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슬람과 중동 문제의 모든 것
서정민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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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1



    두 달 전의 일이었다. 시리아가 자랑하는 고대 신전인 벨 신전(Temple of Bel)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시리아 측에서는 “기본적인 건축 구조는 아직 남아 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UN은 인공위성으로 찍은 이미지를 분석하여 처참하게 무너진 신전 본 건물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를 BBC가 뉴스로 발표하면서 벨 신전의 비보를 듣고 조마조마해하던 사람들의 마음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범인은 한 명이 아니었다. ISIL, 우리가 흔히 IS라고 부르는 수니파 테러조직, 이슬람 국가가 한 범죄였다. 반달리즘의 전형이다. 벨 신전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198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신전이었다. 이리나 보코바 UNESCO 사무총장은 이를 두고 “문화 청소(a form of cultural cleansing)”라고 비난했다. 하버드와 옥스퍼드는 UNESCO와 합동으로 약 5천 여 대의 카메라를 파견하여 앞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는 문화유산들을 3D 사진으로 저장하겠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인류 가치가, 그 집약들이 지금 화약고 속에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곳의 무고한 사람들이 왜곡된 종교 해석을 일삼는 정치적 싸움 탓에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는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10순위 안에 ‘IS 김군’이 오래도록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동과 아프리카 등 주요 분쟁지역의 폭탄테러 소식이 뉴스에서 흘러나온다. 분단과 대치라는 군사적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도 그곳의 끔찍한 상황은 살갗에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아마 ‘이슬람’이라는 타문화가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일 것이다. 물론 문화적으로는 적잖은 영향을 주고받았을지는 몰라도 이슬람권의 테러가 바로 우리의 이웃동네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는 그 사건들을 정리한 뉴스보도나 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주장처럼 IS의 확산과 대규모 수준의 국제테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내부적인 문제와 종교적 교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IS 지도부의 성향 때문에 알카에다의 9∙11 테러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에게 대입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IS 문제로 (일부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 지역과 관련이 있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큰 고통을 겪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IS 문제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외교적이거나 정치적 의미에 있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IS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오해를 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려는, 그렇게 편을 쉽게 갈라버리려는 단순한 (정치적) 사고의 절차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분위기여서 하는 말이다. ‘테러-이슬람’의 구도가 자칫 우리의 머릿속에 굳어버릴 수도 있다. 서정민의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한편으로는 오늘날 자행되는 테러에 대한 이슬람 전역의 항변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이슬람의 초기 역사에서 시작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슬람국가(IS)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살펴본다. 이슬람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국내 저자들의 소개서가 적잖기 때문에 이와 겹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저자는 이슬람 형성 과정에서 어떤 내부 갈등이 있었는지를 주로 살펴본다. 특히 그가 주목한 부분은 오늘날의 ‘과격 이슬람주의’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비교종교학 강의를 들으면서 늘 생각한 것이지만 이슬람의 문제는 사실상 무함마드 사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아들은 어렸을 때 죽었고, 그는 후계자인 ‘칼리파’에 대해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서로 자신이 칼리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로 이어지는 정통 칼리파 시대, 즉 현재 이슬람 원리주의에서 말하는 지상 최고의 이상적 국가의 시대가 끝나자, 이슬람은 세속국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국가의 확장과정에서는 내전이 발생했고, 극단적 사상이 등장했다. 이슬람은 타민족에게 비교적 관대했으며, 오늘날처럼 시아파와 수니파가 정치적인 이유로 서로를 죽이는 일이 드물었지만 문제는 정치적 상황에서 계속 발생했다. 십자군 전쟁, 그리고 몽골의 침입 등이 있었다. 이후 이슬람은 원래 주인공들이 아닌 투르크인들이 재통합했고, 그들의 쇠퇴와 멸망에 이르는 긴 시간동안 서서히 이슬람공동체 곳곳이 서양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렸다. 지금 아랍권 국가들의 국경은 서양의 손이 그은 것이다.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서양이 인위적으로 만든 대표적인 아랍권 나라가 바로 레바논이다. 프랑스가 만들었다.)


    서양의 위협 속에 근대적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이슬람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개혁의 ‘삼두마차’로 불린 자말 알 딘 알 아프가니는 서구의 제도와 기술을 도입해서 내부의 문제를 풀어가자고 주장했고, 무함마드 압두는 교육의 개혁을 강조했으며 일부다처제를 폐지하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라시드 리다는 셋 중 가장 강경하여 기독교 세계를 ‘암적 존재’라 규정하고 칼리파 제도 부활을 통해 정통 칼리프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세 주장을 보면 당시 이슬람공동체에서 어떤 문제점들이 제기되었는지 이해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사상이 행동으로 옮겨진 첫 사례가 온건했다는 것이다. 1928년 이집트에서 시작된 무슬림형제단은 토론과 자선을 통해 영국에 대항하며 이슬람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상황은 나빠진다.


