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책에 대해 말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지만 그중 한 권.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을 읽고 있다. 일단 아는 작가 먼저, 아는 작가 중에서도 진짜 아는(작품을 읽어본 적 있는) 작가 먼저. 하지만 이름을 아는 작가, 이름과 작품을 아는 작가, 처음 들어보는 작가 가리지 않고 결국에는 전부 읽을 생각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가장 좋은 건 픽션을 다루는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현실(정치)에 머무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당연하다. 그들도 이 세계 지구인이니까. 때로 문학적 미사여구 뒤에 숨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반성과 회한 또는 따끔한 비판이나 충고로 제대로 기능할 때가 드물지 않다. 독재와 식민시절을 누구보다 잘 그려내는 동아프리카 최고이자 유일의 작가 시옹오에서 무덤까지 껴안고 가도 될 십대 시절의 나치 활동을 고백함으로써 문학에 대한 진정성뿐만 아니라 살아생전 냈던 모든 목소리까지 의심받은 그라스까지. 한때의 잘못된 신념과 선택을 사과하고 용서받기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하는 생도 있는 법이다.

 

"독재의 진짜 끔찍함은 목소리를 빼앗아 간다는 거예요." 그가 말했다. 그는 영어가 가진 국제적 지배력이 토착민들의 성대를 겨눈 칼을 날카롭게 벼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모든 언어가 어떤 의미를 갖기 위해서 무조건 영어를 거쳐야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방정식이 아니죠." -응구기 와 시옹오 (070)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작가 에이머스 엘론은 그라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어째서 60년이나 기다리고만 있었습니까?" 그의 질문은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그라스의 답변 역시 박수를 받았다. (중략)

"전 그 어린 소년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그라스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죠. 하지만 그 애는 너무 방어적이었어요. 가끔은 거짓말도 했죠. 제가 소년이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책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두 명의 낯선 사람들처럼 여겨집니다. 언젠가는 만나겠죠." -귄터 그라스 (076)

 

 

세 편 이상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 중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알고 있는 수많은 소설가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대답하기 어렵다. 있다면 굉장한 일이지만 없어도 별 문제 없을 그냥 한번 해보는 질문.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나 혼자만 (그 진가를) 알고 또 좋아하는 작가 그것도 소설가를 간직하기란 두말할 것 없이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늘 우리 아빠가 하던 말씀. 내가 아는 건 항상 다른 사람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해. 대체로 나한테 좋은 건 남한테도 좋은 법이고, 남이 좋아하는 걸 나 역시 좋아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게 그 반대보다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누구나 사랑할 책, 예외는 없을 책, 『작가란 무엇인가』 시리즈와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을 나란히 놓아본다. 그들은 고지에 도달했거나 이미 절반 이상 올라 손 흔드는데 또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너무 특출나거나 필요이상으로 고집스런 (특이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된다. 작가가 태어나는 거라든가 온 우주가 만들어내는 거라든가 하면 어쩐지 좀 억울할 것 같아서.

 

어느 봄에 그 어떤 책보다 진지하게 이 책들을 읽었다.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비우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의미들.

 

 

 

 

 

 

 

 

 

 

 

 

 

 

 

 

[파리 리뷰_인터뷰]를 편집한 『작가란 무엇인가』는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작가 중심으로 선별/번역되었으니 안 읽은 작가는 있어도 모르는 작가는 없지만,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에는 정말 모르는 작가가 몇 있다. 작가 시리즈가 인터뷰 녹취 형식의 진짜 인터뷰 양식을 표방한다면, 존 프리먼은 자신이 만난 소설가의 목소리를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언어로 온 역량을 발휘해 길어야 네 장 꽉 채운 분량으로 핵심만 써낸다. 작가 시리즈의 축소판 같고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반면 귀에 쏙 들어온다. 해당 작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과 작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읽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화권, 작품 내용, 특이한 아이덴티티, 에피소드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진 경우 존 프리먼의 글솜씨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놀랍게 잘 읽힌다.

 

 

 

『보르헤스의 말』에 실린 인터뷰와 [파리 리뷰_인터뷰]에 실린 인터뷰의 시기와 장소는 같지 않을 것이다. 같다고 해도 그만인데,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출처를 확인해보지 않았다. 보르헤스는 (직업상)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터뷰에 특정 주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같은 사람이 자신의 문학가로서의 항해와 인생을 말할 때 결국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지 않겠는가. 내가 필요이상 보르헤스-정확히는 보르헤스의 작품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두 권 다 읽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감동이 덜한 건 벌써 알고 있는 그의 생각을 다시 듣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두 인터뷰가 각각 이뤄졌지만 보르헤스는 단 한사람이다. 한사람이 세상에 대고 자신과 자신의 작품과 자신의 관심사(호오好惡)에 대해 하는 말은 천재지변이나 역변에 의한 자기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가 네가 아니라는(본질적으로 될 수 없다는) 사실과 비슷하게. 보르헤스의 외부를 더 알기 위해 인터뷰를 읽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어렵지만 그의 작품으로 되돌아가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존 프리먼으로 돌아가서,

 

아직 많은 책을 읽지 않았을 때 단연 Top에 들던 하루키는 나날이 그 순위가 내려가지만 그는 아직도 이십대 초중반 내 문학 사전 한켠에 조각 같은 달빛을 비춰주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괜히 한번 고백해보자면 '청춘의 찬란함을 쾌활하고 섹시하게 그려내는' 『노르웨이의 숲』이나 『스푸트니크의 연인』보다 『양을 쫓는 모험』이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은 '초현실적 판타지'나 '두 가지 스타일을 모두 합한' 『태엽 감는 새』를 나는 더 좋아한다.)   

"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열지요. 방은 어둡습니다. 완전히 캄캄해요. 하지만 저는 무언가를 볼 수 있고, 그걸 만질 수도 있어요. 그런 다음 이 세계, 이쪽 편으로 돌아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거지요."

"강해져야 합니다. 거칠어야 하고요. 그 어두운 방에 들어가고 싶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신뢰해야 하는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053)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이야기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그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내는 시간들 중 티끌만큼만 소설을 읽는 데 써도 좋을텐데. 내가 곧 나의 이야기. 당신이 가진 나는 각기 다른 나. 그것들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는 아니다.

 

애트우드의 말처럼.

