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도날드 월쉬, 조경숙 역, "신과 나눈 이야기", 아름드리미디어.
너는 온갖 것들에 대해서...."죽는 한이 있어도"라고 하는군. 하지만 기왕이면 "살아서 꼭"이라고 하는 게 더 멋지지 않느냐? -p.13
나는 생각으로도 교류한다. 생각과 느낌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생각으로 교류할 때 나는 자주 영상을 사용한다. 그 때문에 교류 도구란 면에서 생각은 단순한 말보다 효과가 크다.
느낌과 생각 외에 나는 체험이라는 운송수단을 쓰기도 한다. 체험은 참으로 위대한 전달자이다. -p.15
왜냐하면 너희는 "사랑한다"고 말하자마자 과연 상대방이 그 말을 되돌려줄 것인지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그 말을 되돌려 받는다 해도 너희는 그 순간부터 이제 막 찾아낸 사랑을 잃게 될까봐 걱정하기 시작한다. -p.35
두려움은 우리 몸을 옷으로 감싸나, 사랑은 우리가 발가벗고 설 수 있게 해준다. 두려움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틀어쥐고 집착하게 하나, 사랑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게 한다. 두려움은 갑갑함을 지니나, 사랑은 정을 지닌다. 두려움은 움켜잡지만, 사랑은 보내준다. 두려움은 사무치게 하지만, 사랑은 달래준다. 두려움은 공격하지만, 사랑은 치유한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이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에 근거하고 있다. 그 외에 다른 감정이란 없기에 너희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너희의 자유다. -p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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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라는 표현을 즐겨 쓸 때가 있었다. 삶은 죽음 같았고, 그래서 목숨을 건다고 해도 여전히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선의로 가득찬 무엇을 본다면...아픈 것은 나쁘게 보이지만 몸이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몸부림이다. 몸에게는 어떤 악의도 없다. 악의가 없는데도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선의를 오로지 선의로만 본다면 그때도 앗아감이 있을까? 두려움 때문에 선의를 악의로 돌변시키고 있는 걸까?
나는 언젠가 영상으로 어떤 존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매번 그 영상은 일상적이지 않았다. 일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웠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것을 보지 않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내가 없을까봐 두려웠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단 두 가지 감정으로 구분해야 한다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느낌과 생각을 넘어선 영상과 체험이 있었는데도 두려움 때문에 어두워졌던 게다. 단순화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간단한 것이냐. 복잡한 것은 행위로, 체험으로 드러날 수 없다. 단순한 것은 드러난다. 사랑 아니면 두려움...바로 이 순간. 아주 손쉽게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기준을 갖는 것은 행운이다.
사랑은 발가벗고 설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 구절은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를 생각나게 한다. 그는 그의 아버지 앞에서 발가벗고 섰다. 당신이 내게 준 옷을 당신에게 돌려드립니다. 나는 이제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했던 그 미치광이 성자를 생각나게 한다. "남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사는 용기를 모든 사람에게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그...그러고보니 그는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요"라고 했다.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구나.
그러나 마음은 얼른 두려움이 뭔지, 사랑이 뭔지 니가 아느냐고 물으며 이간질을 한다. 아는 것보다 느끼는 쪽을, 느끼는 것보다 체험하는 쪽을 택하겠다고 나는 대답한다. 내가 사랑하는 노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는 성가가 요즘 입에서 흘러나온다. 화두가 일면 "사랑해"라는 말이 같이 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여전히 모르는데 왜 그 말이 아무 데서나 튀어나올 것만 같은가. 튀어나올까봐 두려워하는가. 마치 "사랑한다"고 말하면 수만 가지 문제가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 두려움에 지나치게 길들여진 탓일까? 그래서 사랑 앞에서는 못하고, 여기 중얼대는 자리에서 말하는 걸까? 사랑해.
이 말을 하기 위해 이런 변명들이, 혹은 신의 말을 빌어야 했을까. 말은 생각보다 느낌보다 영상보다 체험보다 더 왜곡되기 쉬운 것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애초에 나는 선의와 영상에 대해 말할 참이었다. 그러나 두려움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덧붙이다 그 이야기로 흐른다. 어디서든 튀어나올 것 같은 그 "사랑해"가 여기서 그냥 튀어나와 버린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