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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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으로 2차 세계대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자신의 저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적응했는가는 묻지 말아 달라"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을 한다. 그리고 그 적응력이란 생존본능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방법을 택한다. 빅터 프랭클과 같이 혹독한 수용소나, 전쟁터의 참호 속, 그리고 독재국가의 집단 학살 속에서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택하고 그렇게 살아남는다.

그러나 이런 생존본능은 사회적인 극한 상황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는 우리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계속된다. 부모의 학대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일본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오카다 다카시가 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라는 책에는 바로 이렇게 자신만의 생존의 방법으로 힘겨운 삶을 이겨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책은 유명한 철학자나 문학가들이 어떻게 삶의 위기를 겪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이어갔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한 명은 쇼펜하우어이다. 그는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부자 상인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면서 쇼펜하우어와 갈등을 느낀다. 여러 번의 갈등 후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에게서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너에 대한 나의 의무는 끝났다. 그러니 내 집에서 나가거라. 나는 더 이상 네 일에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내게 편지 쓰지 마라. 네가 편지를 보내도 읽지 않을 테고 답장도 안 보낼 테니. 다 끝났다. 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너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아라. (P 45)"

이 글에서 아들에게 진저 머리를 치는 어머니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쇼펜하우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상에서 버려진 느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 아니었을까? 쇼펜하우어는 이런 과정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허무주의적인 철학이다. 삶의 허무함을 바라보고, 그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삶의 관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쇼펜하우어 만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는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노년까지 살았다. 지극히 낙관적으로 살고 있다고 보였던 사람이 자살하는 일도 있고, 자신감이 넘치고 늘 긍정적이며 어떤 어려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인물이 어이없이 꺾여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염세적인 철학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그의 인생을 지켜준 것은 아닐까 싶다. 인생에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는 것을 피하는 그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사랑받기를 포기하면 배신당해 낙담할 일도 없을 것이다. (P 51)"

 이 책에는 쇼펜하우어 외에도 헤르만 헤세, 조르주 상드, 서머싯 모음,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빅터 프랭클과 같이 유명한 철학자와 작가들이 삶을 이야기한다. 위대한 작품으로만 알았던 그들의 삶이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삶을 살았고, 결국 그들의 사상이나 예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사람이 '서머싯 몸'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잃고 목사인 작은아버지 밑에서 자란 '서머싯 몸'은 신학교를 가기를 원하는 작은아버지의 강요와 맞서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가진 재산을 탕진하고, 가난을 경험하고,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에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깨닫는다. 그렇게 인생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역설적으로 그는 삶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인생이 정해진 것이 아니면,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개척해 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깨달음에 대해 글로 남긴다.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셈이었다.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자신을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 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성공 역시 의미가 없었다. (P 142)"

서머싯 몸은 이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생의 굴레]라는 책을 출간했고,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며 아직 읽지 못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치열한 삶이 담긴 문학작품만큼 위대한 작품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무주의라는 철학이나 사상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며 삶의 위기와 자살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이런 사상들 역시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이 작가의 요지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놓은 원인은 대부분 어린 시절 가정의 위기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정이나 어머니로부터 받는 사랑을 '안전지대'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생은 어린 시절 가정과 부모의 품에서 안전지대로서의 안전감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안전감이 없이 자란 사람은 평생을 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음으로써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허함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단순히 안전감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모의 학대로서 부모의 올무 속에서 일평생을 끌려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육체적인 학대와 함께 정신적인 학대까지도 언급된다. 그중 하나가 그레이트 마더의 저주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이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런 어머니가 자녀에게 '너는 쓸모없는 존재다!' '네가 하는 것은 다 실수투성이다!' '네 삶은 엉망진창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런 어머니의 저주가 일평생 삶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학대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어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 어머니의 저주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이 책에는 일본 사회에서 부모로 인해 학대를 당해 삶이 피폐하진 여러 가지 사례가 나온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해 도둑질을 하고, 성적으로 유린 당하고, 마약까지 강요당하는 아들과 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에도 그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하고, 아버지에로 돌아가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한다. 결국 저자는 이런 굴레를 끊어야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부모와의 관계로 고민한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부정당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아도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늘 부모에게 긍정적인 말을 듣고 인정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은 그런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햇빛과 공기처럼 늘 변함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에게는 부모의 사랑은 변하기 쉽고, 여러 번 배신당해서 미덥지 않고, 의지할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다. 그럼에도 그 허무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어 늘 그것을 끌어안고 있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면서 헛된 노력과 도전, 기대와 포기 사이에서 흔들린다. 자식의 짝사랑으로 남아 있는 부모 자식 관계만큼 슬픈 것은 없다. (P 154-5)"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고, 또 지금 자녀를 키우는 내 상황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 역시 부모와 건강한 관계였다고 말할 수 없기에, 자녀에게는 안전지대가 되는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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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3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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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 2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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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타이밍 - 당신을 들어 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준비 과정
오스 힐먼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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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전 홀로 고독의 시기를 보낼 때 한 지인을 통해 이 책을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와 도전을 받았다. 올해 초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하나님의 타이밍'에 대해서 묵상해 본다.