    세계대전으로 현재와 비슷한 국경이 그어졌지만 정부의 권위주의와 전쟁 배경 속에 극단적 이슬람주의가 등장했다. 지도자들은 민주주의를 몰랐다. 자신들과 맞지 않는 것을 무조건 거부하는 노선의 이념이 팽배했다. 지금은 자힐리야(무지)의 시대이니 하키미야(알라의 주권 회복)를 해야 하는데, 이는 글로벌 지하드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중동의 비이슬람 정권과 서방, 특히 미국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됐다. 식민통치와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과격 이슬람주의의 선명한 등장을 예고한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 국가 수립 선언(1948년)이었다.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땅’이라 했고, 유대인들은 ‘약속된 땅’이라 했다. 둘 사이의 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뉴스를 보니, 팔레스타인 측에서 얼마 전 체결한 평화조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엄포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이에 곧 반응할 것이다. 둘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을 던진 채 이 지난한 분쟁의 원인을 서로에게 미루고 있는 형세다. 강건파인 하마스도 이런 와중에 등장했던 것이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도 큰 충격이었다. 서방 세계는 당연히 놀랐고, 무엇보다 중동의 이슬람공동체도 놀랐다. 서방의 비호를 받던 이란의 세속왕조의 부패를 이슬람의 뜻으로 몰아낸 사례였기 때문이다. 단일혁명으로는 최대 규모의 시위대가 이 혁명에 동참했다. 해외 도피 중 이란의 국민들을 선동했던 호메이니가 귀환했고, 호메이니는 자본주의와 미국 패권주의, 세계 불공정을 타파하겠다고 했다. 이후 탈냉전시대와 1차 걸프 전쟁을 거치며 반서방정서가 이슬람사회 전역에 만연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과 21세기 아랍의 봄 이후 IS 등장에 이르는 역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가 테러와 이슬람을 하나의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연결하게 된 것은 어쩌면 서방의 뉴스 보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슬람교가 보수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이미지를 이슬람공동체가 스스로 만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학자들은 IS와 관련된 이슬람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몇 가지 원인들이 저자의 갈무리 글에 들어 있다. 독립과정에서 서방이 일방적으로 정한 국경, 오늘날 대다수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저소득층 문제의 심각성, 부족에 충성하려는 지방민들의 특성, 책임 없는 정부로 인해 발생한 국가분열사태, 그 과정에서 성숙하지 못한 국민국가 등이 학자들이 꼽는 사태의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교를 왜곡하고 극단적인 방법론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 가능하다. 예컨대 지금 IS가 통치하고 있는 영토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에 넓게 퍼져 있다. 시리아 정부는 지금 반군과도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토는 매우 좁다. (여기에 쿠르드족의 문제까지 겹쳐 시리아 정부가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상당히 많은데, 문제는 그들이 극단적 방법으로 반군을 제압하기 위해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IS가 침투하여 무상교육, 무료복지, 소득 재분배, 식수와 전력, 연료 등을 공급하면 저소득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IS는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세력에게는 공포를 선사하지만 장악지역의 민심을 얻는데 있어서만큼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랍의 봄을 통해 무너져버린, 혹은 약점을 드러낸 중동의 여러 정부들이 IS의 확산에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그만큼 IS의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칼리파 국가를 선언하며 자신들과 손을 잡아야만 ‘합법적인 지하드 운동’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그들에게는 한 가지 무기가 있다. ‘IS 김군’ 사건으로 우리에게도 이미 IS의 SNS 홍보 실력은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서양에서도 그들의 홍보에 ‘선전의 정석’이라는 평을 달았을 정도다. 여러 해외조직이 IS에 가담하며 충성을 맹세한 것 외에 이슬람과 아무런 관련도 없던 이들이 IS의 선전에 매료되어 비행기를 탄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IS에 접근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이다. 여기에다 전문미디어 설립, 온라인매거진 발행, 앱 활용, 드라마 방영 등으로 포근한 이미지를 대외에 뽐내는데 성공했다. 미 정보국은 90여 개 국에서 약 2만여 명이 IS에 지원했다고 추정한다. 또한 막대한 자금력과 무기 등으로 이미 준국가의 형태를 갖춘 상태다. 다만 비타협적 성격을 가진 세력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공포통치가 자행되고 있어 빠른 확산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전망이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한 히즈불라(헤즈볼라), 알카에다, 나이지리아의 보코 하람, 소말리아의 알 샤밥 등과 IS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IS는 테러 집단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민병대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는데, 테러 집단과는 달리 확실히 통치하는 영토가 있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60여 개 국이 연합군을 꾸렸고, 오바마 대통령도 “죽음의 조직(network of death)”이라 부르며 국제사회의 동참을 적극 요청할 정도다. (IS는 수니파이므로) 시아파 맹주 이란도 이라크와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고 있다. 군대의 규모 상 격차가 있어 IS가 주변국을 실제 위협할 것 같진 않고, IS 사태가 타국으로 확산될 조짐도 낮긴 하지만 IS의 등장으로 중동의 불안정한 분위기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으며 그들은 더 오래 살얼음판의 정세를 지나야 할 것이다. 더 분명한 것은 그 분위기 속에서 탄압받는 이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 열거한 몇몇 사례들을 보면 이념의 차이가 불러오는 잔혹성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 시각에서 현재의 IS 사태를 주시하거나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슬람 종교 및 온건 이슬람주의와 테러 세력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같은 담론이나 시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239쪽)


