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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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형사 헤리 홀레 시리즈'가 벌써 10권이 출간되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으면서 맞닥뜨리는 것은 시종일관 이어지는 어두운 분위기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주인공 해리 홀레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버리는 암담함 결말을 보게 된다. 작가가 무슨 파괴적인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요 네스뵈는 일체의 희망을 남겨두지 않고 주인공 해리 홀레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또 읽게 된다.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리디머]라는 소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 시리즈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요 네스뵈는 해리 홀레라는 인간을 통해 암울한 세계와 그 암울한 세계에서의 희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요 네스뵈 그리는 희망이라는 것이 깊은 함정에 갇혀 작은 출구만을 바라보고 바둥거리는 짐승의 몸부림 같기도 하지만, 어쨌듯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열 번째로 번역되어 출간된 [리디머]는 원래 순서상으로는 여섯 번째이다. 오슬로 3부작이라고 불리는 [데빌 스타] 이후 이야기이고, 영화화되어서 유명해진 [스노우맨] 전 이야기이다. 소설의 시작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강추위가 몰아치는 스산한 오슬로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해리 홀레 시리즈 특유의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지하철 출구 유리문을 빠져나오는 그의 입에서 담배가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오슬로 지하의 부자연스럽고 강렬한 열기를 뒤로 한 채, 계단을 올라가 12월 오슬로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어둠과 살을 에는 추위 속으로 나갔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들었다. 에게토르게. 이 작고 트인 광장은 여러 개의 보행자 도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오슬로 중심부였다. 요즘처럼 추워서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때에도 중심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둔 일요일이라서 이례적으로 상점들이 영업 중이었다. 광장을 둘러싼 4층짜리 수수한 상점 건물에는 쇼윈도에서 노란 불빛이 떨어졌고, 광장은 그 불빛 속을 서둘러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P 25)"

해리 홀레의 시점에서 암울한 오슬로와 그 오슬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전개되지만, 동시에 한 남자의 시점에서도 이야기가 언급된다. 크리스토 스틴키츠라고 불리는 남자로 별명은 크로아티어로 '말리 스파시텔리'이다. 어린 구세주라는 의미이다. 소설은 그가 크로아티아에서 어떤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어떻게 암살자가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욘'이라는 구세군 성직자를 암살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왔다. 그러나 실수로 욘과 닮은 욘의 동생 로베르트를 죽인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해리 홀레를 중심으로 한 노르웨이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이제 그는 무기도 없고, 돈도 없지만 그는 끝까지 오슬로에 남아서 임무를 완수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금욕적이고 자선적인 욘이라는 젊은 성직자를 둘러싼 어두움들이 들춰진다.


 


 

보통 해리 홀레 시리즈에는 다른 형사 시리즈에 비해 액션적인 장면이 적게 등장한다. 때로는 사건의 전개보다 해리 홀레의 어두운 내면을 묘사하느라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리디머]에서는 크리스토 스틴키츠로 불리는 남자를 중심으로 무척 속도감 있는 액션 장면이 등장한다. 로베르트를 죽인 후 해리 홀레와 노르웨이 경찰에게 쫓기면서도 끝까지 욘을 추적하는 장면이 매우 박진감 있게 그려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리 홀레 비슷하게 이 남자의 어두움도 진하게 묻어 나온다. 보통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잔혹한 암살자에게 분노를 느끼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쫓기는 암살자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가 무사히 노르웨이에서 탈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라기까지 되었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서 무척 뛰어난 수사 실력을 보이는 해리 홀레도 만나 볼 수 있었다. 다른 시리즈에서 해리 홀레는 금세 수사 방향을 잃고 알코올에 중독되어 자신과 수사를 망치기 일쑤인데, 이 소설에서 해리 홀레는 매우 뛰어난 수사관으로 등장한다. 얼굴을 바꾸어 가며 신출귀몰하는 크리스토의 정체를 밝히고, 그가 남긴 단서들을 추적해서 크리스토가 등장하는 곳마다 귀신같이 나타난다. 물론 그때마다 한 걸음씩 늦기는 하지만...

소설의 결말 역시 다른 시리즈와 다르다. 항상 해리 홀레와 주변 사람들에게 절망을 주던 결말이 이 소설에는 비교적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해리의 연인 라켈과 아들 올레그는 등장하지 않지만, 소설 결말 부분에서는 그들과 행복한 삶을 이어질 것 같은 기대감도 준다.

 

 

 

다만 소설의 결말 부분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이 부분부터는 조금의 스포가 있다.) 해리 홀레는 마지막에 모든 사실을 알고 스탄키츠가 임무를 완수하고 도망하게 방치를 한다. 스탄키츠에게 죽임을 당하는 상대는 해리에게 왜 자신을 용서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해리는 이렇게 말한다. '형사의 임무는 용서가 아니다! 구원이다!'라고 말한다.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스탄키츠의 범행을 눈감아주고, 그를 달아나게 해 준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팬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들 올레그가 자신의 범행을 밝혀내고 자수를 강요하는 해리에게 한 번만 눈 감아 달라고 절규한다. 그럼에도 해리는 '나는 경찰이다! 그리고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로 인해 올레그는 해리에게 총을 쏜다. 왜 스탄키츠는 되고, 올레그는 안 되었을까...

그럼에도 이 책은 내가 읽은 해리 홀레 시리즈 중 최고였다. 그전에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레드 브레스트]였고,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소설은 [팬텀]이었다. 팬텀의 암울한 결말과 시종일관 이어지는 어두운 분위기에 읽고 나서도 내내 마음이 답답했었다. 다시는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팬텀]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리디머]를 읽으며 다시금 해리 홀레 시리즈의 매력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팬텀] 이후의 [폴리스]와 [서스트]이다. 이 두 권의 책에서 [팬텀]의 어두운 분위기가 반전되기를 희망해 본다. 물론 지금까지 분위기로 봐서는 가능성이 매우 작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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