이 책의 저자인 오스 힐먼은 한때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물론 신앙적으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업에 어려움이 생기고 아내와 갈등도 생긴다. 결국 아내와도 이혼하고 동료의 배신으로 모든 사업이 망하게 된다. 그는 절망 가운데서 군나르 윌슨이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가 저자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바로 '요셉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쓰시는 사람에게 비전을 주시고 바로 그 비전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시기를 통과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성경의 요셉이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패턴은 지금도 계속 반복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요셉의 삶 속에서 이 원칙을 본다. 하나님이 그에게 통치자가 되는 비전을 주셨지만, 그의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 속에 내던졌을 때 그 비전은 죽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 속에서도 이것을 본다. 예수께서 그들이 다가올 나라에서 지도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실 때 그 비전도 함께 죽었다. 이 패턴은 명확하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전을 주신다. 그다음엔 그 비전이 죽는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새롭고도 놀라운 형태로 그 비전을 부활시키신다! (P 57)

 

저자는 이런 요셉 프로젝트를 통신 블랙홀이란 단어로 설명한다. 마치 우주비행사가 우주 공간에서 지상과의 통신이 두절되는 시기와 장소가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이런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요셉 구덩이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통신 블랙홀'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 것이다. 역경의 구덩이 속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고 있다고, 내 삶은 통제 불능 상태이며 하나님은 묵인하신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블랙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혼자 격리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심지어 그분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될 수 있다. (P 52)

 

이 책에서는 저자가 바로 이런 요셉의 구덩이와 통신 블랙홀 속에 빠진 상태를 걸어온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여러 가지 조언 중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이 기간을 마치 마라톤에 비유하며, 자신을 절제하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조언하는 것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역경의 스트레스를 처리하려면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유지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몹시 지치면 인내하지 못하고 곧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역경을 지날 때엔 특히 염세주의자들과 비난하는 자들과 악독한 자들을 주의해야 한다. 부디 낙천적인 자들이나 격려하는 자들과 함께 하라. 믿음의 사람을 찾으라. (P 123)

 

요셉처럼 입구가 보이지 않는 구덩이 속에 던져져서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이나, 입구가 보이지 않는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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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근현대사 - 제국 지배에서 민족국가로
오승은 지음 / 책과함께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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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특히 동유럽 역사에 관심이 많아 이 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의 동유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함께 이동한 동유럽의 여런 민족들의 투쟁과 분단의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동유럽의 근대와 현대의 모습을 매우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책일 것 같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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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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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급한 약속을 앞두고 약속 장소인 건물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 입구에 버젓이 차 한 대가 주차해 있는 것이었다. 차에는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연락이 되지를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주변 가계들에 들어가 차 주인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생한 후 피자가게에서 가족들과 피자를 먹고 있는 차 주인을 발견했다. 지긋한 나이의 아저씨의 풍채를 가진 차 주인은 투덜거리며 나왔다. 아무 말없이 자신의 차로 다가가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이곳에 주차를 하시면 어떻게 하시냐?"라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여기에 주차하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냐?"라며 소리를 치며 흥분을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피자를 먹던 아내와 자녀들까지 와서 말리고, 나도 죄송하다고 말해서 겨우 돌려보낼 수가 있었다. 생각할수록 씁쓸한 기억이었지만, 이것보다도 더 씁쓸한 것은 이런 비슷한 상황들을 자주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사람들을 봐도, 또 그런 사람을 만났구나 생각하고 피해 다니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과 언쟁을 해 봤자 어차피 그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만 피곤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이런 안하무인인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오찬호 작가의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부끄러운 사회에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고, 냉정한 사람들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사회나 타인의 부조리에 대항하기보다는 자기 역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감정 오작동' 사회라고 말한다. 뜨거워야 할 때 오히려 냉정하고, 냉정해야 할 일에는 오히려 뜨겁게 열을 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꼬는 표현이다.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과 그 안에서 엘리트가 된 이들이 만들어 놓은 엉성한 사회구조 안에서 많은 이들이 평생 바쁘게만 살아간다. 어릴 때부터 오직 대학입시와 취업을 위한 인생설계도에 맞추어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공기는 너무나도 차다. 공공선을 위해 뜨거워질 순간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각자도생'의 삶에는 지나친 뜨거움으로 매진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낯 뜨거워질 순간을 잘 모른다. 남은 괜찮지 않은데 당당하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뜨거운 심장은 온데간데없다. 자신의 발버둥에 아파하는 누구의 허우적거림에는 냉정하다. 쓸데없는 열정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무례한 차가움으로 주변을 내친다. 서로가 칼을 겨누고 찌르니 '하나도 안 괜찮은' 사람만 늘어간다.(P 9)"