    저자 서정민은 분명하게 말한다. ‘이슬람국가’, 즉 IS라는 용어만 놓고 보면 그들이 하는 행태가 이슬람의 뜻과 딱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대표적인 전쟁범죄, 예컨대 일부 소수파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이 적대시하던 민족의 여성과 아이들을 노예로 삼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왜곡된 이슬람 교리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행동이 앞서고 교리를 억지로 끼워 맞춘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종교가 정치의 해석 아래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악행이 저질러졌는지 이미 충분한 사례들을 통해 들어왔고 또한 알고 있다. 이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절대다수의 이슬람권 사람들은 알카에다의 9∙11 테러에 대해서도, IS 사태에 대해서도, 또한 중동과 아프리카 각지에서 매일 같이 들려오는 폭탄 테러에 대해서도 비난과 비탄을 쏟아낸다.


    뉴스만으로는 중동의 사태를 올바로 바라볼 수 없다. 테러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조대원들이 피투성이의 노약자를 끄집어내고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오열한다. 이러한 광경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정도로 잔인하고 때론 선정적이다. ‘테러-이슬람’의 구도가 그 사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짤막한 뉴스는 그 정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그 정황이다. 이 책과 같이 중동 문제를 분석한 책들이 숱한 뉴스 보도들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이슬람과 중동은 오해받아선 안 될 정도로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들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리와 그들이 섞여 사는 지점은 문화 다방면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책의 말미에서 내 가슴으로 파고든 문장들이 있어 옮기며 마친다. 이슬람은 테러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는 아랍어다. 커피에 넣는 설탕도 아랍어 혹은 페르시아어다. 면, 알코올도 아랍어라는 점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긍정적인 교류를 했다는 증거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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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에일리언 유니버스> - 돈 링컨 지음, 김지선 옮김


    영화 <E.T.>, <스타 트렉>, <스타 워즈>, <우주전쟁>, 미드 <X-파일> 등을 하나하나 챙겨볼 정도로 우주와 외계 생명체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신간이 나왔다. 이 책은 외계 생명체가 무엇인가에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니라, 지구의 우리가 외계 생명체를 어떻게 그려왔는가에 집중하며 출발하고, '가능한 외계 생명체'의 형태를 추정해보기 위해 지구의 생명 방식을 알아본다. 4장까지 술술 읽히던 독서가 5~6장에서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 탓에 느려질 수도 있지만 어려운 용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저자 돈 링컨이 문화과 과학 사이에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에 주목해보는 것도 좋다. 칼 세이건, 미치오 카쿠, 닐 투록, 크리스 임피 등 과학 명저들을 두루 읽어 왔지만 근래에는 <에일리언 유니버스>만큼 흥미롭고 풍성한 '과학 이야기' 책을 접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하루 이틀 정도에 다 읽을 수 있는 과학책은 그리 많지 않다.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 - 양태자 지음


    내가 읽은 양태자 교수의 첫 책은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15년 1월 신간)>이었다. 평소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기 때문에 '중세'와 '마녀사냥'이라는 단어가 주는 매력은 아마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내게 더 클 것이다. 그런 내게 양태자 교수의 쉬운 글은 언어의 장벽을 두드리며 공부하는 일상에 단비와도 같았다. 확실히 양 교수의 글은 움베르토 에코와 다른 이들이 쓴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중세>라는 책과는 달리 읽기 쉽다. 그런 그녀가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를 신간으로 냈다는 희소식이 있었다.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은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마음 편히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는 (우리 가족의 일상어로 표현하자면) '화장실 책'으로 삼기 좋았다. 길거리 장사꾼, 이동 변소, 노상 음식, 책장수, 고철 수집가 등 우리에게 친숙하거나 그렇지 않은 수많은 부류의 직업들이 소개되니 챕터별로 읽어도 좋고 몰아서 읽기에도 좋다. 흡사 피터르 브뤼헐의 풍속화 속에 들어가는 상상까지 하게 만든다. 12장부터는 약 60여 페이지에 걸쳐 삽화들이 나오는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세 유럽의 자세한 삶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풍부하게 소개해주는 국내 저자는 드물다. 유럽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모로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③ <고장난 저울> - 김경집 지음


    아무래도 인문학 분야의 책을 이모저모 살펴보는 독자들이라면 '어? 이 저자의 예전 책 괜찮던데...' 라는 반가움과 설렘으로 한 저자의 책을 (우리끼리 은어로) '파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내게 김경집은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으로 큰 충격을 준 저자였다. 대학 시절, 비교종교학 강의를 듣고 몇 권 종교 관련 인문학 책들을 찾아 있었는데, 김근수의 <슬픈 예수>와 함께 김경집의 그 책이 단연 기억에 남았다. 그의 <인문학은 밥이다>도 생각날 때마다 챕터별로 골라 읽곤 한다. 그런 김경집의 신간 <고장난 저울>이 나왔으니, 안 살 수가 없었다. 에필로그에 그는 이렇게 썼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다. 거짓이 참을 능멸하고 탐욕이 정직한 노동을 우롱하며 불의가 정의를 조롱한다. 저울은 이미 완전히 망가졌다. 이 고장난 저울을 누가 고칠 것인가."(197쪽) 기울어버린 저울은 그가 말하는 '수평사회'가 아니며, 우리는 우리를 얽매고 우리를 우롱하는 각종 사건과 현상들을 뉴스로 목격한다. 김경집은 그런 우리가 포기와 체념의 일상을 산다며 안타까워한다. 경제, 교육, 수평사회를 테마로 한 3장의 일침이 이 책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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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


