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난 하루에 한 가지 일정만 잡으려고 하는 편이야. 일이든 약속이든. 이제 내 체력을 받아들이고, 거기 맞게 지내려고 애쓰고 있거든. 그런데 지난 금요일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독서 모임과 저녁에 지인의 행사가 겹쳤어. 게다가 그날은 뒤풀이로 간단한 술자리도 있었어. 비가 쏟아질 때 마시는 맥주 한두 잔은 운치 있고 좋았어.
     
그 때문이었을까? 주말에 내내 잠을 잤어. 잠을 너무 자서 그런지 머리가 아팠고, 두통은 잘 낫지 않았어. 어제까지 두통 때문에 끙끙거렸는데 이제 좀 나아졌어. 아플 땐 만사가 다 부질없이 느껴져. 다행히 요즘은 아프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라고 알아차려서 우울해지지는 않아. 근데 몸과 마음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동전이 물에 빠지면 앞면만 빠지는 법이 없듯 마음도 하릴없이 출렁거려. 몸의 고통이 마음을 갉아먹는다고 해야 할까? 반대의 경우도 많지. 스트레스가 몸을 아프게 하는 것 같은.
     
몸이 아프면 몸만 아프면 좋을 텐데 화를 내거나 짜증을 쉽게 내. 마음이 몸의 고통을 감쌀 수 있는 경지는 어떤 걸까? 어젯밤엔 문상을 다녀왔어.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 생각했어. 며칠 아파도 마음 조절이 안 되는데 죽음의 순간에는 어떨까, 하는. 생각해 봐도 받아들이고, 알아차리고, 연습하는 거 외에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아.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내가 이렇게 미리 마음 써서 그 순간을 생각해 둬서. 중학교 때 어떤 선생님이 하는 행동을 보고 나는 어른이 돼도 저러지 말아야지, 결심했는데 지금도 그 결심이 생각이 나. 죽음의 순간에도 오늘의 결심이 떠올라서 차분하고 평온할 수 있을지도. 
     
     
     
꾀병
_박준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의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박준,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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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

 

 

당신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에세이를 포털 어디에서 읽었어. 진정한 친구라니? 나도 모르게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 봐. 압정으로 꽂아둔 것처럼 진정한 친구라고 하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어. 그렇지만 문득 진정하지 않은 친구는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들어. 어쩌다 사람 앞에 진정한을 붙이게 되었을까? ‘진정한 부모’, ‘진정한 형제’, ‘진정한 부부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친구는 진정한이 필요한 존재일까. 진짜 참기름, 진짜 진짜 참기름처럼. 진정한 친구를 기대하거나 진정한 친구라고 기대받는 일이 좋기만 한 일일까?

 

시소가 수평을 유지할 때는 누가 타고 있을 때야. 기울어지면 멀어져. 아니, 멀어진다고 믿어.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거리야. 같은 거리를 두고 가까워지려고, 멀어지려고 용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수평에 대해 집착하거나 저만 위로 오르려는 속마음 같은 건 진정한이 아닌 걸까? 더 높이 오르게 하고 싶어, 있는 힘껏 몸을 뒤로 젖히고 있으면 진정일까? 어디까지가 진정이고 어디까지가 진정이 아닐까? 같은 길이의 시소 위에서 진정하고 진정하지 않은 걸 재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래도 더 친하고 나와 잘 맞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지. 이유 없이 끌리는 친구도 있고, 껄끄러운 친구도 있고. 그게 아주 오래 가는 경우도 있고, 나나 그 친구 사정 때문에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렇지만 별표를 붙이듯 누구는 진정한 친구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 친구라고 정해놓고 나면 기대라는 게 생기고, 기대는 기대기 마련이라 내가 기댈 수 없으면 섭섭해져.