"크게 본다면 당신이 곧 당신의 이야기예요." 애트우드가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각기 다를 것이고, 그것들 모두가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모습과는 다를 거예요." -마가렛 애트우드 (392)

 

벌써 한참 멀리 와버렸다. 가즈오 이시구로, 나딘 고디머, 도리스 레싱, 필립 로스, 모옌, 할레드 호세이니, 부부라서 2인1조로 묶인 시리 허스트베트와 폴 오스터, 사랑하는 살만 루시디와 오르한 파묵 그리고 빼먹은 여러 작가들. 다른 얘기는 아직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래, 여기가 끝이 아니겠지. 늘 그다음도 중요하다, 중요했다.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그다음 독서가 더욱 기대된다. 그다음 문학이 무척 그립고 그다음 시간이 아주 소중하게 여겨진다.

 

3분의 1 정도 되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읽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작가와는 또 언제 만나게 될지, 이름을 알지만 작품을 읽지 않았거나 한 작품 정도 겨우 읽어서 문체나 스타일, 주제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작가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작품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지 또 당신과 만나게 될지 이야기하게 될지 우리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알아챌 수 있을지.

"그 상은 절 규정하지 못해요. 그저 노벨위원회가 제 작품을 대단히 뛰어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죠. 그게 다예요. 해마다 또 다른 수상자가 나오잖아요. 수상은 중요하고, 상금은 기막히게 좋죠. 하지만 그다음도 중요하죠." -토니 모리슨 (042)

 

 

하지만 내가 다시 이 책에 대해 말할 다음이 있을까.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이제 나는 여기-이 책 옆에 지금 모습으로- 없다. 읽는 내내 원래도 남 못지 않은 독서력이 데시벨로 상승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펜을 드는데 모두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게, 같으면서도 다른 얘기를 한다는 게 신기하다. 토니 모리슨에 의하면 미국 문학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이창래와 줌파 라히리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그들에겐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지만). 더이상 표현도 안 되는, 사랑해마지않는 카뮈와 제발트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그들은 좀 더 오래 살아야했어(그들의 목소리를 이제 영영 들을 수가 없다니).  

 

이 짧은 생에 좋아하는 소설가 몇 명쯤 품고 사는 건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거룩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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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1-09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풀로 아이님 글 읽는데 나름 좋은 것 같네요. 블로그에서 보면 폰트가 작아서 잘 못 보겠더라구요. 저도 작가란 무엇인가1권 읽고 반했는데 나머지는 여태 못 보고 있네요. 저 소설가를 읽는 방법 나온 거 보고 기뻤는데... 중. 마지막 구절이 참 의미심장하군요. 행복한 일이죠.^^

아이리시스 2015-11-09 19:47   좋아요 0 | URL
네, 긴 글은 더 길게 보이더라고요, 북플이. 이런저런 장단점이 있지만 길면 끊어 읽으면 되고 저는 좋아요. 한번에 잘 읽히지는 않잖아요, 아무리 대단한 작가라고 하더라도 우리 입장에선 타인 50-60명인데. 이렇게 소설가 인터뷰를 한번 볼 때마다 책 구매욕 돋아서 큰일이에요. 그것만 빼면 아주 행복한 일이죠^^

2015-11-09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9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9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9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9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9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리미 2015-11-1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재글 잘 읽고 갑니다. 왜 이제서야 여기오게 되었을까요?ㅎㅎ 앞으론 자주 놀러올거예요^^
많이 읽고 많이 배울게요. 감사합니다!

아이리시스 2015-11-10 19: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로라님. 오오 진작 오셨어야죠 히히히😄😄 제 서재가 뉴페이스님 댓글이 저조한데, 정말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저도 많이 배울게요^-^

페크(pek0501) 2015-11-1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 권의 책 모두 제 보관함에 있는 책들인데... 그중 보르헤스의 말만 읽었어요. 좋았어요. 나머지 책은 구매 대기 중이에요.
아이 님의 글을 보니 더 사고 싶어집니다. 왜 그리 사고 싶은 책이 많은 걸까요? 읽는 속도는 느리면서 말이죠.

잘 지내시죠? ^^ 스텔라 님의 서재에서 보고 달려 왔답니다.


아이리시스 2015-11-11 13:28   좋아요 0 | URL
그럼요, 페크님도 잘 지내셨죠? 북플로 서재를 보니 한계가 명확하고 댓글도 뜸하고 순례도 어려워서 페크님 글 본지도 한참이고. 반가워요😄

책은 늘 모자라죠, 저 책들 사려면 또 한박스, 저 그제 주문한 책도 한박스, 오늘 또 살건데..😌😌😌 사지말까요? 누가 단호하게 저 좀 말렸으면ㅠㅠ
 

 

 

 

우리는 날아올랐다. 그날 우리가 본 건 무엇인가? 우리의 것이 아닌 나라,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별빛,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나날. 우리는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기를, 한계라도 경험하기를, 무엇도 얻지 않고 무엇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우리는 차가운 불꽃, 타오르는 불의 중심에서 흔들리는 푸른 불꽃을 원했으나 결국 청춘이 지나고 우리 두 손에 남는 건 아버지의 유품뿐이었다. (「마지막 롤러코스터」p.70)

 

 

서너 살만 더 어렸어도 이 책의 리뷰는 스무 살 회상의 일색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니다. 물론 나도 스무 살이 그리울 만큼 나이를 먹은 것 같다(고 말해도 될까). 그렇게 치면 나는 스물다섯 살에도 스무 살이 그리웠다. 긴가민가 와중에 결론짓길 문창과 초년생일 때 이 책을 읽은 것 같다(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 소설집은 언제부터 절판이었나. 내가 읽었다고 생각한 건 문예지에서 읽은 표제작인가(라고 말하기에 두번째 작품도 읽은 것 같고). 중요치 않다. 아니, 좀 중요한 지도 모른다. 나는 죽지도 살지도 못할 때 온다던 서른을 넘긴 지 몇 해 안 됐고, 평균 수명에 빗대 인생의 절반을 살지 못했으니 재독은 의도하지 않는다. 기억의 소멸은 알츠하이머 환자 못지 않지만 아직은 질보다 양, 깊이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관계로 재독을 철저한 계산 끝에 하고 싶은데(그러나 철저할 것까지는 없다), 기억하지 못해 공식을 깨다니.

