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눈물을 솟구치게 하는 허벅지. 크고, 엄청나게 크고, 뚜렷한 형체도 없고, 한여름밤처럼 광활하면서도 친근하고, 난롯가인 듯이 따스하며, 여성적인… 그곳 상상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좌절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사랑과, 어떤 끔찍한 공포가 불러일으킨 전율,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미래 공포에 대해…”(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불안의 서』, 171쪽)


    참으로 말다운 말이어서, 나는 새벽마다 뜯어읽는 페르난두의 마음을 접어 책상에 고아처럼, 아, 그가 슬퍼할 ‘고아’의 모양으로 덩그러니 놓아두고는 이불을 덮었다. 하필이면 내게 왜 모든 것은 이처럼 밤과 같은가. 밤이란 무엇이냐, 이렇게 묻는다면 “밀밭처럼 연한 금빛의 내 어린 머릿속”(페르난두의 책, 같은 쪽)에서는 “검은 안개요.”라는 대답만 협곡 반대 사면의 바위를 때리고 골짜기를 맴돌 것이다. 페르난두도 그랬다. 절망의 어조로 그는 ‘바람’을 찾고, ‘어머니’를 찾고, ‘고향’을 찾고, ‘침묵’과 ‘요람’과,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노래로, ‘자장가’로 들려달라고 애원한다. 끊임없이 불안하다. 작가이기에, 그와 동시에 譯者이자 독자이기에. 그리고 내가 어쩔 수 없이 떠올리는 불행한 사람들. 불가역의 시간과, 밀려들어와서 빠져나가지 않는 비현실의 파도와, 그런 것들. 나는 지금 위로를 찾는다.



*   *   *



    나는 페르난두가 신에게의 귀의를 꿈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신의 안에서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다. 여러 일기에서 신을 찾으며 신을 말하고 신을 뭔가에 비유하지만, 그 모든 작업은 방 안의 홀로 된 시간 속에 있는 그와 세상의 거리만큼 다듬어져 있다. 더군다나 페르난두는 신은 침묵하니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聖人을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내가 페르난두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바로 나 자신이 神이라는 단어를 아주 작은 상자 안에 고의로 가둬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수많은 이들이 기복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 경전의 말씀처럼 신을 죽여 보는 전회 같은 건 체험해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 말의 뜻을 전혀 모른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붓다의 죽음을 운운한다. 하지만 그 놀라운 기예를 갖고도 버젓이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걸 보면, 와불 속에 갇힌 한 깨달은 자가 너무나도 불쌍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그냥 웃겼다. 뭐 저런 신을 믿어? 이 정도가 딱 좋은 표현. 그 신들은 흡사 광대 같았다. 그래서 그런 신을 믿지 않는 대신, 내가 생각하는 신을 만들었다. 중세에 태어났다면 나는 불의 고온에서 만개했을 한 송이의 꽃 같은 고깃덩어리였으리라.


    여러 종교의 경전을 읽는다. 30대의 목표라며 올해부터 10년 간 실천코자 하는 건, 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다. 일말도 성공하지 못하리라 확신한다. 건너지 못할 급류에 노 하나 없이, 엉덩이와 배를 마스트 삼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뛰어든 꼴이다. 아, 매일 미끄러진다. 그리하여 빠져 죽지 않기 위해 나는 이 급류의 수면 아래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한 존재가 살고 있다고 믿어야만 했다. 덩치가 너무 커서 어디에서든 그녀/그의 어깨를 밟으면 수면 위로 콧구멍이나마 내밀 수 있어야 했다. 숨은 쉬어야지. 그녀/그는 반드시 거인이어야 했다. 급류와 협곡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거인이어야 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보고된 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미치광이로 호도할 것을 두려워하여 (한편으로는 기꺼워하며) 책 속에 들어가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나는 다름 아닌 거인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다닌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보고 다닌 건 사람이 아니라, “눈물을 솟구치게 하는 허벅지. 크고, 엄청나게 크고, 뚜렷한 형체도 없고, 한여름밤처럼 광활하면서도 친근하고, 난롯가인 듯이 따스하며, 여성적인…”(페르난두의 글, 재인용) 존재들이긴 했다. 어떻게 그녀/그들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최소의 생물학적 조건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이 세상에 없는 이들을. 내가 기억하고 숭배하려고 하는 한, 그녀/그들을 어쩔 수 없이 ‘거인’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죽을 것 같은데도 살고 있는 까닭은, 아무리 깊은 바다라 할지라도 그녀/그들의 어깨가 수면 위에서 파도를 맞으며 육지의 존재들을 보듬는 하나의 섬이기 때문이다. 육지를 밟으며 사는 까닭에 나는 선원(혹은 해적?)을 꿈꾸는 것일 테고.



*   *   *



    페르난두의 새벽을 보내는 당신에게, 굳이 어느 섬에 들렀고 그곳에선 또 얼마나 묵었는지 묻지 않는다. 어차피 대부분이 바다 밑에 가라앉은 이 행성에서 우리가 디딜 육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머지 않은 날에 또 다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법. 똑같은 술집에서 만나 예의 저녁을 시켜놓고, 한 통의 웅성거림으로 거인들을 읊을 수밖에 없는 법. 물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연민을, 바다에 빠져죽은 이들에게는 위령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법.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당신과 나를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 신에게 나는 묻는다. ‘왜 당신은 이토록 적은 수의 섬만 남기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 것입니까? 이 불완전한 창조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러면 신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대답한다. 그 대답은 토시 하나 다른 것 없는 말의 갈피를 내일도 지닐 것이다. ‘이 세상은 원래 바다의 것이니라.’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내일도 다시 묻겠습니다. 신의 답변을 바꾸는 첫 인간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도무지 짜증이란 걸 낼 줄 모르시는군요. 저도 아예 그렇게 빚어주시지 그랬습니까.


