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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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고민에 대한 진지한 답을 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가끔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가벼운 고민이라면 잘 들어주고 나름 해결책도 제시하지만, 무거운 고민일 때는 경우가 다르다. 자신의 일생에 중대한 선택의 문제나,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두운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과연 내가 상대의 고민과 인생에 어떤 대답을 줄 수 있는지에 회의를 느낀다.  그럼에도 나를 믿고 신뢰해서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에게 무언가는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나 자신이 고민에 빠질 때도 있다.

[고민과 소설가]는 40대 소설가인 최민석 작가가 20대 대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모까지 섞어 가면서 그들의 고민에 성실하게 답을 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20대 청춘들과 메일로 나눈 고민들을 질문과 답 형식으로 편집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20대 청춘들의 고민을 읽고 내가 작가라면 어떤 대답을 해 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나름 작가와 비슷한 대답을 제시한 부분도 있고, 영 반대 방향의 대답을 제시한 부분도 있었다.

이 책에는 20대 청춘 남녀들의 고민답게 사랑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랑에 대한 조언처럼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특히 사랑에 대한 조언에서는 저자의 대답이 매우 자유로우면서도 생각이 깊어서 읽는 내내 감탄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연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서로를 위해 선(線)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대답은 영 반대였다. 그는 전 세계 인구가 74억인데 그중 37억이 남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중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 결국 사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말이 되는 논리 같기도 하고, 되지 않는 논리 같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상황을 고려치 않고 다짜고짜 받아달라며 떼쓰는 건,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물러서려고 수차례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차라리 오랫동안 간직해왔고, 끙끙 앓아왔던 마음을 표시하는 게 낫습니다. - 중략 - 그분에게 질문자님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그걸로 마음이 차분해진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것이고, 그걸로 둘의 관계가 친밀해진다면 그 역시 좋은 것입니다. 반드시 연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연인이 반드시 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P 102)"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저자의 글이 이어진다.

"20대에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연애 상대와 함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안 딘다면 반드시 해피엔딩을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내 청춘이, 내 삶이, 아름다운 추억과 역사로 새겨질 것 같죠. 하지만 세상살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는다면 모두 헤어지게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대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몹시 사소한 이유로 헤어집니다. 그러면 남녀 간에 한때 철석같이 믿고 지켜왔던 가치가 실은 산들바람에도 날아가 버리는 것이란 걸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남녀관계라는 게 이런 겁니다. 아쉽게도, 이게 현실입니다. 매우 사소한 말다툼, 보잘것없는 의견 차이가 쌓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생채기가 쌓여, 결국은 헤어집니다... 그러니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P 103)

또 20대 답게 진로에 대한 고민들도 많다. 가장 인상 깊은 질문은 역시 전공에 대한 질문이다. 자신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려 하는데, 늦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저자는 자신의 여러 가지 경험을 거치며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나요? 질문자님은 아닐 수 있으나 저는 이토록 쉽게 흔들렸습니다. 대개 사람은 변할 수 없다지만, 제 생각에는 변합니다. 제가 양보해서 사람은 변할 수 없다 쳐도, 사람의 꿈은 변할 수 있습니다. 체 게바라는 의사가 되려다가, 혁명가가 됐습니다. 베드로는 어부가 됐지만, 결국 예수의 제자가 되어 순교까지 했습니다. 노무현은 변호사가 되었다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저와 동료와 많은 선배들이 삶에서 일어난 항로의 변화를 받아들였습니다. (P 205)"

흔히 인생 상담이나 고민 상담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흔히 뻔한 대답에 조금 실망하기도 한다. 또는 상대방의 사정이나 상황을 배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가르치려는 말투에 괜히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접하면 선입관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역시 이런 선입관이 있었다. 그러나 읽으면서 저자의 타인과 인생에 대한 진진한 태도와 경험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대답에 많은 공감을 느끼면서 읽었다. 사랑이나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20대 청춘이나, 20대에게 인생의 조언을 해 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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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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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기에 사극 드라마는 꼭 보게 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시대 배경이 고려 말과 조선 초로 이루어지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는 과정이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국운이 다 해가는 고려를 향한 안타까움과 새롭게 세워지는 조선에 대한 역동성이 함께 느껴진다. 물론 조선을 세우고자 몸부림치는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이방원과 같은 인물들의 매력도 한몫을 한다. 기억이 남는 드라마로는 오래전 드라마인 [용의 눈물]이 있고, 최근에는 [정도전]과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런 명품 드라마가 탄생되게 되는 것에는 탄탄한 원작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원작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비록 각색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역사 드라마는 바로 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원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조선왕조실록]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이번에 이덕일 작가가 오랜 기간의 노력 끝에 [조선왕조실록]이라는 10권짜리 대작을 출간하게 되었다.