 

어떤 의미로든 새 작품이 수록되었으니 아예 헛수고는 아니지만 나는 분명 당시 지금보다 더 젊은 작가군에 속하던 김연수의 작품이 지금보다 훨씬 수가 적을 때, 창작연도 별로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독서를 계획하며 읽었다. 15년 만의 개정판이니 2000년판 책이 도서관에 있었을 것이다. 표제작 「스무 살」의 첫문장이 유명해서 느끼는 기시감인줄 알았는데 확실히 다니던 대학 중앙 도서관 긴 나무 테이블에 앉아서, 공강 시간이던가 수업 후던가 수업 땡땡이 중이던가 하여튼 읽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캠퍼스가 세 개였다. 그중 한곳에서, 어쩌면 모두 수업중인 고요한 캠퍼스 안 벤치 하나에 혼자 앉아있었을지도 모른다(그런 청승과는 아니었는데).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대학 신입생이 되었다. 새삼, 있지도 않은 캠퍼스 거니는 낭만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이 책이 그 기억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스스로가 신기하게도, 학과특성상 나와있는 국내작가의 단편을 섭렵하던 시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개정판을 새 책 보듯 펼쳐버리고 말았지만 아무렴 어때, 소설집 『스무 살』은 정확하게 그(작가)의 스무 살과 나의 스무 살을 반추하니까.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엄마 등에 업혀 거리를 지날 때 나던 인근 대학가 희미한 최루탄 냄새가 기억난다 해서 그와 나의 스무 살이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면, 딱 이만큼 살아보니 그렇다. 스무 살은 어차피 스무 살이고, 놀랍게도 스무 살은 모두 비슷하다.

 

 

이제 스무살에 찾던 미지의 세계를 떠올리는 것보다 당장 오늘내일이 더 시급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약간 저릿해 온다. 거창한 미지의 무엇보다는 저녁 메뉴, 퇴근 후의 삶, 내일 반납해야 하는 책 해결, 시도때도 없는 졸음, 은근한 추위, 바다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별 것도 아니고 남는 것도 없는 사소한 선택이 더 중요해져버렸다. 빈곤한 추억은 분명 가난함의 반증이지만 근거도 맥락도 없이 갑자기 과거를 불러오는 사람이 사치덩어리처럼 보이고, 오지 못할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잉여 돋는 어리석음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나이 육십에도 남자(남편)와 손 잡고 다니는 여자로, 꿈꾸는 소녀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는데. 하지만 많은 것을 모르는 줄 알았고 또 실제로 몰랐던 스무 살에도 온 삶이 별처럼 찬란하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서, 가장 평범한 삶이 제일 행복하다는 걸 이제는 알면서. 내려놓는다. 또다시 『스무 살』을 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무 살은 그런 거니까. 원할 때 오지 않고 원하지 않을 때 와서 어느덧 홀연히 가버리는 어젯밤 꿈 같은 시간.

 

 

 

 

 

 

 

 

 

 

 

 

 

 

 

 

 

내가 기억하는 김연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서(물론 소설집 네 권과 장편 두 권을 더 읽은 전력이 있긴 하지만), 요즘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애인(에게) 읽히기' 프로젝트 중이라서 빌렸는데 일주일째 우리 집에 있어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하고 다시 읽어본다. 비슷한 크기로 『원더보이』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성장소설이 별로인 나는 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치고는 거의 유일하게 꼽는다. 묘하게도 <상속자들>에 인용될 때 『원더보이』를 읽었고, <남자가 사랑할 때>에 인용될 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었다. 어쩌다 보니, 『꾿바이, 이상』이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던 대학 시절에 기대만치 이 작가를 못 읽어낸 경험이 저려서 멀리하다 기회가 되었던 것뿐. 작가의 팬덤이 짙어서 한국문학의 현재 범주는 김연수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만약 이 현상이 (오래된) 감성을 소중히 하는 사람과 오글거려 하는 사람으로 나누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는 이미 이쪽과 저쪽의 거리는 너무 멀어 만날 수 없어져버릴지도.

 

속도를 더 올리자, 당장 터질 것처럼 엔진은 굉음을 내기 시작했고 핸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에 힘을 줬다. 나는 몸의 중심을 잡았다. 일단 속도에 익숙해지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머물러 있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지나쳐갔다. 아버지도, 집도, 좌절도, 슬픔도, 시간도, 공간도. 지상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거긴 시속 백오십 킬로미터로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어야만 찾을 수 있었다. 그게 어떤 것이든 다 지나가는 곳. 때로는 검은 뼈의 형상으로, 어두운 구름의 움직임이나, 가끔은 한꺼번에 흩날리는 푸른 꽃잎처럼, 모든 것은 지나갔다. (「뒈져버린 도플갱어」 pp.165-166)

 

스무 살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어른이었고, 또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치했다. 무엇을 생각하든 항상 그이상이었다. 누군가 스무 살이 이러저러했다고 말한다면 그 모든 것들이 스무 살일 것이다. 불확실성, 불투명성, 막막함, 고독, 때론 희망까지도 괴로웠으니까. 그리고 분명한 사실 한 가지. 소설집 『스무 살』은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 수록 재미있다. 십대에 꿈꾼 것처럼 진짜 스무 살은 매혹적이지도 황홀하지도 않았고, 스무 살에 꿈꾼 서른이 또 그것과 다른 것처럼, 모든 것들이 뒤로 갈 수록 반드시 더 좋지만은 않다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실 하나 더.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스무 살 그리고 서른이 눈깜짝할 새 와서 지나가듯, 지금 이 시간도 언제든지 간다, 가고 있다. 스무 살이 지나면 스물 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는 걸 이십대에 알았던 작가처럼, 지나가는 그리고 다가오는 모든 내가 나라는 것을 나도 안다. 스무 살과 함께 걷는 사람이 있고 스무 살을 죽이고 걷는 사람이 있으며, 스무 살을 잊지 못하는 사람과 스무 살을 지나와서 다행이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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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5-11-04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아주 좋게 잘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나저나 여담인데, 저는 김연수 하면 항상 이응준이 떠올라요.

이응준의 소설이 김연수의 소설보다 대중들에게 더 읽혔다면? 그런 생각을 괜히 해 보았던 거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다 부질없었던 생각 같네요 후후


아이리시스 2015-11-06 01:29   좋아요 0 | URL
비슷한 군에 있는 작가 같긴 한데..라고 말하면서 저도 이응준을 한두 편밖에 읽지 않았네요.
저는 한국소설을 주로 수상작 위주로 읽어온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데, 기존 작가보다는 새로운 스토리텔러들이 나타날 때 좋아요. 제주 4.3문학상 작품들을 좋아하고 또..

