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낙관주의자 - 심플하고 유능하게 사는 법에 대하여
옌스 바이드너 지음, 이지윤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정확히 비관주의자라고 부르기는 뭐 하지만, 낙관주의적 성향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미래를 준비할 때 나도 모르게 위험적인 요소들을 미리 생각하고 염려하게 된다. 이로 인해 미래의 위험을 미리 대비하게 되는 장점도 있지만, 점점 소극적이고 상황에 위축되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내게도 낙관주의적인 성향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많이 끌리게 되었다. 낙관주의인데, 지적인 낙관주의자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지적인 낙관주의자]란 책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닌, 현실에 기반을 둔 지적인 낙관주의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먼저 저자는 낙관주의의 장점과 정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더 멀리 나아가는 몇몇 사람들의 비결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낙관적 태도가 성공의 기초가 되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중략- 낙관적 태도는 희망차고, 성공할 만안 것에 집중하므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익하다. 낙관주의자는 성공을 사랑하고, 성공으로 가는 과정 중에 부딪치는 이런저런 실패를 겸허하게 수용할 줄 안다. 어떤 일에든 경고부터 하고 제동을 걸고 선을 긋고 벽을 쌓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종말을 예언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낙관주의자가 좀 더 늘어나도 해롭지 않을 것 같다. (P 19)"

"낙관주의란 후퇴나 좌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태도를 뜻한다. 감성 지능의 측면에서 낙관주의는 사람들이 냉담, 실의, 혹은 침체에 빠지는 것을 예방한다. (P 22)"

물론 저자가 모든 낙관주의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단순히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지나 친 낙관주의나 왜곡된 긍정주의를 비판한다. 그들은 현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거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며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하는 지적인 낙관주의는 현실의 어려움과 부정적인 면을 인지하고도, 결국에 그 어려운 과정을 뚫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이것을 목적 낙관주의자 또는 진화된 낙관주의라고 말한다.

"진화된 낙관주의는 인간의 삶이 연약하고 깨어지기 쉽다는 점을, 그래서 삶엔 고통이 따르고 그 고통이 빈번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다만 그중 스스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뿐이다. 낙관주의는 그 부분에 집중한다. (P 98)"

저자가 비관주의보다 낙관주의자에게 더 많은 점수를 주는 것은 낙관주의가 현실에서 더욱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관주의는 조금의 어려움과 실패에도 좌절하는 반면, 낙관주의자는 그 어려움과 실패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적인 낙관주의자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이긴 후 돌아올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비관주의자는 계속해서 닥쳐 올 어려움만을 생각하기에 어려움이 닥치면 그 속에 파묻히게 된다.

무조건적인 낙관주의가 가지는 폐해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도 너무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무조건적인 비관주의가 주는 폐해 역시 전자보다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비관주의는 사회나 개인이 앞으로 나가는데 너무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낙관주의가 아닐까. 지금 낙관주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에 EBS에서 방영한 [스페이스 레이스 (한국 방영 제목 : 우주전쟁)]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이 드라마는 미국과 소련이 우주 탐사선을 보내기까지의 경쟁에 대한 드라마였는데, 드라마의 시작 부분은 폰 브라운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해 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로켓 부분의 개발은 주로 폰 브라운이 담당했고, 원자폭탄의 부분은 하이젠베르크가 담당했다. 미국의 동료 과학자는 하이젠베르크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감시가 치밀한 하이젠베르크에게 치약에 메시지를 담아 전달한다. 치약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쪽지의 내용은 오로지 "E=MC2"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었다. 이 쪽지를 본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깨닫고 핵무기 개발을 일부러 지연시킨다는 내용이다. 이 장면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하던 그들이 맞딱드렸던 공포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는 책을 읽으며 다시금 예전의 드라마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원자폭탄이 개발되는 과정을 마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주된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과 미국이 핵무기 개발을 경쟁하던 내용과 실제로 원자폭탄이 히로미와 나가사기에 떨어졌을 때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개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개발하고 충격을 받는 장면, 그리고 실제로 원자폭탄이 사용되었을 때 받은 충격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주로 과학 역사를 다룬 책들이 딱딱할 때가 많이 있는데, 이 책은 마치 대하드라마를 보듯이 원자폭탄의 개발과정의 흐름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에는 여러 명의 과학자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이라면 단연 '오펜하이머'이다. 오펜하이머는 1943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에야 미국 핵무기 개발의 책임자인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책임자로 임명된다. 한때는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아서 책임자로 임명되는데 어려움을 받았지만, 이 과정을 통과하고 책임자로 임명된다. 이후 그들은 독일과의 경쟁을 통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하이젠베르크 같은 독일의 양심적인 과학자들이 일부러 핵무기 개발을 지연시켰다고 말한다.

