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성전
홍신문화사 편집부 엮음 / 홍신문화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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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문예마당에서 나온 같은 제목의 책과 이 책을 혼동해서 구입했다. 그러나 둘다 불교성전편찬위원회에서 엮은 것이니(알라딘에서 홍신문화사 편집부가 엮었다고 소개한 것은 잘못이다) 같은 내용이 아닐까? 아무래도 문예마당에서 나온 책의 주나 다른 부록을 생략한 책인 듯 싶다.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불교성전]이 부처님의 생애와 초기경전, 대승경전의 내용들을 분류해서 정리하는 데 반해 이 책은 부처님의 생애라는 큰 틀 안에 여러 불교경전의 내용들을 삽입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십이장경], [법구경], [법화경], [화엄경], [유마경] 등등 거의 모든 경전들의 내용 중에 편집진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부처님의 삶의 흐름 속에 녹여 보려고 시도했다.

한 권의 책에 그 많은 책들을 한 사람의 생의 흐름에 맞게 편집해서 재구성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너무 무리한 시도였을까? 중간 중간에 내용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갑작스레 법화경의 한 구절이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주거나 사무량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비희사 중 자(慈)에 대한 구절만 있다든지 해서 황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잘 읽었다. 잠들기 직전에 아주 조금씩 읽었다. 부처님의 음성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 힘들지, 잘 자거라"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깨어 있거라" 하셨다. 그런데도 평온이 찾아왔다. 그 평온을 베개로 잠들었다.

"생은 끝났다. 수행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이로부터 다른 생은 없다"라는 구절을 매일 열 번씩 읽었다. 이 말이 내 유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나도 부처님처럼 깨닫고, 행하고, 말할 수 있다면...

책을 읽고 자면 꿈을 꾸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셔서 불교공부를 하고 싶으니 불교사전을 빌려 달라고 하셨다. 꿈 속에서 나는 이 책과 불교사전을 드렸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다시 그 꿈이 생각난다. 아버지를 모신 절에 가서 이 책을 올려야 겠다.

한 권의 책으로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읽는 동안 평온했고, 희망할 수 있는 유언도 생겼고, 아버지께 드린 선물도 마련한 셈이니 내게는 고맙고 고마운 책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분석하지 않고 나처럼 조금씩 읽으려는 이가 있다면 평온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천한 자의 집이라도 만약 왕이 찾아갔다면 세상에서는 귀하게 생각"(p.696)하듯 책 편집이 부족하지만 부처님의 말씀이 적혀 있으니 이 책이 더없이 귀하게 여겨진다. 다음 수정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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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0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은 끝났다. 수행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이로부터 다른 생은 없다' 캬..정말 아름다워요. 무언가 완성되고 충만한 듯한 느낌이 드는 문장입니다. 저, 지금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잼나요! 근데 불교서적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불교성전]이 적당한 책일까요? 혹시 아니라면 수고스러우시겠지만 한 권 추천해 주십쇼. 이누아님께서 리뷰감으로 채택하신 아래 책들을 지금 뚜룩~ 훑고 있습니다만, 녜녜.
 
행복 요리법 - 행복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마티유 리카르 지음, 백선희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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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는 부제가 시선을 끌었다. 행복하게 존재하지 않느니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로 보였다.

행복...어떤 친구는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불행한 이들의 말이라고. 그럴까? 아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이 건강에 대해 동경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사람이, 혹은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장기적으로 매우 적절한 일이다. 한 가수는 공연 이야기만 해서 왕따를 당한다고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추구해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 친구는 아마 행복이 어떤 이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행복은 땅에 심고 거름을 주는 감자처럼 가꾸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 고전적인 질문에 대해 나는 평온이라고 답한다. 혹은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어쨌든 그것은 좋은 느낌을 주는 단어다. 그러나 혼자만 평온하고 혼자만 기쁜 것이 가능할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프란치스코]에서 프란치스코는 어떤 이들이 천국에 있으면서 자신의 이웃이 지옥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 한다면 그들이 천국에 있을 자격이 있는가 하고 의심한다. 아마도 지옥에 있는 이웃을 자신이 있는 평안한 곳으로 이끌고자 애쓸 것이다. 범위를 좁혀보자.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프거나 시험에 떨어졌는데 자신이 카드놀이에 이겼다고 마냥 즐거워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소식을 들었다면 카드놀이 자체를 그만둘 것이다. 범위를 넓혀 나가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평온이나 기쁨이나 즐거움은 타인의 그것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내가 읽은 이 책은 자신의 평온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이며 그것을 유지하고 공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다. 저자가 이타심을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행복으로 가는 첫번째는 역시 자기 수행이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숲 속에 몸을 숨기는 상처 입은 사슴처럼 은둔지의 조용한 고독 속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 은자가 명상에 헌신하는 것은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처지이거나 명상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선을 끌어내겠다는 생각으로 행복과 고통의 매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잠깐씩 짬을 내서나라도 고요한 가운데 머물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행복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무지, 즉 고통의 완전한 해소를 수반하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면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행복도 고통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정이 필요하다. 책의 앞부분이 자아에 대한 확신이나 우울과 분노, 욕심, 복수나 증오 등의 감정들이 우리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 할애되고 있는 점이 이것 때문이다. 행복이나 깨달음이 갑자기 결심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이미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다 하더라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면 익숙해지기 위해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행복해졌는가? 얼마간 그렇다. 행복이란 단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책에서 보여주는 불행해지기 위해 끙끙대는 어리석은 모습들을 반복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어떤 실천 없이도 자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변화는 주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감정조차 제대로 조절되지 못한다. 어떤 때는 모든 것이 문제가 없다가도 금방 상황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저자는 자신의 변화를 점검하라고도 한다.