이응준의 소설이 김연수의 소설보다 더 읽혔다면? 하는 생각도 소중하고, 실제로 그렇지 않은 이유도 궁금하고, 한수철님도 저 소설을 좋게 잘 읽었다고 하시니 좋네요. 이응준도 한 권 더 읽어보고 싶고^^

stella.K 2015-11-0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창과를 전공하셨군요.
저는 김연수가 쫌 어렵더라구요.
그러다 소설가의 일에서 아, 김연수가 이런 작가구나 다시 생각하게 됐는데
지금은 읽을 기회가 없어 다시 멀어진 느낌입니다.

요즘 TV에서 응답하라 1994 다시 해 주던데
보니까 좋더군요. 그동안 볼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요즘에야 꽂혔습니다. 저의 스무 살도 생각나고.
보고 있으려니 몸은 20대, 정신은 30대로 살아보고 싶더군요.ㅎㅎ

아이리시스 2015-11-06 01:28   좋아요 0 | URL
어떤 예술군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듣는 음악, 읽는 책, 보는 영화에 대해 말해주면 좋은데, <소설가의 일>에서 그게 좋았구요, 아, 저는 단행본 나온 거 다시 한번 읽어야 하는데..(정말 열심히 연재글 읽었었어요)

[응답하라 1994]는 못봤는데 잘 봐지지도 않더라고요, 얼마전에 한 서인국이 나온 드라마 엄청 좋아서 그때도 그 드라마 생각이 났고 또, 스무 살 하면 늘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무언가에 꽂히는 거,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20대면 정신도 20대로 살아야 좋은 거 아닌가요 히히^^

stella.K 2015-11-06 11:4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뇨. 20대 때 하도 실수를 많이하고 살아서
실수를 줄일려면 정신은 30대가 좋을 것 같아요.
그때 또 나는 나이 보다 성숙하다고 착각하고 살았어요.
유치의 극치였죠.ㅠㅠㅠㅠ

아이리시스 2015-11-06 12:06   좋아요 0 | URL
아....그래서 그렇구나^^ 그런데 30대도 나잇값 못하는 사람이 사실상 많을텐데..

지금의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겠지만 더 어릴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죠. 특히 눈앞의 예쁜 사촌동생볼 때. 아, 걔는 정말 예뻐요. 자기도 아는 지 모르겠지만 아마 잘 모를 거예요. 과거에는 남을 부러워하면서 살았는데 그래도 저는 1%쯤 더 현실주의자라서 지금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좋았을 때 떠올리고 미래를 두려워 하고 현재를 불평하면서 정작 움직이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앉아서 울면 일이 해결되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면서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댓글 보니까 제가 안본 건 <응칠>인 것 같은데..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요, 마음 가득 담아 본 것도 늘 안본 것처럼 사는 걸요.+_+ 오늘부터는 <응팔>한대요!(어쩐지 기대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요즘은 <그녀는 예뻤다>, <풍선껌> 좋아해요! 그게 딱 내 또래 얘기니까. 시대가 잘못 가고 거기 제 잘못이 있다고해도 일단 연애는 하고 살기도 해야 하니까^^

stella.K 2015-11-06 12:50   좋아요 0 | URL
그녀는 예뻤다가 정말 인기가 많은가 봐요.
저도 30대를 살았다면 로맨스를 나름 좋아했을 텐데
이젠 그런 게 눈에 잘 안 들어와요.
대신 우연찮게 문근영 나오는 <마을>을 보게 됐는데
의외로 괜찮은 거 같더라구요. 미스터리에 약간의 연극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서 관심이 가더라구요.

<응사>는 이번에 다 본 건 아니고 띄엄띄엄 봤어요.
아침 시간에 해 주는 거라 진득하니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재밌고 나름 진지하기도 하고. 유연석이 좀 아쉽게 됐긴 했지만
그의 풋풋함이 좋더군요. 성동일은 정말 연기를 잘 하는 것 같아요.
오늘부터 한다는 <응팔>도 본방사수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짬짬이 보려구요.

일케 아이님과 댓글 나누니까 좋으네요.
요즘엔 영화 보다 드라마를 많이 보는데 통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아서리...ㅋ^^


아이리시스 2015-11-11 00:37   좋아요 0 | URL
댓글을 제가 빼먹었네요, 답글 달 일도 별로 없는데, 늦어서 미안해요. <응팔>봤어요, 1회. 웃기더라고요. 손에 손잡고~ 호돌이도 귀엽고. 딱 하나, 언니랑 맨날 치고박고하는 게 짜증났는데.. <마을> 추리하는 재미로 보다가 진지하게 해석하면서 보면 더 섬뜩하고 무서워요. 아무것도 밝혀지는 게 없어 점점 답답하고.

지난주에 제일 충격적으로 무서웠던 건 <그것이 알고싶다>의 몽키하우스. 한번도 몰랐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끔찍한데, 사실 그시절 생각하면 꼭 그런것도 아니죠. 이 프로는 나날이 정점을 찍는 것 같아요. 뭘보든 항상 재미있게, 행복하세요. 그럼 좋죠, 그게 좋아요^^

2015-11-05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6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5-11-1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는 사실 원더보이 읽다가 포기했어요. 아이님이었나, 누군가 제게 선물로 주신 책이었는데 다 읽어내지 못해 그 분께 죄송하다고 전해드렸던 기억이 나요. 문장도 어렵고 내용도 어렵고 어린 제게는 좀 벅찬 소설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러다보니, 또 어쩌다보니 김연수의 소설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은 것 같은데(국문학도라고 말할 가치도 없죠.), 책 좀 읽어야겠다 싶어요. 요즘엔 책보다 영화보기에 심취해서 소설을 읽지 않았더니... 스스로에게 죄책감도 좀 들고.

