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문무학근심을잊자 했으니나를 먼저잃었다
草露와 같이-황지우오 환생(幻生)을 꿈꾸며 새로 태어나고 싶은 물소리, 엿듣는 풀의 누선(淚腺), 살아 있는 동안의 이름을 부르며 살 뿐,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로다 저 타오르는 불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상(傷)한 촛불을 들고 그대 이슬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고 싶다
차와 동정
-최영미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밑구녁까지 보이며 애원했건만네가 준 것은차와동정뿐.내 마음은 허겁지겁 미지근한 동정에도 입술을 데었고너덜너덜 해진 자존심을 붙들고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봄이라고 개나리가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고......
이곳에 살기 위하여-정희성한밤에 일어나얼음을 끈다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증오에 대해서나도 알 만큼은 안다이곳에 살기 위해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싸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봄이 오기 전에 나는얼음을 꺼야 한다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나는 자유를 위해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家族風景-이성복 형은 장자(長子)였다 `이 책상에 걸터앉지 마시요―장자백(長子白)` 형은 서른 한 살 주일마다 성당(聖堂)에 나갔다 형은 하나님의 장자(長子)였다 성경(聖經)을 읽을 때마다 나와 누이들은 형이 기르는 약대였다 어느날 형은 아버지 보고 말했다 <저 죽고 싶어요 하란에 가 묻히고 싶어요> 안될 줄 뻔히 알면서도 형은 우겼다 우겼지만 형은 제일 먼저 익은 보리싹이었다 나와 누이들은 모래 바람 속에 먹이 찾아 날아다녔고 어느날 또 형은 말했다 <아버지 이제 다시는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겠어요 좋아요 다시는 안 돌아와요> 그날 나는 울었다 어머니는 형의 와이셔츠를 잡아 당기고 단추가 뚝뚝 떨어졌다 누이들, 떨어지며 빙그르르 돌던 재미 혹시 기억하시는지 그래도 형은 장자(長子)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형의 아들 딸이었고 누이들, 그대 산파(産婆)들 슬픈 노래를 불렀더랬지 그래도 형은 장자(長子)였다 하란에서 멀고 먼 우리 집 매일 아침 식탁(食卓)에 오르던 말린 물고기들 혹시 기억하시는지 형은 찢긴 와이셔츠처럼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