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 다 읽었으면 잘 일인데 다음엔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 앞에 선다. 읽다 만 육아서 두 권이 눈에 띈다. 잘 읽혀지지 않던데 읽던 책이라 한 권을 집어든다. 밖에 나가고픈 마음이 들지만 시간도 늦었고 날도 차다. 창으로 밖을 내다볼 뿐이다. 오토바이 지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루 일이 이 일, 저 일 떠오른다. 여기 앉아 생각하는 하루가 아주 길다. 겪을 때는 지나치게 빠르더니 생각하니 이렇게 긴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책은 그만두고 자야겠다. 이 하루를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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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불안에는 까닭이 있어.
훅 불면 꺼질 지도 몰라.
너는 길을 잃었구나.
부연 창문을 문질러 맑음을 찾지만
곧 흐려지는.

여긴 내 꿈 속이야.
눈을 뜨면 사라질거야.
네가 걷는 길도, 찾는 길도.
어쩌면 우리가 나누는 따뜻함도.
내 꿈 속인지도 모르고
찾아와 노래를 부르는구나.

네가 사는 내 꿈이 좋아
눈 뜨지 않으려
오래 오래 잠들어 있어.
누가 나를 깨울까.

네 불안에는 까닭이 있지.
훅 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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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벗에게 전화가 온다. '사랑하는' 이란 말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한 바가지 마중물이 땅 속 물을 끝없이 끌어올리듯 사랑하는 이가 하는 자잘한 얘기에 웃음이 펑펑 터진다. 모든 이름 앞에 붙여본다.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랑하는...한 바가지 물이 되어 내 안에 있는 숱한 '사랑하는'을 끌어올리는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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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가라앉아 아이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울부짖을 때 사람들은 손을 내밀어 함께 울었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흘러도 울음이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만하면 됐다고. 울음조차 숨죽이다 가슴 속에서 커다란 돌덩이, 커지고 커져 스스로를 가라앉힐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무거운 순간에 묶여 누군가에겐 세월이 흐르지 않는다. 아이를 병으로 잃고 소아암 병동에서 봉사하는 목사님에게 병든 아이를 돌보던 한 엄마가 물었다. 목사님은 어떻게 아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셨나요? 목사님이 대답하셨다. 아직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리 해도 페이지를 넘겨 깨끗한 종이에 새 이야기를 쓸 수 없는 사람들, 견디고 있는 사람들, 말할 수 없어서 가슴에 숨긴 얘기들로 가라앉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도 새해가, 새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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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5-01-0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세월호를 견디고 있지요.
내 아이가 아니라도
우리의 아이니까요.
부디 슬픔에 삶이 침몰되지 않기를.
_()_

이누아 2015-01-01 20:55   좋아요 0 | URL
게을러 집에서 새해를 맞았지만 저도 혜덕화님을 따라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을 한 해를 기원합니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정도는 제 자신과 거리가 생긴 것이라 여깁니다. 말하면서 감정이 덜어지기도 하고. 얼마전 위빠사나를 지도하는 법사님이 슬픔에 취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알아차리려고 해요. 익숙한지도 모르고 익숙해진 것들을 알아차리는 한 해를 짓고 싶어요.

지금 세상에 없는 언니는 공책이 많았어요. 그 공책 앞부분은 거의 찢어져 있었어요. 도대체 뭘 그렇게 새로 쓰고 싶었던 걸까요? 까닭이 뚜렷한 슬픔이나 울분조차 말하지 못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마음 속에 견디는 일들이 있을까, 새로 쓰고 싶은 것들을 쓰지 못할까 싶었어요. 제가 하는 얘기들은 제 이야기일 뿐이에요. 제가 그분들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생각하겠어요? 그저 제 얕은 삶에 비춰보는 것뿐이지요.

수행얘기를 한번씩 올려주시면 제게 자극이 많이 돼요. 비틀거려도, 헝클어져도 가시는 그 길따라 걷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건강과 평안을 빌어요.

appletreeje 2015-01-0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를 보다가, 퍼뜩 와 닿는 마음이 있었어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곁에서, 함께 다시 일어서자고 지지해주고 동행하는 사람의
모습을요. 물론 이 경우는 개인의 일이지만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참 많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누군가가 일어서는 일에는, 그 장본인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힘을 내고
열심히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을.

견디고 있다는 말이,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해 첫날, 이누아님의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누아 2015-01-01 22:28   좋아요 0 | URL
누군가가 힘을 내기 위해서는 함께 하는 사람도 힘을 내야 한다는 말씀, 마음에 새깁니다. 고맙습니다.
 

내게는 얼마큼의 고요가 필요한 것일까. 분주한 아침 한 때가 지나고 천천히 걷는다. 찬 공기가 가져온 적막과 추위를 피해 서두르는 사람들 사이로 커다란 잎이 떨어진다.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무 것도 버리지 못했다. 무거운 외투 사이로 바람이 스민다. 어둡고 고요한 날들이 지났다. 어수선한 밝음 위로 피로가 얹힌다. 어딘가 주저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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