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수요일












축복의 시 Poema de los dones




    호주에 계신 한 화가께서 거미줄 잔뜩 쳐져 있는 나의 미술 블로그에 들러 6년 만에 댓글을 남겨주셨다. 반가웠다. 점심밥을 제대로 씹어 삼켰는지 모를 만큼. 하루 종일 옛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나는 네이버 미술 블로그 <탕기의 아틀리에>의 주인이었다. 화가, 저자, 미술 애호가, 학생 등 여러 이웃들께서 들러주셨고,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그분들에게 정말 많은 응원과 도움을 받았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돋우어주는 분도 있다.


    블로그. 소심하고 성질 급하기 짝이 없는 ‘나’라는 20대 청년이 한 일이었다. 가끔 분수 모르는 생각도 한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 내가 한 일 치고는 근사했잖아?’ 어학연수, 대학, 군복무, 휴학, 복학, 아카데미 수료, 졸업… 엇나가도 한참 엇나가고 느리기는 또 그렇게나 느릴 수가 없었던 내 삶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탕기의 아틀리에>와 함께 한 시간처럼 알차게 보낸 적은 없었다. 마냥 바쁜 것과 스스로 충실감을 느끼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니까. 인생의 선배들께서는 이 마음 잘 알아주시겠지.


    그런데 그건 나 혼자만이 한 ‘근사한 일’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분들께서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주신 것이었다. 독일, 브라질, 호주에서도 들러주셨고, 아주 가까운 곳에도 계셨다. 잊지 못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블로그를 열어놓았는데, 그 화가께서 6년 만에 댓글을 남겨주신 것이었다.


    나는 하루를 미소의 얼굴로 지냈다. 치과 담당의가 무슨 좋은 일 있었냐고 물었다. ‘좋은 일’이라는 건 말로 쉽게 설명 못하지요. 그렇게 머뭇거리는 틈을 타 마취주사가 잇몸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미소는 눈물의 수면 위에 둥둥 떠서 이리저리 내 얼굴을 돌아다녔다. 잠시 일렁이는 호수로 사는 척 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는 한동안 옛 블로그 포스트들을 읽어봤다. (그래서 책 한 권 들춰보지 않은 날이었다!) 한글 텍스트 파일과 이미지 파일로 떠놓은 것들이 있는데, A4 300여 장을 한 권으로 치면 다섯 권이 조금 넘는 분량이라, 한참을 읽어야 했다. 화가들께서 보내주신 작품 이미지 파일들도 다시 들여다봤다. 그렇게 추억에 빠져 있다 보니 어둠이 내렸다. ‘아직은 목성이 보이지 않는구나. 새벽녘 우주의 얼굴이여.’ 늦은 택배로 신간평가단 책 두 권이 왔다. 고생하시는 그분께는 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400여 쪽 안팎의 얇은 책들이라 이번 달에는 서재의 두꺼운 책 한 권은 더 읽을 수 있겠거니, 해서 잠시 의자에서 일어나 문학 코너 쪽으로 갔는데, 그때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나는 꼬깃꼬깃한 시집 한 권을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   *   *



    그 시집은 보르헤스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원제 : El Hacedor)다. 6년 전에 처음 읽은 시집. 그 봄에 나는 캠퍼스의 벚꽃봉오리들이 너무 참을 수 없이 예쁘기에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가서 한 권의 시집을 사들고 도서관에 앉았다. 내 기억에 그 무렵 읽은 시는 김선우와 정호승이었다. (시집 이름에도 꽃이 들어가 있었다.) 보르헤스는 시의 수면 위에서 간신히 숨만 쉬던 그 시절 나의 감수성에 푸른 달빛의 물감을 발라놓았다. 그렇다. 생각해보건대, 보르헤스는 달빛이었다. 뜨거운 네루다는 오후에 읽고, 나는 새벽마다 보르헤스를 읽었던 것이다.


