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바람이라고 부른다. 뜨거운 바람이라 부르고, 차가운 바람이라 부르고, 시원한 바람이라 부른다. 느끼는 대로 부른다. 바람이 분다. 나무는 이 바람을 무어라 부를까. 누군가 나를 부른다. 어떤 이는 냉정한 사람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따뜻한 사람이라 부른다. 느끼는 대로 부른다. 누군가 부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든다. 그러나 모든 부름에 답할 필요는 없다. 바람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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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

 

 

정신력으로 승리했다거나 병을 이겨냈다는 말을 들으면 간혹 들어. 거기에는 조건이 좋지 않거나 실력이 부족하거나 병이 악화되어 있었다는 뜻이 들어 있기도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겨냈다는 것에 경외감이 들어. 그렇지만 모두가 그렇게 정신력이 강할 수는 없고, 정신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어.

 

육체를 초월한 정신이라고 한다면 트럭에 깔린 아이를 구하겠다고 트럭을 드는 엄마의 괴력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지만 트럭을 들지 못하는 엄마가 훨씬 더 많아. 트럭을 못 든다고 아이를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닐 텐데 뭐든 제 탓으로 돌리는 엄마는 나에게는 왜 그런 괴력이 생겨나지 않았냐고 자책할지도 몰라.

 

몸이 아픈데 어떻게 정신력으로 아픈 몸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습관 같은 걸까. 돌아가시기 몇 주, 아니 며칠 전인가? 내내 누워 있던 아버지가 양복을 꺼내 입고, 나를 부르셨어. 달성공원에 가자고. 화장실도 혼자 가기 버거운 몸으로 동물원 구경을 가자고 하시는 거야. 일어나시기까지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양복을 벗고 도로 자리에 누우셨어. 아버지는 정신력이 약해서 도로 누우신 게 아니야. 어쩌면 몸이 아파서 정신력이 약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순전히 정신만의 문제는 아니지.

 

아픈 몸에게 정신력을 강하게 하라는 요구는 일흔 노인에게 열 살 아이처럼 뛰어보라는 것과 같은 거야.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몸이 무거운데 난 내가 나태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제대로 먹으면 무거운 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무리를 하니 몸은 더 나빠지고. 남에게는 하지 않을 이런 요구를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 쉽게 해. 왜냐하면 정신은 늙지 않으니까, 아픈 건 몸이지 정신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런 말은 균형을 잃은 것이지. 오히려 정신을 따라 가지 못하는 몸이 더 헉헉거릴 뿐이야.

 

정신력이 약해서 그 모양이라고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몰아치는 일이 없었으면 해. 몸이 마음을 이끌 때도 있고, 마음이 몸을 이끌 때도 있어.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서로 교류하고, 기대기도 하고, 엉키기도 해. 아플 때는 그 둘의 관계가 더 선명해 보여. 이 둘이 조화롭게 살아내고, 살아가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걸 매순간 우리가 알아차렸으면 좋겠어.

 

김진영은 아침의 피아노(한겨레출판, 2018)에서 죽기 3일 전에 내 마음은 편안하다.”고 적어. 정신과 육체가 서로 강요하거나 싸우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아픈 몸이 아픈 채로 마음은 편안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가능했으면.

 

    

p.s. 오늘 난 아프지 않아. 아팠던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나무에게
_오규원


물의 눈인 꽃과
물의 손인 잎사귀와
물의 영혼인 그림자와
나무여
너는 불의 꿈인 꽃과
이 지구의 춤인 바람과
오늘은 어디에서 만나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오느냐

  

-오규원, 오규원 시전집1』(문학과지성사, 2002),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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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7-17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신력’ 타령하는 사람들을 한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어요. 정신력이라는 말 속에 곧 정신이 몸보다 우월하다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거든요. 정신의 일부는 우리 몸의 뇌에서 나오는 건데 몸과 정신(력)을 따로 분리해서 볼 수 없어요.

2019-07-17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육체

 

 

-나는 병들어서 죽어가는 내 어머니의 육체를 알고 있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걷는나무, 2018)에 있는 구절이야. 이 구절이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울컥해. ‘육체라는 단어에 눈이 멈춰. 그 단어가 언제부터 내게 슬픔이 되었는지, 나의 애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원래 끝낼 수 없는 건지.