"공포 정치를 자행하는 독재 정권 하에서 독일의 핵물리학자들이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원자폭탄 제조를 막으려고 시도한 반면, 두려워할 만한 강요를 전혀 받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의 동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신무기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보인다. (P 183)"

반면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미국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개발을 합리화시킨다.

"만약 우리가 이 무기를 개발해 공개 실험을 통해 그 끔찍한 본질을 세상에 보여주지 않는다면, 조만간 다른 부도덕한 국가가 비밀리에 그것을 만들려고 시도할 것이다. 미래의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인류가 적어도 그 상황을 제대로 아는 게 훨씬 낫다. (P 287)"

또 처음에는 원자력의 개발을 나름 평화적 목적에만 한정시키겠다는 의도도 보인다.

"인류는 우리가 발견하고 개발한 것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래의 이것을 파괴적 목적이 아니라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조심하는 것뿐이다. (P 287)"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미국의 과학자들은 정말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생각을 가졌을까? 아니면 단순히 자신들의 직면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힘 앞에 자신들의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런 말들을 했을까? 그들의 생각이 순진했다는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기 원자폭탄의 투하 이후에 발견되었다. 이 책에는 원자폭탄 투하 이후 과학자들이 느꼈던 죄책감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느꼈던 정신적인 혼란은 언급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은 아인슈타인과 프랑크, 실라르드, 라비노비치처럼 원자폭탄 사용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암울한 날이었다. 하지만 메사 위에 있던 사람들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어쨌든 그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밤낮을 잊고 열심히 일했다. 이제 놀라운 소식이 들려온 이 최초의 순간에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러리라고 생각한 것처럼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야 할까? 아니면, 무방비 상태의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고통을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한 일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같은 개인의 자부심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P 365)"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 경쟁 과정, 더 나아가 소련과의 수소폭탄의 경쟁 과정은 더 충격적이다. 1952년에 실시된 태평양의 한 섬에서 실시된 수소폭탄의 실험의 끔찍함이 묘사되어 있다.

"태평양에 길이 1.6Km, 깊이 53m의 폭발 구덩이가 생겼다. 최초의 슈퍼에서 나온 불덩어리, 즉 지름이 5.6Kmsk 되는 돔 모양의 화염이 사라지고, 거대한 버섯 모양의 연기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자마자, 과학자들은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엘루겔라브 섬이 통째로 사라지란 것이다. TNT 3메가톤 (300만 톤)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방출된 그 폭발은 최초의 원자폭탄과 마찬가지로 모든 예상과 심지어 매니액의 계산마저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P 488)"

저자는 원자폭탄에 이어 수소폭탄의 개발로 태양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지구에서 재현했다고 말한다. 그 후 소련 역시 수소폭탄을 개발하게 되고, 세계는 핵 전쟁의 위기에 빠져든다. 인간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관심이 있는 부분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책에서 주장하는 것과 다른 주장들이 많이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앞에서 언급한 하이젠베르크의 양심에 가책을 느껴 원자폭탄 개발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온 자료나 하이젠베르크와 대화를 나눈 스승인 유대인 학자인 보어 등의 증언을 통해 하이젠베르크는 최선을 다해 원자폭탄을 개발했고, 단지 미국보다 실력이 안 되어서 늦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어느 사실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히틀러가 죽기 전에 하이젠베르크가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오펜하이머가 V2 로켓을 개발했다면, 어쩌면 세계 최초의 피폭 국가는 일본이 아닌 미국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니 끔찍하기까지 했다. 인류가 개발하고 있는 핵무기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캐런 M. 맥매너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화창한 날씨의 오후, 수업이 다 끝난 미국의 부유한 학교인 베이뷰 고등학교의 3층으로 5명의 학생이 모여든다. 이들이 모든 곳은 학교에서 고지식하기로 유명한 에이버리 선생님의 실업실이다. 이들이 에이버리 선생님의 수업에 핸드폰을 가지고 왔기에 방과 후에 벌을 받는 디테션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이  다섯 명 모두 개성이 강한 인물이다.

먼저 학교에 '어바웃 댓'이라는 학교 소식통 앱을 운영하는 사이먼이 있다. 사이먼은 학생들의 뒷조사를 하며 그들의 성적 일탈이 나 마약, 또는 부정행위 등을 올린다. 그러기에 사이먼의 눈에 걸리면 학교에서 평판은 순식간에 바닥을 치고, 왕따가 된다.