    기억에 남은 그의 시라고 하면 「장님의 자리(Blind Pew)」와 「거울(Los Espejos)」, 그리고 「모래시계(El Reloj de Arena)」가 가장 먼저 이미지로 떠오르지만(내게 있어 저 세 편의 시가 지닌 이미지는 바다, 달빛, 그리고 레테이다.), 미진(迷津)의 생각으로나마 한 편의 시에 매달려 장문을 써본 것은 「축복의 시(Poema de Los Dones)가 유일했다. 제목은 ‘축복’이지만, 나에게 밀려왔던 공포, 그걸 나는 잊지 못했다.


    나에게 책은, 그리하여 <책읽기>라는 건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게 세상은 우물이다. 나는 세상이 넓은 것이 아니라 깊은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우물 자체의 어둠이 무서웠고, 우물 바닥(그곳은 어디일까?)에서 상층으로 엄습해오는 냉랭한 바람을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서재에 꽂아둔 수많은 세상들. ‘저 책을 쓴 이들은 모두 우물에 직접 들어갔었겠지.’ 요컨대, ‘우물’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이후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보르헤스가 영예와 장애(시력상실)를 한 해 걸러 차례로 얻게 되고 쓴 「축복의 시」에서, 나는 그에 대한 연민보다는 나에 대한 연민에 빠지고 말았다. 나라는 사람이 대낮의 도서관에서 어둠에 갇히게 된다면, “도서관에서 으레 /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 텅 빈 어스름을 탐문”(보르헤스, 우석균 옮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14쪽)하게 된다면, 나는 죽어버리려고 하지는 않을까?


    6년 전, 나는 보르헤스의 대시(大詩)를 향해 하나의 졸문을 바쳤다. (나는 보르헤스가 세상을 떠난 세 달 후 반대편 반구에서 태어났다.) 서문은 이렇다. 여섯 해 전의 글이라 옮겨놓기 창피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말은 피 속에서 태어났고, 어두운 몸속에서 자랐으며, 날개 치면서, 입술과 입을 통해 비상”(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시인 옮김, 『충만한 힘』, 11쪽)한다는 걸 도무지 모르던, 요란한 빈 수레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 글은 추억의 자리.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 끈은 다시 오늘의 자리로 돌아오곤 하니까. 다행이도 나는 허투루 기억을 상대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니다.


    나는 어둠을 모른다. 어둠은 새카만 것이 아니다. 한밤 중 눈을 감아 이불 속에 눕힌 나의 몸과 심장소리를 느끼며 알아볼 수 있는 컴컴한 세계가 아니다.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는 빛의 어둠 역시 어둠이 아니다. 어둠이란, 없음이다. 유와 무의 오묘한 우주 속에서 대체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볼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어둠으로 남아 있는 것들은 내가 알 수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눈을 감으면 나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없음의 끄트머리나 초미에서 몸을 더 눕히면 그때서야 나는 잠이 든다. 그리고 때론 그림과 같은 꿈을 꾼다. 만약 내가 어둠을 꿈꾼다면, 나는 죽은 것이다.


    어른들은 어둠을 무서워할까? 어린 나는 그것이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하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나는 어둠이 무섭다. <없음>이라는 것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상상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어둠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렇다. 6년 전 나의 저 서문에서 비어 있는 영혼이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 내가 너무나도 무서워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서문에서 몰래 도망친 까닭일 것이다. 정말 무섭다면, 저런 글을 쓰지도 못했겠지.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의 기만적인 성격을 활용한다. 무섭다는 문장 자체는 거짓이다. 두려움을 물리기 위한 부적과도 같다. 의례이며, 징표다. 하지만 나는 뼛속까지 어둠을 두려워한다.


    혹 보르헤스도 그런 이유로 「축복의 시」를 썼을까? 이제 와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눈이 먼 건 1956년의 일이었고, 그보다 한 해 전에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에 취임했다.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페론이 실각하자 보르헤스는 문학의 공간에서 승리를 손에 넣게 됐다.) 쉰이 넘은 보르헤스에게 두 해에 걸쳐 영예와 절망이 연이어 찾아왔다. 이제 막 두 단편집과 보르헤스 특유의 환상적 사실주의가 전 세계로 명성을 떨칠 것이었다. 그런데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그는 나락을 맛봐야만 했다. 그를 기억하기 시작한 역사 앞에서, 정작 그 주인공은 눈이 멀어버렸다. 국가의 대문호가 눈이 멀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술렁였고, 문인들은 통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펜을 들고 시를 썼다. 「축복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하 모든 번역은 우석균 교수의 것이다.)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 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Nadie rebaje a lágrima o reproche 

     esta declaración de la maestría 

     de Dios, que con magnífica ironía 

     me dio a la vez los libros y la noche.


