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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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한 남자를 따라 걸어갔다. 남자 역시 우산도 없이 도시의 뒷골목 속으로 걸어갔다. 해가 질 무렵의 도시의 뒷골목은 더러운 조명들과 빗물로 인해 검붉은색을 띠었다. 담벼락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쓰레기 봉지와 그 봉지를 뒤지다가 갑자기 뛰쳐 도망가는 고양이만이 보였다. 도대체 이 남자는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어디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걸까. 그를 따라 들어가지만, 그가 도달한 끝이 어딜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그를 따라가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려지는 이미지이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가 마치 도스토옙스키라는 남자가 걸어간 그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는 느낌이다.

젊은 날에는 매일같이 나 자신에게 실망했었다. 스스로 위대하고 순수한 영혼이라고 생각하다가, 금세 진흙탕 속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자기 환멸과 세상에 대한 증오에 휩쌓였다. 그때 처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페테르부르크의 어두운 뒷골목 속의 더 어둡고 침침한 방에 웅크리고 있던 라스콜리코프는 스스로를 나폴레옹과 같은 위대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는 인류를 위해 해충 같은 인간을 죽일 특권이 주어진다. 라스콜리코프는 자신을 그런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이웃집 노파를 해충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완전범죄에 가까운 범죄와 노파와 노파의 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그에게 있어서 살인은 더러운 범죄가 아니라 위대한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그렇게 위대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살인 후의 지독한 육체적 열병에 시달린다. 육체적 열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매일 밤 그의 마음속을 찾아오는 어두운 공포이다. 라스콜리코프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어두운 자아는 매일 밤 그를 끝도 모르는 심연으로 끌고 간다. 마치 코카서스 언덕 위에서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 같은 절망이 그를 덮친다. 이렇게 소설은 라스콜리코프의 살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살인 후에 찾아오는 내면의 갈등과 공포를 그리고 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도스토옙스키를 현대 심리소설의 시초로 부른다. 현대의 많은 소설가들의 작품 속에서 또 다른 라스콜리코프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죄와 벌]을 읽고 그의 마지막 대작 [카라마조프가네 형제들]을 읽으며 느낀 것은 그가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속에서 탐구한 것은 단순히 인간의 심리나 내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소설 속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은 인간의 영혼이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할 수 없는, 종교나 철학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어둡고 신비한 깊이를 그는 소설로 드러내고자 시도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그가 탐구한 어둡고 신비로운 인간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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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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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마다 독특한 향기와 색깔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를 좋아하지만, 신맛이나 쓴맛을 강조하는 커피들도 있다. 쓴맛의 커피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다크 로스팅 된 커피를 마셔보고 커피 특유의 쓴맛과 향기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커피의 본래의 맛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 소설과 탐정 소설들을 좋아하는 독자들 역시 각자 좋아하는 맛이 틀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설의 본래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레이먼드 챈들러나 하라 료의 소설 등을 권하고 싶다. 레이먼드 챈들러나 하라 료의 주인공들은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강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사건의 무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세상 앞에 당당하게 맞서고, 매혹적인 여성들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하라 료가 창조한 대표적인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첫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골목의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와타나베 사와자키의 탐정 사무소이다. 탐정 사무소의 이름은 두 명이지만, 사와자키만이 이 쓸쓸한 공간을 혼자 지키고 있다. 5년 전 와타나베가 경찰과 폭력조직의 거래에 이용되는 척하다가 1억 엔과 필로폰을 가지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혼자 남은 사와자키는 경찰이나 폭력조직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탐정의 역할을 감당한다.

소설은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사와자키에게 오른손을 호주머니 속에 감춘 남자가 찾아오며서 시작된다. 그는 사와자키에게 다짜고짜 '사에키 나오키'라는 르포라이터가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에 머뭇거리는 사와자키에게 얼마를 요구하냐며 거금의 돈 봉투를 던져 놓고 간다. 이름을 묻자 그는 자신을 '가이후'라고만 소개한다.

