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
수신지 지음 / 귤프레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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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나도 모르게 눈물났다
다가오는 휴가는 며느리 하계훈련
진즉부터 가슴답답증에 걸렸다
도대체 며느라기는 언제까지일까?
남편이 읽었으면 한다
읽어도 이해 못할까?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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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나애미 2019-07-2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라 아이들도 잘 보니 가족 모두 같이 보세요^^

딸기홀릭 2019-07-27 19:17   좋아요 0 | URL
이번생엔 글렀어요 ㅠ

2019-07-27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홀릭 2019-07-27 19:1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고프지만 딱히 이유가 없네요
조금씩 조금씩 바꿔가길 바래요
적어도 내 아이대에는 이런 건 고민거리도 되지 않았으면 해요
 

민음 한국사 시리즈
보통 통사-조선왕조실록의 정치사 중심의 역사서만 읽어본 것 같은데 이건 좀 색다르다
15세기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의 흐름까지 파악할 수 있어 넓게 보는 눈을 키워준다
시리즈 전부 읽어보고 싶어졌다

부제 ‘조선의 때 이른 절정‘이 무척 와닿는다
절정기이긴 했으나 너무 빨랐다...거나 혹은 오래 가지 못했다는(오래는 가긴 했는데?) 뉘앙스를 인정하면서도 속상하고 안타깝다

태조에서 성종까지가 고작 1세기밖에 안되는지 생각도 못해봤다
벌써 읽은지 4년이나 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6권이나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가 제일 재미있긴 했다)
특히 박시백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세종의 단점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보니 다시금 위대한 왕이란 생각이 든다
민음한국사 16세기는 그 이후에 읽어야지

흥미로운 내용들과 도판이 좋긴 하지만 도판이 작아서 자세히 봤으면 하는 것들도 종종 있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p. 44
흔히 조선 시대의 대외 정책을 시대교린 ‘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대의 대상은 중국이고, ‘교린‘의 대상은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나 부족들이다. 즉 여진· 일본· 유구 등이다. 그런데 ‘교린‘이라는 말에는 서로 필직할 만한 나라가 대등한 지격으로 교류한다는 의미가 담기 있다. 따라서 조선이 여진·일본 유구 등에 교린 정책을 시행했다면, 이는 조선이 이들 나라와 부족을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과연 조선이 여진 일본. 유구 등을 대등하게 인식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p. 169
한글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세종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은 한글을 세종이 친히 만들었다는 친제설보다는, 세종이 신하들과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협찬설이나 세종은 지시만 하고 실제로는 신하들이 만들었다는 명제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글을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생각은 전혀 사료에 바탕을두지 않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료에서는 일관되게 한글을 세종이 친제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세종실록』 1443년 12월 조 기사가 그러하고, 『훈민정음』의 정인지 서문도 그러하다. 협찬설이나 명제설을 옹호하는 이들은 흔히 당시에는 신하들이 한 일이라도 왕의 업적으로 돌리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세종실록』을 다 뒤져 보아도 세종대에 이루어진 많은 일 가운데 ‘친제‘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글이 유일하다. 세종이 신하를 시켜서 한 일은 분명히 신하를 시켜서 했다고 하지 세종이 친제했다고 한 사례가 없다. 실록이나 기타 기록에서 세종이 한글을 친제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별 근거 없이 그것을 불신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p. 172
앞에서 일부 학자들이 실록의 ˝훈민정음이 완성되다.˝라는 기사에서 훈민정음이 문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해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음을 밝혔다. 이 훈민정음이라는 말이 문자가 아니라 책을 의미함을 깨닫기까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용재총화』에 등
장하는 ‘언문‘도 문자가 아니라 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다른 사료들과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다.