1편은 당연히 태조 편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태조 이성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고려 말의 상황과 조선 초의 상황이 펼쳐진다. 소설의 시작은 공민왕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공민왕과 이성계의 가문과의 영향은 매우 각별하다. 왜냐하면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공민왕 때 고려로 기부를 해 왔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가문은 몽고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이미 몽고로 기부를 했었다. 지금으로 보면 친일파처럼 안 좋은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는 그나마 사연이 있었다. 이성계의 4대 조인 이안사는 고향이 전주였는데, 당시 전주 지주사와의 갈등으로 전주를 피해 북쪽으로 도망가다가 그를 따르는 사람과 함께 몽고에 기부를 한 것이다. 그 후 몽고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동북면에 거주하던 이자춘이 기부를 하고,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회복할 때 큰 공을 세우게 된다. 그때부터 이성계 가문이 고려에서의 입지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공민왕은 개혁의 전반을 맡기던 신돈을 참수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공민왕의 개혁은 실패하고 그도 비운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저자는 신돈의 개혁을 고려의 마지막 회생을 향한 몸부림으로 보고 그의 죽음으로 고려의 국운이 다 했음을 암시한다.

"이렇게 신돈의 개혁은 끝났다. 이번에도 구가세족들의 승리로 끝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달랐다. 이것은 신돈이 몰락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고려의 마지막 개혁 정객과 그 세력이 사라진 것을 뜻했다. 신돈의 몰락으로 고려는 구가세족의 나라로 되돌아갔다. 백성들이 농토를 빼앗기고 노비로 전락해도 하소연할 곳 없는 나라로 돌아간 것이다. 백성들의 원한이 하늘을 움직여 다른 사람에게 천명을 내릴 것을 두려워하던 공민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려 왕조는 막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P 105)"

공민왕 사후 우왕이 왕위를 얻고, 그는 최영의 도움으로 나름 개혁정치를 하게 된다. 그 시기 중국대륙에서는 홍건족의 한 무리를 이끌던 주원장이 원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통일하게 된다. 그리고 요동지역의 관활권을 주장한다. 이에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와 조민수에게 5만 대군을 보내어 요동을 정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는 조민수를 포섭해 함께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회군한다.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이다. 위화도 회군 이후부터 사실상 고려의 실권은 모두 이성계에게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왕과 창왕, 공양왕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이색과 정몽주 같은 인물들이 이성계에게 도전했지만, 모두들 군사적인 실권이 없는 문인들이었다.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의 도움으로 공양왕을 몰아내고 조선을 개국한다.

우화도 회군에 대해서는 아직도 역사적인 평가가 엇갈린다. 당시 조선이 명을 치는 것을 불가능했을 거라는 의견과 함께 당시의 혼란 상황에서 고려가 요동을 점령해도 명은 반격할 수가 없었다는 의견이 대립한다. 저자는 후자의 의견을 지지한다. 저자는 당시 명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한다.

"주원장은 고려군의 북상 소식에 크게 당황했다. 고려군은 정규군이고, 이에 더해 원나라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황제 노릇이 20년 만에 끝날 수도 있었다. 두려워진 주원장은 종묘서 재계하고 점을 칠 준비를 했다. 고려군이 북상하면 맞서 싸워야 하는지를 묻는 점이었다. 건국 20년, 명나라는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이해(1388)만 해도 온남성이 태족 사륜발이 군사를 일으켰고, 초원으로 쫓겨난 북원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자신이 고려군과 싸우는 사이, 불만을 갖고 있던 세력이 대거 일어설 수도 있었다. (P 181)"

그러나 조선이 개국된 후 요동을 차지할 기회는 또 한 번 있었다. 정도전이 다시금 요동정벌의 계획을 추진한 것이다. 요동정벌은 주원장의 사후 명의 혼란 상황과 개국공신과 왕자들의 사병을 흡수하기 위한 정도전의 묘책이었다. 그러나 결국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암살 당함으로 그 꿈은 끝나고, 이후 조선은 스스로 명에게 철저한 사대의 관계를 하는 명의 제후국으로서의 위치를 자처한다. 이 책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었다.