    “우리 모두는 삶의 바람이 한번 휘몰아치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땅바닥에 내려앉는 먼지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단단한 지지대, 우리의 작은 손을 편안히 맡길 수 있는 어떤 다른 손을 간절히 바란다. 시간은 불확실하며, 하늘은 멀기만 하고, 인생은 언제나 낯설기 때문이다.”(페르난두의 책, 321쪽)



*   *   *



    그리하여 나는 독자로 산다. 마지막 단검을 빼든 것이다. 이 세상의 허구한 쓸모없는 것들에 일희일비하는 장난감 인형 같은 삶 속에서 한 권의 픽션과 한 권의 논픽션으로 사는 것이다. 거인의 어깨를 밟는 것이다. 가뭄 들지 않는 살갗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동물인 척 하는 사람들의 광기 사이에서 동물이 아닌 척 하는 광기를 부려보는 것이다. 영원을 읽고, 영원을 쓰며, 끝내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동물 같지 않은 동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심지어 “apothanein thelo.”라는 말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아폴론에게 빌었던 영원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한 명의 선원으로, 바람과 별자리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노 젓지 못하는 무능한 선원으로 산다. 대가들의 책 틈에 한 장의 사람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한 권을 이룬 이들 사이에서 언젠가 마침표를 찍고 먼지 사이에 묻힐 때까지. 독자의 공간적 행위. 그건 이렇듯 인위의 작업이다. 책 쉽게 읽는 비법 아는 사람은 어디 나에게도 그 좋은 방법을 좀 알려 달라, 이 사기꾼아. 나는 오늘 한 글자라도 제대로 읽었을까. 그런데 뭘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일까. 내 힘으로는 마칠 수 없는 푸념이라 다시 페르난두의 새벽을 불러온다.


    “내 말을 듣고는 있지만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 당신은 이것이 얼마나 슬픈 비극인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페르난두의 책, 495쪽)


    당신에게도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한 사람의 마침표로 자신의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기를. 나는 항아리 속에서 애절하게 죽고 싶어 했던 고대의 마녀처럼 간절하게 바란다. 당신의 새벽을 위하여. 당신과 나는 섬의 술집에서 곧 다가올 밤을 예비하고 있다. 당신의 흔들리는 동공이 내게 다음 항해에 대해 묻는다. 술잔을 쥔 이 손의 냉증도 당신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항구에는 새벽이 내려온다. 내일의 출항을 위해 배들도 고이 바다 위에 누웠다. 다시 마지막 인삿말을. 당신의 새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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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2일 월요일





    이것 참 곤란하다. 시간을 유기물로 느껴서는 곤란하다. 시간을 유기물로 느낀다는 것은 그것을 만질 수 있는 하나의 덩어리로 여긴다거나, 혹은 그보다 더 심한 경우로는 불명확하게나마 그것을 볼 수 있는 무언가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 누가 이를 착각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와서 나는 그런 착각에 대해 말하고 싶진 않다. 내가 보르헤스적 글쓰기로 실천하고 싶은 것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예의 것들에서 빗나가는 하나의 상상을 통해 모든 것으로 연결되는 현상의 체험이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 나는 어디까지나 ‘상상’이라고 말했다. 현실로 말하자면 이건 그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것이며, 따라서 여기서 시작해 여기로 돌아오는 일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빗겨나가는 것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시간은 기억들을 묽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자이르에 대한 기억만큼은 도리어 가중시킨다.”(보르헤스, 황병하 옮김,『알렙』, 160쪽)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El tiempo, que atenúa los recuerdos, agrava el del Zahir.”라고 한 말이다. 여태 <자이르>에 비유됐던 모든 것들, 보르헤스가 역사의 앞을 좇으며 제시한 모든 물건들, 어쩌면 저주일 수도 있는 것들은 무언가에 굶주린 인간 자체를 상징한다. 소유 강박과 중독. 그리고 종교로까지 뻗어나가는. 지구의 다른 말은 <자이르>다. 보르헤스는 그렇게 말했다. 아니, 우리에게 물었다.


    나의 <자이르>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의 단편 「자이르(El Zahir)」는 읽는 이 모두에게 자신의 <자이르>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하지만 그 <자이르>가 어떤 사물, 대상, 혹은 관념인지, 그건 중요한 건 아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자이르>라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과연 주화 뒤에 있는 하느님을 발견했을까? 놀라운 단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자이르가 이 소설에서 연결된다.


*   *   *



    그렇다면 <자이르>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황병하 씨의 번역으로 서너 번 고쳐 읽고도 도무지 갈증을 참지 못해 (스페인어는 단어들을 빼면 도무지 읽지 못하므로) 영문판을 찾아 읽었다. 보르헤스는 1961년 『Antología Personal』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 시, 문학비평 등을 담아 모음집으로 냈다. 여섯 해가 지난 1967년, 미국의 Grove Press에서는 『A Personal Anthology』라는 영어 제목으로 이를 번역 출간했다. 편집과 서문은 앤소니 케리건(Anthony Kerrigan)이 맡았다. 내가 황병하 씨의 번역과 비교해서 읽은 건 그 책에 실린 「The Zahir」이다. 영어로 읽어본 <자이르>의 뜻 다음과 같다.


    beings or things which possess the terrible virtue of being unforgettable, and whose image finally drives people mad. 황병하 씨의 번역은 이렇다. “결코 망각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형상을 본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어떤 존재, 또는 사물을 뜻하는 무엇”(보르헤스의 책, 157쪽)


    보르헤스는 그런 <자이르>를 6월 7일 새벽에 손에 넣게 된다.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에서 <자이르>가 어떤 운명적 속성을 지닌 무언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우리는 당연히 하게 된다. 그 계기는 보르헤스가 마음에 두었던 ‘떼오델리나 비야르’라는 한 여인의 죽음이다. 그는 보르헤스다운 문장들로 비교적 상세하게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주변 풍경과 자신의 심정을 적어나간다. 그리하여 우리가 느끼게 되는 그의 상실감. 운명이 여기에 달라붙었던 것일까? 떼오델리나는 보르헤스가 <자이르>를 손에 넣은 바로 전 날 목숨을 끊었으며, 그 사건은 보르헤스가 “나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까지 만들었다”(보르헤스의 책, 148쪽)고 술회했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를 감안하고 이후의 행적을 살펴봐야 한다.