반면 사이먼과는 정반대의 브론윈이라는 여학생이 있다. 이쁘고, 모범생이다. 예일대를 졸업한 부유한 사업가 부모님을 두고 있는 브론윈은 역시 예일대의 입학을 예정하고 있다.

학교의 최고의 인기남인 쿠퍼도 끼어있다. 쿠퍼는 고등학교 야구 선수로 최근에 놀라운 실력으로 인해 대학가 프로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그는 뛰어난 외모와 함께 학교에서 가장 이쁜 여학생과 연인 관계를 맺고 있다.

쿠퍼와는 정반대 스타일의 네이트라는 학생도 와 있다. 그는 수많은 여학생들과 아무렇지 않게 사귀고,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키며, 최근에는 마약을 팔다가 보호관찰까지 받았다.

마지막으로 에디라는 여학생이 있다. 학교 인기남인 제이크와 사귀고 있고, 덕분에 제이크와 함께 학교 최고의 커플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자신이 제이크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언제 제이크에게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며, 무조건 제이크에게 순종적으로 맞춰주려 한다.

공통점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이들은 우연히 가방에 자신의 핸드폰이 아닌 처음 보는 핸드폰이 들어있었고, 그로 인해 방과 후에 받는 벌칙인 디테션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지만, 에이버리 선생님은 이들에게 손글씨로 작문을 쓰는 벌을 내리고 잠시 교실을 비운다. 그 사이 물을 마시던 사이먼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구급차가 도착하지만 사이먼은 사망하고 만다. 단순한 알레르기 사고였지만 사건이 점점 복잡해진다.

평상시 땅콩 알레르기가 있던 사이먼이 마시던 컵에 누군가가 알레르기 성분을 넣어두었던 것이다. 방안에는 사이먼과 네 명의 학생들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네 명 중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인데... 무언가 각자 비밀을 감추고 있는듯한 분위기를 품기는 네 명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씩 비밀이 드러난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고 싶었던 그들이 숨기고 싶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비밀들을 사이먼이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밀을 그가 만든 학교 소식통의 앱에 올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넷 중에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고 사이먼을 죽였던 것일까?

처음 이 소설을 접할 때는 영 어덜트 소설로 알고 읽었다. 영 어덜트 소설이나 미국에서 청소년이나 성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로서 주로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시각에서 사회의 문제나 사람과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대표적인 소설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헝거게임]이나 [메이즈러너]같은 SF 소설 등이 있다. 주로 SF 소설이 대세이던 영 어덜트 소설이 최근에는 스릴러 장르 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 소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영 어덜트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수위가 조금 높은 부분들이 있다.

미국 고등학교가 한국보다 성적으로 자유롭고, 총기나 마약의 문제 등으로 더 문제가 많은 것은 알지만, 소설의 내용은 조금 충격적인 부분들이 많다. 성적인 일탈이나 동성애, 심지어는 마약까지... 온갖 문제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도 청소년 특유의 타인들에게 잘 보이려는 자존심까지... 이런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문제를 만들고, 결국 사이먼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비록 픽션이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미국 고등학교 안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 고등학교의 모습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단순히 영 어덜트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수위가 높은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도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네 명이 모두 범인으로 몰리면서 동료 학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는 상황이나, 이런 상황에서도 블로윈과 네이트가 서로 끌리며 서로 사랑하는 과정 등이 매우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영 어덜트 소설을 접하고 싶은 독자라면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온통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동네 친구들과 공터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부모님은 항상 건강하게 내 옆에서 나를 돌봐주실 것 같았다. 친구들은 항상 옆에 있고, 그들이 절대로 나를 배반하거나 뒤통수를 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나오는 끔찍한 불행들과 사고들은 드라마나 뉴스에서만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세상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부모님도 병이 들거나 세상을 떠날 수 있고, 가정에도 아픔과 사고들이 생길 수 있고,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내게 끔찍한 일을 저질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어릴 적 세상이 조금씩 금이 가고 사라지면서, 어른의 세상이 탄생된다. 그 어린 시절의 세상과 어른 세상 어디엔가 세상의 변환점에는 어린 시절의 악몽인 초크맨의 이미지가 있다.