"정도전의 죽음은 비단 한 사대부의 죽임이 아니었다. 천자의 제국 고구려를 재건하려던 민족의 꿈도 함께 죽은 것이었다. 위화도 회군으로 요동 정벌을 막은 데 대한 업보인지도 몰랐다. 정도전의 죽음으로 조선은 다시 사대주의 국가로 전락했다. 그렇게 천자국의 꿈은 정도전의 죽음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P 343)"

정도전의 죽음과 함께 이성계 역시 명목상인 왕으로 몰락하게 되고, 모든 실권은 이방원에게 주어지게 된다. 이런 걸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정도전의 죽음과 이방원의 왕자의 난에 대한 이야기는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다. 아마 2편인 정종과 태종 편에 자세히 언급될 것이라고 기대가 된다.

고려 말과 조선 초는 역동적인 시기였고, 결국 백성이 민심이 떠나면 어떤 것으로도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교훈을 주는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는 우리 역사상에서 마지막으로 중국 대륙을 향해 꿈을 꾸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감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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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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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역사소설이나 역사 드라마를 매우 좋아했다. 특히 기존의 구질서를 뒤집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내용의 작품들은 젊은 시절까지 나를 무척 매료시켰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구한말 무너져 가는 조선을 대신해 새로운 왕조를 새우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고(故) 이병주 작가의 [바람과 구름과 비]나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백정들의 혁명을 다루고 있는 정동주 작가의 [백정] 등이 기억이 남는다. 최근에는 [정몽주]와 [육룡이 나르샤]와 같은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다. 정치권과 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썩고 썩어서 도저히 다시 세울 수 없는 고려를 대신에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를 세우는 과정이 너무도도 흥미진진했다. 이런 소설이나 드라마를 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이 생겨난다. 현실의 부조리와 답답함에 분노하고, 새로운 것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들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이런 열정들을 잊고 살았다.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현실에 맞추어가기도 급급해서 이런 열정이나 뜨거움을 잊고 살았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번의 정권교체를 접하면서,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실망감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은 이런 잊었던 나의 열정을 자극하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면서는 그냥 현실 도피적인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이상 국가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그동안의 한국 역사와 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책은 한반도 남쪽 한일 공동 개별 구역의 수역에 새워진 미래의 아로니아 공화국이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아로니아 공화국이 2대 대통령 김강현은 자신의 임기를 마치면서 자신이 지나온 과거를 회상한다. 김강현은 점방이라고 불리는 작지 많은 않은 건축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은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만화방에서 부서진 텔레비전을 구입해 주기 위해 친구들의 삥을 뜯다가 아버지에게 죽도로 막기도 했었다. 그렇게 사람이 되라고 붙들려 들어가 합기도장에서 그는 수영 누나라고 부르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중학생인 그에게 고등학생인 수영 누나는 이상형이었고, 그는 수영 누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된다. 뛰어난 암기력을 가졌던 그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만점을 맞고, 대학 입학시험도 몇 문제 틀려서 서울 법대를 간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기 싫어서 사법고시를 보고 검사가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학국 교육의 현실을 접하게 된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냐? 무슨 문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구경이나 하려고 1차 사법시험에 응시한 나는 개관식 320문항 중에서 321문항을 맞혀버렸다. 확실히 외우는 데 타고난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어렵다는 사법시험도 이리 꼬고 저리 비틀고 훌러덩 뒤집어 문제를 낸다고 한들 결국 무작정 외우는 놈들을 위한 그저 그렇고 그런 시험에 불과했다 - 중략 - 재수가 좋은 건지 실력이 뛰어난 건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지만 3차 면접시험을 통과한 나는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국의 모든 교육과 시험은 인성과 감성, 창의력과 표현력, 독창성과 정의로운 인간성 따위는 애초에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달달 잘 외우는 놈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존속되는 요상하고 망측하기 짝이 없는 제도였다. 나는 한국 교육과 시험의 특출한 수혜자였다. (P 80)"