    보르헤스는 커다란 슬픔에 잠겨 새벽 2시 즈음 한 구멍가게에 들러 술을 마신다. 이는 그가 말한 것처럼 다분히 모순적이다. 모순어법, oxymoron이다. 슬픔을 물리기 위한 “천박함”과 “용이함”으로 버틴다. 하지만 그 모순 속에서 <자이르>가 그에게 다가왔다. 불분명하다. 그가 찾은 것인지, 아니면 그를 찾은 것인지. 소설을 고쳐 읽는 내내 생각했지만, (독자들마다 분명 다를 것인데) 나는 아무래도 전자의 이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보르헤스는 슬픔에 대한 보상을 속으로 깊이 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주인이 그 은화를 건네주는 순간부터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역사 속의 수많은 은화이니 금화이니 하는 것들을 생각해낸다. 박식이 그를 저주로 이끈 것이리라 해도 될 만큼. 그의 열거에서 느껴지는 피로감. 심지어 보르헤스는 자신이 주화가 되는 신화 속 꿈을 꾼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돌아버린 것이리라.



*   *   *



    도무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보르헤스는 <자이르>를 버릴 결심을 한다. 아주 철저한 계획으로 “그것이 행사하는 악마적 영향”(보르헤스의 책, 152쪽)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잘 모르는 거리까지 간 다음에 <자이르>를 내고 술 한 잔을 산다. 그리고 그곳의 거리 이름이나 주소 따위를 전혀 보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니면 금단 현상 같은 것이 있었는지, 보르헤스는 그 달 말까지 단편 하나에 매진한다. 그는 그걸 시답지 않은 작업이라 불렀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것이 하필 니벨룽들의 보물이니, 우리는 보르헤스의 실패를 읽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다. 그리고 율리우스 바를라흐의 『자이르에 얽힌 사건에 관한 기록』이라는 책을 찾아 <자이르>를 연구한다. 물론 세상에 없는 작가와 책이다.


    여기서 앞서 영문으로 인용했던 <자이르>의 속성이 드러나며, 그것은 뒤이어 묘사되는 환상적인 어떤 호랑이에 비유된다. 그 호랑이라는 것은, 즉 <자이르>라는 것은 <자이르>의 성질을 갖는 세상 모든 물건을 의미하지만 우리에게 <자이르>는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요컨대, “단지 한 가지만이 사람들을 매혹”(보르헤스의 책, 158쪽)시킨다. 그것은 사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 있으며, 관념일 수도 있다. 이 매혹은 심각한 경우 사람들을 돌아버리게 한다. 보르헤스는 떼오델리나의 여동생인 (책에서는 ‘훌리따’라고도 나오고 나중에는 ‘훌리아’라고도 언급되는) 훌리아 아바스깔 여사가 “주화에 대한 공포에”(보르헤스의 책, 160쪽) 시달리다가 요양원에 갇힌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10월이 돼서야 알게 된다.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는 공포가 엄습한다.


    그리하여 보르헤스는 깨닫는다. 서두에서 인용했던 구절이다. “시간은 기억들을 묽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자이르에 대한 기억만큼은 도리어 가중시킨다.”(보르헤스의 책, 재인용) 생각건대,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짙어지는 <자이르>에 대한 집착의 농도에서 우리는 뭘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그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일 뿐인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보르헤스가 깨달은 건 사물이나 대상, 혹은 관념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이 아니다. 좁아지는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왜 그가 하필이면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구를 언급했을까. 보르헤스가 언급한 알프레드의 시는 영국의 빅토리안 시대 조각가 조지 와트가 만든 알프레드 기념상에도 적혀 있는 짧은 작품이다. 원문은 이렇다.


    Flower in the crannied wall,

    I pluck you out of the crannies,

    I hold you here, root and all, in my hand,

    Little flower—but if I could understand

    What you are, root and all, and all in all,

    I should know what God and man is.


    알기 쉬운 말로 이 세계의 오묘함을, 작은 것 하나에서 세상 전체와 우주의 몸통으로 뻗어나가는 그 “인과론적 연쇄”(보르헤스의 책, 161쪽)를 노래한 알프레드의 위대한 정신. 보르헤스는 그걸 알게 된 것이다. 아무리 감내하기 힘든 <자이르>라고 할지라도, 그리하여 보르헤스가 마치 미래의 자신이 눈이 멀게 될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구절로 온전치 못한 노년을 기약할지라도, 그는 <자이르>를 통해 세상을 보며, <자이르>만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 위대한 아르헨티나의 시인은 정말 그렇게 했다. 대가의 반차는 바로 <자이르>를 꿈꾸는 자들의 것이다. 부단히 단순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자 그대로 단순해지는 것일까? 누구도 그렇게 말하진 못하리라.


    Cuando todos los hombres de la tierra piensen, día y noche, en el Zahir, ¿cuál será un sueño y cuál una realdad, la tierra o el Zahir? 황병하 씨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밤낮으로 자이르를 생각하고 있다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지구 아니면 자이르?”(보르헤스의 책, 162쪽) 지구의 절반을 꿈이라고,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현실이라고 해보자. 이 거친 상정, 역사적 소행이라고도 할 만한 이 상정에서 우리는 <자이르>라는 것의 위치를 알게 됐다. 보르헤스의 도움으로 우리는 꿈을 꾼다. 그 주화의 뒷면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는 각자의 몫이며, 그 작업이야말로 독자인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나의 <자이르>는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 보르헤스는 그 뒤에 하느님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두 가지 사물이 동시에 존재하도록 허용치 않는”(보르헤스의 책, 158쪽) ‘무한히 자비로운 하느님(el Todomisericordioso)’의 불가해를. 보르헤스의 구체(球體) 시야의 한가운데 <자이르>가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역시 그러하다. <자이르>를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반면, 그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자이르>를 무시하여 도망가려는 이들이 세상에는 더욱 많다. 그리하여 가뭄 중의 콩처럼 대가들이 발아하는 것이며, 예술이 때때로 우리들에게서 멀리 도망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자이르> 앞에 서라. 새벽의 거리를 걸어라. 이 무시무시한 말에 대한 환상적 단편의 하나. 보르헤스의 위대함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런 선언들에서 노트르담의 종소리처럼 사방의 도시로 울려 퍼진다. 이 도시 어딘가에 당신의 <자이르>가 있다. 이 소문에 당신은 밤잠을 설친다. 영락없는 독자다. 그 불면증이 나는 반갑다. 대체로 이런 글은 새벽의 어둠을 따라 출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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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2-2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르헤스의 작품들을 여태껏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자이르>에 대한 얘기가 알 듯 모를 듯 그저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보르헤스의 작품 속에 테니슨의 저 유명한 시가 등장한다니 갑자기 <자이르>에 급관심이 생기기도 하는군요. 저도 예전에 언젠가 글 한편 쓰면서 테니슨의 시를 짧게 인용한 적이 있었는데, 탕기 님의 이 글을 읽으니 왜 갑자기 생뚱맞게도 `죽지 못해 안달했던` 쿠마에의 무녀 시뷜라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봄이 그리 멀지 않아서 그럴까요?