아이리시스 2015-11-24 12:43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안녕? 맞아요, 소년을 위로해줘, 랑 같이. 이것만 읽었다고 그때 그랬었어..그랬었지.. 국문학도라고 무조건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건 아니죠(그걸 말해줬어야 했어), 그러니 죄책감이나 자괴감 갖지 말고,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면 되죠, 그러면 돼요. 그리고 한 권 읽으면 그때 어떤 책인지 말해줘요. 음, 겪지 않은 이야기, 라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읽은 애인이 말했어요. 그렇다면 그전에 읽은 지상의 노래, 도 마찬가지인데 그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거든요. 그말을 들은 내가 소설을 읽는 일은 (몸을 부딪쳐) 겪지 않은 일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았던 건 아마도 그사람이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아마 그때, 소이진님도 그래서 어려웠을까요? 원더보이는,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의 세계를 봐야 하는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김연수 못 읽으면 어떻고 안 읽으면 또 어때요, 그래도 소이진님은 예쁘고 대견하고 또, 잘 하고 있어요. :)
 

 

 

 

가즈오 이시구로가 쓴 순은 『창백한 언덕 풍경 1982』,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1986』, 『남아있는 나날 1989』이고, 내가 읽은 순은 1,3,2이다. 1을 읽을 때만 해도 3은 진작에 나와 있고 유명한데 2가 곧 나올 줄은 몰랐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순을 들춰보지도 않았고 작품연도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995』, 『우리가 고아였을 때 2000』, 『나를 보내지 마 2005』, 『파묻힌 거인 2015』도 나와 있지만 3부작에 대해 기록하는 페이지다. 나는 나와있는 그의 작품을 모조리 읽었다. 아니다, 『녹턴 2009』이 남았구나. 도무지 못 넘는 단편의 장벽.. 옆에 뒹구는 김연수의 『스무살』..

 

삼부작이 한 권이라고 작가가 말했는데(『파리 리뷰』에서), 말하지 않았어도 아마 문학팬들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전쟁-신념-행동-패전-회고-부끄러움-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 어떤 의미에서는 2세대 혹은 3세대, 부모-자식, 스승-제자 의 갈등과 화합이기도 할 것이다. 다음 세대는 늘 이전 세대를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고, 잇는 동시에 단절하며, 연결하면서 능가하기를 원한다. 1은 자살한 딸과 떠나온 고향(나가사키) 친구(모녀)를 회상하는 엄마의 회상, 2는 노老화가의 회상, 3은 옥스퍼드 대저택 집사의 회상. 세 권의 공통점은 전쟁과 제국주의, 2,3의 공통점은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입으로 이야기를 진행한 것. 1은 예외인데, 읽는 중에도 세 권 모두 읽은 지금도 제일 아련하고 정교하며 우아하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서인지 회상과 묘사가 가장 아름답다. 삼부작을 읽고나니 얼마 전 읽은-귄터 그라스가 십 대에 자원입대한 나치 친위대 활동을 고백하기 위해 쓴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와 상통한다. 이 자서전은 귄터 그라스가 젊은 시절-10대부터 30대까지-의 회고록을 집필한 것이지만, 흑역사를 고백하는 바람에 형식상 결론은 그렇게 되어버린 면이 있다. 엄마, 화가, 집사, 귄터 그라스는 한때 신념을 가지고 행동했지만 이제 달라진 세상에 지난날의 흑역사를 고백하고 솔직히 사과(화해)하는 방법을 택한다.

 

물론 그 저녁의 몇몇 순간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던 척하지는 않겠다. 또한 상황에 밀려 신중함을 발휘해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 해도, 내가 그렇게 자진해서 지난날에 대해 그런 종류의 발언을 했을 거라고 주장하지도 않겠다. 그렇긴 해도 자존심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이 과거에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오랫동안 회피하고 싶어 한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한 인간이 삶의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함으로써 얻어지는 만족감과 권위가 틀림없이 있다. 어쨌든 신념에 차서 저지른 실수는 그렇게 부끄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수치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p.171)

 

 

 

 

 

 

 

 

 

 

 

 

 

 

 

 

 

"기사부로는 불행한 사내일세. 그의 삶은 서글펐지. 그의 재능은 점점 스러지고 있어. 그가 한때 사랑했던 것들은 오래전에 죽거나 그의 곁을 떠났지. 우리가 젊었을 때에도 그는 이미 외롭고 슬픈 인물이었네." 모리 선생은 잠시 말을 멈춘 다음 다시 이었다. "하지만 이따금 술을 마시고 환락가의 여인들과 즐길 때면, 기사부로는 행복해했지. 그 여자들은 그에게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모두 해주었고, 어쨌든 그날 밤 동안은 그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었어. 아침이 밝으면, 물론 그는 똑똑한 사람이어서 그런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하지만 기사부로는 그런 밤들을 아침만큼이나 가치있게 여겼어.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곤 했지. 가장 좋은 건 밤과 일체가 되었다가 아침과 함께 사라지는 거라고 말일세. 사람들이 부유하는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 말일세, 오노, 기사부로는 그걸 제대로 평가할 줄 알았다네."

(중략)

"이제 그는 더 늙고 더 서글퍼졌네. 하지만 많은 점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어. 오늘 밤 그는 행복하네. 그 옛날 환락의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마치 담배 연기를 내뱉듯이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런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화가가 포착하고자 하는 가장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이 해가 진 뒤 환락의 집 안에 떠돈다네. 그리고 이런 밤들이면 말일세, 오노, 그 아름다움 중 어떤 것이 이곳 우리의 거처로 은연중에 스며든다네. 하지만 저기 있는 저 그림들은 그런 덧없고 꺼지기 쉬운 꿈 같은 그 무엇을 암시조차 못하지. 저 그림들에는 지독한 결점이 있다네, 오노."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p.201)

 

주인공들 모두 직간접적으로 전쟁과 연관이 있고,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전쟁의 시절을 겪으며 가진-혹은 고수한-신념에 기반해 행동한 전력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패전하면서 그들은 나빴지만 성취에 젖었던 시절을 수치와 신념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으로 떠올린다. 집사의 경우, 자신의 직업적 신념 때문에. 화가의 경우, 나이 찬 둘째딸을 괜찮은 집과 혼인 맺어주기 위해. 옮긴 문장들은 회상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들. 삼부작이 밑줄 그어 하고자 하는 주제와 가장 가깝다. 과거에 했던 일과 선택이 틀렸다고 해도 시간을 되돌려 다시 다른 결정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정하고 고백하고 사과할 수는 있다. 용기와 정의는 어떤 점에서는 닮은 단어인지도 모른다. 해가 밝으면 별빛이 자취를 감추는 것처럼 당연하다. 

 

 

#밤과 일체되었던 모든 것들은 아침이 되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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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1-0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언제나 책을 에너지 넘치게 읽으시는 아이님을 보면...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여행도 다니시고.
제가 원하던 삶이었는데...ㅠㅋㅋㅋ
그래서 그렇게 지난 여름 뵐 수가 없었나 봅니다.
요즘엔 자주 보게 되네요.^^
그런데 제목 앞에 Ep. 1, 2...는 뭘 의미하는 건가요?