    읽고 쓰는 자에게 ‘시력상실’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르헤스는 그것을 ‘밤’, 즉 noche라 했다. 그의 단편에는 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나는 박식한 그가 무수한 정보들을 짜깁기해서 신에게로 향하는 하나의 (실은 전혀 하나가 아닌) 미로를 만드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러니 그는 신을 허투루 말하는 자가 아니다. 어떻게 이겨낸 것일까? 보이지 않는 눈에서 흘리는 눈물(lágrima)도, 신을 향한 비난(reproche)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허심탄회하게 이 시를 썼다. 그것은 신의 아이러니였다.


    장서의 주인이, 즉 도서관의 주인이 된 보르헤스는 그 영예를 고스란히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볼 수 없음>이 그를 도서관에서 헤매는 방랑자로 만들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

    어느 한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갔네.

    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

    나도 정치 없이 헤매이네.


     De hambre y de sed (narra una historia griega) 

     muere un rey entre fuentes y jardines; 

     yo fatigo sin rumbo los confines 

     de esta alta y honda biblioteca ciega.


    열매를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했던 저 왕. 누가 봐도 그는 탄탈로스. 보르헤스는 탄탈로스처럼 ‘신들의 음식’을 어딘가에서 훔쳤던 것일까. 하기야 시인이란 모름지기 그런 환상의 야욕을 지니고 있어야 전 세계를 흔들 수 있는 법… 하지만 그 벌로 보르헤스는 따먹으려고 하면 머리를 올리는 나뭇가지처럼 높은, 그리고 마시려고 하면 줄어들어버리는 물처럼 깊은, 그리하여 그에게 ‘눈먼 도서관(biblioteca ciega)’을 헤매게 됐다. 눈먼 도서관이라니! 나는 상상해볼 수조차 없다. (이 밑줄 그어진 문장들은 필자가 '미다스 왕'을 '탄탈로스'로 잘못 받아들여 경험한 시적 감응에 지나지 않는다. '정원(jardín)'이라는 단어는 분명 지옥의 탄탈로스가 아닌, 화려한 황금정원의 미다스 왕을 드러낸다. 하지만 나는 보르헤스의 처지를 지옥으로 너무 쉽게 연상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거의 즉각적으로 탄탈로스만을 떠올려버린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그 왕은 Oren님께서 알베르토 망겔의 <독서가와 시력>을 인용하여 지적해주신 바대로 미다스 왕이다. Oren님께 감사드린다.) 책 앞에서 눈을 감으면, 그 책은 아무 의미도 없다. 보르헤스에게 ‘국립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무슨 의미였을까.


    도서관에서 으레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하네.


     Lento en mi sombra, la penumbra hueca 

     exploro con el báculo indeciso, 

     yo, que me figuraba el Paraíso 

     bajo la especie de una biblioteca.


    그에게 도서관이란 ‘텅 빈 어스름(la penumbra hueca)’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저 구절을 잊지 못한다.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lento en mi sombra) 지팡이를 두드리며 홀로 장서들 사이를 거니는 보르헤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는 6년 전, 이 구절에서 화살표 하나를 끌어다가 “얼마나 아름답고 쓸쓸한 묘사인가.”라고 적었다. 첫 번째 반응, 기만, 얕은 감응, 뭐 이런 정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지금 와서 나는 여섯 해 전의 그 낙서에 공감한다. 세상이 낙원인 줄만 알았던 때가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적이 있었고… 낙원의 자리가 사리지고 나면, 세상에 남는 건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일순간 찾아오는 고독을 저마다 어떻게든 견디고 살지만, 저마다의 지팡이는 다르다.


    그런데 보르헤스는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한 자가 또 있었다고 술회한다. 보르헤스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우연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시 이를 지배하리니.

    어떤 이가 또 다른 희뿌연 오후에

    이미 수많은 책과 어둠을 얻었지.