* * *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 T.S.엘리엇,『황무지』

* * *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멈춘다는 것, 끝낸다는 것, 광을 내지 않아
녹 슬어 버린다는 것, 사용해서 빛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 앨프리드 테니슨,『율리시스』

탕기 2016-02-22 19:0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Oren님의 느낌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l Zahir는 저주의 굴레를 쓴 영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까요? 죽기 전까지를 `영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자이르>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본다면 저는 Oren님께서 받으신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시빌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는 정말이지 아폴론에게, 손 안에 든 모래알과 같은 수명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겁니다. 모래처럼 부서지고 목소리만 남을 바에야...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겠군요.

내일은 눈이 내린다지만 Oren님 말씀처럼 봄이 오고 있습니다. `apothanein thelo.`라는 말의 뜻이 엇갈리며 새싹의 세상을 예비할 거고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수록 참으로 많은 말들이 떠오릅니다. 그런 듯 합니다. 봄이 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2016년 2월 21일 일요일




    일찍이 박이문 선생께서 한 서문의 자리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신 적이 있다. “슬프게도 타고난 재주가 없어 예술가의 길에서 벗어나 딴 직업을 갖게 되었으면서도 예술에 대한 나의 막연한 향수는 버릴 수 없었으며, 예술은 언제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가장 멋있는 것으로만 느껴진다.”(박이문,『예술철학』, 10쪽) 아, 이것은 내 마음이다. 미술을 유랑하는 두 발의 힘, 먼 언덕에 걸린 작품을 희미하게나마 바라볼 수 있는 두 눈의 힘, 그리고 미술의 책장을 넘기는 두 팔의 힘, 여하튼 이 노마드의 모든 힘은 동경에서 샘솟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술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술 하는 것’과 ‘예술을 동경하는 것’에는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가. 예술을 동경만 하는 주제에 마치 예술을 하는 것처럼 세상을 속여 예술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요쓰야 괴담(四谷怪談)의 독약 같은, 그리하여 예술과 우리의 결합에 훼방을 놓는 가증스런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런 이들이야 이름을 얻고, 돈을 벌고, 독자들에게 빌붙고, 세상에 아부하고 떠나버리는 먼지일 뿐이지만.) 건너지 못할 강의 한쪽 하안에서 아무리 석벽을 쌓고 석교를 놓으려고 해봐도, 계절마다 찾아오는 홍수처럼 나의 의지를 쓸어가 버리는 것이 있다. 그 위력을 나는 안다. 알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얼마간 나는 그것을 ‘광기’라는 단어가 아니면 도무지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다른 단어로 표현할지도 모르겠으나, 어디까지나 그 의미는 내가 넘보지 못하는 순간과 세계에 담겨있으리라. 예술의 대가들에게 갖는 존경은, 내게 이런 것들이다. ‘어렸을 적부터 예술가로 단련되었으면…’이라는 어리석은 후회를 하루에도 수 번 한다. 나에게는 딱지를 떼어내고 아린 상처에서 일부러 피의 맛을 보는 못된 버릇이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나는 독약 같은 자가 되지 않았다. 양심을 지켰다. 예술가로 자란 불행 속에 살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차라리 한 명의 훌륭한 칼잡이일 것이다. 베어버리는 쾌감으로 미쳐가다가 제 목을 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라서 차라리 이렇게 빌붙어 사는 삶으로 연명하는 것이다. 불쌍하다, 예술가들이여. 몇 안 되는 예술가 : (일동,  무대 밖을 향해 관객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대사는 없으며, 무표정.) 그리하여 행복하다고 말하는 예술가들을, 나를 오른팔을 내밀어 흔들며 이 마당에서 쫓아버린다. 휘이, 저리 가거라. 페소아와 피카르트와 블랑쇼와 소세키와 포와 카잔차키스와 보르헤스와 칼비노와 가오싱젠과 ... 그리고 무엇보다도 니체(오, 불쌍한 니체)가 있어야 할 곳에, 왜 그대가 멀뚱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서있는가. 염치도 없이. 그러나 그것은 연민의 마음까지는 되지 못하고, 때때로 나는 예술가에게서 아무런 정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으니, 그건 엄연히 동경의 마음 때문이다. 나의 든든한 어리석음 탓이다. 그 짝이 오히려 쓸모가 있는 일. 동경이 제일 크다. 여태 그래왔다. 불쌍하다는 말의 안팎을 굳이 구분하는 않는 까닭도, 그거다.


    이 어리석음. ‘동경’이라는 이름의 어리석음은 예술의 바다를 항해하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한 돛이요, 노를 젓는 강인한 완력이다. 그리하여 나는 단 몇 분이 되더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해와 북극성을 바라보며 배의 방향을 구한다. 정 힘들 때면 카시오페이아까지만 본다. 그러고 보니, 이 공간의 이름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gyrocompass로 지었다. 아무 생각 없이 붙인 이름인데, 내 안에 그런 연원이 있는 까닭에 저도 모르게 끌린 단어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gyrocompass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나의 좁은 식견으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으나. 어쨌든 그것은 방향. 보르헤스의 시를 읽을 때부터 나는 언제나 선원(혹은 해적?)이 되고 싶었다. 바다와 예술은 퍽 어울린다. 항해는 나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너에게도 역시 또다른 황금 해변에서          A ti también, en otras playas de oro,

    부식되지 않고 기다리는 보물이 있네          Te aguarda incorruptible tu tesoro:

    광대하고, 막연하고, 피할 길 없는 죽음이     La vasta y vaga y necesaria muerte.