아이리시스 2015-11-03 11:31   좋아요 0 | URL
별 걸 다 부럽다고 하시고.. 좋아하는 일이고, 특별히 매여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기름 많이 먹는 차라서 기름만 몇 십만원어치를 썼으니까요.. 담번엔 기차타기로 꼭.. 그래도 6월쯤인가 정동진 갈 때는 기차 탔습니다.. 비 오고 춥고, 15년 전 갔던 것보다 많이 변한 정동진 풍경이 낯설었어요. 바다는 여전했지만.. 뜸했던 건 맥북이 사망해서.. 완전 사망은 아닌데 켜면 승질이 나서 그냥 안 켜는 방법으로..

Ep. 는 에피소드인데, 리뷰/페이퍼가 저는 좀 긴 편이니까 생각날 때마다 까먹지 말고 짧게 남기려고(아무 주제나 막 하루에 하나씩 쓰는 느낌?) 했는데 점점 길어지고.. 이거 스텔라님 예전에 하루에 한 편씩 글 남기던 때 생각나요. 아마 그러진 못할 거지만..

좋은 하루! :)

stella.K 2015-11-03 12:2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때를 기억해 주시다닛! 황송하여라...ㅠㅋㅋㅋ
아, Ep가 그런 뜻이었군요.;;

정동진이 그렇게 달라졌던가요? 저도 생각해 보니 가 본지가 20년쯤 되오나 봅니다.
올해 시작하면서 여행을 해 보리라던 불가능한 목표를 세웠는데
역시 이루지도 못하고 한 해가 가려나 봅니다.ㅠㅠ

아이리시스 2015-11-03 13:39   좋아요 0 | URL
그때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
특별한 건 아니고 열여덟살인가에는 가족들과 차 갖고 갔거든요. 역을 아예 안 통해서 잘 몰랐을 수도 있고 기억이 왜곡됐을 수도 있는데, 예전엔 정말 한가로운 느낌이었는데 이제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엄청 저렴하고 예쁜 게스트하우스들이 그 좁은 도시 기차역 앞에 오밀조밀하게 있는 게 신기했어요. 바다는 여기나 거기나 별 차이가 없었어요. 어릴 때는 강원도 바다가 정말 운치있고 드넓고 아름답게 느껴졌었는데..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가까운 곳이라도 꼭 가시면 좋겠어요. 한번 가면 또 자꾸 가게 되니까..

2015-11-03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6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3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3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러니까 시작은 『마션』이다.

 

 

              

                                                                                                                       She was always alone.

 

 

 

 

이토록 멜랑꼴리한 밤을 만드는 주범. 잠을 설친 새벽 비몽사몽 눈을 떠서 e-book을 읽었다. 그리고 라이카는 이토록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마크 와트니 대신 그에게 씌어버린 주범의 주범이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다시 지구에 올 때는 별의 조각을 가지고 온다던 라이카는 가는 도중 겁에 질렸고 공포로 숨이 멎었다. 타 죽었거나 부딪혀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렇다 치자. 다시 지구에 올 때. 별의 조각을 가지고. 올게요. 엉엉. 어느날 나는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스푸트니크 2호에 탄(강제로 태워진) 라이카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침묵과 억울이 섞인 울음을 울었다. <Space Dog>의 가사는 그저 거들 뿐이었다. 이 곡은 정말 Queen의 Bohemian Rhapsody보다 더 슬프잖아. 가사 있는 노래 중에 내가 가장 경이롭게 여기는 노래는 지금까지 <Bohemian Rhapsody>이다. 라이카는 알았지만 <Space Dog> 가사는 몰랐던 때까지.

 

 

 

# 내가 다시 지구에 올 때는 별의 조각을 가지고 올게요.

 

 

1957년 발사된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진 개 라이카. 다시 오지 못하는 길을 간다는 걸 라이카는 알았을까.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몰랐듯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겠지. 마지막 식사에 든 독을 먹고 안락사 되었다는 주장이 뒤바뀐 2002년. 실험에 참여한 한 과학자의 고백에 의해 라이카는 진입했을 때부터 공포에 질려 버둥대다 곧 그 불쌍한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게 알려졌다. 인간이 잔인하다는 걸 태초부터 알았지만, 그 작고 연약한 생명을 아무런 대안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우주선에 얹혀, 홀로 보내졌다. 어느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억울하면 잠이 오지 않는 버릇이 있는데, 언제부턴가는 실수해도 아파도 슬퍼도 잠이 오지 않는다. 좀 무서워진 적이 있다. 나이 먹을수록 두려운 게 많아진다는 건 확실히 이상하다. 겁 없을 때가 좋았는데. 어릴 때, 원하는 걸 얻으려는 인간이 한낱 개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길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얻을 것만 얻고 버리는 게 인간인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밥에 약을 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인간의 이타성이니까. 역시! 라이카의 고통이 몇 시간(이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게 차라리 더 인간적인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연한 사고(모래폭풍) 때문이기는 하지만 대책도 없이 혼자 남겨진 마크 와트니는 왜 이렇게 발랄한가. 나라면 그냥 우주복 껴안고 이불 뒤집어 쓰고 가만히 있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인간은 그렇지 않다지만 다른 생각을 못하겠다. 만약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면 어쩌지, 그런데도 잠에서 깬 아침 숨이 쉬어지고 앞이 보이고 팔다리가 계속 움직인다면. 나는 마크처럼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아서 감자도 못 키우고, 이과를 나오긴 했는데 공대는 안 들어가서 배운 화학 공식이 모조리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무엇보다 혼자. 그에게는 아직 혼자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먹을 게 없다는 것보다 나 혼자라는 게 나는 제일 슬프다. 자꾸 라이카가 떠올라서. 『마션』 읽고 마크가 아니라 라이카에게 빙의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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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11-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좀 다른 얘기긴한데 어제 오랫만에 TV 동물동장을 봤는데
투견판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온 까불이란 개를 소개하더군요.
육체는 물론 마음까지도 상처를 받고 아무한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개의 이야기였어요.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다행으로 지금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는데
그걸 보면서 참 인간이 죄가 많구나 싶더군요.
라이카의 이야기가 참 마음을 찡하게 만드네요.ㅠ
애니메이션 예쁜데 어디서 가져오셨나요?
번역까지 되있으면 얼마나 좋아요?ㅠㅠㅋ