p. 232
이처럼 대신과 삼사의 임무와 성향은 상반되지만 그 인적 구성은 긴밀한 연속성과 순환성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이후의 역사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조선의 주요 관원들은 젊을 때는 삼사에 근무하면서 탄핵과 간쟁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만, 그 뒤 나이를 먹고 품계가 올라 대신이 되면 그 관직에 합당한 현실론적 태도를 나타낼 가능성이 컸다. 이런 관직 운영 체계는 그 뒤 전개된 사화와 당쟁 등 정치적 갈등을 분석하는 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 사화들을 관통한 주제는 이 시기에 나타난 제도적 변화의 핵심인 삼사였다. 탄핵과 간쟁이라는 고유한 기능상 삼사는 국왕, 대신과 긴장하거나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화의 시련을 거치면서 삼사의 언론 기능을 확립했고, 삼사로 대표되는 조선적 정치 운영은 그 핵심적 특징을 완성했다. 이런 체제는 그 뒤 여러 한계를 드러내면서 다양한 수정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형성된 제도의 구조는 그 뒤의 수많은 발전과 변화가 융합되고 흘러나오는 견고한 주형으로 남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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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동시로, 동요로 새롭게 만날수 있다
수록된 동시가 모두 동화인건 아닌것 같지만
먼저 읽었던 동화들은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그보다 더 집중하게 되는건 동요로 들어봤던 동시들이다
특히 뿌지직뽕~ 신선바위 똥바위를 좋아한다
똥이야기에다 노래도 재미있다
부록으로 CD가 들어 있는데 상호대차했더니 부록은 안따라왔다 ㅠ
음원찾아서 들려주었더니 신나게 따라부르기까지~!
동시집 읽어주는게 글없는 그림책만큼이나 어렵다고 느끼는데 아이들은 짧막한 글들을 순서 상관없이 골라 읽는 재미가 있는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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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une0808 2019-07-26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에선 오밤중 다 큰 아들 집에 가서 자는 아들을 안고 노래를 부르는 사이코같은 엄마의 행동은 동의하지 않지만 그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거라 생각...이야기는 이야기일뿐이니 ㅎㅎ

로버트 먼치는 스토리텔링한 것들을 이후 책으로 냈다고 한다
하여 로버트 먼치가 직접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을 들어보면 느낌이 또 다르다
로버트 먼치 홈페이지 참고하시길~
https://robertmunsch.com/book/love-you-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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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민의 한양읽기 : 궁궐 상 홍순민의 한양읽기
홍순민 지음 / 눌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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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05
안목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안목의 출발점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늘 보는 것도 관심 없이 보면 그렇고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면 늘 거기 있던 것도 예전에 미처 몰랐던 느낌으로 다가온다.

p. 48
오늘날 경복궁의 서쪽 인왕산 기슭, 다시 말해서 상촌 지역을 서촌西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근거가 무엇이지 모르겠다. 이 지역을 서촌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한성부의 서부西部는 소의문 안 지역, 오늘날로 치자면 정동을 포함한 일대였다. 굳이 옛이름으로 부르려면 웃대 또는 상촌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p.53
종을 매단 건물이 2층이면 종루, 단층이면 종각이라고 하였다.

p. 67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는 건물도 그 주인의 신분에 따라 격이 달랐으며, 명칭도 구별해서 붙였다. 건물에 붙는 이름 가운데 전 자는 임금이나 임금에 버금가는 인물과 관련된 건물에만 붙였다. 궁궐이나 일반 사가에서는 아무리 높은 신분의 사람이 사는 건물이라도 임금이 아닌 한 당 자나 그 이하의 합, 각, 재, 헌, 누樓, 정 등 다른 글자를 붙여격을 낮추었다. 기념비전의 이름에 ‘각‘이 아닌 ‘전‘을 붙인 것은 황제인 고종과 관련된 건물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p. 94
‘고궁‘이라고 부르는 것과 ‘궁궐‘ 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궁궐에는 지금 살아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면, 고궁에는 이제는 궁궐로서 기능이 사라졌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궁궐보다는 고궁이 더 적합한 표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옛날 궁궐로만 보지 않고 그 궁전이 살아 있던 시기의 모습을 헤아리고 살려보려고 한다면  궁궐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극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궁궐‘이라는 말을 쓴다.

p. 150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전통 건물은 홀로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정자나 비각, 영당 같은 것은 뚝 떨어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 주택에서부터 시작하여 관아 건물, 향교나 서원 같은 교육 시설, 사당이나 종묘같은 제의 시설, 사찰 등 종교 시설, 그리고 궁궐 등 휘휘 둘러보아도 거의 모두 여러 건물들이 모여서 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 점이 한국 건축의 특성 가운데 중요한 하나이다. 서양 건물은 한 건물 안에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물들은 여러 건물들이 어울려 있어야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개개 건물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건물과 건물의 관계,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질서를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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