    (보르헤스, 우석균 옮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72쪽.「장님의 자리(Blind Pew)」 中)



*   *   *



    동경은, 한편으로는 무언가에 대해 안달을 내는 것이다. 속에서 열이 나서, 안에서부터 익어가는 것이다. 겉으로는 차분한 척 예술을 읽고 듣고 보면서도, 그 속에 용광로 하나 가져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는가. 그리하여 하나의 시가 생각난다.


    꽃무늬 팬티를 입으시는 어머니를 둔 김경주의 한 시 앞에서 한참을 울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시집을 기억하는 건 〈백야(白夜)〉라는 다른 시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도무지 모를 그 말들 사이에서 침잠의 새벽을 보내다가 불판의 고기를 맨손으로 짚는 광기를 부리며 한 구절을 이면지에 옮겨 적었었다. 김경주,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풀에게 흉터를 남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제 속의 열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김경주,『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45쪽)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마음으로는 정말 수 십 년을 보낸 것 같은 가증스런 상상을 하면서, 바로 오늘 다시 그 시와 구절과 그 날을 떠올린다. 나는 풀이요, 그것도 아주 열병이 나버린 풀이다. 안에서부터 익어가는 기이한 살덩이를 지닌 한 마리의 고기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 나에게 그런 얼토당토않은 흔적을 남기는가. “바람을 버리고 우수수 떨어”지는 이 밤은 (실로 밤이야말로 바람이 지탱하고 있는 어둠이 아닌가) 시인의 눈[眼] 속을 흐르는 겨울열매[雪]가 도무지 이상하지 않은 차디찬 계절. 이 극명한 온도 차가 오히려 속의 안달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것인지도.


    예술을 읽는 두 손의 냉증과, 예술을 보는 두 눈 앞을 가로지르는 찬바람과, 하여 그런 것들이 열병을 식혀주기도 하는 이 다행인 계절에, 나는 바람이 아닌 흉터의 결대로 이리저리 꺾이며 춤을 추는 하나의 풀이 된다. 서재에 장작은 충분하다. 화력 앞에서 증기를 뿜어대지 않는 열차는 없다. 나는 이런 글로 굉음을 낸다. 달리고 있다는 증거로 하얀 거품들을 머리 위로 뱉어낸다. 나의 속도대로 예술이 풍경처럼 지나간다. 나를 선로 위에 얹어놓고 강철로 무장시킨 모든 대가들에게, 나는 거치는 모든 역마다 손님들을 내리고 싣는 봉사로 답한다. 그녀/그들은 모두 나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이 추운 왕국의, 열병을 지닌 신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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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좋은 글들과 감상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 *^
 

2016년 2월 20일 토요일




    나는 새 책이 오면 커버를 벗기는 버릇이 있다. 그 탓에 서재에는 두 권의 하얀 책이 꽂혀 있다. 시간의 먼지와 손때 틈에서 더욱 하얗게 보이는 책이다. 미술 공부를 할 때, 나는 이 백지 같은 두 책에게 많은 빚을 졌다. 한 권은 Belleza, 다른 한 권은 Bruttezza. 그렇다. 미(美)와 추(醜)에 관한 책이었기에, ‘미술’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보고로 자주 회자된 바가 있다. 저자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 올해 여든넷인 그가, 나는 거의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 어리석은 믿음은 그에 대한 큰 동경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 2016년 2월 19일 밤이었다. 이제는 내 곁에 꽂아두는 그 책이 죽은 자가 ‘썼던’ 책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움은 더러움이요, 더러움은 아름다움이니.

    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움베르토가 『추의 역사(Storia della Bruttezza)』의 서문에서 언급한 맥베스의 제 1막 구절이다. 2004년과 2007년에 걸쳐 움베르토는 추와 미의 집약을 세상에 내놓았다. 미가 먼저였고, 3년 뒤 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번역본의 편집에는 불만이 많았지만, 그 책은 내게 돌덩이 같은 충격을 줬고, 나는 고서 가득한 도서관에서 밤을 새는 학자처럼 몇 달이고 그것만 들여다봤었다. 『미의 역사』는 미학 관련 양서라면 어느 책에서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지만 추는, 그 책을 번역한 역자도 술회했듯 여태 본격적인 주제로 대중들 앞에 소개된 적이 없는 테마였다. 한동안 미술을 공부한 독자의 입장에서 나 역시 감히 돌아보건대, 그와 같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애덤 모턴의『잔혹함에 대하여(원제 : Thinking in Action)』에는 “놀랍게도 철학사에서 심각한 잘못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다. 니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덕철학자들은 주로 동기가 손쉽게 파악되는 잘못된 행위에 주목했다.”(16쪽, 변진경 옮김)라는 문장이 있다. 추와 관련된 형용사들은 주로 “거의 모두 격렬한 거부감이나 공포, 두려움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떤 혐오감의 반응을 포함하고”(움베르토 에코, 오숙은 옮김,『추의 역사』, 16쪽) 있으며, 그 혐오가 애덤 모턴이 자신의 책에서 논하는 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서양의 미학에서, 즉 고전미학이든 근대미학이든 상관없이 전체적인 아름다움과 모방, 더 나아가 창조(천재와 관련)의 이론을 구축한 역사에서 추는 거의 예외 없는 논외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움베르토가 『추의 역사』의 절반을 도배해놓은 도판과 인용구들을 보면 추는 분명 서양의 매력적인 주제였다. 그것도 수 천 년을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명백하다. 우리는 추와 미의 기준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걸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수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통계를 내 두 기준의 공통점들을 뽑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출해낸 공통점을 절대화시키는 건 오류다. 우리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 어느 특정 집단의 민족들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숭배했다는 사실을 안다. 또는  그와 반대로 우리가 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감동적인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종교의 경우 그런 사례가 즐비하다. 마르크스는 150여 년도 더 전에 “돈으로 여인을 살 수 있다.”는 문장을 저서에 남겼다. 지금은 유럽적인 미에서 탈출하려는 일부 저자들의 ‘미학 설립’ 운동이 유행이다. 아방가르드가 권위를 부수기 위해 사용한 온갖 ‘추한’ 양식들을 지금 미술 애호가들은 아름답다며 좋아한다. (적어도 추가 전면적으로 승리한 적은 그때가 최초였다.) 무엇이 미이고 무엇이 추인지, 우리는 별로 고민하지 않으며, 특히 다른 한쪽에 대해 생각하는 걸 가치가 덜한 것이라 여기곤 한다. 대단히 복잡한 문제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는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다. 예술을 아름다운 것을 생산해내는 창조적 행위로만 본다면, 콧등에 가려 그 너머로 결코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발견하지도 못한 채 ‘아, 아름다워라.’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된다.