 

작고 말랑말랑하지만 폭발할 듯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를 생각해. 크고 딱딱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학, , 숨을 내쉬는 것뿐인 노인을 생각해. 달라 보이는 이 두 육체가 실은 한 육체였다는 걸 쉽게 잊게 되지. 좀 더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그 육체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육체가 시체가 되겠지. 시체가 되어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라고 여기지. 실종자 가족들이 시체가 된 육체를 찾겠다고 울부짖는 모습을 생각해 봐. 초탈한 사람처럼 육체를 껍데기라고 함부로 말할 순 없을 거야. 그렇지만 시체는 이미 우리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하지.

 

죽은 것들은 이미 죽은 것. 나와 무슨 상관인가, 생각해도 내가 알았던 육체가 혹은 시체가 간혹 내 안을 어지러이 돌아다녀. 여긴 비 와. 서늘하고. 내가 알던 여름이 아니야. 내가 아는 것은 모두 과거에 있지. 지금은 이렇게 다른데. 내가 알았던 육체 혹은 시체는 이제 다 다른 존재가 되고 말았을 텐데.

 

그냥 육체라는 말이 목에 걸려서 잠시 빼내고 싶었어.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_문태준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
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
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
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
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
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
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
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

 

-문태준,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 2015),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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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동서는 사주를 믿어?”

오래전에 둘째 형님이 뜬금없이 물으셨어.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어.

사주보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보는 사람 따라 사주 풀이는 차이가 크게 나요. 고수는 좋은 점을 발견해서 이야기해 주고, 하수는 나쁜 점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나쁜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그 도사가 하수구나, 생각하시면 돼요.”하고.

 

관상 본 적 있어? 난 관상을 배워본 적이 있어. 배우려고 마음먹고 배운 건 아니고, 다니던 서당 선생님이 문화센터에서 관상에 관한 책으로 한문을 가르치게 되면서 엉겁결에 배웠어. 사실 선생님도 관상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문화센터에서 논어고문진보보다 관상이 더 인기가 있을 거라고 한 것 같아.

 

어쨌든 한문에는 고수였으나 관상에는 아직 고수가 아닌 선생님과 한문에도 관상에도 하수인 학생들이 모여 1년 정도 공부를 했어. 공부하는 중이어서 그땐 사람들 얼굴을 보면 막 보이는 거야. , 부부 사이가 안 좋겠다, 돈이 새나가겠다, 성격이 별나겠다, 등등... 근데 안 좋은 것만 보였어. 게다가 얼추 맞추는 것도 같고.

 

남편도 3년 정도 관상을 배운 적이 있대. 남편의 선생님은 관상 전문가였어. 평생 관상만 보신 분이지. 그 분야에 명성이 있어서 만화 작가가 찾아가 그분을 주인공으로 관상에 대한 책을 썼지. 본인은 본래 재물복이 없다고 아예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사시는 분이라나. 남편이 천창(이마 양옆)이 꺼져서 저는 재물복이 없겠습니다.’ 했더니 무슨 소리, 지각()이 풍부하고, 코도...’ 하셨대. 그러니까 한 가지로 판단하지 않고, 늘 서너 가지를 갖고 종합적으로 이야기하시는데 나쁜 소릴 하시는 걸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대.

 

그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 얼굴이야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관상 보는 사람 따라 운 좋은 얼굴도 되고 나쁜 얼굴도 되는구나, 싶었어. 어떤 얼굴도 다 나쁜 운만 있지는 않을 거야. 모든 얼굴에서 좋은 운을 발견하고, 그걸 중심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말 고수의 기술이 아닐까. 나쁜 운을 말하고, 불안하게 하고, 그걸 자신이 잘 알아본다고 으스대는 게 하수지.

 

고수란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좋은 점으로 나쁜 점을 잊게 하는 사람, 상대가 이야기한 후에 더 편안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러려면 넓고 멀리 보는 눈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난 요즘 만나는 사람들의 단점이 잘 보여. 그럴 때마다 나는 하수구나. 한 가지만 보고 판단하는구나, 생각해. 부럽다, 고수의 눈, 고수의 손길!