김강현은 그토록 원하던 수영 누나와 결혼을 하지만, 검사라는 제도 속에 빠져 들어가면서 점점 현실적이 되어 간다. 그리고 고위층만이 아는 토지 개발 계획을 미리 알아서 아버지에게 새로 들어서는 신도시에 땅을 사자고 말한다. 당시 IMF로 인해 재벌들이 부동산을 쓸어 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듣고만 있던 아버지가 또다시 아들을 두들겨 팬다. 훗날 그는 그렇게 자신을 패 준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세상 속에 휩쓸려 살지 않기로 결심하고, 검사의 조직문화에 반기를 든다. 간첩 조작 사건의 재심에서 진실의 편에 서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검사 조직에서 나온다. 그는 쓰레기 속에서는 모두가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깨닫는다.

"설마 검찰청 안에 있는 모든 검사들이 쓰레기였겠는가? 국민에게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검사는 1명도 없었는가? 있었다. 분명히 있었고 그들이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쓰레기장에 숨어 있는 한 그들 또한 쓰레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의 속성, 쓰레기는 주변의 깨끗하고 쓸모 있는 존재들조차 모조리 쓰레기 취급받게 만든다. 주변의 완벽한 쓰레기장화. (P 137)"

그렇게 현실에 실망하고 있던 그에게 손성철관 백민정이라는 사람이 접근을 해 온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재미있고 신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그리고 국민을 위하지 않는 국가, 서로를 경쟁하게 해서 자기들만의 왕국을 만드는 국가에 대해 결별을 선언하고, 한일 공동 해엽 부근 암초 위에 콘크리트 기둥을 세워 여의도 몇십 배 크기의 국가를 만들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강현은 그 계획에 동참하면서 아로니아 공화국이라는 이상 국가가 세워지기 시작한다.

소설의 내용은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으나, 우리 모두들이 고민하고 있는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과연 한국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왔는가? 이대로 가면 한국 정치에 희망은 있는가? 그냥 퇴근길에 소주 한 잔 하며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욕하고, 인터넷에 '헬조선'이란 단어만 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있는가? 국가가 과연 존속의 가치가 있는가? 이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하고 있는 책이다. 소설은 소설로 읽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다. 물론 소설적인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김광현의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 이야기나 수영과의 사랑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더 한다. 비록 역성혁명을 꿈꾸는 역사소설이나 정치소설은 아니지만, 현실정치와 한국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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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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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님은 그만 강을 건너고 말았네.
강에 빠져 돌아가시니.
이제 그님을 어이하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라는 곡의 가사이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시가 문학이기도 하다. 배운지 오래 되지만, 아직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의 애절한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황조가나 정읍사, 제망매가, 가시리, 서경별곡 등의 가사들은 그 시를 접했을 당시의 감정과 함께 싯구들이 그대로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이후 이 시를 접한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때 역시 이 시들을 깊이 있게 접하기 보다는 입시 위주로 시험에 나올 부분들을 암기하기에 바빴던 기억이 난다.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는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친절하면서도 깊이 있게 해석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고대가요, 향가, 고려가요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교과서에 실린 고전 시들의 배경과 의미를 친철하게 해석해 주고 있다.

먼저 [고대가요 편]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공무도하가와 함께 황조가, 구지가, 정읍사 등에 대한 해설이 등장한다.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로 알려진 흰머리의 남자가 강물에 빠져 죽자, 이를 애닯게 여기던 아내가 함께 따가 강물로 들어간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 보던 곽리자고라는 사람이 자신이 본 것을 아내인 여옥에게 전해주자 여옥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도하가와 함께 정읍사가 기억에 남는다. 장사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아내의 노래는 공무도하가나 황조가 만큼이나 애잔하다.

[향가 편]에서는 서동요, 모죽지랑가, 도솔가, 제망캐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처용가 등을 해설해 주고 있다. 향가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초까지 주로 지어졌는데, 고대가요에 비해 더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백제의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서동이 지었다는 서동요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선화공부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서방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 성희롱으로 고소를 당했겠지만, 당시 이름없는 평민이었던 서동이 흠모하는 선화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 밖에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끝이 좋았으니 모두들 행복했을까?

[고려가요 편]에는 가시리, 청산별곡, 서경별곡, 정과정, 동동 등을 해설하고 있다. 고려가요는 단순했던 고대가요나 향가에 비해 더 문학적으로 성숙한 작품들이 많다. 특히 싯구들이 아름다워서 현대 문학이나 가요 등에도 많이 인용되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의 해석을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고려말의 무신정권과 거란과 몽고의 침략과 같은 혼란 상황 속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지어진 시가 많았음을 느낀다.