    봄날의 햇살에 걸터앉는 것도 좋다. 시원한 방바닥에 배를 댔다 등을 댔다 하며 뒹구는 것도 좋다. 찬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이불 속에 숨는 것도 좋다. 매한가지로 책을 읽는 일인데,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일까, 이제 막 일출을 마친 가을의 품을 우리 독자들은 왜 그리도 편애하는 것인지. 사계 중에 가장 사랑하는 모습을 꼽으라면 그들 중에도 가을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뭐, 1/4 정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책은 분명 그렇다. 거의 다 익어간, 붉어지는, 떨어지는, 바람에 구르는, 쌀쌀해지는, 하늘이 맑은, 더러 눈 내리는 날이 그리워지는 이때가 제격이다. 최초의 책은 가을에 만들어진 건가. 혹시.


    사람마다 다르고 나이마다 다르다고들 한다. 겪은 일도 그 가지가 부지기수일 텐데, 그런 우리들 사이에 저마다의 가을이 갖고 있는 의미를 너무 일반화해서 이해하는 건 별로 성실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이들의 가을은 어떨까. 일상의 ‘오후 3시’ 같은 느낌일까. 부모님께서는 “심하게 가을 탔어.”라고 표현하시지만 사실 난 그 뜻을 모르겠다.


    지금은 없는 한 가수는 서른 즈음이 되면 세상 일 중 흥미로운 것이 하나둘 사라져간다고 했다. 유구한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가을이, 그 중 어떤 가을이 내게 유난한 의미를 갖고 있진 않다. 둔해진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인정하면 스스로 섭섭해지고, 그런다. 생각한 것, 겪은 것, 그 중 저물어가는 것과 관련이 있거나 쓰라린 상처 같은 것이 드물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을’하면 나는 주름이 떠오른다. 세월이 만든 산맥들 사이로 낮게 그림자가 지고, 점점 짧아지는 해가 어둠으로 사라지는 모습이다. 아, 그러고 보니 책이 그렇다. 나보다 많은 주름을 가진 이들이 적어 내려간 생각들이다. 겉보기에는 정갈한 평면 같지만 뭐 하나 빙판 위 날을 딛고 있는 것 같은 속도로 읽히는 것이 없으니, 나는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덜커덩거렸던가. 책을 품은 가을의 힘은 혹 그것이 아닐까.


    봄을 기(起)라고만 할 수도 없고, 겨울을 결(結)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봄에 피었다가 그 철에 지는 만물처럼 봄은 그 나름의 뜻과 생각을 피게 하고 여름에 접어들면 여름의 것에 자리를 내어준다. 또 그 사이가 명확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단의 시기를 놓고 보면 가을은 분명 결(結)에 가까운 느낌이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이 어딘가로 향하고, 그 끝에는 종점이 있는 것 같다. 그 이상의 철로는 없는, 여정의 종착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더 이상 읽을 것이 없어 마침표 뒤로 여백만 남겨놓는 책처럼 말이다.


    다 읽고 덮은 뒤 독자가 느끼는 일렁이는 그 기분. 책이 주는 묘한 성취감과 아쉬움까지. 그러고 보니 닮았다. 책과 가을. 그간 보내온 시간을 셈해보고, 손에 든 바구니에 수확을 하듯, 혹은 모난 돌 사이에서 모양 좋은 것들을 골라내듯 둘은 우리가 정지해 있는 시공을 늘려준다. 한없이 길어져 그 끝이 겨울의 문턱을 넘어갈 때도 있지만 가을은 느려진 시간들 사이로 빠르게 지나갈 것들은 지나가게 내버려두고, 유속 느린 강가에 살포시 멈춰선 무언가를 들여다보게 한다. 가을의 시간도, 책의 시간도 우리를 자꾸 주섬주섬 챙기는 사람으로 만든다. 떨어진 밤 알알이 주워 부푼 호주머니처럼 또 무엇을 얻게 될까, 기대하는 건 독자된 이들이 갖고 있는 순수한 동심이다. 그리고 노을 같고 주름 같은 가을. 끊어지지 않는 어떤 흐름 같은 것도, 여기서 이렇게 보니 보인다. 가을의 하늘은 그냥 텅 빈 것이 아니었구나. 그래도 빈 곳이 있으면 채워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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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미술, 사회 - 중세부터 현대까지 여성 미술의 역사
휘트니 채드윅 지음, 김이순 옮김 / 시공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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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30



    그간 공부했던 미술을 짤막한 책으로 펴내려고 준비 중이었다. 콘셉트를 잡는 것부터가 문제여서 처음에는 가방 속에 들어가는 일기 정도로 잡고 필자 나름의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다. 글에서 힘을 빼기 어려워 나답지 않은 캐릭터로 글을 썼더니, 동생은 평소 같은 글을 쓰는 것이 더 낫겠다고 충고했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날 동생이 내게 해줬던 두 번째 충고가 내게는 어려웠다.


