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의 봄

 

 

 

 

학교에 오면 안 돼요

8, 홍역

잠 많이 자라고 쳐둔 커튼 아래

눈을 감았다 떴다

 

엄마가 알아 오신 학교숙제를

엎드려 끄적끄적

커튼을 걷으니 눈부셔

 

사과 하나 깎아 주시고

물끄러미 보시던 엄마,

 

업어 줄까?

 

갈 데도 없는데

갈 수도 없는데

엄마 등에 업혀

햇살 속에

 

 

 

동시 같지? 초등학교 1학년 때 홍역을 앓았던 이야기야. 어쩌다 예방 접종을 안 한 건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다니다 알게 됐어. 학교에 가면 안 된다고 해서 집에서 지냈는데 엄마가 동네 친구한테 물어서 숙제를 알아오셨어. 매일 숙제 조금 하고 뒹굴뒹굴. 밖에도 못 나갔지. 때때로 엄마가 저렇게 업어 주셨어.

 

엄마가 다리가 아파. 무릎 연골이 조금 파열됐대. 엄마는 벌써 70대 중반이야. 산골 출신이라 산을 오르거나 오래 걷는 건 나보다 더 잘 하셨어. 주변에 환갑을 넘기면서 무릎 안 좋은 분들을 많이 봤는데 그건 우리 엄마 이야기가 아니었지.

 

근데 작년 여름 지나고부터 무릎이 조금 아프시더니 이번 설 지내고 아프다고 하셔. 명절 끝에 세 번이나 산에 가서 자식들 가족을 위해 빌고 오셔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해. 안 움직이고 조심하고 치료 받으면 낫긴 한다니까 다행이지만 다리가 아프면 정말 답답해.

 

요즘은 언니가 하루에 몇 시간 언니 집으로 모셔 가서 함께 있어. 조카가 아기를 낳아서 엄마는 증조할머니가 되었어. 아기가 있으니 집이 북적거리는 것 같아 그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덜 심심하실 것 같아. 엄마가 그냥 가만히 계셔도 이상하게 아기가 잘 안 운대. 엄마는 햇살을 품고 있는 걸까. 엄마가 곁에 있으면 갓난아기도 따뜻하고 편안한가 봐.

    

내가 옷깃을 여미는 이 순간에도 봄은 오고 있겠지? 엄마가 어서 나아서 봄나들이 가면 좋겠다. 나중에는 마음으로라도 내가 엄마를 잘 업을 수 있으면,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엄마의 봄이 되어 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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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함께

 

 

설날 연휴에 텔레비전에서 영화 신과 함께를 하던데, 볼 상황이 아니어서 나중에 웹툰을 봤어. 이승편 마지막회에 저승사자들이 한꺼번에 6명을 데리러 가는 장면이 나와. 베스트댓글에 용산참사 때 죽은 6명을 언급한 걸 봤어. 그들은 2009120일에 죽었어. 그날은 내가 아이들을 낳은 날이지.

 

아이들은 2008년 크리스마스 때 태어나고 싶었나 봐. 그때 급하게 병원에 갔더니 바로 아기를 낳으면 심장과 폐가 다 자라지 않은 상태라 평생 아플 거라고 했어. 분만 대기실에서 2주를 보내고, 일반 병실에서 다시 그만큼의 시간을 버텼어.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태어났어. 대신 내 심장이 커져 있었어. 나는 아팠지만 아프지 않았어. 아이들이 괜찮으니까. 아이들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면 더 힘들었을 거야. 다행이었지.

 

 

내가 아이를 낳는 시간, 아이가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그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생명이 다시 그런 부모가 되어 보금자리를 지키겠다고 싸우고 있었어. 그리고 죽고 다쳤어. 누구는 사망한 철거민 5명 중 몇이 전문 시위꾼이었다고 하지만 경찰이나 철거민이나 시위꾼이라 불리는 이나, 누구라도 그렇게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어. 그들이 죽은 날짜를 보고, 내가 아이를 낳은 때를 떠올리고, 다시 그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아.

 

10년 전에 있었던 가슴 아픈 옛날이야기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지금도 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하나, 걱정하며 무너져가는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그런 일이 있어. 철거의 결과가 원주민을 내쫓는 것이라면 원만한 철거는 존재할 수 없어. 집을 잃고 있는 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신과 함께'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기를.

 

  

 

철거

 _백무산

  

 