 

모든 사람에게는 고사하고, 일단 우리 가족에게라도 고수가 되면 좋겠어. 우리 엄마는 다른 형제한테는 몰라도 내게는 확실히 고수였어. 도사에게 들은 말인지, 엄마 말인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늘 내가 어디 가도, 누구를 만나도 그곳이 좋아지고, 그 사람이 흥할 거라고 하셨어. 무심히 들었는데 무의식중에 그 말이 사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엄마의 말이 온전히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여전히 괜찮은 암시 같아. 나도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고수의 비법을 엄마에게 좀 배워야 할 텐데.

 

 

 

_가네코 미스즈

 

밤은, 산이랑, 숲의 나무랑,

둥지 안 새랑, 풀잎이랑,

귀여운 빨간 꽃에게까지,

검은 잠옷 입히지만

내게만은, 그러지 못해.

 

나의 잠옷, 새하얘요.

그리고 어머니가 입혀 주시죠.

 

-가네코 미스즈, 내가 쓸쓸할 때(창비, 2018),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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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9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탈리 2019-07-09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입혀 주시던 옷처럼
님이 만나는 사람들이 그 결을 따라 고운 빛으로 흐를 것 만같네요. 엄마의 말처럼 세상 든든한게 또 있을까요.
늘, 님의 글 기다렸다가 잘 읽고 있어요.

2019-07-10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10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수였군요... ㅎㅎㅎㅎ 급반성합니다.. ^^;;

이누아 2019-07-10 12:38   좋아요 0 | URL
님의 비판은 역자를, 저자를, 출판사를, 독자를, 저를, 깨우칩니다.^^
이보다 더 고수일 순 없다!
 

달조각 같은 이야기

 

 

저녁에 가족들이 모두 나가 집 근처 운동장에서 운동을 해. 나와 남편은 운동장을 돌고, 아이들은 몇 바퀴 돈 후에 야구나 축구를 조금 하다 들어가. 아이들 친구들이 나오면 좀 더 놀다 들어가고. 요즘 그 친구들이 안 나와. 큰애는 혼자 테니스공으로 벽치기를 해. 야구 글러브 끼고. 작은애는 내 옆에 붙어 함께 운동장을 돌아.

 

그제는 전쟁과 독도, 태양과 지구에 대해 이야기 하더니 어제는 신에 대해 이야기를 해. 이런 이야기를 친구와도 하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은 모두 게임 이야기만 한다고 해. 어쩌면 답이 없는 이야기를, 아니 답이 멀리 있는 질문을, 이 아이는 좋아하는 걸까. 여섯, 일곱 살 때부터 산타와 신의 연관성에 대해 고민하더니 급기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나 봐.

 

그러면서 묻더라. 사람들은 왜 교회에 가고, 절에 가냐고. 없을 확률이 높은데 어째서 신을 믿느냐고. 천국도 지옥도 환생도 없는 거 아니냐고. 사람은 죽으면 흙 아래 그냥 가만히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서도 그건 싫대. 그냥 흙 아래 있는 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고릴라로 태어나면 어떨까요? 하기에 모든 삶에는 고단함이 있다는 투로, 고릴라 수컷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제일 낫겠다고 해. 여기까지 이야기 했을 때 우리는 운동장을 다 돌고 샌드위치 가게 앞까지 와 있었어. 오늘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를 사고, 이야기는 그렇게 끊겼는데...

 

그나저나 나도 11살 때 저런 생각을 했던가. 12살에 개척교회에 가본 적이 있으니까 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찬송가 음정 못 맞춘다고 나온 걸 보면 저렇게 진지하지 않았던 걸까? 이 아이는 자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기 아빠가 아침마다 절하는 걸 봤는데 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학교에서 체육 수업 외에는 다 재미없다는 애가, 작은 머리로 얼마나 광활한 세계를 휘젓고 다니고 있는 건지.

 

나는 아이에게 엄마를 잃은 아이가 엄마의 영혼이 자기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지 않겠냐고, 그러니까 하느님은 더 굉장한 존재니까 훨씬 든든하게 생각돼서 믿는 게 아닐까, 대답했는데 아이는 영혼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라고 해.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어떤 질문에도 확답을 하지 않았어. 할 수도 없었고.

 

다행이야. 내가 모른다는 게, 확신할 수 없다는 게, 확신이 없어서 아이를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게, 그 질문들이 낯익은 것이라는 게, 그래서 두런두런 답 없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친구들이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내가 들어줄 수 있다는 게.

 

 

 

반딧불

_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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