[초크맨]이란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표지에 그려진 여자 아이의 그림으로 인해 끔직한 상상을 하게 된다. 아스팔트 바닥에 분필로 그려진 여자 아이의 그림은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그 뒤에 사이코패스와 같은 연쇄살인마 등이 존재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크맨은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잔인한 스릴러 이야기는 아니다. 어찌보면 성장소설과 같은 이야기이고,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아련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소설은 어린 시절 '에디 먼스터'라고 불리던 주인공 에디가 40대의 어른이 된 2016년에서 12살이던 1986년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에디는 '뚱뚱이 게브'라고 불리는 단짝 친구와 '호프', 그리고 조금은 불량하고 야비해서 '메탈 미키'라고 불리는 세 친구들과 함께 다닌다. 또 한 명이 있다. 마을 목사의 딸이자, 시크하면서도 에디의 마음의 한 시절을 차지한 '니키'가 있다. 에디는 이들과 어울리며 어디서나 행복할 것 같았다.

"재미있게 놀다 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태양은 밝게 빛났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티셔츠를 입고 컨버스 운동화를 신었다. 쿵쿵거리는 축제장의 음악 소리가 벌써부터 희미하게 들렸고 햄버거와 솜사탕 냄새가 나는 듯했다. 오늘은 완벽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P 17)"

그렇게 완벽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던 놀이동산에서 그는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희망찬 세상에 금을 내는 균열을 맞닥드린다. 에디는 잃은 지갑을 찾으러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다. 그러다가 우연히 댄싱머신 앞의 한 아름다운 금발 머리의 여자를 발견한다. 곧 댄싱머신은 고장을 나고, 돌아가던 회전판이 날아들면서 아름다운 금발의 여자를 얼굴과 다리를 절단한다. 다행히 학교 영어 선생이던 핼로런씨가 그녀를 구조하고, 그녀는 다리를 건진다. 얼굴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사고가 에디의 마음 깊숙한 곳에 영향을 미친다. 그 후로부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친구들과 놀던 분필 놀이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그 그림 속에서 사건을 예고하는 초크맨이 등장한다. 결국에는 사지가 절단된 여자아이의 그림이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여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놀이동산의 댄싱머신 사고로 겨우 목숨을 구한 금발의 여자였다. 당시 사건은 죽은 여자를 사랑했던 핼로런씨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난다. 핼로런은 자살을 하고, 죽은 여자가 끼던 반지가 그의 책상 위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에디는 범인이 핼로런 씨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반지를 가져다 둔 사람이 바로 에디 자신이기 때문이다. 에디는 과연 왜 그 반지를 핼로런 씨의 책상 위에 가져다 두어야 했을까. 그리고 어린 시절 그의 집 앞에 등장했던 초크맨 그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설은 잘 구성된 성장소설 같기도 하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가진 스릴러 소설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문체로 에디의 어린 시절을 그리다가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초크맨의 정체를 이야기한다. 최근에 읽은 스릴러 중에서는 가장 문학성이 있는 스릴러이면서도, 완벽한 구성을 가진 스릴러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치열하게 독서를 한 후 한참이 지나서 그 책을 열어 볼 때가 있다. 당시에 감동을 받았던 구절들이 현광 팬으로 그어져 있기도 하고, 저자의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페이지 여백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내 반대 논리들이 적혀져 있기도 하다.  한때 치열하게 정독했던 책들은 펼쳐지는 대로 열어보며, 당시의 감정과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그렇게 떠오르는 대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 보면, 어쩌면 내 인생도 이렇게 바라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들, 이것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은 감정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낙담의 시간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페이지가 되어서 그것들을 관조하며 넘기고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레이스 페일리의 소설집을 읽다 보면 이런 감정을 미리 맛보는 느낌이다. 그레이스 페일리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그녀가 살았던 미국에서도 겨우 3편의 단편소설집을 출간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러시아 출신 이민자의 출신의 유대인이자 여성의 시각으로서 미국적인 삶과 인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을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 소설을 먼저 번역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녀의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다.

"그레이스 페일리의 이야기와 문체에는 한번 빠져들면 이제 그것 없이는 못 견딜 것 같은 신비로운 중독성이 있다. 거칠면서도 유려하고, 무뚝뚝하면서 친절하고, 전투적이면서도 인정이 넘치고, 즉물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서민적이면서도 고답적이며, 영문을 모르겠으면서도 알 것 같고, 남자 따윈 알 바 아니라면서도 매우 밝히는, 그래서 어디를 들춰봐도 이율배반적이고 까다로운 그 문체가 오히려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문체는 그녀의 명백한 특징이자 서명이며 흉내 내려 해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P 7)"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꼈던 중독성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이 소설의 첫 번째 소설을 [소망]이라는 아주 짧은 단편을 읽다 보면, 마치 메인 요리의 애피타이저를 맛보듯 그녀의 소설의 맛을 조금 알게 된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런 소설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혼한 한 여성이 연체된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우연히 이혼한 남편을 만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소소한 대화를 하고, 자신의 감정을 독백처럼 언급한다. 남자라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까. 아니, 그녀 자신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까. 그럼에도 하루키의 말처럼 모르면서도 알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마치 인생의 어느 순간인가 한 번은 느껴봤을 감정이다.