아이리시스 2015-11-02 19:17   좋아요 0 | URL
응 저도 멍때리다가 문장이 빨리 지나가면 다시 뒤로@.@ 동물농장 안본 지는 좀 됐는데 강아지 에피소드 나오는지 제목은 항상 봐요. 어제는 그렇더라고요. 투견 치유 프로젝트. 글만으로도 아파서 그냥 안봤어요. 약간 고문이에요 그런 게 요즘은. 애니메이션은 유튜브에서 라이카 검색하니까 나왔어요. 근데 이름이 까불이에요?ㅎㅎㅎ😅😅😅

stella.K 2015-11-02 19:10   좋아요 0 | URL
ㅎㅎ네. 사실은 굉장히 소심한 갠데
그 개를 치료해 줬던 병원 사람들이 그렇게 지어줬대요.
명랑한 개가 되라고 그렇게 지어줬다는데...
투견들은 보통 지면 죽는다는 생각에 한 번 물면 죽을 때까지 싸우도록
길들여져 있는데 까불이는 그렇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마도 맡은 역할이 싸우면 지도록 훈련 받았다고 하더군요.
권투에서 스파링 파트너처럼.
경찰이 불법 투견 현장을 급습했는데 총 17마리 중 3마리만 구출할 수 있었죠.
그중 한 마리가 까불이고 나머지 12마리는 증거 불충분으로
구하지 못했대요.
현재 법을 개정하도록 국회 심의에 들어갔다는데 잘 되서 나머지도 구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ㅠㅠㅠㅠ

아이리시스 2015-11-02 23:43   좋아요 0 | URL
들으니까 보는 거보다 더 슬프네요. 17마리 중 3마리.. 싸우면 지도록 훈련.. 이런 게 가능하다니, 하긴 여름에 전라도 돌고 청도에도 갔었는데, 거긴 버젓하게 소싸움 경기장이 관광지더라고요. 프로방스 빛 축제에 갔었는데 일요일마다 경기가 열린다는 걸 보고.. 딴 건 모르겠지만 인간 좋자고 일부러 싸움시키는 건 좀..

스텔라님 댓글에서 더 신기한 건 법안 심의예요. 이제 살다살다 당연한 일이 더 이상하고 신기할 지경..까불이가 이제라도 안 아프고 잘 먹고 잘 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 요즘은 돌보는 냥이 있어서 예전보다 냥이 에피소드들도 너무 재미나더라고요! 보은으로 집에 막 쓰레기 물어다놓는 애도 있었고, 몰래 잠입해서 사는 애도 있었고ㅎㅎㅎ

2015-12-11 0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2 0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자의 책
폴 서루 지음, 이용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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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책』을 눈앞에 두고도 정체를 모르다가 한 챕터가 끝나고서야 안다. 아, 이 책, 이토록 신비로운 독특함. 여행기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생각과도 다르고 기대와도 다르다. 여행을 (본인이) 닿을 수 있는 삶의 모든 가치와 견주어 보는 습관이 있을 정도로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나)에게는 필연적인 책. 하지만 물리적 이동보다 공간의 변화 없이도 원하는 세상을 얻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도 다가가기 좋을 책. 여행의 설렘으로 누구에게나 조금 소중할 책. 궁극적으로 여행 책은 모두 이 우주를 듬뿍 담고 있으니. 이 책은 여행과 여행자에 대한 거대한 아포리즘이다. 시중에서 번역본으로 딱 한 권 구할 수 있는 폴 서루의 유명한 저작 『아프리카 방랑』을 읽은 적 있기에 나와 작가의 거리는 비교적 가깝다. 단편소설을 많이 쓴 책에 일가견 있는 '도서관'의 작가 보르헤스의 『픽션들』 이나 『알레프』를 펼쳤다가 소설이 아니라 철학 에세이였구나, 감탄으로 끝내본 독서경험이 있듯, 『아프리카 방랑』 역시 여행 작가가 쓴 기행서라기보다 『슬픈 열대』로 유명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레비-스트로스의 글에서 인류학적인 연구 부분을 빼고 여행 부분만을 떼어놓고 읽을 때 얘기지만.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여행이 몹시 필요하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건전하며 너그러운 견해는 일생 동안 지구의 한 작은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_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 여행기, 1869』

 

폴 서루는 『바다에 면한 왕국』에 이렇게 쓴다.

 

여행은 많은 경우에 시간에 대한 실험이다. 제3세계 나라들에서 나는 내가 과거로 떨어진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든 결코 무시간성이라는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특별한 연도들을 갖고 있다. 터키에서는 1952년, 말레이시아에서는 1937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910년, 볼리비아에서는 1949년이었다. 소련에서는 20년 전이었고, 노르웨이에서는 10년 전, 프랑스에서는 5년 전이었다. 호주에서는 늘 작년이었고 일본에서는 다음 주였다. 영국과 미국은 현재였다. 그러나 현재는 미래를 포함한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장을 읽으면서야 나는 그가 여행을 시간 여행에 빗댄 완전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기차여행에 관한 문장들을 지나 헨리 필딩(1707~1754)의 말을 만난다. 이 책에 밑줄을 그으면 몇 문장이면 될지 모르지만 포스트잇을 붙이면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관습과 풍속이 모든 곳에서 똑같다면, 언덕과 계곡과 강이 다르다고 해도, 여행만큼 따분한 일은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지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점들은 여행자에게 그의 노동에 걸맞는 만족을 거의 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고전 작가들의 여행기는 대체 언제, 얼마만큼의 여행한 후에야 쓰여졌을까. 이 대단한 작가들은 여행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무엇보다 궁금한 건 시대도 장소도  제각각 다른 유명인들의 여행 가방에 무엇이 들었을까 싶은 것. 이에 대한 정보는 유명 작가의 경우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역시 흥미로운 구절들이 많이 있다.  잭 런던은 젊은 시절부터 알코올 중독과 콩팥 질병, 위장 문제가 있었다. 여행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렸는데, 40세에 모르핀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그레이엄 그린은 광적인 우울, 거미에 대한 공포, 새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가 있었다고 한다. 헨리 제임스는 지속적인 변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년기 내내 유럽의 여러 온천을 찾아다녔고, 에벌린 워는 스리랑카로 가는 항해 도중 편집증과 피해망상증이 일어났으며, 이 증상은 『길버트 핀폴드의 시련』이라는 작품을 낳았다.