    내가 동생에게 보여준 글에는 길을 가다 문득 본 한 여자의 모습이 하루 종일 기억에 남는 것과 미술에 대한 추억을 서로 빗댄 구절이 있었다. 다분히 과하게 꾸며 쓴 부분이긴 했는데, 동생은 그 구절에서 여성의 대상화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남자 아이돌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적됐던 여성과 뮤즈에 대한 누리꾼들의 논쟁을 소개해줬다. 처음에는 ‘그게 문제가 될 만한 거였나?’라는 생각이 앞섰다. 불쾌감도 있었다. 여자가 남자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고, 그 아름다움을 예술로 추앙하는 것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걸 두고 패러다임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나는 부득이하게 나만의 미술책을 펴는 작업을 관뒀다. 길게 잡으면 8년을 공부해온 미술에 대한 모든 생각에게 “잠시 멈춰라.”라고 명령하고, 거대한 회전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굳어 있던 나의 세계관에 일대의 운동이 시작된 건 진화론과 우파니샤드 이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휘트니 채드윅의 『여성, 미술, 사회(Women, Art, and Society)』의 서문은 미술에 대한 글을 써왔던, 그리고 공부해왔던 나의 작업을 모두 정지시키고 그 판을 뒤집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줬다. 고민거리가 크게 늘어 기분이 좋진 않다. 하지만 결코 옆으로 밀어놓고 싶지 않은 고민이다. 왜 그런지 이 책의 서문을 빌려가며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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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을 공부하며 여성에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적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15세기까지 서구의 주요 작품들을 생산해낸 제작방식인 ‘템페라(tempera)’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속 주인공 때문이었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에 대한 일화를 읽으며 마녀사냥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 비극에 눈살을 찌푸린 적도 있었다. 가장 최근은 미술 블로그를 할 때였는데,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100인의 여성 미술가들을 짤막하게나마 모아 이웃 블로거들에게 소개해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관심의 시선이 잘못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이렇게 글로 적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충돌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미술사를 공부하는 남성인 나에게 여성은 대상, 혹은 재현물이었다.


    여성과 여성의 작품을 그저 재현물, representations이라고 보는 시각에 우리는 아직도 익숙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구차한 변명 하나를 해볼 수 있다. ‘그렇게 적힌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이 주류인 환경에서, 그리고 여성을 그렇게 보는 시대 속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입장에서 그 시각을 벗어날 수 있는가?’ 내가 뮤즈에 대한 논쟁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질문이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하는가?’를 먼저 묻기 전에 반사적으로 든 궁금증이자, 일종의 변호수단이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물들어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공부한 미술사의 모든 것을 수정해야 한다고?’라는 억울함도 있었다.)


    오늘날의 환경도 나를 물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은 소비와 소유의 대상이다. 인터넷에 나도는 수많은 선정적인 광고들은 자본주의가 여성을 어떻게 ‘이미지화’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예쁜 여자 운동선수가 나오면 누리꾼들은 순간적으로, 아니 돌발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보여지는’ 여자에 대한 이미지는 아름다움과 성적인 매력, 그로 인한 시각적 즐거움과 거의 자연적인 결합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모 방송사의 아카데미에 다니며 느꼈던 실망 중 하나는 “그래서 예뻐?”라는 한 작가의 질문이었다. TV에 나오는 여자의 얼굴은 가급적 예뻐야 한다. 그 작가에게 실망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더 나오는 TV 프로그램의 특성, 아니 그보다는 그래야 잘 볼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봐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지난 역사적 전통, 그리고 그걸 아주 잘 이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이미지 사회 속에서, 그렇다면 그것과 저항하려는 페미니즘 미술의 움직임은 얼마나 고독한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페미니즘 미술이 극복하려고 했던 건 여성과 저속함의 연결고리였다. 이건 사실 더 크게 보면 공예와 고급미술 사이의 위계 관계를 끊어버리려는 노력과도 닿아 있다. 알겠지만 여성은 공예와 더 가깝다고 봤다. 고급미술은 당연히 남자들이 독차지하고 있다시피 했다. 우리는 둘 중 누구를 봤을까? 고급과 거리가 있는 것에 거리감을 두려는 경향에 휩쓸리기 쉬운 우리가 말이다. 고급은 우리의 자존감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오래도록 유전됐다. 여자는 공예품이나 만드는, 고급미술과는 거리가 멀어서 미술사에 굳이 포함시키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취급됐다. 페미니즘은 이걸 거부했다.