    움베르토는 『추의 역사』 마지막을 이탈로 칼비노의 글로 맺는다. 반가운 이탈로. 인용된 단편은 「참관인(La giornata d'uno scrutatore)」이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우리나라에는 번역 출간된 바가 없다.) 이탈로의 글을 읽어보면 섣불리 추에 대한 선입견을 들이댈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느껴볼 수 있다. (오히려 善을 본다.) 그 전에, 즉 이탈로를 불러오기 전에 에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양한 세기의 예술들이 왜 집요하게 추를 묘사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의 목소리는 주변적일지 몰라도, 일부 형이상학자들의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는 냉엄하고 슬프게도 악한 어떤 것이 있음을, 그 목소리는 우리에게 상기시키려고 했던 것이다.”(움베르토의 책, 436쪽) 그리하여 추는 인간적 비극으로, 우리가 혐오해야 마땅한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비극으로 격상된다. ‘격상’이란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나는 『추의 역사』를 서재에서 꺼내 다시 한 장 한 장 넘겨봤다. 공부하는 이는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는데, 지적 만족을 위안 삼아 이 책을 만지작거렸던 때도 추억해봤다. 하지만 위대한 미술 이론가, 비평가, 그리고 작가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무수한 지식과 작품들 사이를 올곧게 관통하는 하나의 가치다. 언제나 그랬다. ‘보는 것’의 힘. 싫다며 밀쳐낸 사물과 대상에게 다시 눈을 주고 알아보려고 하는, 관심의 힘. 누군가 그랬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그렇다고 내가 ‘추한 것’들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할까! (그러니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추한 것’들을 밀쳐내지 않는다. 미술은 내게 실로 놀라운 세계를 알려줬다. 특히 시각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많은 걸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미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깨달음은 앞으로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질 것이다. 여전히 미술의 웅숭깊은 우물, 수평선 끝없는 바다에서 이곳저곳 여정을 이어가는 나에게 미술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생각해본다. 그동안 내게 도움을 준 수많은 대가들의 통찰력과 뛰어난 인내, 호기심을. 움베르토 에코는 단연 그 중 최고였다고 언제나 회고할 수 있는 학자다. 『장미의 이름』을 제외하면 그의 다른 글들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앞으로 읽어본다 해도, 나는 그의 이름을 이 손때 가득한 책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는 안식에 들었다. 그가 내게 알려준 ‘큰 눈’은 지금껏 얻은 여러 눈 중 하나이며,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그 무엇보다도 그 눈을 뜨게 하는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리라. 곱씹어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다.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고 주지시키는 인간 정신의 근원에게, 그 대가들에게, 나는 충실한 한 명의 독자로 살며 하루하루 보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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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6-02-20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퍼 리에 이어 움베르토 에코까지...뒤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신산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네요. 에코와 그리 깊이 사귄 인연이 있었다니 탕기님은 더욱 남다른 마음이지 않을까 짐작이 됩니다. 대가들의 죽음 앞에서 저는 조금쯤은 고아가 되어버린 기분이 드네요. 그들이 남긴 무언가를 통해 저마다의 몫으로 남겨진 숙제가 있다는,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 엄중한 사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는 무서움 때문일런지...
이런 제 기분과는 다르게 심상한 사람들과 섞여있다가 여기 들어와 탕기님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 그래서 댓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탕기 2016-02-20 22:56   좋아요 0 | URL
오후에 기분좋게 운동하고 와서도 한동안 마음 어딘가가 떠내려간 기분이었습니다. 풀꽃님 말씀마따나 심상한 이들 사이에서 저 역시 무거운 심정을 끌어올리지 못했는데, 그래도 이런 변변치 못한 글로나마 기억을 되살리고 다시 책을 펼쳐보니 위안은 되더군요. 저와 마음이 같으시다니 풀꽃님 댓글이 반갑습니다.

비로그인 2016-02-2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토 에코와 같은 대가들과 그렇게 깊은 교감을 나누시는 탕기님이 부럽습니다. 엄청난 사유를 끌어 올리지 않고서는 대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없겠지요. 대가들과는 친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안식을 애도하며, 탕기님도 그 사색이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탕기 2016-02-20 22:52   좋아요 0 | URL
시인이시니 일개 독자인 저보다 대가들의 곁에 더 가까이 계실 텐데요. 저는 그저 대가들을 읽으면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간다는 상상을 하는 젊은이일 분입니다. 마음의 상중을 이렇게 달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6년 2월 19일 금요일




    나는 이런 일이 내 곁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확언하지는 못한다. 명백한 사실은 내가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걸 근거 삼아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자신도 모르게 뭔가를 조금씩 잊다가 머릿속에서 아주 지워버리기도 하고, 평생 기억해내지 못한 어느 장면이 최후의 순간에 떠오른다고도 하니, 사람의 일은 모를 일이다. 보르헤스의 단편 「또 다른 죽음(La otra muerte)」은 망각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에 대한 두 개의 기억, 그 중 하나가 사라지면서 그 남자는 단 하나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보르헤스는 과연 그 과정을 어떻게 기술했을까? 그를 따라가면서도 나는 기억이 지워지진 않았는지 누차 확인해야만 했다. 근래 읽은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다. 수일에 걸쳐 새벽마다 고쳐 읽었고, 나는 미궁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아리아드네를 불러 책을 덮는 일은,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고 토로할 수밖에 없다.



*    *    *



    “나는 안개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인간의 섬이 되어 바다의 꿈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존재의 과잉을 실은 한 척의 배가 되어, 모든 사물의 표면을 항해할 것이다.”(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불안의 서』, 168쪽)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부터 안개처럼 보였던 것은 아니다. 착각이라 할지라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오히려 어떤 특정한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신감으로 일단 사물과 사건, 혹은 대상의 표면에 붙어서 한동안 그 의미를 빨아먹고 산다. 그것이 표면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가 아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모름’이라는 기이한 현상은 자신이 비춰진 거울 앞에서 눈 가리지 않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무수한 앎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실은 무수한 망각 속에 산다. 그걸 추적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보르헤스는 미스터리 같은 한 편의 짧은 이야기에서 그 일을 해내려고 시도한다. 그의 추적을 에피소드 별로 따라가자면 다음과 같다.



