 어떤 느낌일까? 또 간사이 사람들에게 한신타이거스는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 느낌을 조금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 한국에 비교적 유명한 만화가 겸 에세이스트인 마스다 미리의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오사카 출신인 작가가 직접 이야기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특징과 오사카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본 문화를 잘 모르기에 오사카 사람들의 특징은 잘 모르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오사카 사람들은 매우 붙임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디 가서든지 쉽게 이야기하고 친해지는 분위기이다. 만화와 함께 진행되는 에세이에서 오사카 출신의 어머니와 함께 옷 가게를 가서 점원과 쉽게 친해져서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가게에서도 주인과 쉽게 친해져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더 재미있는 것은 작가는 일찍이 도쿄로 올라와서 표준말을 사용하는데, 물건을 깎을 때며 저절로 간사이 사투리를 사용하게 된다고 말한다.

 

점원이 샐러드를 담은 용기를 보여 주면서 확인한다.

"고객님,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데, 같은 값이라면 더욱 그렇잖아, 이 대목에서 내 뇌세포가 오사카 사투리를 긴급 소환했다.

"쬐금 더, 앞쪽의 큼직한 놈들도 넣어주면 안 될까요?"

점원이 흠칫 내 어굴을 쳐다 보았다.

내친 김에 연달아 공략하는 나

"어째 자투리가 많아 보이는데, 200그램이나 사니까 뭐냐, 좀 먹음직스러운 쪽도 넣어주셔야죠."

스스로도 우어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말, 오사카에 살던 시절엔 해본 적 없으니까.

- P 33

 

이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마트나 시장에서 흔히 보는 장면들이 연상되었다. 사투리를 써가며 물건을 깎아달라고 하면 점원도 웃으면서 그냥 수긍해 주는 경우가 있다. 사투리라는 것이 인간의 계산적인 논리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무언가 강력한 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사카 하면 역시 한신 타이거즈인가 보다. 이 책에서 한신 타이거즈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 한신타이거즈가 우승을 하면 오사카 사람들은 에비스바시라는 다리 위에서 도톤보리 강에 옷을 벗고 뛰어내린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다리 무너지겠네, 할 정도로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도톤보리 강에 뛰어들 집단과 나를 포함해 그걸 굳이 보러 온 집단. 에비스바시는 그야말로 할 일 없는 인간들의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다이빙하러 온 집단도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뛰어들 작정으로 온 그룹, 분위기에 취해 우쭐해서는 얼떨결에 뛰어들게 된 그룹. - 중략-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뛰어들 작정으로 온 사람은 티셔츠에 바지, 비치 샌들 같은 가벼운 복장이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에 휩쓸린 즉흥파는 퇴근길에 동료들과 구경 삼아 들른 정도니까 양복 차림이다. 양복이가 난간에 올라서면 구경꾼들이 당연히 대대적인 환영이다. '바-보, 바-보, 바-보'하는 열화와 같은 합창이 터지고, 양복입은 남자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일념으로 귀중품을 동료에게 맡기고 다리 밑으로 사라진다. 대체 젖은 양복으로 집에 어떻게 돌아갈 셈이었을까? 그 순간에는 뒷일 따위 안중에도 없었으리라" (P 39-40)

 

나 역시 2002년 월드컵을 경험했기에 이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여러 가지 오사카 사람들의 성향과 사투리 등을 이야기한다. 글과 그림으로 오사카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한국에서는 특정 지역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투나 유머들이 많다. 그 지역 사람들은 항상 ~~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나마 신사적이고, 악질적인 단어들을 붙이며 특정 지역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어떤 가수가 어느 지역에 가서 그 지역 사람들은 뿔이 난 줄 알고 있었다는 말로 인해 시끄럽다. 그만큼 한국 특정 지역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가 심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에는 이런 것들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도쿄 사람들이 오사카 사람들을 대할 때 비교적 친근감 있게 대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자신과 다른 상황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하는 내용들이 많이 언급된다. 일본보다 훨씬 작은 한국에서도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대하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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