 

사실 여행의 기간과 장소 그리고 날짜는 여행을 관통하는 중요한 정보가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가 궁금한 건 글로 이름을 떨친 유명 작가들이 정작 누구와 여행했는가 이다. 그중에 블륜 커플도 있었을지, 모험이나 미스터리 장르로 환원될 만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친구들과 케이프 코드를 횡단했고, 56세의 앙드레 지드는 26세의 연인과 함께 콩고와 차드를 여행했다. 브루스 채트윈은 『파타고니아』와 『송라인』을 쓰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친구, 안내자와 여행을 갔다고 했지만 실은 동성의 연인이나 아내와 함께 갔다. 키플링 역시 그의 많은 여행에 아내가 함께 했으며, D.H 로렌스와 존 스타인벡, 레비-스트로스도 아내와, 서머싯 몸은 연인과 함께였다.

 

 

처음 듣는 얘기지만 일반적으로 영국인 여행의 역사는 햇빛을 찾아 떠난 여행의 역사와 같다고 한다. 영국의 날씨가 대체로 우중충해서 기후 탓이 크다고 하는데, 이 말에 반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D.H. 로렌스와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은 이 말에 크개 동의했던 것 같다. 여행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행하는 법을 모른다면 걸으면 해결된다. 하지만 평생 여행 한번 하지 않고도 그것을 미덕으로 만든 자들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80년에 이르는 생애 동안 그의 탄생지인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칼리닌그라드)로부터 160킬로미터 이상 여행한 일이 없었고, 필립 라킨은 영국 해안의 헐에 있는 집에서 벗어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에드거 앨런 포는 영국에서 짧게 젊은 시절을 보냈을 뿐이고, 소로는 결코 미국을 떠나지 않았으며, 에밀리 디킨슨도 거의 집에 매여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이국에 대한 훌륭한 글을 썼다. "집에 머무는 것, 내부에 머무는 것,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관습적인 여행의 방식에 길들여진 정신을 자극할 수 있다"는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All or Nothing을 모토로 사는, 여행애호가인 나도 충분히 동의할 만한 말이다. 위스망스의 『거꾸로』 에 나오는 주인공은 런던을 여행하기 위해 공들여 계획하지만 나태에 압도되어 파리에 있는 영국풍 술집의 디킨스적인 분위기에 만족한다. 영국 해협을 건너는 지루함에 대해 생각한 그는 여행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이룩하는 데 성공한다.

 

또 한 편의 아름답고 아련한 작품에 대해 오마주할 생각이다. 여행은 상상에서조차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이는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상상력은 여행에 대한 상상력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설이 '상상 여행' 범주에 포함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화자는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의 여행담을 들려주는 마르코 폴로이지만 작가의 상상 안에 존재하는 실제의 마르코 폴로와는 다른(변형된) 인물이다. 그리고 음식! 여행지에서의 음식 맛은 절대 잊혀지는 종류의 감각이 아니다. 여행의 유일한 즐거움 중 하나지만 여기 나오는 고슴도치, 고양이, 낙타, 여우, 올빼미 고기와 원숭이의 눈, 코끼리의 코, 원숭이 스튜, 튀긴 사고 딱정벌레, 아시아의 개고기에서 포기, 이만 다음 챕터로.

 

 

여행자에게는 자유와 지혜, 규칙이 모두 요구된다. 그리고 어느 기준도 없이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앞서 말한 레비-스트로스의 경우 여행을 위해 여행한 게 아니었다. 그는 신화연구자와 인류학자로서 여행했지만 역사에 남아있는 그의 글은 여행을 말할 때 종종 인용된다. 그는 브라질에서 여행을 시작해 인도와 파키스탄을 여행했고,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회원이었고, 백 살이 넘게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슬픈 열대』에는 여행 문학으로도 전혀 손색 없는 구절이 있다.

 

여행은 보통 공간의 이동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부적절한 개념이다. 여행은 공간, 시간, 사회 계층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각각의 인상은 이 세 개의 축에 공동으로 연관될 때에만 규정될 수 있다. 그리고 공간은 본질적으로 3차원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여행에 대해 적절한 묘사를 하려면 다섯 개의 축이 필요하다.

 

여행자가 여행을 통해 자신의 문명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문명과 접촉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그러한 예는 점점 줄어들었다. 현대의 여행자는 인도를 방문하든 미국을 방문하든, 생각보다 덜 놀란다.

 

아마도 그때의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막보다는 내 마음의 사막에 대한 탐험이었다. _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스스로 여행에 대해 가진 로망과 환상을 많이 걷어내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어쩌면 여행을 환상으로 만든 건 내가 아니라 여행의 본질인지도.

 

왜 어떤 장소는 추앙하고 왜 어떤 장소는 홀대하는지, 가보지 않고도 그곳에 대해 훌륭하게 쓴 작가들의 비결이 뭔지 궁금해하다가 여행 고전들을 더 읽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닿았다. 폴 서루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느 책에서 만나든 여행에 관련된 문장은 그저 훑고 지나쳤을 게 분명하지만, 이제 좀 더 주시하게 되겠지. 그것만으로도 굿.

 

『파타고니아』와 『송라인』, 『토성의 고리』, 『슬픈 열대』, 『맨더빌 여행기』를 비롯해 유명 작가들의 여행기를 찾아볼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펼쳤다가 낯선 이질감에 도로 덮고 나오던 책이 어디 한둘인가만, 『맨더빌 여행기』는 유독 표지까지 기억난다. 그러면 이제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여행지를 결정해야 하나. 어떤 장소의 이름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 여행자를 매혹한다. 어떤 이름은 이유없이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못해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이름을 예로 든다. 바그다드, 만달레이, 타히티, 마르세유, 과테말라시티, 알렉산드리아, 상파울루, 비아리츠.. 왠지 모르게 위험하고 아찔하고 오묘하고 이상할 것 같은 도시들이다. "여행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이라고 알베르 카뮈는 썼다. 하지만 정작 자동차 공포증이 있던 카뮈는 멀리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여행하는 조건은 각자 다른 법이고, 말했듯 자유가 가장 우선이다. 폴 서루가 쓴 『여행자의 책』에서 여행은 이렇게 끝난다. 여행의 규칙 혹은 의미 열 가지. 다 나열하진 않겠다. 생각은 각자 다른 법이니. 여행은 몇 가지 깨달음과 통찰을 남기고, 좁은 세상을 달라지게 하고 심지어 변하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영영 끝나지 않는다. 끝났을 때조차도. 물론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과 돌아갈 곳을 알고 있을 때만. 일기를 쓰고 친구를 사귀고 추억을 샀다. 내 여행은 매번 그렇게 끝났다. 사진으로 남기고 기억으로 붙들어 글로 옮겼지만 소용 없었다. 나는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어디에도 어느 한 순간도. 여행에서 머무는 건 내가 아니라 시간일 뿐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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