"그렇다. 사실 나는 뭘 해달라거나 이건 꼭 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도 뭔가 소망하는 건 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두 주 만에 책을 반납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학교 제도를 바꾸고 사랑하는 이 도심의 여러 문제와 관련하여 예산위원회에서 연설하는 유력한 시민이 되고 싶다. 내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 전쟁이 끝나게 해주겠다고 오래전 아이들에게 약속했다. 전 남편이든 아니면 지금 사는 남편이든 죽을 때까지 한 남자와 부부로 살고 싶었다. 두 사람 모두 평생을 함께 할만한 됨됨이를 지녔으며, 지나고 보니 사실 한평생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짧은 한평생 동안 한 남자의 됨됨이를 바닥까지 알 수도 없고, 바위 속에 감춰진 그 사람의 여러 가지 이류를 속속들이 알 수도 없다. 바로 오늘 아침 나는 창밖으로 한동안 길거리를 바라보다가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기 2년 전, 시 당국에서 심어놓은 작고 멋진 플라타너스들이 그날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P 19)"

이 소설집에는 유독 '페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 페이스라는 이름은 그녀의 3편의 단편소설집에 단골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으로, 그녀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대부분 페이스라는 주인공은 그녀처럼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로 나온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관조하며, 인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나무에서 쉬는 페이스]라는 소설이 이런 페이스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설이다.

"중요한 대화가 아주 간절했던 수간, 남자의 모든 세계를 코로 들이마시며 냄새로 느끼고 싶었던 순간, 나의 다정한 언어를 그의 시들지 않는 육체적 사랑으로 바꾸어 표현할 줄 아는, 적어도 한 명의 똑똑한 동반자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 순간, 나는 별도리 없이 아이들 가득한 동네 공원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P 109)"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뭐가 달라질까]라는 소설이었다. 아마 가장 그레이스 페일리 다운 소설이라고 하면 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한때 좋았던 시절을 누렸던 여자가 독백을 하듯 시작한다.

"나를 만나면 분명 반가울 겁니다. 나는 젊음이 뭔지 제대로 알던 여자였습니다. 그래요, 행복했던 시절 나는 여느 사람과 달랐습니다. 내게는 그 시간은 한순간의 꿈같은 게 아니었어요. - 중략 - 그럼에도 그 젊은 나날을 잃어버리고 나니, 오랜 기간 희망 없이 향수병을 앓는 기분입니다. 그 시절은 내게 영영 떠나온 고향과 같으며, 그 후로 커다란 기쁨 속에 살기는 해도 낯선 도시에 있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요, 알겠어요. 안녕, 젊은 날들. (P 25)"

소설에서는 돌리라는 여성은 낙후된 도시에서 잭이라는 남편과 존이라는 아들과 산다. 존은 애가 딸린 지니라는 여성과 결혼을 하려고 하고, 돌리는 자신을 자해하면서까지 반대를 한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갈등이 생기고, 남편은 또 다른 여자를 만나 집을 나간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돌리는 존과 결혼하기 전의 앤서니와 뜨거웠던 시절을 회상한다. 결국 잭은 마거릿이라는 여자와 결혼하지만, 결혼하고서도 계속 지니를 찾아간다. 그렇게 돌리의 삶의 단편들이 순간순간 지나가고, 이제 그녀는 나이가 들어 그 시절들을 다시 회상한다.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피우고 한시라도 빨리하려고 서둘렀던 그 모든 게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존은 평생 도안 지니를 찾아가는 길에 어째서 마거릿에게 예의를 지키는 전화를 걸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잭 말인데요, 그는 진짜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내 편이었을까요, 아니면 반대편이었을까요? 그리고 앤서니. 내가 몇 번이고 그에게 굴복하고 또 굴복했을 때 대체 앤서니는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P 47)"

사실 이 소설집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한편 읽고, 또 다른 편으로 바로 넘어가기엔 무언가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또 한편을 읽어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선뜻 와닿지 않아 다시 읽기도 했다. 조금은 우울하기도 하고, 조금은 위트 있기도 한 그녀의 문체를 읽으며 삶의 단면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삶은 단면 단면들은 격렬하고, 치열하고, 어떤 땐 우울하기도 하지만, 결국 지나가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노년에 인생이라는 책을 열어보았을 때 미소 짓는 일이 많아지기를 바래 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