     Algo, que ciertamente no se nombra

     con la palabra azar, rige estas cosas; 

     otro ya recibió en otras borrosas 

     tardes los muchos libros y la sombra.


    그의 이름은 폴 그루삭(Paul Groussac). 보르헤스보다는 몇 세대 앞서 활동한 문인으로, 무려 4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폴의 본명은 ‘폴-프랑수아 그루삭’이다. 스페인어권 작가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쳤다고 전해질 정도로 뛰어난 문인이었다. 보르헤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멕시코의 알폰소 레예스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보르헤스는 잠시 ‘국립도서관장’이라는 자리와 시력상실의 저주를 엇갈리며 생각해봤으리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폴 그루삭이라고 상상도 해봤으리라.


    느릿한 복도를 헤매일 때,

    막연하고 성스러운 공포로 나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걸음걸음을 옮겼을

    아마 죽고 없는 그라고 느낀다.


     Al errar por las lentas galerías 

     suelo sentir con vago horror sagrado 

     que soy el otro, el muerto, que habrá dado 

     los mismos pasos en los mismos días.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들(El inmortal)」에는 전설의 호메로스이기도 했고, 로마의 군단장 마르코이기도 했으며, 그 후 수많은 (한편으로는 호메로스와 관련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인이기도 했던) 삶을 살고 끝내 ‘조셉 카르타필루스’라는 이름으로 죽은 한 기이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조셉은 이후 또 다른 누군가로 태어날 것이고, 그 자신이 호메로스이기도 했고, 마르코이기도 했으며, 조셉 카르타필루스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것이다. 보르헤스는 이런 돌고 도는 것, 바퀴, 윤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Tat twam asi”. 네가 바로 그것이다. 일체성. (이 구절을 보르헤스와 함께 되짚어보게 해주신 Oren님께 감사드린다.) 그 자신을 폴 그루삭일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건 환상의 일만은 아니었다.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지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Cuál de los dos escribe este poema

     de un yo plural y de una sola sombra? 

     ¿Qué importa la palabra que me nombra 

     si es indiviso y uno el anatema?


    그리하여 ‘시력상실’이라는 저주의 단어 안에서, 이미 세상에 없는 폴 그루삭과 지금 시를 쓰는 보르헤스는 하나가 된다. 아니, 하나가 된다는 표현보다는 둘의 구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르헤스는 그 무경계 속에서 단 하나의 진리를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한다. 나는 그의 집요함을 안다. 모든 지식을 일순간 하나의 점으로 쏟아 붓는 어마어마한 힘에 대해서도 안다. 그런 그가 바라보는 곳은,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정겨운 세상이

    꿈과 망각을 닮아 모호하고 창백한 재로

    일그러져 꺼져가는 것을 바라본다.


     Groussac o Borges, miro este querido 

     mundo que se deforma y que se apaga 

     en una pálida ceniza vaga 

     que se parece al sueño y al olvido.


    아, 그는 제목을 ‘축복의 시’라고 했으나, 시의 말미에서 우리 독자들이 느끼는 허무와 이 세계의 불확실성과, 그리하여… 잠깐. 하지만 나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보르헤스는 시력을 잃고 나서 과연 삶을 포기했는가? 아니다. 무려 30여 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무수한 글을 썼고, 또한 읽었다. 혼자 책을 쓰기 버거우면 공동 저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옥타비오 파스, 이사야 벌린, 쿳시, 쿤데라, 손택, 하루키 등이 받은) 예루살렘 상을, 1979년에는 스페인어권 최고의 문학상인 세르반테스 상을 받았다.


    단편과 시를 읽으며, 나는 그가 어떤 것들을 바라보려고 했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보르헤스는 “일그러져 꺼져가는 것을” 바라봤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이 아니다. “바라본다.”가 주가 된다. 본래 세계의 불확실성을, 그리고 현실과 꿈의 무경계를 바라보던 그에게, 어두워진 세계는 밝은 세계와 그 본위(本位)가 다르지 않다. 보르헤스는 그걸 깨달았던 것이다.


