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쏟아지는 생각들. 잠 밖으로 비집고 나온 꿈 같다. 어느 드라마. 아들이 뇌종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죽어버리는 아버지. 아들을 살릴 생각은 않고. 그가 이해가 된다. 그는 여력이 없었구나 하고. 겨우겨우 하루를 견디던 그는 새로 전개될 삶에 자신이 없었구나 하고. 생각은 내 아버지에게로 이어진다. 아버지 등 뒤에 누워 몇 번이나 아버지, 아버지의 부푼 배 좀 보세요. 아버지는 이제 곧 죽을 거예요, 말하려고 했다. 불 같은 아버지가 그런 소릴 들으면 곧 꺼져버릴 거라고 가족들이 말렸다. 내가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아버지는 짧게 타오르다 꺼졌다. 입을 크게 벌리고 내뱉는 아버지의 마지막 호흡호흡마다 하고픈 말들. 결국 소리가 되지 못했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슴에 내려앉았다 육신을 태울 때 함께 재가 될까. 흙 속에서 작은 벌레들이 갉아 먹을까. 나도 아버지처럼 차마 못할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꺼져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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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바람이 불어.
날 스친 바람이 맑아졌으면 좋겠어.
사랑해 하는 말이 나를 지나면
작은 음표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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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8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들

 

 

어쩌다 이런 멋진 사람들이 우리집에 왔을까

"엄마, 세수하고나니 얼굴에서 빛이 나요."

너희들 눈에도 빛이 보이는구나.

재잘거리는, 날아갈 듯 뛰어가는,

웃음소리

 

사랑해 하면 사랑해 울리는

내 심장의 두근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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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6. 독서치료 수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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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나요?

혹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스스로 진실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나요?

진실한 삶은 어떤 것인가요?

누군가 진실하라고 말해요.

진실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어디에 가든 그곳엔 내가 있죠.

진실한 나와 살고 싶어요.

한 남자가 마음에 둔 여자에게 당신이랑 자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게 진실한 건 아니잖아요.

감추어 두었던 속마음, 욕망, 상처...이런 것들을 드러내고 다닌다고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떻게 하면 진실해질까요?

 

마치 누군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나는 소리내어 물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처럼 더 큰 소리로 물었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묻자 내가 울었다.

마치 내가 혼이라도 나고 있는 듯 갑자기 터진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었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하듯 내 목소리가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니?

지금 몸은 어때?

춥진 않니?

나는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멍청하고 답답하고, 가슴 한 쪽이 뭉뚝한 막대로 누르듯이 아프다고, 자꾸 떨린다고. 차가 마시고 싶다고. 울면서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진실 이야기는 덮어두고 노래를 들었다.

 

어제는 몰랐다.

내가 원하는 것이 없는 곳에서 원하는 것을 찾고 있다는 것을.

진실에 대해 묻는 것은 진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아침, 명상을 하려고 앉으니 어제가 떠오른다.

그랬구나. 진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구나.

지금 기분이 어떠니?

지금 몸은 어때?

춥진 않니?

어제의 내 목소리가 내게 진실했구나.

그랬구나.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 대상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구나. 나를, 대상을 알아차리고 발견하는 것이구나. 그런데도 나는 깨달음이니, 진리니, 진실이니 하는 말들과 뒹굴고 있었구나. 그래서 진실한 나와 살지 못했구나. 지금 기분이 어떤지, 지금 내 몸 어디가 긴장되어 있는지, 지금 내 앞의 사람이 웅크리고 있는지, 목소리가 떨리는지...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진실한 것이구나. 

 

작은 아이가 일찍 깼다. 어제 아이들 재울 때 앉아 있었더니 아이가 눈을 뜨자 엄마는 왜 계속 앉아 있어요? 한다. 아니야, 누워 자다가 다시 일어나 앉아 있는거야. 아이가 말할 때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것이 진실이구나. 앉았던 다리를 풀고 얼른 아이의 손을 잡는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아이의 손. 그래, 부드럽구나. 이것이 진실이구나. 진실한 사람, 지금 여기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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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보인다. 작은 총이다. 작은 총이라도 목숨을 가져갈 수 있다. 크든 작든 총은 총이다. 총알만 있다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혹은 죽을 수 있다. 공포만 없다면, 누구나 아주 짧은 시간에 선택을 할 수 있다. 달라이라마도 작은 총을 갖고 있다. 그냥 갖고 싶었다고 한다. 사용하지는 않는다. 총을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냥꾼이라 해도 정해진 장소에서 사용한다. 그들은 죽인다. 모든 써진 글은 누군가에게 읽혀지기 위해서다. 모든 총들은 쏘여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위협일 뿐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존재가, 그 존재 자체가 죽음을 부른다. 모든 사물이나 사물의 형태는 그 나름의 에너지를 갖는다. 총의 에너지...그게 아주 작은 총일지라도 총은 쏘여질 것이다. 너를 향해, 혹은 나를 향해. 시간문제다.

 

그러나 총은 저절로 발사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이용한다. 총은 총 나름의 에너지로 총을 쏠 사람을 찾는다. 누구를 쏠 것인가, 누구에게 쏘라고 할 것인가? 총은 선택할 수 없다. 그냥 그 자신의 에너지 때문에, 그 자신의 만들어짐 때문에 사용된다. 누구도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떨어뜨리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들어진 것은 이용된다. 만들지 마라. 만들면 만들수록 그 사물들이 나를 움직일 것이다. 참을 수 없을 때, 때로 참을 수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통제되지 못한 감정들...그 틈에서 그 사물들이 뛰어 들어온다. 그것이 혹여 총이라면 아주 빨리 상황이 끝난다.

 

다행히 나에게는 총이 없다. 내게 보이는 총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장난감...왜 이런 것들을 복사하고 싶은가? 달라이라마가 가진 작은 총은 그에게 장난감일까? 이제 달리 말해야 한다. 내게는 장난감 총이 보인다고. 작은 총이다. 장난감총은 아무리 커도 목숨을 가져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안심한다. 삶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공포만 없다면 총이 없어도 누구든 죽을 수 있다. 공포가 있더라도 누구든 죽는다. 미리 죽으려고 발버둥치는 무리들...미리 죽이려고 발버둥치는 무리들...우리는 모두 죽는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역사 속의 유명한 사람들도, 우리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언니도 죽었다. 누군가는 그냥 죽고, 누군가는 죽음을 당했고, 누군가는 스스로 죽었다. 어쨌든 모두 죽었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오늘은 2012년 3월 30일이다. 비 온다. 기형도의 시처럼 가랑비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조금씩 젖어든다. 우리에게 조금씩 젖어드는 죽음. 어떤 이에게는 소나기처럼 퍼부어 내린다. 잎들.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잎사귀들. 뿌리가 뽑혀도 나무에 붙어있는 그 잎들. 그 푸른 잎들. 가을이 되면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조용히 떨어질 그 잎들. 그 잎들을 보며 슬펐다. 준비된 죽음은 고요하기만 하다. 갑작스런 태풍은 뿌리가 뽑혀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으로 간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이야기다. 총구가 보인다. 이제 놀라지 않는다. 이건 장난감 총이니까. 장난감 총에 죽은 사람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 모두 웃을까. 비가 그쳤는지 모르겠다. 하늘은 흐리다.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지만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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