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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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마다 독특한 향기와 색깔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를 좋아하지만, 신맛이나 쓴맛을 강조하는 커피들도 있다. 쓴맛의 커피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다크 로스팅 된 커피를 마셔보고 커피 특유의 쓴맛과 향기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커피의 본래의 맛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 소설과 탐정 소설들을 좋아하는 독자들 역시 각자 좋아하는 맛이 틀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설의 본래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레이먼드 챈들러나 하라 료의 소설 등을 권하고 싶다. 레이먼드 챈들러나 하라 료의 주인공들은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강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사건의 무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세상 앞에 당당하게 맞서고, 매혹적인 여성들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하라 료가 창조한 대표적인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첫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골목의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와타나베 사와자키의 탐정 사무소이다. 탐정 사무소의 이름은 두 명이지만, 사와자키만이 이 쓸쓸한 공간을 혼자 지키고 있다. 5년 전 와타나베가 경찰과 폭력조직의 거래에 이용되는 척하다가 1억 엔과 필로폰을 가지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혼자 남은 사와자키는 경찰이나 폭력조직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탐정의 역할을 감당한다.

소설은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사와자키에게 오른손을 호주머니 속에 감춘 남자가 찾아오며서 시작된다. 그는 사와자키에게 다짜고짜 '사에키 나오키'라는 르포라이터가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에 머뭇거리는 사와자키에게 얼마를 요구하냐며 거금의 돈 봉투를 던져 놓고 간다. 이름을 묻자 그는 자신을 '가이후'라고만 소개한다.

그런데 얼마 후 또 전화가 온다. 일본의 대기업의 고문이며, 유명 미술평론가인 사라시나의 변호사가 그에게 '사에키 나오키'를 아느냐고 전화를 해 온 것이다. 그리고 사와자키를 자신의 대저택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라시나이의 딸이자, 사에키 나오키의 아내인 사에키 나오코를 만난다. 묘한 향수 향기를 품기며 자신의 남편을 찾아달라는 나오코와 함께 사에키의 숙소에 찾아간 사와자키는 숙소에서 총에 맞아 죽어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과연 사에키 나오키는 왜 사라졌고, 사람들은 왜 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을까? 사에키 나오키와 그를 찾으려는 가이후를 찾아가면서 사와자키는 도쿄 도지사 선거와 관련된 저격사건까지 쫓아가게 된다. 결국 기업과 정치, 그리고 돈에 얽힌 복잡하고도 잔인한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하라 료가 창조한 탐정 사와자키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돈과 권력의 협박이나 여성의 유혹 등에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수사한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듯한 그의 무심한 태도 앞에 조직폭력배까지도 한 수 접어 줄 정도이다.

"내가 왜 널 죽이지 않는지 알아? 야쿠자가 누군가를 죽일 때는 자기보다 상대가 잃을 게 많다는 손익계산이 있기 때문이야. 세상 사람들이 야쿠자를 두려워하는 것도 그 손익계산이 되기 때문이지, 야쿠자와 서로 죽인다 해도 상대편이 훨씬 손해거든. 상대는 슬퍼할 부모가 있고, 보복을 두려워할 마누라가 있고, 길거리를 헤맬 자식이 있고, 멍청한 짓을 했다고 꾸짖을 친구가 있어, 그래서 야쿠자를 건드리지 않는 거야. 그런데 넌 뭐야? 지금 널 죽여봤자 내가 너보다 잃을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시즈메의 눈에 내가 그렇게 보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P 121)"

소설은 시종일관 매우 거칠다. 사와자키는 그의 성격처럼 좌우충돌하며 사건의 핵심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에도 치밀하게 사건을 조사하고,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사건을 발견해 낸다. 이 소설은 이미 오래전에 출간되었던 책인데, 최근에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최신간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가 출간되면서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앞에 언급한 쓴맛의 커피처럼, 탐정 소설의 본연의 묵직한 맛을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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