    다만, 보이는 세상이 더 정겨웠을 뿐. 그래서 이 시는 슬프다. 그 어떤 환상적인 작품들보다, 가장 보르헤스에 가깝다. 눈 먼 아르헨티나 시인에게는 정겨움을 상상 속에 묶어두고 어둠으로 긴 여정을 떠나야 하는, 딱 죽음까지만 이어지는 앞날이 놓여 있었다.



*   *   *



    “나는 나 자신의 환상을 선택했고, / 얼어붙은 소금에서 그것과 닮은 걸 만들었다 ― / 나는 큰비에다 내 시간의 기초를 만들었고 /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시인 옮김, 『충만한 힘』, 30쪽) 내가 파블로의 「건축가(El Constructor)」라는 시의 첫 번째 연을 굳이 떠올린 건, 아니, 떠올리게 된 건 보르헤스가 장님의 삶을 살면서도 말 그대로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네루다적 열정’과 닿아 있는 것 같아서였다. 이 시는 No tengo más remedio que vivir“나는 사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이 없다.”라는 마지막 연의 공명으로 시 읽는 우리 독자들 사이에 유명하다.


    그렇다. 나는 보르헤스가 건축가였다고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미로를 설계한 건축가. 다이달로스. 「죽지 않는 사람들」 식으로 말해보자면, 어쩌면 그는 다이달로스였던 보르헤스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는 내가 언젠가 전생의 보르헤스였다는 식의 깨달음을 말년에 하게 되진 않을까,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만든 미로에 이미 갇혀버린 한 명의 독자로서.


    한 화가의 댓글에서 나는 6년 전으로 돌아갔고, 운명인지 우연인지 도무지 판단할 수 없는 어떤 하나의 눈길에서 보르헤스의 옛 시집을 다시 들춰봤다. 그리고 「축복의 시」를 읽고 헌화할 마음에 썼던 6년 전의 장문도 복기해봤다.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다.


    끊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많진 않지만, 그래서 소중하다. 그 소중한 것들에 대해 거듭 생각해본다. 이런 글은 두어 시간이면 쓴다. 그러니 이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친 글이란 말인가. 우리의 삶에서 별로 많지도 않은 소중한 것들을 누군가가 온전히 써내려고 한다면, 그런 욕심에 책상으로 몸을 한 번 기울였다가는 그녀/그들은 죽을 때까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쓰고, 그래서 우리는 읽는다.






≫ Jorge Louis Borges

    1899년 8월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21년 울뜨라이스모 강령을 발표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개척했다.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영역은 보르헤스로 대표된다. 1923년 첫 시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를 발표했고, 1944년에는 단편집 『픽션들』을, 1949년에는 『알렙』을 발간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페론 정부와 맞서면서도 아르헨티나 문인 협회 회장직에 있었고, 페론 실각 후인 1955년부터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맡았다. 하지만 이듬해 실명했다.

    1961년 사무엘 베케트와 함께 포멘터 상을, 1971년에는 예루살렘 상을, 1979년에는 헤라르도 디에고와 함께 세르반테스 상을 받았다. 하지만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실패하자 (그해의 수상자는 윌리엄 골딩이다.) 비(非) 유럽-미국권 작가들에 대한 스웨덴 한림원의 저평가 논란이 도마에 다시 올랐다. 당시까지만 놓고 보면 유럽-미국 출생이 아닌 작가 중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들은 딱 여섯 명 밖에 없었다. (1913년 영국령 인도의 시인 타고르, 1945년 칠레의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1967년 과테말라의 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 1968년 일본의 가와바타 야쓰나리, 1971년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1982년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전부다.) 보르헤스도 출신 문제를 거론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성향 탓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보르헤스는 3년 뒤인 1986년 6월 14일, 간암으로 타계했다.





p.s 스페인어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이들이 나는 부럽다. 이 시는 보르헤스가 만년에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라 밝힌 시다. 이 시를 스페인어로 들어보고 싶은 이들의 2분 40초를 위하여, 나는 하나의 선물을 이 글의 밑에 달아놓는다. 스페인어 원문을 따라 스페인어 음성을 들어보길 권한다. 보르헤스는 말년에 이를수록 정형시를 추구했다. 1행과 4행, 그리고 2행과 3행의 마지막 모음으로 짝지어진 압운을 신경 쓰면서 들어보면 스페인어의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스페인어 음성으로 듣기 : http://www.poesi.as/reci0213.htm

      ※ 주의 : 클릭하자마자 시작한다.