그런데 얼마 후 또 전화가 온다. 일본의 대기업의 고문이며, 유명 미술평론가인 사라시나의 변호사가 그에게 '사에키 나오키'를 아느냐고 전화를 해 온 것이다. 그리고 사와자키를 자신의 대저택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라시나이의 딸이자, 사에키 나오키의 아내인 사에키 나오코를 만난다. 묘한 향수 향기를 품기며 자신의 남편을 찾아달라는 나오코와 함께 사에키의 숙소에 찾아간 사와자키는 숙소에서 총에 맞아 죽어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과연 사에키 나오키는 왜 사라졌고, 사람들은 왜 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을까? 사에키 나오키와 그를 찾으려는 가이후를 찾아가면서 사와자키는 도쿄 도지사 선거와 관련된 저격사건까지 쫓아가게 된다. 결국 기업과 정치, 그리고 돈에 얽힌 복잡하고도 잔인한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하라 료가 창조한 탐정 사와자키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돈과 권력의 협박이나 여성의 유혹 등에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수사한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듯한 그의 무심한 태도 앞에 조직폭력배까지도 한 수 접어 줄 정도이다.

"내가 왜 널 죽이지 않는지 알아? 야쿠자가 누군가를 죽일 때는 자기보다 상대가 잃을 게 많다는 손익계산이 있기 때문이야. 세상 사람들이 야쿠자를 두려워하는 것도 그 손익계산이 되기 때문이지, 야쿠자와 서로 죽인다 해도 상대편이 훨씬 손해거든. 상대는 슬퍼할 부모가 있고, 보복을 두려워할 마누라가 있고, 길거리를 헤맬 자식이 있고, 멍청한 짓을 했다고 꾸짖을 친구가 있어, 그래서 야쿠자를 건드리지 않는 거야. 그런데 넌 뭐야? 지금 널 죽여봤자 내가 너보다 잃을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시즈메의 눈에 내가 그렇게 보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P 121)"

소설은 시종일관 매우 거칠다. 사와자키는 그의 성격처럼 좌우충돌하며 사건의 핵심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에도 치밀하게 사건을 조사하고,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사건을 발견해 낸다. 이 소설은 이미 오래전에 출간되었던 책인데, 최근에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최신간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가 출간되면서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앞에 언급한 쓴맛의 커피처럼, 탐정 소설의 본연의 묵직한 맛을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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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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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프로이트가 전지전능한 인생의 해석자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모든 원인을 과거와 타인에게 돌린다. 내 모습에 절망하는 이들에게 프로이트는 이렇게 위로한다. '네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과거의 탓이야!' '네가 비뚤어진 것은 모두 부모의 학대 때문이야!' '네 잘못이 아니니, 너를 학대할 필요 없어!' 인생의 절망에 빠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프로이트는 잠시의 위로를 준다. 그러나 그렇게 프로이트와 친구가 되어 과거에만 얽매여 있다면 우리는 과연 앞으로 나갈 수가 있을까?

프로이트에 익숙한 한 젊은이가 늙은 철학자를 찾아온다. 이 젊은이는 자기혐오와 세상과 타인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세상은 복잡하며, 인생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늙은 철학자는 세상은 단순하며 오늘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은이는 철학자에게 따지듯 질문하고, 철학자는 젊은이에게 차근차근 아들러의 심리학을 설명해 준다. 이것이 바로 기시마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의 내용이다. 이 책은 아들러의 심리학을 대화 형식은 일반인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고 있다.

프로이트에게 친숙한 현대인에게는 아들러의 심리학은 다소 생소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한다. 먼저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개념을 완전히 부정한다. 트라우마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자신이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목적 때문에 트라우마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과거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빠져 사회생활과 대인 관계를 포기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울타리 속에 칩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트라우마를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의 감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분노에 빠져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사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분노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트라우마 이론을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허을 통해서 받은 충격 - 즉 트라우마 -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괴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P 36)"

"말 그대로일세,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는 말이지. 가령 엄청난 재해를 당했거나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았다면, 그런 일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네. 분명히 영향이 남을 테재.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무언가를 결정하지는 안는다는 점이야.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P 37)"

이렇게 말하면 프로이트의 트라우마라는 개념 속에 숨어있던 사람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과거의 상처 나 타인의 잘못 때문이며 자기 책임을 회피하던 사람은 아들러의 심리학에 벌거벗은 것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아들러에 의미면 인생은 결국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불행한 상태에서 벗어나 행복한 상태가 되는 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들러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용기'이다. 익숙한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금 불현하고 부자유스럽긴 해도, 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대로 변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편하니까. - 중략- 비유하자면 오래 탄 차를 운전하는 상태인 거네. 다소 덜거덕거려도 차의 상태를 고려해가며 몰면 되지. 하지만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하면 새로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눈앞의 일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몰라. 매리를 예측할 수 없어서 불안한 삶을 살게 되지. 더 힘들고, 더 불행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즉 인간은 이런저런 불만이 있다라도 '이대로의 나'로 사는 편이 편하고, 안심되는 거지.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P 62-3)"

