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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매트릭스라는 영화 속의 주인공 네오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항상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어느날 모피어스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 진실을 알고 싶으면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말한다. 우연곡절 끝에 만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매트릭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매트릭스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스템 속에 길들여 있기에 이 세계의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며 진실을 알고 싶냐고 묻는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파란약과 빨간 약을 주며 선택을 하게 한다. 파란약을 먹으면 그동안 네오가 가졌던 모든 의심을 잊어버리고 다시 평범하게 시스템 속에 적응하며 살게 된다. 반면 빨간약을 먹으며 시스템 속에 벗어나 실제 세계를 보게 된다. 네오는 빨간약을 먹고 그 순간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 시스템에서 깨어나서 현실 속의 세계를 보게 된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본 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네오가 매트릭스 밖의 현실 세계에서 눈을 뜨는 장면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이게 뭐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가상세계였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와 비슷한 충격을 다시금 받았다. 지난 해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촛불을 들었다. 그 후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실체가 점점 밝혀지기 시작했다. 비선실세라는 소수의 사람을 통해 움직이는 세계, 권력과 대기업의 유착관계, 정보기관에 의한 여론조작, 언론과 방송계를 움직이는 검은 손들. 결국 그동안 우리가 알고 믿었던 세계는 소수의 몇 명에 의해 조작된 세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조작된 세계의 시스템 속에 살고 있던 또 다른 네오가 아니었을까.
[고요한 밤의 눈]이란 책은 이런 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출간된 책이다. 출간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약간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저자가 만든 상상의 세계일뿐인가. 아니면 저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카프카와 같은 비틀기를 통해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세계일까. 최근에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현대소설 중에서 같은 소설을 두 번 읽는 경험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현실이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 이 소설 속의 세계가 단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 소설이 예언적 소설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저자는 묘한 상징과 은유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은 X라는 남자가 십 개월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X는 15 년간의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마지막 기억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었다. X는 잃어버린 자신이 누군지를 찾는다. 그가 발견한 자신은 유명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이자, 동시에 스파이였음을 알게 된다. 또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 준 Y와는 대학시절에 연인사이였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여기까지는 흔한 스파이소설과 비슷하다. 영화로 더 유명한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본 아이덴티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스파이라는 직업은 참 특이하다. 이 소설 속의 스파이는 보통 스파이 소설의 스파이처럼 국가를 위해 타국에서 자신을 숨기면서 암살이나 기밀을 수집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소수의 엘리트층으로서 자신을 숨기며 자신이 속한 세계가 유지되도록 일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로 나누어진 세계를 유지하고, 대다수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소수의 지배자들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시스템을 만들어간다. 그를 위해 언론과 여론, 문화 등을 조작한다. 이들은 철저한 비밀 속에서 점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스파이의 조직의 리더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X는 자신이 스파이라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X는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이 스파이 일을 관두려 했고, 조직은 그런 자신을 잡아두기 위해 Y라는 스파이를 통해 그의 기억을 조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X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Y를 옆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스파이의 일을 계속한다.
이와 함께 D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어느 순간 사라진 언니를 대신해 정신과 의사의 역학을 대신하다가 X와 상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세계가 어떤 조직에 의해 조작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스파이 조직의 중간 간부인 B라는 남성도 등장한다. 그는 Y의 상사이기도 하다. 그는 소수의 몇 사람이 세상을 조작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조작된 세상을 당연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점차 그 일에 회의를 느끼고 조직의 정책에 반대한다. 처음 그가 조직의 정책에 반대한 것은 너무나 강압적인 정책은 반드시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 온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시스템에 반대하기 위해 조직에 반대를 든 게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의 정책에 반대한 것이었다.
"세상은 지배하기 더 쉬워졌다.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며 그저 그렇게 살다 죽는 건 억울한 일이 아니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 원망해야 하는 건 오로지 당신 자신뿐이다. 그래서 자살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자꾸 일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 먹이사슬의 바닥을 장식할 인간들이 사라지는 것이니까. 최소한의 삶의 조건마저 고려하지 않은 생지옥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으면서도 자신들만의 세계는 굳게 유지되리가로 믿는 근거가 나는 정말 궁금하다. (P 209)"
그러나 B의 이런 생각은 감성주의자라는 비판과 함께 무시된다. 그리고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B는 조직에서 배제되고, 그와 함께 자신의 일에 점차 회의를 느낀다. B가 스파이 조직에 회의를 느낄 때 쯤 X와 Y 역시 은밀히 스파이 조직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이들은 스파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스파이에 의해 세계가 어떻게 조작되기 시작되었는지 그 시초를 찾아나간다.