POEMA DE LOS DONES
A Mária Esther Vázquez

- Jorge Luis Borges



Nadie rebaje a lágrima o reproche 
esta declaración de la maestría 
de Dios, que con magnífica ironía 
me dio a la vez los libros y la noche.

De esta ciudad de libros hizo dueños 
a unos ojos sin luz, que sólo pueden 
leer en las bibliotecas de los sueños 
los insensatos párrafos que ceden

las albas a su afán. En vano el día 
les prodiga sus libros infinitos, 
arduos como los arduos manuscritos 
que perecieron en Alejandría.

De hambre y de sed (narra una historia griega) 
muere un rey entre fuentes y jardines; 
yo fatigo sin rumbo los confines 
de esta alta y honda biblioteca ciega.

Enciclopedias, atlas, el Oriente 
y el Occidente, siglos, dinastías, 
símbolos, cosmos y cosmogonías 
brindan los muros, pero inútilmente.

Lento en mi sombra, la penumbra hueca 
exploro con el báculo indeciso, 
yo, que me figuraba el Paraíso 
bajo la especie de una biblioteca.

Algo, que ciertamente no se nombra 
con la palabra azar, rige estas cosas; 
otro ya recibió en otras borrosas 
tardes los muchos libros y la sombra.

Al errar por las lentas galerías 
suelo sentir con vago horror sagrado 
que soy el otro, el muerto, que habrá dado 
los mismos pasos en los mismos días.

¿Cuál de los dos escribe este poema 
de un yo plural y de una sola sombra? 
¿Qué importa la palabra que me nombra 
si es indiviso y uno el anatema?

Groussac o Borges, miro este querido 
mundo que se deforma y que se apaga 
en una pálida ceniza vaga 
que se parece al sueño y al olv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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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3-0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가 노벨상 수상을 놓친 때가 1983년이었군요. 저는 그때 막 `입대`해서 그 이듬해엔가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따끈따끈한 신간 `노벨상 수상작`으로 읽었더랬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이 글에 담긴 보르헤스의 시를 읽으면서, 저는 `신화 속 인물`이 `미다스 왕`이겠거니 했었는데, 탕기 님께서는 <니오베의 신화>에 얽힌 `저승에 붙잡힌 탄탈로스`를 떠올리셨던 모양입니다. 맹인이 된 보르헤스를 (알바생처럼 임시직으로 일하던)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던 알베르토 망겔이 `독서가와 시력`에 대해 쓴 글을 참고(?)삼아 덧붙여 봅니다. 거기에도 보르헤스의 시가 조금 남아 있거든요...

* * *

독서가와 시력

인류의 1/6이 근시인데 독서가 중에는 그 비율이 월등히 높아 24%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 루터, 새뮤얼 피프스, 쇼펜하우어, 괴테, 쉴러, 키츠, 테니슨, 존슨 박사, 앨릭잰더 포프, 케베도, 워즈워스, 단테, 개브리얼 로세티,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키플링, 에드워드 리어, 도로시 L. 세이어스, 예이츠, 우나무노, 타고르, 제임스 조이스, 이들은 모두 시력이 약했다. 많은 경우 사정이 더욱 나빠 호머에서 밀턴, 그리고 제임스 서버와 보르헤스까지 유명한 독서가 중 상당수는 만년에는 맹인이 되기도 했다. 30대 초반에 시력을 잃기 시작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었던 1955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도서관 관장에 임명되었던 보르헤스는 한때 자신에게 허용되었던 책을 빼앗겨 버린 실패한 독서가의 기이한 운명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그 누구도 눈물을 뿌리거나 책망하지 말자
하느님의 권능의 선언을
이처럼 장엄한 아이러니로
나에게 암흑과 책을 동시에 내리셨나니.