이 용기에는 심지어 타인에게 미움받을 용기까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정한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거라고 말한다. 타인의 시각에서 자유로워져서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열등감 역시 타인의 시각에서 남과 타인을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 자네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자네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일세. (P 186)"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자유롭게 살 수 없지. (P 187)"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세상과 타인에 대한 원망의 옷으로 감추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책 속의 철학자와 대화하는 젊은이는 매번 소리를 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냐고. 그런데 이런 젊은이의 목소리가 읽는 동안 내 안에서 똑같이 울려 나온다. 그러나 젊은이가 점점 아들러의 심리학을 받아들이고 자신에 대한 책임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듯이,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아들러의 심리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나를 얽매고 있던 것들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지나치게 세상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꼭 읽도록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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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폴라 데일리 지음, 최필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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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카페에 가면 여성 잡지나 인테리어 잡지 등을 보게 된다. 그곳에는 유럽풍 구조와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배경으로 가족이 함께 행복사는 모습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리고 유명인사나 연예인들의 행복한 가정생활에 대한 인터뷰 기사의 글들을 실려 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면 과연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일 뿐 이들 역시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에 어두운 부분이 한두 가지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우리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어두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퍼펙트 마더]라는 소설은 영국의 호숫가의 부유한 별장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릴러 소설이다. 리사는 이 별장 마을 외곽에서 큰 딸과 두 아들을 키우며 사는 맞벌이 부부이다. 남편은 택시 운전을 하고 리사는 동물보호소에서 일을 한다. 둘이 정신없이 살지만 생활은 항상 적자이다. 리사에게는 케이트라는 마을 친구가 있다. 그녀는 부유하며. 깔끔한 성격의 남편과 완벽해 보이는 두 자녀를 키운다. 케이트는 살림에서부터 양육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완벽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자신과 훨씬 생활수준의 격차가 나는 리사의 가족과 친근하게 지낸다. 리사와 케이트의 자녀들 역시 사로 또래여서 친구로 지낸다.

그런데 어느 날 케이트의 딸 루신다가 사라진다. 루신다가 사라진 날은 리사의 집에서 자고 오기로 한 나리었다. 루신다가 오지 않자, 케이트는 일이 있어 오지 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간 루신다는 사라진다. 마을에는 13세 소녀들만을 납치해 약물을 먹이고 성폭행을 하는 범행이 발생하고 있었다. 리사는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루신다가 오지 않은 것을 케이티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루신다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 후 소설은 루신다를 찾는 수사의 과정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완벽해만 보이는 케이트의 가정에 이상한 부분들이 드러난다. 젠틀해 보이던 케이트의 남편은 마을 외곽의 별장에서 자신만의 은신처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완벽하고 따스한 엄마인 케이트는 정신과 치료와 약물을 받고 있었다. 엄친아 딸의 전형이 사라진 루신다는 알지 못하는 남자 어른을 만나고 있었다. 리사의 가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록 물질적으론 풍요롭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리사와 남편 조 사이에도 무언가 문제가 드러난다. 오로지 리사만을 사랑하는 조에게 가끔씩 나타나는 무관심과 신경질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평온하고 완벽해 보이는 가정들 속에 드러나는 미세한 균열과 그 균열 속에서 보이는 어두운 모습들이 읽는 사람을 소설 속으로 점점 빨아들인다.

소설은 스토리보다는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는 미스터리적인 분위기가 더 압권적이다. 이 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니, 고요한 호수가 마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런 미스터리한 분위가 물씬 풍기는 드라마가 될 거라고 예상을 해 본다.

스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작가는 여러 가지 떡밥을 던지면서 모두가 범인일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결된다. 소설을 읽은 후에 알았지만 작가가 살고 있는 곳도 소설의 배경인 마을이고, 그곳에서 남편과 세 자녀와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에 나오는 스피키라는 개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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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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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가 인기이다. 고아라가 연기를 하고 있는 주인공 박차오름 판사는 어렸을 때 성폭력을 경험한 후 판사가 되었다. 그녀는 법조계의 여성에 대한 부당한 현실과 자신들이 재판하는 억울한 일을 당한 여성들의 현실과 싸운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한 인터 여직원이 자신을 성희롱하는 부장을 고발했다. 부장을 중심으로 한 회사와 조직은 철저하게 여직원을 왕따시키고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사소한 일로 한 가정의 가장의 밥줄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여직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팀은 매우 좋은 팀워크를 가졌고, 여직원은 예민한 성격이기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몰아붙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사원들은 여기에 동참한다. 결국 한 여직원의 폭로로 재판은 반전을 하게 된다.