소설은 마치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것처럼 모호한 이미지와 암시로 가득 차 있다. 그러기에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그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을 너무나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B는 어느날 백화점에서 자신이 산 명품을 바꾸러 간다. 매장 직원은 귀찮은 듯이 그를 대한다. 매니저는 규정에 없지만 바꾸어주겠다고 선심을 쓰듯이 말한다. 음지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숨기고 살던 B는 내면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B는 아무렇지 않게 매장의 한쪽 진열장 벽면을 가리키며, 거기 있는 모든 물건을 포장해 달라고 한다. 직원들이 반신반의하자 그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카드는 등급을 의미한다. 그의 신용카드의 등급을 확인하고 매니저와 매장 직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이제 B는 귀찮은 존재에서 두려운 존재가 된다. 힘들게 포장한 물건들은 B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서 반품을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위 계급들만 할 수 있는 갑질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하자, 그들은 B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소설 속의 이 작은 에피소드는 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스템에 순응하고 있고, 이런 시스템을 소수의 사람들이 조작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소설 속에서는Z라는 소설가도 등장한다. 스파이 조직은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B를 통해 Y에게 감시하게 만든다. 그러나 Y가 보기에는 그는 작품 한 편 제대로 못 쓰는 현 시스템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미 X는 소설 속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의 시스템을 언급하고 있었다. 모두들 당연시 여기는 시스템 안의 세계를 소설을 통해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X는 세계의 시스템 바깥에서 시스템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매트릭스의 영화의 네오처럼 자신이 속한 세계가 조작된 세계임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스파이가 하는 일은 그가 시스템 바깥에서 시스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 들어와서 시스템 속에 속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스파이 조직은 문화단체를 움직여 Z에게 창작 지원금을 받게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비판하는 글을 쓸 때마다 그 지원금의 액수를 줄인다. 결국 Z는 조금씩 시스템 안을 편입되어 가는 자신을 느낀다. 이 부분을 읽으며 지난 정권의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예견하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아무도 모르던 세계를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미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속의 Z는 저자였을까. 그리고 저자는 이 세계의 조작된 시스템을 미리 보고 있었던 것일까.
스파이가 하는 일은 젊은 세대들이 점점 비판의식 없이 세계의 시스템 속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에게서 제거해야 할 것이 바로 ‘사색’이다. 그리고 사색의 도구는 소설과 같은 책이다. 그들은 시스템을 통해 이들을 몰아붙임으로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 간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릴 뿐, 자신이 왜 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사색이다. 사색은 시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여서 내면에 관한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고작 나루 수 있는 대화는 매달의 카드대금과 아파트 대출금, 미래에 대한 건 돈 걱정뿐이어야 한다. 더 깊이 고민하는 건 절대 불가능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나. 생각하고 생각하면 위험해진다. (P 145)"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우리가 속한 세계를 분석하고, 그 세계 속에 사는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바로 일어날 한국사회의 변혁을 알리는 예언적인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에서 눈을 뜨는 X와 Y, B, 그리고 Z와 같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바꾸고 붕괴시킬 것을 이야기한다.
"요즘 우리의 저항은 어쩌면 안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린 아마 안 될 것야, 해봤자 아무 소용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냉정한 비관 속에서 우리는 지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했는지 모릅니다. 미래에 타임머신이 있어서 무언가를 바로 잡으려 할 때 결정적인 시점, 최우의 시간이 언제일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희망입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결정해야 합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아니, 무엇이 중요한지를. (P 286)"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소설에서 말하는 스파이란 누구일까 라고 생각을 해 보았다. 소설 속에서 스파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세계의 시스템을 조작하고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서 그들 역시 시스템 속에 속해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자신의 진정한 실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시스템 속에 안락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스파이란 이 세계의 시스템 속에 안락하게 살면서,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소설의 위기라고 한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으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습을 발견하고, 변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소설은 의식 속의 모호한 세계만을 헤매고 있다. 또한 많은 출판사들이 소설 대신 자기계발서적이나 경제서적을 출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색과는 멀어진 채 점점 시스템 속에 동화되어가 있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책이야 말로 우리를 이 세계의 참 모습을 보게 하고 조작된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책을 만드는 사람을 ‘키맨’이라고 부른다. 과연 이 세대에서 우리는 다시금 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열쇠와 그런 열쇠를 만드는 ‘키맨’을 다시금 만나 볼 수 있을까. 진정한 변혁은 단순히 정치적인 구호나 운동으로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될 때 진정한 변혁이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이런 의식의 변화에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책들이 있었다. 과연 이 시대에 이런 책들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금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위대한 소설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