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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이면 신춘문예 당선작이 신문에 실려. 매년 시 부문 당선작을 보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야. 내가 이해하지 못할 뿐 시의 전당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준이 있는가 봐. 간혹 여러 신문에 중복으로 최종심에 드는 글들을 보면 그 글이 좋은 글일 텐데 난 머리만 긁적이게 돼. 문창과 같은 데서 이런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나? 하는 생각도 했어.

 

송수권 시인은 [시 창작 실기론](문학사상, 2013)에서 30%의 고급 독자층을 위해 시를 써야 한다고 했어. 천 사람의 독자보다 한 사람의 깊이 있는 독자가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70%의 저속한 독자층은 의식하지 말라고. 그 글을 읽을 때 난 아무래도 70%의 독자 중 한 사람인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어.

 

언젠지 모르겠는데 인상 깊은 당선소감을 봤어. 소통하려고 구걸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의 당당함에 매료되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채로 5년이나 닥치는 대로 현대시를 읽었다는 내용이었어. 이해할 수 없는 글에서 그런 멋진 부분을 찾아낸 그 사람이 멋지게 느껴져. 난 아직 그런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어. 훌륭한 글을 알아볼 안목이 없는 게 안타깝지만 간혹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도 안타까워.

 

다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한 시도 있었어. 기억 나? 내가 이상 시집을 들고 다녔던 거. 그래,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할 수 있지! 사람도, 사물도. 이해를 넘어선 끌림이 있는 시를 만나고 싶어. 내가 뭔가 애써야 하는 걸까? 너라면 애써서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할 것 같지만. 돌아가신 서당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셨어. 좋은 사람은 늘 만나는 게 아니니까 만나려고 애쓰고, 만나면 소중하게 여기라고. 그 말 때문에 결혼까지 했는데 시도 마찬가지일까?

 

다행히 작년보다는 올해 시들이 읽기 편해. 그래도 [김수영 전집2-산문](민음사, 2003)에서 읽은 구절이 내 마음을 대신 얘기해주는 것 같아.

 

한국의 현대시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르겠다!>이다.-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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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폭설경보가 내리는 제주에 다녀왔어. 제주공항 활주로가 복잡해서 비행기는 공항 주위를 한참 선회했어. 눈 내리는 날 하늘은 이렇구나, 싶었어. 구름은 두텁고 빽빽하게 몰려서 구름의 바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 구름이 어떻게 눈이 될까? 구름이 제 스스로를 떼어내서 눈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구름은 미동도 없었어.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눈을 내릴까? 두툼해서 뛰어내려도 될 것 같지만 비행기가 구름을 지나면 아무 저항도 없이 안개가 돼. 구름을 연구하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올라와 이렇게 쳐다보진 않겠지? 연구실에서 어떻게 연구를 할까? 구름이 눈이 되고, 비가 되는 걸 어떻게 재현해 낼까? 인공구름도 있다니까.

 

그렇지만 나는 모르겠어. 그것이 구름을 이해하는 것인지는. 살아갈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느낌이야. 너는 스무 살이었는데 모르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걸까? 넌 불가지론자 같았어. 그때마다 나는 누가 확실히 다 알 수 있겠냐고, 우리가 아는 아주 조금의 일에 대해 얘기하는 거니까 뭐라도 말해보라고 했지. 그러나 그 아는 조금의 느낌마저 더 작아지고 나면 모른다는 것이 압도하는 느낌이 들어.

 

하얀 구름에서는 눈이 뚝뚝 떨어지지 않았어. 하얀 구름은 숙소에서 검은 구름이 되어 눈을 뿌렸고. 아침이면 흐르는 검은 구름 같은 까마귀떼도 눈발에 흩어졌는지 몇 마리만 보였어. 김현승의 플라타너스에서처럼 마른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어. 굶주린 걸까? 아침에 거대한 무리가 의식을 치르던 모습에서 굶주림을 연상할 수 없었듯이 홀로 가지에 앉은 까마귀에서도 허기가 느껴지진 않았는데.

 

모르겠어. 다른 까마귀들은 다 어디로 가고 그 까마귀만 눈 위를 걸었는지. 평화롭던 구름이 왜 검은 빛으로 물들고 광풍과 폭설을 몰고 오는지. 누군가의 불편이나 심지어 생명에도 아무 관심이 없는 구름. 그런데도 구름을 사랑해, 라고 말하고 싶어. 구름에 대해 이토록 무지하면서 그렇게 말해도 될까? 안다는 건 뭘까? 나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정말 이해했을까?

 

헤세는 [페터 카멘친트](문학과지성사, 2013)에서 페터의 입을 통해 자신보다 구름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어. 양치기가 바라보는 하늘. 그렇게 구름을 사랑한 페터는 구름을 이해했을까? 페터의 이야기를 들어 봐.

 

나는 아무도 자연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아무리 찾고 구해도 거기서 오직 수수께끼만을 발견하고 슬퍼질 뿐이라고 대답했다. 햇빛 속에 서 있는 나무, 풍화된 돌, 동물, -그들은 각자가 하나의 인생과 하나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은 살고, 고통 받고, 반항하고, 즐기고, 죽어가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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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편지를 쓰던 때가 있었어. 중학교 2학년 때 나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K가 복도에서 쪽지를 주는 거야.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교실 앞쪽에 앉은 그 아이와 뒤쪽에 앉은 나는 특별한 노력 없이 친해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어. 친구하고 싶다는 쪽지 같은 건 그때 처음 받아봤어. 마치 러브레터처럼 가슴이 뛰었지. 나도 답장을 하고, 다시 답장이 오고. 쪽지가 편지가 되었지. 미용실에서도 가로등이 켜진 길에서도 나는 K에게 할 얘기들을 떠올렸어. 어린왕자 이야기는 늘 편지 몇 줄을  차지했고.

 

일요일에 학교에서 따로 만난 적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만나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어. K의 친한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아마도 그 애들이 싫어하는 아이를 싫어하지 않아서였을 거야. 나는 지금도 까닭을 알 수 없는데 반 친구들이 한 아이를 싫어했어. 사실 나는 별 관심이 없었어. 그런데도 따돌림 받던 아이는 다음해 자기 생일 때 나를 집으로 초대했어. 정원이 있는 커다란 집이었는데 그 아이의 부가 친구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K와 나는 같은 반이면서 펜팔 친구였어. 학년이 바뀌고도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K의 어머니가 공부에 방해된다고 편지를 못 쓰게 하면서 편지는 끊겼어. 지금도 K를 생각하면 그 아이의 얼굴보다 편지지에 적혀 있던 가늘고 단정한 글자가 생각 나.

 

편지가 쓰고 싶어졌어. 왜 너냐고? 못 본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간혹 꿈에서 너를 만나. 왜 그런지 꿈속에서 아주 짧게 만나는데 늘 어색해. 크게 말이 없는 네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모모 같은 때가 있어서일까? 나는 그때의 너를 불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에서 꿈을 찍은 사진 속에 어른이 된 화자와 어린 순이가 있었던 것처럼 마흔 몇 살의 내가 스무 살의 네게 말을 걸어보는 거지. 어쩌면 나에겐 넌 꿈속에 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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