이 중 '가시리'나 '청산별곡'등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들이다. 그 중 가시리는 김소월의 시나 가요를 통해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시이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버리고 가시리고 나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엇디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올세라 나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
설온님 보내옵노니 나는 가시는듯 도셔 오셔서 나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

애절한 사랑 노래같지만, 이 시는 고려말 혼란한 시기에 지어진 시라고 한다. 묘청의 난에 참가해 출세를 하려는 남편을 붙잡지 못하는 아내의 절박한 마음이 담긴 시이다. 결국 묘청의 난은 실패하고,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청산별곡 역시 현대에 많이 알려진 시이다.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 하는 삶을 그리는 이 시는 사실은 고려말의 혼란 상황에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간절함이 담긴 시라고 한다. 당시 무신정변과 거란이나 몽골의 침입같은 혼란 상황 속에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들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400여편의 수준 높은 그림과 함께 고전 시들을 해설하고 있다. 이미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에는 과거의 추억을,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교과서의 작품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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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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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극장에서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한 SF 영화를 볼 기회가 있다. 스크린 가득 넓은 우주 공간이 펼쳐지고, 우주선에 연결된 가느다란 생명선 하나에 의지해 우주 공간을 유형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고가 일어나서 생명선이 끊어진다. 그리고 남자는 넓은 우주 공간으로 던져진다. 그는 그렇게 점점 스크린 밖으로 멀어진다. 산소가 남아 있는 한 남자는 오랫동안 우주 공간을 떠돌 것이다. 산소가 다 사라져 그의 생명이 멈춘 후에도 그의 육체는 우주 공간을 떠돌 것이다. 만약 그의 영혼이 있다면 그의 영혼조차 그 광대한 우주 공간을 떠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치 우주 공간을 떠도는 존재가 나 자신이 된 것처럼 무서운 공포를 느낀다. 나 자신이 심연(深淵)의 우주 공간으로 내가 던져진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이 고안해낸 시간과 공간 개념이 사라진, 오로지 광대함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 세계 속으로 내가 던져진다면, 내 기억과 육체도 모두 무(無)로 변하는 어둠으로 내가 던져진다면,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그 세계 속에서 느끼는 공포는 어떠할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마치 이런 느낌을 받는다. 마치 내가 도스토옙스키가 그리는 광대하고 어두운 공간 속으로 던져진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시점을 놓쳐 버리기 일수이다. 점점 그가 묘사하는 인간 영혼의 어두운 공간 속으로 던져지고, 어느 순간 그 세계에 대한 경이감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처음 도스토옙스키의 만난 것은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통해서이다. 이 소설을 통해 페테르부르크의 어두운 도시의 뒷골목을 라스콜니코프의 뒤를 쫓아 걸었었다. 심약한 라스콜니코프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악마적인 생각들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느껴져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읽으면서 매 순간 이 정도에서 이 책을 덮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멈출 수 없이 심약한 영혼의 여행에 끝까지 동참했었다. 소설을 끝냈을 때 아쉬운 마음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어둡고 광대한 세계 속으로 던져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 방대하고, 더 절망적이고, 더 복잡한 인간 영혼 속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답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타락한 인간 영혼을 대표하는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돈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내에게서 난 배다른 세 아들 드미트리와 이반, 알료샤가 있다. 아버지와 같이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즉흥적이고도 다혈질적인 드미트리, 냉철한 이성을 소유한 무신론자인 이반, 그리고 순수한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알료샤, 이렇게 세 아들이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가 있는 카라마조프가에 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아버지 표도르와 큰 아들 드미트리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그루센카라는 여인을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드미트리가 아버지와 집 안에 폭력을 행사하고 간 며칠 후 아버지 표도르가 살해당한다. 결국 드미트리가 범인으로 몰리고 누명을 뒤집어쓴다는 단순한 내용이 방대한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위대한 소설가인 도스토옙스키는 말년에 이런 단순한 내용을 이렇게 방대한 분량으로 소설로 완성했을까. 과연 그가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카라마조프가로 대표되는 인간 영혼의 어둡고도 음습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스스로 타락하고 더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표도르는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속이 목소리를 통해 그 표도르가 러시아의 전형적인 인간이라고 말한다.