 

진정한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무도 떠오르지 않아도, 몇 명이 떠올라도 그건 다 자기가 정해놓은 어떤 것일 뿐 진짜는 몰라. 가족은 진정한가? 부부는 진정한가? 진정하다가 안 진정하다가 가족이니까 보듬다가 가족이니까 잉잉거리다가 가족이라도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하지 않나? 삶에 고정된 관계라는 게 있다면 그건 관계가 아니라 개인의 신념이나 믿음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 내가 모르는 일을 겪는 친구도 있고, 친구가 모르는 일을 겪는 내가 있어. 우리는 만나고 싶은 대로, 그렇게 만나기로 정한 대로, 가장 적절한 사람에게 자신을 내보였다 감추었다 하며 살아가고 있어.

 

기슭아, 우리는 진정한 친구일까? 만나지 않고서 진정한은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면 진정하지 않는 친구일까? 만나지 않는데 진정하지 않은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나면 알 수 있을까? 괜스레 친구가 많다고, 없다고, 진정한 친구라고, 진정하지 않은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우쭐대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어. 그저 우리 앞에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있고.

 

 

 

64

 

왜 내 낡은 옷들은

깃발처럼 펄럭일까?

 

나는 때때로 악한가

아니면 언제나 선한가?

 

우리는 친절을 배우나

아니면 친절의 탈을 배우나?

 

악의 장미나무는 희고

선의 꽃들은 검지 않은가?

 

누가 무수한 순결한 것들에게

이름과 숫자를 부여하는가?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문학동네, 2013),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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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0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20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친구를 친한 손님이라고 생각해요. 이 관계가 죽을 때까지 유지되면 좋겠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관계가 단절될 수 있어요. 그런 날이 오면 미련 없이 손님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됩니다. 우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미 떠나간 친구에게 매달릴 수만 없거든요.

2019-06-20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610

 

 

오늘은 610일이야. 87년을 생각해. 그해는 시위의 해였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매일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았어. 나는 그때 시내 가까운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시위는 늘 내가 하교한 후에 있었지만 시위를 막기 위해 전경 차가 학교 운동장 가에 대기 중이었어. 창문에 서서 전경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지. 이상하게 그 장면을 떠올리면 전경들 얼굴이 아기 얼굴처럼 보여. 그 얼굴을 가리고 방패를 들고 친구가 될 만한 이들을 내리찍었겠지. 그중 어떤 이들은 때리면서 아팠을지 몰라.

 

작은언니가 86학번이어서 이 회오리 속에 있었어. 사범대 학생들은 시위를 별로 하지 않는다지만 그때는 거의 모든 학생이 다 거리로 나갈 때라 언니 과도 단체로 다 나갔다고 해.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 한동안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던 언니가 생각나. 두려움 속에서 옳은 일을 하려면, 나약한 사람이 나약하게만 살지 않으려면, 참 많은 걸 내놓아야 해. 그저 낭만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

 

촛불집회 때 유모차를 끌고 집회에 나간 사람들이 있었지. 집회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지. 그런데 백골단과 쇠파이프가 없어진 것이 그저 가만히 있는데 이뤄진 일이 아니야. 투표라는 단순한 일도 누군가의 시간과 공포와 목숨으로 뽑아낸 종이 위에 도장을 찍는 일이지.

 

요즘은 다른 식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미투가 그중 하나지. 온갖 2차 가해를 당하면서도 미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어. 농담처럼 말하는 이에게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살짝 상기만 시켜줘도 조심하게 되었어. 우리는 미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쟁취한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쿠데타의 주역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항쟁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꾸준히 계속되는 노력이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움직이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

 

 

 

_신경림

 

 

어둠을 어둠인지 모르고 살아온 사람은 모른다

아픔도 없이 겨울을 보낸 사람은 모른다

작은 빛줄기만 보여도 우리들

이렇게 재재발거리며 달려나가는 까닭을

눈이 부셔 비틀대면서도 진종일

서로 안고 간질이며 깔깔대는 까닭을

 

