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 <섬집 아기> 1절





오늘 문득 책을 읽다 <섬집 아기>란 동요에 2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바닷가 작은 둔덕 위 낡은 집에 홀로 남겨진 아이가 봄 볕에 잠드는 서정적이고 평화로울 것 같은 이 노래를 조용히 불러보면 뒤끝이 쌉싸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속울음을 참고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그 느낌은 근원적인 어머니의 부재가 가져오는 서글픔이고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하여 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시기도 있었다. 오늘 2절을 조용히 따라 불려보며 허전하고 쓸쓸했던 풍경이 따사로이 가난한 풍경으로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섬집 아기>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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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0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1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21-08-2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요즘 간간히 서재에 들어오시는군요! 잘 지내시죠? 갑자기 옛날 생각 나서 들어왔는데, 요즘 글들이 있어서 넘 반갑네요 :) 섬집아기 2절이 이런 거였네요~~ 안심이 되네요 ㅎ

잉크냄새 2021-09-08 15:55   좋아요 0 | URL
와 이게 얼마만인가요? 마음님
마무리하지 못한 여행기를 적어보고자 다시 들어왔는데 이게 영 씌여지지가 않네요.
그래도 조금씩 천천히 여행기는 마무리해볼까 해요.
가끔 댓글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마음은 한 번 일어나면 자신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그 마음이 완성될 때까지, 그 마음을 위해 활동하거나 부림을 당할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야, 당신은 그 마음의 완성을 꿈꾸지 않을 만큼 현명해져야 할 겁니다.


<여행 생활자> p.86

 

사는 게 막막할 때가 있다. 아니 늘 막막하다. 다만 그걸 견딜 수 있을 때와,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여행 생활자>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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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다 그런 거라고 치더라도 쿠퍼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야 했다. 거기서 죽는 게 옳았다. 하지만 쿠퍼는 블랙홀에서 살아남았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내려면 영화를 조금 더 보는 게 좋겠다. 토성 주변에서 발견돼 의식을 되찾은 쿠퍼에게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데, 바로 딸 머피다. 이 이상한 재회 장면에서, 각자가 머문 공간의 중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빠 쿠퍼는 여전히 젊은 반면 딸 머피는 할머니가 되어 있다. 그리고 머피는 이제 죽을 참이다.


처음부터 쿠퍼가 초점인물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당연히 쿠퍼의 관점에서 이 장면을 볼 것이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장면은 어쩐지 머피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둘러싸인 채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머피는 블랙홀에 들어간 쿠퍼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아온 일생의 모든 순간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으리라. 죽음이란 그렇게 시간의 흐름 바깥으로 나간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그 순간, 사랑하는 아빠를 보게 된다면 과연 그는 어떤 모습일까? 당연히 우리가 영화에서 본 바로 그 모습, 딸보다 훨씬 젋은, 그러니까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의 그 모습이리라.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딸만 생각하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아빠 쿠퍼라는 캐릭터도 어쩐지 이해된다. 그저 무조건적으로 아빠를 사랑하는 딸의 환상속에서나 존재하는 아빠의 모습에 가까우니까. 여기에 이르면 영화는 어린 시절에 헤어진 아빠를 평생 그리워한 딸이 병상에 누워 다른 가족들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로 느껴진다.


<시절일기>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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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자면 말이죠, 그 순간 내게 필요한 책은 한 권이면 충분하니까 한 오만 원 정도만 있으면 거기에 꽂힌 책들은 다 살 수 있는 거예요. 물론 한 번에 모두 다 살 수는 없지만, 원한다면 어떤 책이든 다 살 수 있어요. 지금 당장 내게는 한 권의 책이면 충분하니까요. 제게는 미래라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당장 바로 앞의 시간이 미래인 거죠. 지금부터 30년까지, 이런 식으로 집합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집합적인 미래를 대비하자면, 지금 내게는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해요. 그러자면 얼마나 벌어야만 하는지 계산이 나와요. 그래서 당장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지 않고 일단 돈을 버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런 집합적인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 눈앞의 순간, 지금뿐이에요.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저는 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다 살 수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영화도 볼 수 있으며 어떤 노래도 들을 수 있어요. 제가 가진 돈이 그 정도는 된단 말이죠. 물론 자가용 비행기를 살 정도의 부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바로 한국에서 파는 음식들은 거의 다 사서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부자는 됩니다. 지금 당장 저는 이처럼 풍요로운데, 왜 한데 묶이지도 않는 미래의 각 순간들을 하나로 묶어놓고 그 순간마다 필요한 돈을 모으려고 애를 쓰겠어요? 한 번에 그 순간 모두를 내가 살 수도 없는데 말이에요. 카프카의 <변신>은 팔천오백 원 정도예요. 지금 이 순간 한 권의 책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거의 거저나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 순간의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청춘의 문장들 + > p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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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라 명확한 기억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낯선 도시의 길을 걷다 서점을 발견했을 것이고, 호기심 반 설레임 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책을 집어들고 겉표지를 살피고 책장을 넘겨보며 내가 아는 일반적인 책과 비교 가늠해보았을 것이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여행지마다 한 권의 책을 사야겠다고. 대부분의 서점에 비치될 만한 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결국 <어린 왕자>로 정했을 것이다. 


첫 서점은 네팔의 카투만두 타멜 거리의 어느 서점으로 기억한다. 영어나 중국어권이 아닌 나라의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항상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사전에 준비해간 긴 문장은 어눌한 발음으로 오히려 어색함을 더하였다. 결국 어색하하는 서점 주인의 얼굴 위로 책 제목만을 말하였다. 다행스럽게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각 나라의 인사말이 어느 정도 통용되듯 각 도시의 서점에서도 <The Little Prince>나 <Le Petit Prince>는 세계 공통어처럼 통하는 단어였다. 


많은 책을 사지는 못했다. 내가 간 나라들이 대부분 한국보다 서점이 활성화되지 않은 점도 있고, 몇몇 도시는 대도시를 경유하지 않고 지나간 경우도 있다. 향후 또 다른 언어 문화권으로 발걸음을 옮겨 리스트를 추가할 수 있을까. 희망사항이다.







 p.s 1) 한국판 기준 시계 방향으로 한국-터키-홍콩-중국-네팔-이집트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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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19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저 언어들을 다 하시는 건가요??^^;;

잉크냄새 2021-04-19 20:36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아마도 인생이 확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ㅎㅎ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자, 중국어 판본만 가능합니다.
언어 문화권이 다른 도시에 가면 서점에 들려 그냥 한권씩 산 겁니다.

라로 2021-04-20 09:50   좋아요 0 | URL
역시 잉크냄새 님은 멋진 분이세요!!^^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신 것 같은데요,,,저는 한자 까막눈이라 막 존경의 눈으로 잉크냄새님을 다시 보게 되네요. ^^

잉크냄새 2021-04-20 14:22   좋아요 0 | URL
전 영어 잘하시는 분 막 존경의 눈으로 보게 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