*    *    *



    친구 가논에게서 한 장의 편지가 온다. 보르헤스의 부탁이었던 모양인데,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과거」의 스페인어 번역본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이 우선 실려 있었고, (이게 실로 중요한 내용인데) 뻬드로 다미안이 폐울혈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뒤를 이었다. 1904년 지방 호족인 아빠리시오 사라비아의 혁명군에 참여해 마소예르 전투에서 활약했다던 이 노인은 극심한 가슴 통증과 가빠지는 숨을 어찌하지 못해 죽은 것이었다. 참전 이듬해 엔뜨레 리오스의 시골로 송환되어 막일꾼으로 수 십 년을 산 그였다. 보르헤스도 1942년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무지하기 그지없는 매우 과묵한 사람”(보르헤스, 황병하 옮김,『알렙』, 102쪽)으로 기억되는 남자. 보르헤스는 그를 기억할 수 있는 한 장의 사진마저 잃어버리며, 나중에 가서는 뻬드로를 기억해내려고 하다가 엉뚱하게도 이탈리아의 한 오페라 가수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한다.


    마소예르 전투에 관한 환상적인 이야기로 작품을 구상 중이었던 보르헤스는 에미르 모네갈의 주선으로 디오니시오 따바레스 대령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대령이 기억하는 뻬드로 다미안은 전쟁에서 겁을 먹은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가 “매우 과묵한” 사람이었던 건 겸손한 성품 때문이 아니라 전쟁에서 겁쟁이였던 자신을 끝끝내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야기는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다시 한 번 대령을 찾은 보르헤스는 그때 마침 대령의 집에 있던 후안 아마로 박사를 만났다. 그도 뻬드로 다미안에 대한 기억을 지닌 남자. 그러나 그의 기억은 대령의 것과 정반대다. 뻬드로는 1904년 마소예르 전투에서 용감히 선봉에 섰다가 총탄을 맞고 말에서 떨어진 뒤 발굽에 치여 죽었다. 아니, 발굽에 치이기도 전에 이미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러자 대령도 그 이야기를 듣다가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의 기억이 가물가물함을 시인했다. 단편에 등장하는 첫 번째 망각의 시작이다. 한동안 궁금증에 목이 탔을 보르헤스에게 4월의 어느 날 대령의 편지가 날아온다. 아마로 박사가 증언했던 뻬드로 다미안을 그가 기억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로써 대령의 망각은 완성됐다. 보르헤스는 직접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뻬드로 다미안, 그 미스터리. 그러나 헛수고였다. 뻬드로가 오랜 세월 일했던 괄레과이추의 한 목장을 들를 일이 있었던 그는 다미안의 임종을 지킨 목장지기 디에고 아바로아를 찾으려고 했으나,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뒤에서 알아보겠지만 이는 죽음을 가장한 세 번째 망각이었다. 기억을 가진 자의 죽음.



*    *    *



    보르헤스는 두 가지 추측을 한다. 우선 첫 번째 추측으로 두 뻬드로 다미안을 상정하는 것이다. 1946년 경 죽은 겁쟁이 뻬드로 다미안과 1904년 마소예르에서 죽은 뻬드로 다미안. 하지만 이런 추측은 추측이라고 할 것도 못 되는 것이, 왜 대령이 둘 중 한 명의 뻬드로를 망각한 것인지 도무지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추측은 보르헤스의 여자 친구인 울리케 폰 쿨만의 것으로, 다분히 환상적이다. 1904년 마소예르 전투에서 전사한 다미안이 신에게 간청했더니 신이 과거의 영상을 바꿔줬다. (신조차 과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는 것이, 보르헤스가 밝혔던 것처럼 무수히 많은 사건들을 교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비효과’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신의 도움으로 뻬드로는 그림자처럼 고향으로 돌아가 엔뜨레 리오스에서 조용히 농장 일을 하며 죽음을 기다렸다.


    울리케의 이야기에서 보르헤스는 하나의 상상에 이르게 된다. 두 가지 역사적 사실에서 도움을 받는다. 하나는 단테의 『신곡』 천국편 제 21편의 124~125행의 구절(Poca vita mortal m'era rimasa / quando fui chiesto e tratto a quel cappello)이며, 다른 하나는 ‘삐에르 다미아니’라는 11세기 신학자의 주장이다. “한 번 일어났던 일을 없었던 걸로 만들 수 있다.”(보르헤스의 책, 110쪽)고 주장한 삐에르 다미아니는 『신곡』 천국편에서 단테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 ‘피에트로 다미아노’이다. 저 구절에 앞선 121행부터 피에트로는 자신이 현세와는 달리 성모의 궁전에서는 ‘원죄를 갖고 있는 피에트로(e Pietro Peccator)’라 불릴 뿐이라고 단테에게 토로한다. 물론 이 구절을 떠올린 보르헤스가 전쟁에서 남자답지 못하게 겁을 먹는 행동을 피에트로의 ‘원죄’에 빗댔을 리는 없다. 그가 단테의 시구에서 본 건 바로 ‘두 명의 사람’이라는 콘셉트였을 것이다.