    1970년대 들어서 활발하게 진행된 이 이론은 운동의 형태로도 이어졌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당시 관람자들에게도 상당한 당혹감을 줬던 작품들이 이 시기에 주로 나왔다. 여성의 신체로 누드가 제시됐다. 거리에 옷을 벗고 당당하게 서 있는 여성미술가, 자신의 몸에 온통 피어싱을 한 여성미술가, 투명한 상자 안에 들어가 옷을 벗은 채 관람객들 앞에서 자신의 몸을 전시하는 여성미술가. 여기서 여성의 신체는 대상이 아닌 주체로 거대한 전환을 한다. 이 시대의 누드 작품은 19세기의 남성 미술가들이 그린 여성 모델의 누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주체를 드러내는 과장되고 폭력적인 방식은 그 공격력을 우리들의 시선에게 행사한다.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아예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여 우리의 지배적 시선을 두 번 조롱한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관람자들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저 미술가가 돈을 벌려고 환장을 했다며 야유를 보낸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메카라 불리는 영국에서도 한동안 그런 미술에 ‘쓰레기’라는 제목을 선언조로 붙인 언론들이 여론을 좌지우지했었다.


    미술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권력 이데올로기는 남성 위주의 담론을 생산해왔다. 남성은 다시 권력을 생산한다. 이 둘이 거의 뫼비우스의 띠의 형태로 이뤄져 있다. 관습적 이해라는 건 여기서 나온다. 미술사도 여기에 들어 있다. 미술의 모든 것이 남성 위주의 담론으로 이해된 것이다. 그러나 미술사를 쓴 사람이 대놓고 “나는 남성 위주로 썼어요.”라고 말한 적은 없다. 이런 미술사의 본질은 작품과 작가 위주의 연구와 서술이라는 체계적인 학술 방식에 포장되어 있으며, 그 누구도 이를 ‘포장’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미술은 곧 권력이요, 미술사는 권력의 서술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연구가 주류다. 미술 상식에 많은 부분 개입되어 있기도 하다. 나 역시 그런 걸 배웠니 피해자라면 피해자였고, 그런 글을 썼으니 권력의 생산자이기도 했다.



*   *   *



    페미니즘 미술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일상이다. 나의 ‘여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대상화, TV에 나오려면 일단 예뻐야 한다는 한 작가의 말, 예쁜 여자 운동선수에 대한 돌발적 관심. 그밖에 또 얼마나 많이 적을 수 있을까. 여성을 미적 대상으로 보게 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여성 스스로를 주체로 내세우는 페미니즘 미술의 규모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채드윅도 인정했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여성 미술가들도 많다. 더군다나 미술을 공부한 나의 입장에서 보면 미술의 현실 참여, 혹은 현실 속 패러다임의 전환 등이 이론에서처럼 그렇게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누가 그 주체들을 보려고 하는가?”라는 회의적인 질문이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페미니즘 미술은 지금까지 등장한 모든 (이것도 권력적 표현이지만 편의상 용어를 쓰자면) 미술 사조를 통틀어 가장 현실 참여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권력의 밖에서 그 권력을 부수는 정치적 목소리를 가장 많이 내야 하는 운동, 반드시 운동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미술은 우리가 아는 기존의 ‘예술’이라는 것의 성격에서 탈피한다. 페미니즘 미술은 전적으로 페미니즘 안에서 형성되어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오로지 ‘여성’의 기준으로 보는 어떤 시각이 아니다. 한때는 그러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이는 푸코의 권력 고찰을 통해 그 한계가 지적된 바 있었다. 푸코는 권력이 제도와 담론, 생산되는 지식의 형태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즉, 틀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존의 권력을 부수려는 그 어떠한 것도 가장 근본적인 특성은 반드시 ‘비권력적’이어야 한다. 이를 적용하면 페미니즘 미술은 여성을 위한, 여성만의, 여성에 의한 미술이어서는 안 된다. ‘여성’이라는 단어를 형성한 권력 자체를 해체하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존재를 부인해야 한다. 개념을 만들고, 차이를 세우며, 위계를 형성하는 권력을 해체시키는 것이 페미니즘의 특성이기 때문에 페미니즘 미술은 젠더, 인종, 계급, 성적 경향, 나이 등을 모두 포괄하여 저항해야 한다. 대단히 넓은 미술이며, 거의 180도에 가까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가능성의 근거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다르게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환경은 권력지향적이지 않다. 해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의 공존이 얼마나 어렵고, 권력망과 다른 권력망 사이의 파괴적인 행동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빈번하고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쉽게 느낄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만약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결론이 난다면, 어쩌면 페미니즘은 인간 그 자체와 싸워야하는지도 모른다.


   이 운동이 ‘저항’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까닭이 아마 그것이 아닐까. 해체를 위한 행동 방안으로 우리가 목격해왔던 행동 중 가장 눈에 띈 것도 아무래도 저항이었다. 비권력화를 향한 실천적 행동.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비권력화’는, 즉 나를 계속 변두리로 밀어내려는 작업은 권력 속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이면서도 권력을 부수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는 물론 물리적 저항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페미니즘 미술에서 폭력성을 목격하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우리가 예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당당하게 항변할 수 있다. (사실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여성 육체의 아름다움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그렇지 않은 육체를 부각시킨 작품은 시각적 폭력으로 얼마든지 다가올 수 있다. 이 폭력이 주는 충격은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불쾌한 진실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그것과 대면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 중 대부분이 받아들이진 못할지라도 그것이 진실임인데 어쩌겠는가.