나는 스스로는 아주 조금 노력하고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무엇을 했다고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 깨달음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수행하지 않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꿈꾸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실천하기는 더 어렵지 않겠는가? 내 안에 불성과 깨달음과 행복이라는 것이 심겨져 있다. 감자처럼 가꾸지 않으면 그것들이 심겨져 있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아야지.

저자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태도와 방법을 보여주는 구절을 덧붙인다.

"세계관을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천진한 낙천적 사고를 갖게 되는 것도 아니요, 역경을 보상해주는 인위적 만족감을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혼란에서 비롯되는 욕구불만과 불만족이 우리 일상의 몫이 되는 한, 끊임없이 "나는 행복하다!"를 되풀이하는 것도 허물어진 벽을 다시 칠하는 것만큼이나 헛된 일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곧 인생을 '장밋빛'으로 보자는 얘기는 아니요, 세상의 궁핍과 고통에 대해 눈을 감자는 얘기도 아닌 것이다.

행복은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속시켜야 할 어떤 열광적 상태가 아니다. 다만 증오나 강박관념처럼 정신에 말 그대로 독이 되는 정신적 독소들이 제거된 상태일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이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좀더 이해가 깊어져야 할 것이며,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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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20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누아님, 저..저..저널리스트 아니신가요? 아, 왜 글케 글을 잘 쓰신댜..너무 잘 쓰셔서 리뷰와 인용하신 인용문이 헷갈려버립니다. 문장이 정말 단정해요..보관함에 쏘옥~입니다..캬..이 주의 마이리뷰, 기대해봐도 좋겠어요!

2005-02-20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2-2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따라와서 잘 읽고 갑니다.^^

2005-02-21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리움같은그대 2005-05-04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이책 처음에 한번 읽고 좀 어려운 부분도 있어서... 한번더 읽고 또 이해안되는 부분은 다시 읽고... 그랬는데 님처럼 이렇게 훌륭하게 이해는 되지 않았었는데... 님이 남기신 글 읽고 좀 더 이책에 대한 이해를 넓힐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 책 정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계속 빌려보다가 이번 기회에 사고 싶은데 이해하는 게 시간이 걸리지만 정말 좋은 뜻을 답고 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혜능
후루타 쇼킨 / 현음사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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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땐 혜능의 일대기를 읽기 편하게 다룬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다보니 그런 게 아니다. 책의 말미에 혜능의 연표를 길게 붙여둔 것이나 몇 페이지나 되는 참고문헌이 말해주듯 자료를 분석하고 비교하는 형식으로 혜능의 삶을 추적한 글이다.

다 읽고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혜능에 대해 기록한 인물이 금강경 계통의 사람인지, 열반경 계통의 사람이었는지에 따라 기록이 달라진다는 것 뿐이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나 기록이 기록자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혜능의 참모습이 무엇이었을까? 참모습이란 무엇일까? 내가 그와 같지 않으면 내가 보는 모습일 뿐 참모습은 아닌게다. 어쩌면 모든 것은 참이지만 내 그림자 때문에 그 참들은 그저 어두워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이런 책을 읽으면 여러 기록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는 혜능을 사랑하고, 그 혜능을 더 잘 알고 싶어 [단경]이나 [신회어록]이나 [조당집] 등등의 여러 책들을 읽고 싶은 열망이 일 만도 한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이 기록들에서 자유로운 그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고개를 돌리면 그가 있을 것만 같은데, 왜 돌려지지 않는걸까?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혜능이 말하는 무념이란 모든 대상에 있어서 마음이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혜능이라는 대상과 이름에 물들지 않은 채 무념 상태에 있다면 그를 만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그이게 될테니...