`망각과 잠을 닮은 창백하고 모호한 재`의 흐릿한 세계에 파묻혀 사는 이런 독서가의 운명을 보르헤스는 양식과 마실 것으로 둘러싸인 채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 가야 했던 미다스 왕의 그것과 비교했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중에서

탕기 2016-03-09 22:0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는 읽자마자 탄탈로스 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말이죠! 보르헤스의 처지에서 어두운 지옥이 연상된 까닭이었을까요? 왜 `정원`이라는 단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지옥`으로 읽어버린 걸까요... 너무 어둠에 사로 잡혀 황금손을 차마 떠올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인용해주신 망겔의 글을 읽고 나니 저건 여지 없는 미다스 왕이었군요. 곧 수정하겠습니다.^^

호메로스가 장님이 되었다는 건 전설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렇게 망겔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죽지 않는 사람들」을 또 한 번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호메로스와 보르헤스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음, 제가 알기로 망겔이 언급한 이들 중 상당수의 대가들이 필사 훈련 때문에 시력이 나빠진 걸로 알고 있는데, 저도 오래 책 읽으려면 모니터와 백지에서 멀리 떨어지는 습관을 빨리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 운동을 하니 망정이지, 이러다가 등 굽고 안경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겠어요. <독서가와 시력>. 남의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오늘도 인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정 감사드립니다!

oren 2016-03-09 23:53   좋아요 0 | URL
탕기 님의 댓글을 읽으니 마침 어젯밤에 필사한 내용이 `니체의 말`이 떠오르네요... 무얼 하든 오래 죽치고 앉아 계속 버티고 지내는 일들은 여러모로 해로운 일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 * *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말라 ;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무엇이든 믿지 말라 ㅡ 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아닌 것도 믿지 말라.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ㅡ 꾹 눌러앉아 있는 끈기 ㅡ 이것에 대해 나는 이미 한 번 말했었다 ㅡ 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진정한 죄라고.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1절

탕기 2016-03-10 15:36   좋아요 1 | URL
이제 꽃샘추위 물러가면 ˝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새싹처럼 돋아나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스카보로 장터에 가는 길이세요?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와 타임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거기 사는 이에게 소식 전해줘요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이었습니다    For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Scarborough Fair>, 이하 번역 필자


    세상은 사랑을 노래한다. 내가 시를 관둔 것은 사랑 때문이었지만, 세상은 정말로 사랑을 노래한다. 어쩌면, 노래하는 법을 몰라 작시(作詩)를 접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온갖 음식 내음 맡고 다니는 장터의 객처럼 산다. 이 마을 저 마을 부단히 옮겨 다닌다. 어려운 시를 읽는 날이 있고, 수 백 년 전의, 아니, 수 천 년 전의 글귀를 읊는 날도 있다. 무명의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 지금까지 이어지는 노래도 있고, 마음 깊은 대가들의 펜촉 끝에서 항간에 한 방울의 잉크로 떨어진 노래도 있다. 아, 그 모든 것은 아프다. 곧 봄이 온다. 산에 올라 진달래 향을 맡겠지만, 꽃은 슬프다. 나는 왜 피어나는 것들을 두고, 봄의 노을을 먼저 생각하는가. 왜 별자리를 바라보며 무궁한 영원을 꿈꾸는가. 왜 대가들은 시를 쓰는가, 왜 사람들은 노래하는가. 사랑은 무엇인가.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입술 언저리에서 맴도는, 장터의 채소들. 고등학생 때였다. 한창 눈 가리고 글 쓰던 무렵, <Scarborough Fair>를 처음 들었다. 부모님과 사이먼&가펑클을 이야기했고, 새벽에는 새러 브라이트만의 (여성의 시점으로 된) 개사를 들었다. (영국 배우 에이미 너틀의 2005년 앨범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17세기 무렵, 잉글랜드의 민중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노래. 이룰 수 없는 사랑, 불가능한 일. 어린 마음에는 선율만이 남아있을 수밖에. 그리고 10년이 지나 다시 듣는다. 나는 그 사이 사랑을 했었고, 사랑을 노래할 수 없음을 알았고, 그럼에도 세상은 무수한 사랑을 무수히 읊조리며 기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무수한 것들을, 나는 모른다. 그런 까닭에 사랑과 시와 노래를 모아 모래의 성을 쌓고, 최후의 파도를 기다리며, 끝내 나의 모든 것이 부서져 사라지길 기다리며, 석양 속에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노래한다. “그이에게 삼베옷 한 벌을 만들어달라고 해줘요. 바느질로 실땀 하나 남기지 않는다면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일 테니.”(Tell her to make me a cambric shirt, /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 Without any seam or needlework, / Then she shall be a true love of mine.) 이어지는 노래에서는 그 옷을 ‘물 한 번 솟지 않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우물(Where never sprung water or rain ever fell)’에서 빨 수 있다면, 그이는 자신의 참된 사랑이 될 거라고 한다. 이렇게 여자는 세 개의 불가능한 과제를 받는다. 이에 여자는 “그이가 내게 일감 셋을 줬군요. 나의 참된 사랑이 되려면, 그이도 나만큼 많은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Now he has asked me questions three, /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I hope he'll answer as many for me, / Before he shall be a true lover of mine.) 하며 바란다. 남자도 과제를 받는다. 불가능함의 사이에서 여자와 남자가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a true love of mine, 참된 사랑이다.