*   *   *



    한편으로는 기존의 미술사를 공부해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진 않았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아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서문만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미술의 역사와 미술가와 미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여성을 비롯한 ‘타자성’ 짙은 오늘날의 ‘주체’들에게 어떤 시각을 가져야하는지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은 인간은 하나의 종(種)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념을 줬다. 자연에 대한 경이를 키웠고, 그 경이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성성에 대한 공감도 기를 수 있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드는 감정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그때마다 느낀다. 우주에 대한 관심도 더욱 많아졌다. 그와 관련된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는 것이 즐거운 소일거리 중 하나다. 우파니샤드는 ‘동시성’에 대한 관념을 줬다. 나는 하나의 대상이 여기와 저기 동시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라고 나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대학 때 배운 장자의 사상도 이에 감응하도록 했을지 모르겠다. 글로 풀면 난잡해지는 생각이라 서술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는 분명한 사상적 경험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새로운 전환이 내게 찾아온 듯하다.


    언젠가 동생이 내게 “오빠는 어디 가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진 못한다. 겨우 몇 주 고민해놓고 아는 것처럼 말하면 그 말은 범죄이고, 그 글은 범죄의 증거가 되지 않는가. 부단히 생각하고 고민하면 이것이 언젠가는 나의 시선을 진정으로 회전시킨, 내 삶을 전환시킨 또 한 번의 기회였노라고 회상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술의 다양한 일화를 소개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미술을 공부한 보람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미술이 다른 시선으로 가는 통로가 되어 매우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공감할 수 없을 것 같고, 난해하며, 불쾌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선 속에 진리가 있다는 현인들의 말을 굳게 믿고 있다. 이제 막 쓴약을 들이킨 아이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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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지혜 - 세계 여러 문화 속에 존재하는 형상들
마가레테 브룬스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2015.08.25



    세상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는 크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동면을 위해 한껏 먹어두는 곰처럼 미술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들을 찾아다니며 흡수하려고 했다. 덕분에 동서양의 역사와 철학, 종교, 광물질, 나무, 외국어 등을 예전보다는 많이 알게 됐다. 그것들을 긴 시간 소화하면서는 나만의 미술관을 꾸리고 책을 써나갈 수 있겠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학자의 마음, 작가의 시선, 그리고 관객(혹은 독자)의 관심 사이를 오고 가는 상상도 했다. 참 매력적인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은.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러 종류의 블록을 앞에 둔 아이가 된 듯하다. ‘저걸 어떤 모양으로 쌓을 수 있을까?’ 조합의 문제를 생각한다. 재료의 모양과 성질을 모르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을까.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데카르트가 발견한 명제이자 불변의 딜레마일 수밖에 없는 원점, 아니 바닥 같은 게 보일 것이었다. 미술의 표면을 뚫는 깊은 책들을 읽어갔고, 내가 가진 그 어떤 도구로도 더 이상 파내려갈 수 없는 신비한 물질로 된 표층을 발견했다. 그 표층의 이름은 ‘눈’이었다.


    미술은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삼스런 이 문장은 의외로 많은 걸 이야기한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눈을 둘러싼 세계다. 따라서 미술만큼 ‘철학하기’ 좋은 분야도 사실 드물다. 미학이라는 것은 그래서 어렵고, 때로는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눈은 가끔 거짓말을 말한다. 어떤 것이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도 분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반면 순간적으로 포착해서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는 단초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판단의 도구가 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은 못 볼 수도 있고, 아는 것은 아는 대로만 볼 수도 있다. 눈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눈으로는 절대적 진리나 객관을 말할 수 없다. (눈은 진리를 볼 수 없다. 이것이 진리다. 이런 식의 말장난은 가능하다.) 따라서 미술도 그러하다.