이 책에는 언제부터인가 나만의 입장, 나만의 방식을 주장함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꼰대라고 부르는 나름대로 사회적 권위가 있다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자신이 나름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더욱더 함부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저자가 경험한 최고의 꼰대는 K 교수라고 부르는 권위 있는 교수이다. 저자가 어느 날 K 교수에게 특강을 부탁하는 연락을 받고 거절할 수가 없어서 먼 강의 장소까지 지 힘들게 도착했다. 그곳에서 예정에도 없던 100분의 강의를 하고 난 후, 저자가 받은 것은 K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쓴 저자의 성의 없는 독후감이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K 교수가 자신의 공강을 메꾸기 위해 저자를 불러다가 강의를 시키고, 강의료 대신 학생들에게 저자의 독후감을 리포트로 준비 시킨 것이다. 결국 저자는 고생고생하며 무료로 K 교수의 강의를 메꾸는 역할만 한 것이다. 어찌 저자뿐일까? 우리 사회에서 어느 분야에서나 이런 권위주의적인 갑질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런 비합리적인 대우를 참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타 집단에 대해 배척하고 차별하는 문화 역시 우리 사회의 감정 오작동의 한 부분이다. 특별히 이 책에서는 특정 계급과 특정 성별, 특정 집단들이 주도를 하고 있는 차별 문화의 민낯을 드러낸다. 계층 간에, 남녀 간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차별 문화를 이야기한다. 학벌과 부를 통해 자신만의 권위를 만든 계층들이 자신보다 낮은 계층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어둡고 구역질 나는 사회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신문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스스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이기에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매번 이런 차별 문화를 접한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살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살 때는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을 선을 긋고, 강남 중심의 세상을 외치는 소리를 신물 나게 들었었다. 이사를 하며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강남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곳에 살아보니 이제는 동구와 서구로 나누고 특정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반대 지역은 빈민촌처럼 비하하는 사람들의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지금은 서울의 외곽의 작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도 작은 동네를 상단과 하단이라는 명칭으로 나누고, 아파트 위주의 상단 지역 사람들이 빌라 중심의 하단 지역을 폄하하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과연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이런 집단이기주의 문화와 차별의 문화가 뿌리박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우리나라 문화나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와 개인의 변화는 거창한 혁명이나 정치적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각자 안에 가지고 있는 부끄러움에 대한 감정들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나 정치적인 변화가 아닌, 개인적인 의식의 변화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찾고, 세상의 불합리한 문화에 따라가지 않을 때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강의와 책들이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알려져서 우리 안의 감정 오작동의 병들이 치유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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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커리어 - 업의 발견 업의 실행 업의 완성, 개정판
박상배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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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 이름을 날리던 [아마겟돈]이란 영화가 있다. 지구로 소행성이 다가오자, 나사는 이 소행성을 파괴하기 위해 유명한 굴착기 전문가를 찾는다. 사람들은 이 분야에서 최고는 해리 스템퍼(브루스 윌리스)라고 말한다. 우주비행훈련을 전혀 받아 본 적도 없고, 아무런 비행 지식도 없는 해리를 나사 전 인원이 공을 들여 훈련을 시킨다. 이 일을 해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나이가 들어서도 저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 사람밖에는 이 일을 못 해냅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사람, 그래서 사방에서 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

[빅 커리어]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젊어서 2-30년 일하고, 4-50년을 노후로 보내야 하는 시대, 40만 넘으면 퇴직을 압박받는 시대, 단순노동을 인공지능이 대치하는 4차 혁명 시대, 과연 이런 시대에 끝가지 자기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이렇게 자신만의 가치를 만드는 일을 빅 커리어라고 정의한다. 자신이 일할 수 있는 시기에 빅 커리어를 쌓아서, 남들이 은퇴할 때에도 자신만의 일의 가치를 인정받으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마는 것이 가능하냐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실현한 사람도 많다. 다만 영원한 현역은 31-50세 20년을 잘 보내며 빅 커리어를 쌓을 때만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다. 인생의 황금기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만 하라는 게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현역으로 남ㅇ르 ㅅ 있도록 자신만의 커리어를 갖추라는 의미이다. (P 17)"

저자는 이런 빅 커리어를 갖추기 위해서 인생의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고 설계하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인생의 설계는 4단계로 나누어진다. 학업, 의업, 근업, 전업이다. 학업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움의 과정인 30세까지의 과정이다. 의업은 앞에서 말한 31-50세의 시기로 일을 하면서 일의 의미를 발견하며 열심히 일하는 시기이다. 근업은 51-70세의 과정으로 자신이 젊었을 때 한 일을 숙련시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전업은 70세 이후의 과정으로 자신의 경력을 타인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베푸는 시기이다.

결국 31-50세의 의업의 시기에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 후의 인생의 시기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일에 치여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정신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기에 일의 의미를 발견하고, 단순한 노동자가 아닌 자신의 일의 전문가가 되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의업의 단계를 다시 습득자, 근로자, 숙련자, 창조자로 나눈다. 단순히 일을 배워서 익히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창조적인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의업의 시기를 보내기 위해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이 독서와 업무처리 능력 등을 조언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인 저자의 조언에서는 동감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취사선택을 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주변에서 가끔 나이 든 분과 대화를 하다가 그분들의 연세를 듣고 깜짝 놀랄 때가 많이 있다. 70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무척 건강해 보일 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세가 드셔서 은퇴하시고, 젊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 눈치를 받으며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찾아와서 일을 부탁하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멋질까? 나만의 빅 커리어를 만들라는 부분은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이면서도 어려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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