아무리 봐도 손목뼈다

재개발 현장 폐기물 하치장

벽돌과 슬레이트 조각과 철근 잔해가

뒤엉킨 거대한 쓰레기 무덤 속


부서진 액자 뜯겨진 꽃무늬 커튼

니스 칠 벗겨진 손때 닳은 문턱

결혼식 흑백사진 뜨개질 대바늘

유치원 가방 삼각자 물안경

나훈아 테이프 동의보감 토정비결

 
뜯어낸 것이다 불법광고물 뜯어내듯이

누군가는 백골이 되도록 누워 있었고

 
레이스 달린 속옷과 프라이팬과 아이들 상장

오래된 교과서와 콘돔과 약병과 벼루

복권과 포마이카 밥상과 청십자 찍힌 안전화

 
긁어낸 것이다 눌러 붙은 장판 긁어내듯이

포클레인이 지붕을 찍어내고 아우성이 들리고

철거반원들이 울부짖는 사람들을 질질 끌어낼 동안에도

지하 셋방에서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귀도 눈도 썩어 없었으나 그것들을

손목은 끝내 붙들고 놓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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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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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0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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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평소보다 답답하고 쉽게 화가 날 때가 있어. 별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짜증스럽지, 싶다가도 달거리를 하면 거짓말처럼 번잡함이 사라져. 월경전 증후군이었던 거야. 아주 조금의 호르몬으로도 평소의 나에게서 멀어질 수 있어. 사춘기가 그랬듯이 갱년기도 그렇게 오겠지. 몸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를 얼마나 쉽게 가져오는지. 반대의 경우도 있어.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몸과 마음의 성별이 맞지 않은 상태에 있잖아. 몸을 바꾸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아. 여자에서 남자로 전환중인 분이 호르몬제를 맞으니까 성욕이 5배는 증가한 것 같다고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 의지와 상관없이 호르몬의 영향으로 그렇게 되나 봐. 마음에 맞추려고 호르몬으로 몸을 바꾸는 중이지만 호르몬이 다시 마음에 영향을 줘. 마음이 몸을, 몸이 마음을, 다시 마음이 몸을...

 

유전자와 호르몬 속에서 그것에 완전히 압도당하지 않으려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마음을 돌아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려고 매일 균형 잡기 연습을 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번번이 실패를 경험해. 내 몸속에 얼마나 많은 호르몬들이 출렁대는지 나도 모르게 나를 움직일 때가 있지. 그래서 내가 한 건지 호르몬이 한 건지......나쁘지 않아. 내가 나라고 믿는 나와 조건에 의해 흔들리는 내가 다 나라는 것이, 어쩌면 내가 아니라는 것이.

 

 

호르몬그래피

_김행숙

 

 

 호르몬이여, 저를 아침처럼 환하게 밝혀주세요.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태풍의 눈같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 자가 제게 사기를 쳤습니다. 저 자를 끝까지 쫓겠습니다.

 

 당신에게 젖줄을 대고 흘러온 저는 소양강 낙동강입니다. 노 없는 뱃사공입니다. 어느 곳에 닿아도 당신이 남자로서 부르면 저는 남자로서

 

 당신이 여자로서 부르면 저는 여자로서 몰입하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세번째, 네번째, 일곱번째 사다리에서 거지가 될 때까지 카드를 만지겠습니다. 녹초가 되게 하세요. 호르몬이여,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눈꺼풀을 내리시고

 

 제 꿈을 휘저으세요. 당신의 영화관이 되겠습니다. 검은 스크린이 될 때까지 호르몬이여, 저 높은 파도로 표정과 풍경을 섞으세요. 전쟁같이 무의미에 도달하도록

 

 신성한 호르몬의 샘에서 영원히 반짝이는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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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슭아, 오늘은 말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아. 말이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구나. 해는 서쪽에 있어. 서쪽에 있는 해는 낮게 떠 있어서 쉽게 눈이 마주쳐. 너무 눈부셔. 너무 밝아도 너무 어두워도 볼 수 없는 눈으로 아이들을 보고, 거리를 보고, 책을 읽고 있어.

 

 

 

_최승자

 

 

세계에 코를 박고 있는

구름 한 장

 

세계 너머에 한눈을 팔고 있는

바람 한 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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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3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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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번째 시는 선잠인데 그해라는 단어로 시작해. 발문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그것에 관해 언급한 걸 봤어. 나는 그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뭐가 떠오를까? 그해, 그해, 라고 소리를 내 봐. 1996년이 떠올라.

 

그해, 많은 일이 있었어. 속이 좀 불편하다던 아버지는 암에 걸려 있었어. 겨우 한 달 반 만에 돌아가셨지. 대학원을 갈까 하던 나는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해서 서울로 갔어. 몇 달 동안 친구 집에 살았는데 그 집은 집이라기보다 지하 방이었어. 여름에 장판을 걷으면 물기가 배어있는, 습기 찬 방이었어. 그 후 오빠랑 다세대주택의 지층에 같이 살았어. 지층이라고 들어봤어? 1층도 아니고, 지하도 아니라서 그렇게 부르나 봐. 보기엔 1층 같아. 지하 방도, 지층 방도, 일도, 아버지가 없는 삶도 모두 처음이었어. 이 처음들이 배경이 되어 나는 낯선 길에 서 있는 아이 같았지.

 

밤은 너무 빨리 왔어. 서울은 고개만 돌리면 빛이었지만 모두 인공의 것이었지. 내 안에 들어오면 그 빛조차 힘없이 사그라졌어. ‘아버지라는 단어는 바깥세상에 닿는 걸 꺼렸. 어쩌다 그 단어가 목구멍을 통과하려고 하면 울컥 가슴이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어.

 

그해 엄마는 주저앉은 듯이 보였어. 아버지를 잃은 엄마를 돌볼 겨를이 나는 없었어. 대구와 서울의 거리만큼 떨어져서 아버지가 남긴 어둠 속에서 각자가 불을 밝힐 때까지 바라볼 뿐이었어. 큰언니는 결혼한 상태였고, 작은언니는 아팠고, 오빠는 대학을 다녔어. 돈을 벌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그해가 지나고 IMF가 왔어. 나는 더 작은 일터로 밀려났어.

 

지나간 것은 추억이 된다는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아무리 돌이켜 봐도 그해를 생각하면 추억이라는 단어보다 어둠과 슬픔이 먼저 떠올라.

 

기슭아, 내가 겪은 일은 그 시기 많은 사람이 겪었던 어려움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 아마 나는 경제적으로 궁핍하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해가 더 힘겹게 느껴지는 것 같아. 얘기하다 보니 숱한 그해가 줄줄이 달려 나오려고 해. 오늘은 1996년에서 그쳐야지. 너는 그해라는 단어 뒤에 어떤 이야기를 쓸까?

 

        

 

 

선잠

_박준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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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1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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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