    이런 상상에 이른 보르헤스는 단편의 말미에서 드디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1904년 마소예르에서 겁쟁이 뻬드로 다미안이 죽었다. 시골로 송환된 것이 아니라 따바레스 대령이 기억한 것처럼 겁쟁이의 모습으로 참전했다가 (따바레스 대령이 결국 잊어버린 것이 바로 이 부분인데) 죽었다. 하지만 뻬드로는 수치심을 만회하고자 신에게 삶을 바쳤고, 울리케의 이야기처럼 엔뜨로 리오스로 돌아갔다. “만일 운명이 나를 다른 전쟁으로 데려가면 그에 값하는 행동을 보여줄 것이다.”(보르헤스의 책, 111쪽) 이런 결심으로 임종까지 조용히 살았다. 그리고 임종과 함께 전쟁터로 돌아가서 장렬하고도 용감하게 전사한다. 그리하여 아마로 박사의 기억을 따바레스 대령이 마침내 떠올린 것처럼, 뻬드로는 1904년 마소예르 전투에서 용감하게 죽은 이로 기억된 것이다. 후자가 보르헤스가 말하는 두 번째 역사, 즉 실제이며, 뻬드로가 1946년 경 가논의 편지에서처럼 엔뜨레 리오스에서 폐울혈로 죽은 것은 사라져버린 첫 번째 역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역사의 말살은 어떻게 진행된 것인가? 즉, 신의 장난 같은 이 환상적인 일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될 수 있었는가? 우선 단편에서 언급된 것처럼 보르헤스는 대령이 아마로 박사의 기억을 듣고는 가물가물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박사의 기억을 떠올렸다는 대령의 편지를 받는다. 이것이 첫 번째 망각이다. 그리고 두 번째 망각은 자신에게 뻬드로 다미안의 부고를 전한 가논 그 자신에게서 일어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명한 서점인 미첼에서 보르헤스는 그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가논은 (편지에서와는 달리) 자신은 에머슨의 영시를 스페인어로 굳이 번역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 이어진다. 보르헤스가 묻자, 가논은 뻬드로 다미안이 누구냐고 반문한다. 두 번째 망각이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주변 인물들이 둘 중 한 명의 뻬드로를 잊기 시작했다는 걸 분명히 확인했다. 그리고 목장지기인 디에고 아바로아를 찾지만 그는 이미 죽어 있다. 문제는 그가 언제 죽었는지 단편에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편의상 이걸 ‘세 번째 망각’이라 불러보자. 뻬드로 다미안 주변 인물들의 망각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보르헤스를 제외한 그 누구도 자신이 망각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망각의 망각이다. 이로써 신은 두 번째 역사를 완성했다.



*    *    *



    하지만? 하지만 보르헤스가 남아 있는데? 그는 망각한 이들을 추적하여 드디어 신의 비밀을 풀어냈다. 그리고 이 단편을 남겼으니 어쩌면 신조차도 망각의 힘으로 그를 정복하지 못한 셈이다. 신이 보르헤스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그도 진즉에 따바레스 대령처럼 한 가지 기억을 잊어버리거나, 가논처럼 아예 ‘뻬드로’라는 이름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혹은 최악의 경우 디에고 아바로아처럼 죽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무사한 듯하다. 망각이 하나의 전투이고 하나의 칼날이라면, 그는 기적적으로 아무런 상처 없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영예로운 군인이 된 것이다. 기억하는 자. 하지만 과연 그럴까?


    보르헤스가 무사하다는 생각을 뒤집어버릴 의심은 “나는 내가 과연 줄기차게 진실을 기록했는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다.”(보르헤스의 책, 112쪽)라는 구절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단편의 저 앞에서부터 이미 시작됐다. 나도 그걸 여느 독자들처럼 단편을 다 읽고 나서야, 심지어 나흘에 걸쳐 여러 번 읽고 나서야 알게 됐지만, 신의 비밀은 보르헤스가 무심코 흘려버려서 나중에는 아예 착각하고만 한 가지 행동에서 그 위력을 드러냈다. 그가 사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말이다. 보르헤스는 그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 그가 어떤 분위기의 사람인지도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탈리아의 유명 오페라 가수의 얼굴로 착각해버리기도 한다. 대령에게서 발견된 망각의 조짐이, 마소예르 전투를 소재로 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그리하여 한 노인의 기이한 죽음을 추적했던 보르헤스 자신에게서도 발견된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이상하다. 그가 울리케의 도움을 받았다가 갑자기 떠올린 단테의 시구에는 피에트로 다미아노(삐에르 다미아니)의 말이 실려 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보르헤스가 추적했던 한 노인의 이름은 ‘뻬드로 다미안’이다. 피에트로 다미아노를 스페인어로 바꾸면 그 이름이 된다. 그러자 보르헤스는 뒤늦게 토로한다. “뻬드로 다미안은 뻬드로 다미안으로 불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그리고 내가 그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중에 가서 삐에르 다미아니의 논거가 그의 얘기를 구상케 해주었다고 믿기 위해서 그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보르헤스의 책, 112쪽)


    이 구절의 비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다. 그가 가논의 편지를 받아 정말 뻬드로를 추적하여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인지, 아니면 혼자 도서관에, 혹은 미첼과 같은 유명한 대도시의 서점에 틀어박혀 단테를 읽다가 피에트로 다미아노의 말에서부터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인지, 보르헤스조차도 모른다.


    애당초 이 소설이 시작하기 전부터 보르헤스는 헷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죽음」은 신이 만든 세 번째 역사를 말한다. 나는 이 사실이 무서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르헤스의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다고 해야 한다.) 이 세 번째 역사는 말살 당한 첫 번째 역사와는, 그리고 소설에서는 사실이라고 언급됐다가 뒤늦게 아닐 수도 있다고 철회된 두 번째 역사와는 또 다른 차원에 있다. 바로 소설 자체의 성립 여부다. 아, 이건 신의 장난일까? 이 소설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다른 차원, 즉 다른 역사를 계속 상정하는 일뿐이다. 이런 놀이에서 우리가 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신을 죽이는 건, 애당초 이 놀이의 룰에 없기 때문이다.





p.s 인명 표기 오타가 있다. 처음에는 목장지기의 이름을 ‘아바르꼬’라고 잘못 음역했다가 나중에 ‘아바로아’라고 제대로 표기한 것, ‘따바레스’ 대령을 뒤에 가서는 ‘따발레스’ 대령이라고 쓴 것이 있다. 원문과 대비하여 그 음역의 오타를 밝혀놓는다.


① 108쪽 디에고 아바르꼬 → 디에고 아바로아

원문 : Quise interrogar al puestero Diego Abaroa, que lo vio morir; éste había fallecido antes del invierno.


② 112쪽 디오니시오 따발레스 대령 → 디오니시오 따바레스 대령

원문 : En el coronel Dionisio Tabares se cumplieron las diversas etapas: al principio recordó que Damián obró como un cobarde; luego, lo olvidó totalmente; luego, recordó su impetuosa mue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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