드라마를 보면서 여성 혼자 힘으로 조직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조직과 싸우는 것은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다. 조직 구석구석에 숨어있고, 가정과 사회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관습의 힘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 것이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아랫사람은 이래야 한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다! 그런 당연하다는 생각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한 개인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 일일까.

[그녀 이름은]이라는 소설은 [82년 생 김지영]과 [현남 오빠에게]라는 소설로 인기를 얻은 조남주 작가의 신작이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맞딱드리고 있는 수많은 현실들을 마치 짧은 수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이나 학생, 아내와 며느리, 엄마 로서 겪어야 하는 수많은 사회의 차별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두 번째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소진이라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 보다 10살 많은 사수에게 성희롱을 당했고, 그것을 인사팀에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사팀은 오히려 소진을 나무라고, 결국 소진은 회사에서 왕따를 당한다.

"팀장이 소진을 불러 화를 냈다. 알아듣게 얘기했는데 꼭 이렇게 일을 키워야 했느냐고 사회 부적응자, 또라이, 사이코패스라고 말했다. 이 얘기도 녹음하고 있느냐며 녹음당할까 무서워 소진 씨하고는 말도 못 하겠다고 비아냥거렸다. 소진이 뻔히 보고 있는데 과장을 위로했다. 어쩌다 이렇게 지독하게 걸렸니, 액땜했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라 (P 16)"

그러나 소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고용노동부와 인터넷에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그로 인해 이제 그녀의 적은 단순히 회사가 아니라 사회가 된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읽는 내내 그녀가 혼자 감당해야 할 싸움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소진의 신상이 나돌았고 인터뷰 기사마다 심각한 수준의 악플이 달렸다. -중략- 회사는 그 와중에 합의를 종용했고 과장은 고소를 준비 중이라고 전해왔다. 그래도 절대 후회하지 않느냐면 사실이 아니다. 소진은 매일, 매 순간순간 후회한다. 빗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고 음식이 들어가기만 하면 토해서 수액과 영양제로 버티고 있다. 소진이 혹시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봐 엄마가 밤마다 소진의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잔다. 소진은 변호사에게, 선배에게, 가족에게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묻곤 한다. 모두들 피해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너무 힘들다면 여기서 멈추어도 된다고 말하는데 정작 소진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P 20)"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어린 여자 혼자서]라는 소설이다. 서울로 상경한 한 직장인 여성인 겪는 현실이다. 그녀는 서울 직장에 취직해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며 원룸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누군가가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와 그녀의 집을 창문을 연다. 그녀는 너무 놀라 소리치고, 놀란 침입자는 아래로 떨어진다. 경찰은 오히려 그녀를 나무라고, 피해자는 술김이었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별거 아닌 일로 몰고 간다. 소설은 한 여성이 경험해야 하는 도시와 사람의 냉혹함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세상에 발가벗겨 던져진 것 같은 그녀의 현실이 그대로 느껴졌다.

"근데 잡고 보니까 글쎄, 그 남자는 내 방이랑 같은 라인 일층에 사는 남자더라. 나보다 두 살 어리고 전과는 없대. 경찰에서는 술 마시고 실수한 거라고, 특히 나를 노린 것도 아니고 이 방에 여자가 사는 것도 몰랐다고, 자기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난다고 그랬데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만취한 사람이 좁고 위태로운 가스관을 딛고 올라와서 그렇게 치밀한 손놀림으로 창문을 연다는 게 가능한가. 나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는데 경찰은 그 말을 믿는 것 같더라. (P 47)"

최근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에 적응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적응해 간다는 것이 어쩌면 세상의 부당함에 적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녀 차별의 문제뿐 아니라, 세상에는 너무나도 부당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젊었을 때는 그것을 볼 때마다 분노하고 그것과 맞서 싸웠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것에 순응하려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때로는 자신이 찢기고 상처 입지만, 세상과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이들이 부럽다. 오늘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홀로 외롭게 세상과 싸우는 그녀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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