그러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깊이 숨은 소중하고도 은밀한 상처를 꺼내어

가만히 햇볕에 내어 말리는 까닭을

뜨거운 눈물로 어루만지는 까닭을

 

-신경림, 쓰러진 자의 꿈(창작과비평사, 1993),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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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다 느리게 걷는다

 

 

저번 주 토요일에 마트에 갔어. 지하에서 먹을 걸 사서 계산대로 갔더니 여러 계산대 중에 두 개의 계산대에서만 결제하고 있었어.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두 곳 다 줄이 많이 길어서 1층으로 올라갔어. 지하 계산원들이 무인계산대 안내를 하고 있었어. 무인계산대에도 사람이 다 차 있고, 계산대 줄이 길지 않아 계산대에서 계산했지.

 

내 앞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산 중이었어. 계산원이 포인트 적립까지 해드렸는데 카드를 안 내시는 거야. 나는 벌써 물건을 다 올려놓고 계산하려고 옆에 서 있었어. 의아해서 쳐다보는데 천천히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여러 장을 꺼내셨어. , ... 그 계산대는 카드 전용이었어. 계산원은 할아버지에게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누군가를 호출했어. 결국 할아버지는 고객센터로 가서 현금으로 결제하셨어.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조금 무거웠어. 우리 엄마 모습 같고, 훗날 내 모습 같아서.

 

남편이 그 마트 다니는 직원 한 분을 아는데 그분이 그러더래. 무인계산대는 사람 쫓아내는 기계라고. 마트 내부에서 직원들이 반대하는 모양인데 계산대 계산원을 줄이니까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무인계산대로 가. 거기 익숙해지면 계산원이 더 필요하지 않겠지. 계산대는 줄고, 게다가 현금을 쓸 수 있는 계산대는 한 곳뿐이라 카드를 안 쓰는 어르신은 오래 기다려야겠지. 카드 안 쓰는 사람도 있냐고? 우리 엄마도 안 쓰셔.

 

뉴스를 보니 은행에서 종이 통장을 없앤다고 해.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원하면 그냥 발급해 주고, 그 외에는 꼭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몇 천 원 받고 발급할 거래. 내가 옛날 사람처럼 느껴져. 우리 집엔 10여 년 전 통장도 다 있어. 그게 우리 집 가계부고, 일터 장부거든. 난 아직도 폰뱅킹을 써. 고객센터 같은 데 연락하는 것도 홈페이지를 이용하거나, ARS로 하는 게 불편해.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게 제일 편해. 물론 바뀌는 대로 적응하면 더 편리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데도 하던 대로 하고 싶고, 새로 뭘 익히는 게 번거롭게 느껴져.

 

나이 든다는 게 마음이든 몸이든 느려지는 건가 싶어. 며칠 전에 절 마당에서 엄마가 차에 부딪혔어. 주차장도 아닌 곳에 주차하려다 서서 합장하는 엄마를 치었나 봐. 충격이 꽤 있었는데 다행히 뼈는 괜찮아. 그렇지만 엄마 연세가 있어서 회복이 더디 될까 걱정이야. 젊은 사람 같았으면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르고, 금방 나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도 속도를 못 좇아간다고 한탄하기보다 좀 느리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잘 늙어가는 게 아닐까 해. 날다람쥐 같던 엄마의 느린 걸음을 맞춰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 엄마의 이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듯이 엄마도 엄마가 이렇게 늙어가는 모습을 생각하지 못하셨을 거야. 엄마가 잘 받아들이고, 천천히라도 오래 걸었으면 해. 변화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만 우리 엄마 가는 곳마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응대해 줬으면 좋겠어. 느린 속도를 이해해줬으면.

