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만 - 아카바행 버스 안에서 , 와디럼 사막 어느 언저리가 아니었을까. 2009년 3월>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대부분의 경우 풍경이 나를 주박하여 내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또 하나의 풍경이 되곤 하지만 반대로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감정의 일부로 자리 잡기도 하고 때론 서로 스미어 번지기도 한다. 암만에서 아카바로 향하는 그 길의 풍경이 그러하였다. 암만 도심을 벗어난 낡은 버스가 황량한 사막 지역으로 접어들 무렵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눈꺼풀에 맺히는 햇살의 낯선 아른거림에 눈을 뜨니 버스는 희뿌연 모래 바람 속을 지나고 있었다. 쓸쓸함마저 모래 바람 속에 휘말린 듯한 황무지, 모래 먼지와 잿빛 구름에 휩싸여 무채색의 아련함을 간직한 태양, 오랜 세월 한번도 길을 떠나지 못한 사막의 바위... 순간 그들이 먼지 낀 차창을 통하여 내 안으로 들어와 길 떠남 이후 내 가슴속 어딘가를 줄곧 떠돌던 감정 하나를 오래도록 어루만졌다. 문득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며 울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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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1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걸작 입니다!

잉크냄새 2021-07-11 17: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풍경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3-2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좋네요~ 아름다운 풍경은 항상 나랑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그 일체감이 너무 좋은데 찰나라.. 다시 또 그 풍경을 찾아가고...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잉크냄새 2022-03-24 14:44   좋아요 0 | URL
다시 또 그 풍경을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그러고 싶은데, 생은, 삶은 그리 녹녹치 않은가 봅니다. 저도...
 

  나는 희망을 생각하게 되자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요구할 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나는 그가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며 한시도 잊지 않고 있구나 하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 역시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다른 점이라면 그의 희망은 절박한 것인데 비해 나의 희망은 막연하고 아득한 것이라는 점뿐이다.

  몽롱한 가운데 눈앞에는 해변의 푸르른 모래밭이 떠올랐다. 짙은 남색 하늘에 바퀴처럼 둥근 황금의 보름달이 떠 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또 없다고 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아Q정전. 광인일기>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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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요

<지구별 여행자> p.93


인도 여행만을 고집함으로써 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생에선 내가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이었다. 그리고 굳이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까지 다 가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또 어떤 길들은 다음 생을 위해 남겨둬야 할 길들이었다. 

<지구별 여행자>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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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12-3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잉크냄새 2021-01-02 15:42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우리는 주로 자신이 우위에 설 희망이 없는 문제에서 평등을 주장한다. 절실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절대적 평등을 내세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런 시험에서 공산주의자란 좌절한 자본주의자란 것이 드러난다. 


<에릭 호퍼 자서전> p83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동물농장> p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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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20-12-2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지지부진하나마 잡고 읽고 있는 책 중에 하나가 불평등 트라우마 라는 책인데요~ 저자의 원작이 평등이 답이다, 란 책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라고 한다면 그게 평등한 건가 안 평등한 건가 ㅋㅋ 민음사 시리즈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직접 읽고 확인하는 것으로 하죠머 ㅋ

잉크냄새 2020-12-30 15:24   좋아요 0 | URL
세계문학전집은 민음사가 뽀대가 납니다.
가끔 서점 가면 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코너에서 서성입니다.
 

아날로그는 이제 낙후된 삶의 방식이다. 아날로그는 다 죽게 되어 있다. 아날로그는 더 이상 디지털 문명의 대안이 될 수가 없다. 아날로그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슬픔과 기쁨, 고난과 희망을 챙겨서 간다. 디지털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곧바로 간다. 그래서 디지털은 앞서가고 아날로그는 시대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나는 아날로그가 끌고 나가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의 고난과 희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김 훈 < 밥벌이의 지겨움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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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0-11-27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오랜만에 알라딘 왔는데 반가운 이름이 있어서 들어왔어요! 아날로그.. 우린 옛날 사람이 된 걸까요 😂😂

잉크냄새 2020-11-28 13:54   좋아요 0 | URL
와 오랜만입니다. 그래도 반겨주는 이가 있어서 좋네요.
이 마을에서 십년 세월도 옛날이라면 우리도 옛날 사람이 된 거겟죠.

icaru 2020-12-2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 읽었던 생각이 나네요. 그 책 제가 샀을 때는 표지 겉에 책커퍼처럼 불투명 종이가 씌워져 있었는데요. 운전을 안 한다고 했던 작가의 글.. 풍경을 놓친다고 했던가.. 그건 자전거 기행인가... ㅋㅋ읽었던 게 다 섞여버렸네용 ㅎ

잉크냄새 2020-12-30 15:23   좋아요 0 | URL
요즈음은 신작을 읽기보다는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꺼내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전작주의는 아니지만 김훈 작가의 책은 꽤 많은 편이라 저도 이책인지 저책인지 헷갈리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