============

무엇이 무념을 세워서 종(宗)으로 삼는가. 단지 입으로 견성을 말해도,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가지며, 생각 위에서 문득 삿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일체의 망상은 이것으로부터 생긴다. 자성은 본래 한 법도 얻어야 할 것이 없다. 만약 얻는 바가 있어서 망녕되게 화와 복을 말한다면 곧 쓸데없는 삿된 생각이다. 고로 이 법문은 무념을 세워서 종으로 삼는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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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여우 - 좋은아이책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김경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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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받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책을 먹는 여우 이야기이다. 나는 뽀빠이가 시금치밭에서 시금치를 먹고 힘을 내는 만화를 보고, 어머니가 사다 두신 씻지도 않은 시금치를 그대로 먹은 적이 있다. 아이들도 나처럼 이 책을 읽고 책을 먹으려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친구 아들에게 이 책을 다시 선물했다. 보자마자 친구 아들은 "하하, 어떻게 책을 먹을 수가 있어?" 했다. 나같은 아이는 아니군. 그런데 오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그 책을 너무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람들만 오면 그 책을 꺼내서 세상에 여우가 책을 먹어요 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 책의 표지는 너무 두꺼워서 그 여우가 와도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고. 지나칠 정도로 그 책에 열광하는 것이 친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아이는 책만 보면 책먹는 여우가 먹기에 어떤 책일까 생각하는 듯했다. 이 책은 얇고 부드러운 책이니 먹기가 좋겠군, 저 책은 두껍고 딱딱해서 먹기도 나쁘고 소화하기도 힘들겠어 하고 말이다.

이 책에는 교훈도 있다. 그러나 난 교훈이 뭐가 대수냐 싶다. 세상에는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 내 친구 아들의 책꽂이에는 책먹는 여우가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책꽂이의 책이 조금씩 줄어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친구가 양념을 하려고 양념통을 꺼냈을 때 소금과 후추통이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 아이가 여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렇게 그 여우에게 열광할 수 있겠는가...또 언젠가 그 친구의 집을 찾아갈 때 여우에게 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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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0-0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핫. 이거 '메타 - 리뷰'의 선을 넘으셨군요. 동화와 동화의 경계에 선 리뷰..(헷. 사실 '메타 리뷰'라는 어휘는 제가 방금 만든 날조어이지만, 쿠헬헬..근데 진짜 그런 말이 있음 어떡허나..)앙증맞은 리뷰인뎁쇼..잼나게 읽었어요..
 
참나 - 혜거스님의 좌선의 강의
혜거스님 지음 / 선문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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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북송의 종색이라는 선사의 [좌선의]라는 짧은 글에 대한 해석이다. 소제목에서 보이듯 초심자를 위한 참선법을 정리해 놓은 글이라 볼 수 있다.

이 짧은 글에 좌선의 자세나 마음가짐, 마경 등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혜거 스님의 강의도 쉬운 편이다.

참선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책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미 참선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원칙적인 이야기로, 생각보다 구체적이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저 마음가짐을 정리해보고, 기본자세를 돌아보는 데 소용이 닿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을 교재로 해서 불교 텔레비전에서 혜거 스님이 직접 강의를 하고 계신데, 책보다 몇 배는 더 쉽고,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참선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해 구경열반, 장엄정토를 그 목적이라고 본다고 하시면서 이 말이 너무 어렵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목적으로 보인다면 인격완성과 사회안정이라는 쉬운 말로 바꿔서 이해해 보라고 하신다. 물론 정확하게 그런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천할 때는 그 말에 아주 가까운 것 같다. 호흡법 등도 책보다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하신다. 인터넷에서도 강의가 제공되고 있으니 함께 보고 듣는 것이 좋을 듯하다.

좌선의의 서두와 말미를 함께 적어본다.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먼저 대비심을 일으키고, 큰 서원을 발하며, 정밀하게 삼매를 닦아서, 맹세코 중생을 제도할 것이요 자신만을 위해 해탈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만약 선정력이 없다면 죽음의 문에 기꺼이 항복할 수밖에 없고 눈을 감고 헛되이 돌아가면 분명하게 생사윤회에 유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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