    마르가레테 브룬스의 『눈의 지혜(Die Weisheit des Auges)』는 눈이 얼마나 다양한 세상을 열게 해주었는지 설명해주는 대단히 깊은 책이다. 쉽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눈에 대해 쉽고 간편하게 설명해주겠다고 벼렸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글, 겉핥는 글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근원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때때로 현실과 유리된, 별세계의 이야기 정도로 취급하는데, 잠시라도 시간을 내 그 오류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눈의 지혜>는 나의 별 볼 일 없는 이름을 걸어서라도 필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구석기와 신석기(즉 구상과 추상), 고대 이집트, 동양화, 이슬람, 그리스도교, 르네상스, 현대회화로 구성된 이 책에는 어쩔 수 없이 특정 시대의 일화나 미술, 철학, 역사 등의 전문용어들이 실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재료보다도 그 재료들로 마르가레테가 무엇을 엮어가려고 하는가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동양화에 대한 그녀의 이해에 감탄하기도 했다. 마치 동양 철학을 전공한 사람처럼 문장을 다룰 줄도 안다.) 눈은 무궁무진하다. 이것이 그녀의 메시지다. 이 책은 영원과도 같은 세계로 필멸의 우리를 초대하는 한 권짜리 손길인 셈이다. 적어도 그에 관해서는 내게 가장 진득한 책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인류의 출현 이후 지금까지의 긴 역사를 통째로 대상으로 한다 가정했을 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다. 유형과 무형을 본다. 여기서 ‘무형(無形)’은 정말 형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상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형태,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잡스러운 형태’를 의미한다. 인류가 본 최초의 유형은 누군가가 그려놓은 것이 당연 아니었다. 그리기 이전에는 그려진 형태를 봤을 것이다. 바로 머릿속으로 그려진 형태. 주로 동물이 아니었을까. 어제 동료들과 함께 잡은 야생소의 뿔 달린 머리가 바위 속에 그려져 있다. 최초의 화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눈’ 그 자체였다. 최초의 미술은 화폭이 아닌 머릿속에서 ‘발견’된 것이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이후 미술의 역사는 꽉 채우는 그림, 비워놓는 그림, 옆모습만 그리는 그림, 선원근법을 사용한 그림, 역원근법을 이용한 그림, 직접 보고 그리는 그림, 이상(理想)을 그리는 그림 등 매우 다양한 가지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들은 단 하나의 단어로 묶어버릴 수 있다. 유형(有形). 미술은 머릿속에서 형태를 그린 최초의 이름 모를 인간의 출현 이후 지금까지 계속 유형에 봉사하고 있다. 심지어는 확인되지 않은 대상까지도 유형의 세계로 끌어다 놨다! 대표적인 예가 종교화다. 그릴 수 없는 대상은 문자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예에서 끝나지 않는다.


    동양도 다르지 않았다. 글씨에서 기(氣)를 느끼는 이들이 있었으며, 아무도 보지 못한 선인(仙人)을 그림에 그려 교훈으로 삼기도 했다. 침묵은 여백이 되었다. 또한 여백으로 침묵하기도 했다. 색채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광물질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며 자본의 움직임에 일조했다. 인간은 이렇게 눈의 노예를 자처했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3차원을 2차원으로 옮기려고 하다가 그림으로 ‘거짓말’까지 하게 됐을까. 이제는 각도가 변할 때마다 달리 보이는 그림이 전시관에 걸려 관람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낸다. 똑똑한 작가들은 눈이 사람을 얼마나 기만하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또한 한때 우리는 사진으로 시간을 그리는 지경에 이르렀기도 했었다.


    그러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유형의 화폭을 보게 됐다. 이걸 ‘무형’이라 불러도 괜찮은지, 아예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거대한 캔버스 위에 물감을 제멋대로 던져놓고 화단(畵壇)의 고평을 받아 세계적인 화가가 된 한 남자를 두고, 그것이 예술적으로 정말 공정한 일이었는가를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유형에서 해방되려는 인간의 움직임은 최대한 무작위에 가까운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유사 이래 인간이 이런 전환을 겪은 적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 폴록은 무작위적인 형상 속에서 작위적 형상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나는 그도 이 치명적 단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최대한 있는 힘을 다해 무당처럼 춤을 추며 물감을 휘갈긴 것이리라. 이후 마크 로스코는 아예 형상을 떠올리지 못하게 색면(色面)만 남겼다. 이와 비슷한 일은 반세기 전 러시아에서도 있었다. 유형에서 도망치려는 인간의 무모한 시도는 추상의 형태와 색만 남기고 다 걷어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생각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르가레테는 이 문장을 남기고 책을 닫았다.


    “형상. 성스럽고 악마적이고 가치 없고 쓸모없으며 강력한 형상들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사냥꾼과 채집가로 수십 만 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그림이 그려진 동굴을 영원히 떠났고, 새로운 형상을 지닌 채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서 춤추듯 나아갔던 인간들만큼이나 현재의 인간들도 기본적으로 그것을 알지 못한다.” (마르가레테 브룬스,『눈의 지혜』, 449쪽)


    나는 크게 늘어나고, 동시에 아주 작아지는 세상을 본다. 상이한 형태로 공존이 가능한 절대의 존재를, 마치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그런 기이하면서도 고차원적인, 말도 안 되는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눈은 분명 제한적 생체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인류의 형상 속 역사, 그 춤을 추는 것 같았던 화려했던 역사는 우리에게 깊은 문화적 감흥을 줬다. 인간을 고고한 존재로 만들어 자존감을 심어줬다. 수많은 예술 분야와 서로 조우하면서 우리는 표현할 수 있는 유형을 거의 무한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결국에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더 그릴 것인가? 여기서 그만 둘 것인가?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더 그리게 된다. 마르가레테의 마지막 문단에도 답은 나와 있다.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그렇게 “춤추듯” 나아가며 형상을 그릴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우주의 손아귀에서 멸망할 때까지 우리는 형상과 함께 어우러져 주인인 듯 노예인 듯 일생을 영위하다 그 모든 것을 남겨놓고 사라질 것이다. 이따금 미술을 공부하다 감상에 젖을 때면 나는 모니터 속 그림 앞에서 깜빡거리는 눈을 비비곤 한다. 위대한 감옥의 철창을 우리는 뜯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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