"지금 바로 이 지주에 대해 말해두려는 것은 그저, 그가 괴상하지만 주위에서 꽤나 자주 마주치게 되는 유형, 즉 너절하고 방탕할 뿐만 아니라 아둔해빠진 인간 유형 - 그러나 자신의 재산과 관련된 자질구레한 일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처리할 줄 알고, 오로지 이런 일 하나만 할 줄 아는 듯싶은 그런 자들에 속하는 유형이었다는 점이다 - 중략 - 동시에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평생 우리 군 전체에서 가장 아둔한 반미치광이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시금 되풀이하지만, 이건 얼뜨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반미치광이들 중 대다수는 꽤 영이하고 교활하며 -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둔함, 그것도 그 어떤 독특한, 민족적 아둔함이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1권] P 19-20"

표도르는 타락한 인간 영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 영혼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도스토옙스키는 표도르의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를 통해 타락한 인간 영혼 속에 다양한 영혼의 모습이 담겨 있음을 암시한다.

먼저 큰 아들 드미트리는 전형적인 탐미주의자이다. 그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빠져들고, 그 미적인 아름다움이 자기를 잠식해 가는 줄 알면서도 스스로 자기를 파괴해 간다. 물론 저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세 그 저항을 멈추고 마치 늪 속에 빠져들어가는 짐승처럼 그 미(美) 속으로 자신을 함몰해 간다. 드미트리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귀족 약혼녀가 있음에도 그루센카에게 빠져들어 자신을 망쳐가면서도 동생 알료샤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여기엔, 형제, 네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 있어, 한 사내가 어떤 미녀한테, 여자의 몸이라든지, 아니면 그저 여자의 몸의 한 부분에라도 반하게 되면, 그 여자를 위해 자기 자식들까지 내놓고, 아비와 어미도, 러시아도 조국도 팔아먹는 법이야. 정직한 인간이라도 가서 도둑질을 해. 온순한 인간이라도 - 사람을 베어 죽이고, 충직한 인간이라도 - 배반을 하게 돼. 여자의 사랑스러운 발을 노래한 시인 푸쉬킨은 자기 시에 발을 찬미했지. 다른 사람들도 소리 높여 찬미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귀여운 발을 보면 전율을 느끼게 마련이거든. 하지만 발뿐만이 아니야... 여기엔 형제, 경멸이라는 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 설령 그가 그루센카를 경멸하다 쳐도 말이지. 경멸하면서도 떨어질 순 없는 거야.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1권] P 162 "

이반은 냉철한 이성주의자이다. 그는 무신론적 사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신이 없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마치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말하듯이, 그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에게 신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신을 그리워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으로 인해 그는 괴로워한다.

알료샤는 종교적인 순수함을 추구한다. 그는 조시마 장로라는 수도사를 쫓아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영혼의 순수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렇게 존경하던 조시마 장로의 시체에서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평생 영혼의 정결함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썩은 육체 밖에 남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자신이 쫓던 것이 어쩌면 허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해 두려워한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라는 영혼의 다른 모습이 표도르라는 타락한 영혼 속에 녹아들어 가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들을 카라마조프가라고 부른다. 그리고 카라마조프가는 어둡고 음침한 타락한 인간 영혼의 광대한 세계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소설을 읽다 보면 그 타락한 어둡고 음침한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무섭고도 두려운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게 된다. 인간의 영혼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정말 무(無)에서 무(無)로 던져진 존재일까. 신이 없고, 인간은 죽음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으로 던져질까.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믿고 의지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냥 표도르처럼 일생 자신만의 쾌락만을 위해서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존재일까. 도스토옙스키의 어둡고 절망적인 질문들은 어쩌면 그가 일평생 고민하고, 말년까지 고민했던 질문들이 아닐까. 소설은 이렇게 점점 절망적인 질문 속으로 우리를 던져 놓는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마지막에 한줄기 빛이 있다. 그리고 그 빛을 좇아서 다시금 그 어둡고 광대한 우주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그 희망은 항상 미완성으로 끝난다. 과연 그 희망은 도스토옙스키의 삶에서도 미완성이었을까. 그리고 그의 소설을 읽는 나는 일생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던져 준 그 희망을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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