 

 

 

일흔의 고갯마루

_이진흥

 

  

젊은 날 멀리 보이던, 일흔의 고갯길로 힘겹게 올라가는 등 굽은 노인들의 뒷모습 아득했는데, 이곳저곳 바쁘게 뛰어다니다 잠이 든 사이 누가 내 등을 밀었는지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내가 그 고갯마루에 올라와 있다 생전 처음 도달한 이 높은 고개, 율곡도 세종대왕도 오르지 못한 일흔의 고갯마루에 내가 이렇게 서 있다니 놀랍다 어찌된 일인가, 지나온 길 돌아보니 서쪽 나뭇가지 사이로 곤줄박이 한 마리 날아가고, 발밑 이끼 낀 돌 틈에서는 키 작은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빤히 쳐다보고 있다

 

- 이진흥, 어디에도 없다(동학사, 2016),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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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한 마음에

 

 

답답한 마음에 저녁 먹고 광장을 어슬렁거렸어. 광장이란 넓은 장소를 부르는 말인데 광화문 광장 같은 광장이 아니고 아파트 안에 있는 공간이야. 차가 안 다녀서 벚꽃 피는 때나 열대야에 가족들이 나와 있는 장소지. 말은 안 되지만 작은 광장인 셈이지.

 

어쨌든 거기 앉아 보니까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축구공을 차는 거야. 차고 나면 기우뚱해. 그래도 그 애 엄마는 잘 찼다고 칭찬을 해. 일어서도 칭찬, 걸어도 칭찬, 말을 해도 칭찬...우리 아이들도 아기였을 땐 칭찬할 일이 참 많았어.

 

얼마 전에 친구 아들이 그러더라. 5학년이 되니까 할 일은 많은데 그 일을 다 해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그러고 보니 그래. 공에 발만 대도 칭찬받다가 잘 차니, 못 차니 하는 말을 듣게 되는 건 금방이지. 나이가 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게 늘어나서 용을 쓰고 해도 칭찬받기 힘들어.

 

그래서인지 작은애는 간혹 아기가 되고 싶다고 해. 사랑만 받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기저귀 차고 있는 게,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게 제일 힘든 일 아니냐고 해도 조카네 아기를 보면 뭘 해도 사람들이 아기한테 맞춰 주는 것 같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나 봐.

 

근데 그런저런 얘기 없이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척척 하는 큰애가 요즘 들어 폭발하듯 화를 내. 처음엔 얘가 왜 이러나, 하고 혼을 냈는데 나아지지 않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4학년이 되고 나서 마음도 붕 뜬 것 같고 화도 잘 내. 반장 노릇 하느라 학교에서 뭘 꾹 참다가 집에서 터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큰애는 학교 일을 잘 얘기하는 편인데 내가 들어도 마음 쓰이는 일이 꽤 있어. 근데 아이는 그런 것이 자기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나도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모르다가 한참 지나서 알 때도 있거든. 아이도 그럴지 모르지. 이렇게 머리로 이해하는 듯해도 아이의 화가 내 가슴으로 자꾸 옮겨붙어.

 

광장의 아기를 생각해. 내가 칭찬에 인색해지고, 아이가 힘들게 해내는 일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는지 돌아봐. 얼마나 자주 돌아봐야 할까. 알아차림에 마음 써야겠어. 방심했던 마음을 다잡아 나 스스로를 잘 돌봐야지. 나를 돌보는 게 아이를 잘 돌보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

 

 

 

개구리와 도롱뇽

_김지녀

 

 

앞다리가 먼저 나오는지

뒷다리가 먼저 나오는지

 

척척 답을 잘 했던 아이가

 

꼬리가 잘려 나가는지

꼬리가 잘려 나가지 않는지

 

내가 왜 알아야 해?

날 왜 낳았어? 묻는다

 

척척 답을 잘 못하는 내가

 

울음 주머니를 자르거나

꼬리를 자르거나

 

개구리와 도롱뇽처럼 결국 달라진 거야

나는 나와 다른 알을 낳은 거야

 

잠잠한 물결 아래서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파문학(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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