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색깔을 정말로 결정하려고 해 보라. 한 사람의 백인은 하얀색인가? 확실히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광대의 하얀색뿐인데, 머리에 분칠을 한 이 광대는 크고 빨간 코를 주요 속성으로 하는 동료 오귀스트에 비해 약간 어리석은 양식을 재현한다. 실제로 무한히 많은 등급을 거쳐 지나가면서 우리는 한 사람의 가상의 흑인보다 창백한 누군가를 '백인'이라고 부른다. 이때 몇몇 스웨덴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시아 사람들 몇몇을 거쳐서 모리타니 사람들을 살펴 보자. 다른 한편으로 어떤 타밀 사람은 분명 여러 '검은' 아프리카인보다 피부색이 짙지만, 이들을 흑인의 범주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많은 아프리카인의 피부색이 짙은 편이지만 검다고 말할 수 없고, 많은 유럽인이 백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으며, 그저 노란색이라고만 간주되는 아시아인들(그런데 누구의 피부가 노란색인가? 간염 환자?)은 대체로 많은 수의 남유럽 사람들보다 밝은 피부색을 보이며, 검은 물감이나 석탄 조각과 비교할 경우 가장 피부색이 짙은 사람도 곧바로 검은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략-

인간 동물의 가장 객관적인 표시는 어떠한 색깔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인간 동물이 검은색일 수 없고, 정말로 검은색일 수 없는 만큼이나 흰색일 수도 없으며, 하물며 노란색이나 붉은색일 수 없다는 점이다.

 

-알랭 바디우, [검은색](민음사, 2020), pp.124-125.

 

 

주로 주체와 타자의 논리에서 이분법이 대등한 A와 B의 관계로 작동하는 경우는 없다. 언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이외의 나머지 세상만 묘사한다. 나는 백인 문화가 다른 인종을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자신은 색깔과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유색 인종(color of people)'이라 부르는 것을 비판한다. 한편 구한말 조선 사람들도 갑자기 나타난 서양인을 보고 자신의 몸과 다른 점을 기준 삼아 '색목인(色目人)'이라고 불렀다. 검은 눈동자도 분명히 색깔이므로 이 단어는 인종 차별적이다. '유색 인종'과 '색목인'의 사회적, 언어적 지위는 같지 않지만 구성 원리는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의 지위는 언어가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언어가 정해지면, 자신과 외부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이분법은 무엇인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인식의 절차이자 과정이다.

 

 -정희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교양인, 2016). pp.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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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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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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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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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16: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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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1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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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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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누아 >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2005년에 쓴 리뷰-산에는 꽃이 피네

 

 

2005년이면 법정 스님이 살아계실 때고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다. 이제 이 세상에 계시던 스님은 안 계시고 없었던 아이들이 있다. 인생에 가장 격렬한 체험인 생과 사가 멀리서 보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지네, 또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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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늪으로, 사막으로 내 보내 죽음의 거머리와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기게 하는 것이다.

p.21 나무가 `되기 위해` 씨앗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된 것들은 또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영원히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끝내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 때문에 생을 망쳐서는 안 된다.

p.180 마음아, 이젠 좀 지치려무나. 칭얼대지 마라. 네 수레바퀴는 빠져버렸단다.

p.217 사라진 것들에 대한 사랑은 사라질 것들에 대한 사랑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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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빌려서 오늘이 가기 전에 다 읽었다. 이런 게 소설의 속도인가. 나는 오늘 읽었는데 영화도 나오고, 속편도 나와 있다. 괜찮다. 내가 읽은 책은 해변의 모래 몇 알도 안 되니까.

 

비가 오고 나는 커피가게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을 블럭방에 보내고 혼자 앉아 책 읽는 여유. 행복하다, 고 말할 뻔 했다. 그리운 사람이 또렷하게 그리워지는 건 행복한 일일지도. 트집을 잡는다면...이 여유를 온전히 돈을 지불해서 얻고 있고 있다는 정도...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것을 꼽으라면 죽음과 사랑이다. 잊을 수 없는 고통과 환희...삶을 더 강렬한 무언가로 만드는 죽음이라는 배경이 전면에 나선 상태에서의 사랑이라면 더 말해서 뭐할까.

 

윌의 고통을 생각한다. 사람과 세상과 가장 단절을 느낄 때가 고통스러울 때다. 문병을 오는 사람은 꽃을 들고 오지만 아픈 이는 향기를 맡을 기력이 없다. 힘내라, 하는 말이 힘낼 수 없을 것 같은 내게 공허하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다. 사실, 그럴 때 연애 같은 건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눌 수 없고, 나누기도 싫은 고통. 시간이 지나서 낫는다면 모르지만 언제 또 그 고통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고통에 두려움이 더해진다. 윌은 그 고통을 끝내고 싶다. 클라크를 사랑한다니까. 그렇지만 고통 속에서는 싫다니까. 사랑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순진한 아가씨, 아무리 사랑해도 그 고통이 내 안에 있다고, 어떨 땐 내 존재가 고통이라고, 이 휠체어가 내 존재를 규정한다고. 그런 나로 살고 싶지 않다고.

 

클라크는 생각한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내게 기회 한번 주지 않을 수 있지? 날 떠나는 걸 선택할 수 있지? 클라크를 이해한다. 죽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아이가 그랬다. 어떻게 내가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사랑이 삶을 얼마나 빛나게 할 수 있는지 윌도 나도 느꼈다. 나는 윌처럼 고통이 내 존재가 되지 않아서 그 빛 속에 머무르고 있다. 윌과 클라크도 그랬더라면 좋았을까.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가정이나 정답은 없다. 그러나 사랑은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결국 자기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윌도 변했을 것이다. 변했다.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죽음을 맞았으리라 생각한다. 클라크가 새로운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처럼.

 

장마는 장마인가 보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린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적당한 날씨다. 바람이 서늘하니 좋다.

 

 

 

여기서는 내 마음속의 생각들이 들렸다. 심장박동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내심 깜짝 놀랐다. -p. 112

침 반듯한 신사야, 엄마 아빠는 그가 떠나고 나서도 족히 한 시간 동안 계속 감탄하셨다. 진짜 점잖은 신사구만,-p. 260

버밍엄에 사는 그레이스31은 이렇게 썼다. "애인이요. 사랑이 있다면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지도 몰라요.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p. 299

"어떤 실수들은...유달리 커다란 휴유증을 남기죠. 그렇지만 당신은 그날 밤 일이 당신이란 사람을 규정하도록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이유는 없어요."
내 쪽으로 더욱 기울어지는 그의 머리가 느껴졌다.
"그런 일이 못 일어나게 하는 게 클라크, 당신이 가진 선택권이니까."
그때 내게서 빠져나온 한숨은 길고,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록 깊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거기 그렇게 앉아서, 그가 한 말이 온전히 의미를 갖도록 곱씹었다. 밤새도록이라도 그렇게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발치에 있는 나머지 세상을 내려다보며 윌의 따뜻한 손길을 내 손 안에 품었다. 내 최악의 모습이 천천히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p. 361

"내가 무슨 생각인지 나도 몰라. 내가 아는 거라곤 그저 내가 아는 다른 누구보다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뿐이야."-p. 413

언니는 할 수 있어. 언니가 자랑스러워서 내가 돌아버리겠어. XXX-p.452

이렇게 산다는 건 지치는 일이에요. 그 피로감은 AB가 결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면, 정말로 그가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도저히 볼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내 생각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거기 함께 있어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옳은지 당신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그곳에 꼭 함께 있어주어야 해요.(리치)-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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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unwoo 2016-07-1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픈 결말. . . 흑. .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