    우리나라의 고려 시대에 한 남자는 이런 노래를 남겼다. <Scarborough Fair>와는 달리 어떤 선율이 붙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시공간을 넘은 인간은 사랑을 불가능에 빗대며 실로 그 ‘참됨’을 갈구한다.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수록된 정석가(鄭石歌)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대가들은 물론이고 재야의 원로들 사이에서도 이 노래를 둔 논쟁이 여전하나,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전공 세부를 열거하고 싶진 않다. 정체를 몰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이렇게 고스란히 느껴지니까. 바삭바삭한 잔모래가 있는 땅에, 그것도 그 땅의 벼랑에 밤을 심습니다. 모두 다섯 되가 되는 구운 밤입니다. 그 밤이 움 돋아 싹이 난다면 (명사어간 움[芽]은 뒤이어지는 ‘싹 나다’와 의미가 다르다. 앞의 것이 조짐이라면, 뒤의 것은 발아된 상태다.) 덕이 많으신 당신을 여읠 수 있겠습니다. 어찌 여읠 수 있을까. 이어지는 노래에도 가련한 아름다움이 있다. 옥으로 새긴 연꽃이 무려 삼백 송이가 피어야 하고, 철실로 주름 박은 융복(고관대작 의복)이 다 헐어야 하며, 무쇠 황소가 쇠나무 산의 모든 쇠풀을 먹어치워야 한다. 당신을 여읠 수 없다는 마음, 하지만 여읠 수밖에 없는 진실. 진실은 늘 마음을 배신하며, 마음은 늘 진실을 능가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당신을 여의고, 저는 천년을 삽니다. 이 마음이 못 살 것도 없지요.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끊어지겠습니까? 당신을 향한 마음은 옥으로 새긴 삼백 송이의 연꽃이요, 기필코 헐지 않을 철실로 된 융복이며, 이 세상에는 피지 않는 쇠풀과 이 세상에 없는 무쇠 황소, 그리고 쇠나무 산입니다.


    그이가 일감을 모두 끝냈다면              When he has done and finished his work.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와 타임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오, 내게 와서 삼베옷 받으라 전해줘요    Oh, tell him to come and he'll have his shirt,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일 겁니다.          And he shall be a true lover of mine.


    여자는 삼베옷을 만들었다. 바느질로 실땀 하나 남기지 않았다. 세상에 없는 옷을 한 벌 지었다. 그리고 남자를 기다린다. 우리는 이 노래의 결말을 모른다. 400여 년이 지났어도 그 누구도 끝을 맺지 못한 노래다. 수많은 개사가 있었으나, 이는 노래를 옆으로만 살찌울 뿐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누구나 결말을 안다. 남자는 장터의 여자를 찾아갔을 것이다. 삼베옷을 받아든 그는 여자의 부탁으로 마련해둔, 바다의 소금물과 모래사장 사이 1 에이커의 땅으로 함께 갔을 것이다. 물과 뭍 사이, 틈이라고는 한 치도 없는 경계에 봐뒀다는 천 평이 넘는 땅으로.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이니, 믿음이야 끊어지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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