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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기에, 친구 집에 놀라가면 제일 먼저 책장을 구경했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과 비슷한 책들이 있으면,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책에 대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유명한 서평가인 조 퀴넌의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의 책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스스로 애서가라고 말하는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전자책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는 것보다, 꼭 자기 책을 구입해서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책에 자기 이름을 적고, 때로는 줄을 치며, 정독을 해서 읽는다. 이런 독서의 경험을 통해 책의 저자와 깊은 대화를 나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마치 가톨릭의 영성체와 같은 경험으로 비유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속 정체불명의 만찬실에서 작가와 사적으로 영성체를 나눈다. 한 번은 어떤 친구가 자기는 솔 벨로가 아주 오래전부터 주위에서 얼쩡대던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그래서 자기에게 뭔가 한 수 가르쳐줄 수 있는 것 같아서 그의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느끼는 기분이 딱 그렇다. -중략-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책을 통해 직접 그들에게 말을 건다고, 나아가 그들을 돌봐주고 치유해준다고 느낀다. 그들은 종종 작가가 성체를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P 38)"
그러기에 저자는 책을 한 권 한 권 소장하면서, 때로는 그 책을 반복적으로 읽는다. 저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로 인해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그 책을 가지고 못함을 아쉽게 느낀다.
"[보봐리 부인], [이방인], [네이티브 선], [러브드 원], [전쟁과 평화]를 10대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읽었던 판본 그대로 갖고 있지 않은 점은 애석하다. 이 책들의 일부는 본가에 남겨두고 왔는데 부모님이 갈라서는 바람에 전쟁 사상자 꼴이 났다. 이미 옛날에 없어진 책들이고 어떻게 처분됐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 책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책이란 그렇다. 그 책들들이 아직 내 수중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 책들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내가 어떤 대목에 줄을 그었는지 확인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내 시각이 변했는지 알고 싶어라. 여전히 그 책들이 나를 압도하는지 알고 싶어라. (P 45)"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청소년과 청년 때에 읽었던 책들을 바리바리 싸아들고 이사를 하다가, 결국 몇 년 전 이사하면서 많은 양을 버렸다. 그중에는 이제는 사라진 범우사 출판사의 세계문학들이 많이 있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등... 모두 새로운 출판사의 새책들을 가지고 있기에 짐만 된다고 생각하고 버렸었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 그 책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저자의 글처럼 나도 그 책의 어느 부분에 밑줄을 쳤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
이렇게 보면 저자는 무척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독서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책에 나와있는 저자의 책 읽는 습관의 조금 괴팍하기까지 하다. 먼저 저자는 남이 자신에게 읽기 싫은 책을 주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는 철저히 자신이 읽고 싶은 책만 읽고, 읽기 싫은 책은 손을 대지 않는다. 서평가라는 직업으로 인해 때로는 돈과 관련되어 읽기 싫은 책도 읽고 서평을 쓸 때가 있지만, 그 후에는 절대로 그 책을 손도 대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이런 습관은 더 심해졌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자신이 죽기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를 대략 계산하고, 그 안에서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읽고자 한다. 이 부분에서는 책에 대한 저자의 간절함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보험 통계상의 기대 수명까지 산다면 책을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까 오래전에 계산해봤다. 그때 2,138권이라는 답이 나왔다. -중략 - 걸작 500권, 가벼운 구전 500권, 진짜 천재들의 간과된 작품 500권, 특이한 책 500권, 일급 쓰레기 138권을 읽을 시간이 원칙적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쓰레기는 너무 바보 같아서 읽고 있으면 심장이 뛰고 이빨이 딱딱 부딪치는 책이다. 이 유토피아적인 미래에 [하이호, 스티브라노!]에 내줄 시간은 없다. 진짜 프로의 손으로 빚어낸 순도 100퍼센트의 아둔함은 신명 날 수 있다. 엉성함은 그냥 엉성하다. (P 188)"
또 저자는 사립학교 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이라는 든지, 양키스와 같은 특정 운동팀의 이름이 등장하는 책등은 철저하게 읽지 않는 조금 괴팍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데이비드 베니오프의 [도둑들의 도시]를 읽다가 이 책의 주인공이 나중에 양키스의 팬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덮고, 동네 도서관에 기증했다고까지 한다.
저자의 글처럼 이제는 점점 책을 읽어가는 사람들이 적어가고, 특히 종이책을 수집해가며 읽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 책들이 주는 삶의 풍성함은 어떤 것으로 대치될 수가 없다. 저자는 그런 풍성함을 점점 읽어가는 세대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신의 책과의 소중한 경험을 또 다른 자신의 책으로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