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뼈가 주는 정겨움 중국 홍콩 -

홍콩은 실제 여행계획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환율상승에 따른 엄청난 비행기표 값에 대한 보상 심리로 1 2일의 스탑 오버를 신청한 곳이 홍콩이었다. 새벽 5시경의 홍콩은 아직 어두웠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간 무간도의 배경이 되었다는 침사추이는 아직 어둠에 휩싸여 황량했다. 몇몇 24시 편의점과 거리 청소를 시작한 청소부들의 부산함 사이로 골목을 거닐다 문득 이번 여행 중 여명도 밝지 않은 새벽 골목길을 걸어본 일이 처음임을 느꼈다. 도망치듯 빠져나간 델리 공항의 새벽과는 비교도 안되는 여유로움이라니. 인도인들이 종종 파키스탄인이나 네팔인이 아니냐고 묻곤 했다. 그 즈음 자전거 일주를 마치고 떠난 뒤라 얼굴이 검게 탄 상황을 인정하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파키스탄인 이냐고 묻는 그들의 저의는 아주 저열하고 비겁한 행위였다. 인도에서 가장 치욕적인 욕이 짤루 파키스탄(꺼져, 파키스탄 놈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 웃으며 파키스탄인이냐고 묻던 그들의 엷은 미소 뒤에 깔려있던 비굴한 저의와 입가로 흐르던 저열한 히죽거림이 다시금 느껴져 서글펐다. 인종과 국적과 정치적 견해로 한 인간을 판단하고 모욕하는 비열한 행위라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다시 한번 그 입을 놀리는 놈을 만나면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쳐야지 하는 마음을 가진 후로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네팔인이냐고 묻던 물음, 인도-네팔의 소나울리 국경을 넘으면서 , 그렇구나 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입국 사무소로 안내하여 하나 하나 꼼꼼히 알려주던 작은 키의 나이든 직원의 친절함은 인도에서 겪지 못한 행동이라 다소 당황스러웠는데 호기심으로 그를 한참 바라보다 발견한 것은 넓은 얼굴과 광대뼈였다. 그 얼굴이, 그 광대뼈가 주는 평안함과 정겨움이라니. 네팔 곳곳에서 마주치는 광대뼈들은 그 누구보다 정겨웠다. 비슷한 얼굴이 비슷한 마음을 가졌으리라는 알수없는 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 여명이 다가오지 않은 홍콩의 황량한 골목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홍콩 야경 >

첫날 홍콩의 야경은 환성적이라 할만했다. 소리와 빛의 향연은 30분 정도 진행된 걸로 기억한다. 침사추이와 반대편 선착장을 왕복하는 유람선에 몸을 싣고 물결의 일렁임에 몸을 맡겼다. 건물 사이를 흐르는 빛의 순간적인 소멸 뒤로 살며시 떠오르는 지난 여행의 추억은 여행 막바지의 감흥을 정리하기에 충분했다. 흔들리는 배 난간에서 마시는 한잔의 맥주는 다소 아쉬워지는 마음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둘째 날은 공항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시금 찾아 든 길이었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물길을 거스르다 거대한 장벽에 사로잡힌 기분이 들었다. 빛의 향연 한쪽에 자리잡은 SAMSUNG이라는 거대한 간판은 그 감흥을 완전히 깨뜨렸다. 인도 다람살라의 산골 마을에 자리잡은 핸드폰 대리점을 보고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면 홍콩 야경의 한쪽을 차지한 거대한 간판 앞에서는 막막한 서글픔이 느껴졌다. 자본주의 총아라 할 수 있는 홍콩의 당연한 모습이라 여겨지면서도 저 부도덕한 기업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떠올릴 이곳의 많은 이들의 모습이 서글펐다. 첫날의 풍경만 담고 떠났어야 했거늘, 홍콩의 야경은 그렇게 씁쓸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아있다



 <홍콩 침사추이 거리에서>

홍콩이 명품 쇼핑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약간의 발품을 팔면 정겨운 재래식 시장 풍경을 만나게 된다. 특히, 관상어들이 비닐 봉지 한 움큼의 물에 담겨 가게 문마다 걸려있던 관상어 시장, 길 모르는 이방인을 인도하는 향기로움과 회색빛 도시를 감싸고 도는 색감의 다채로움이 거리를 수놓던 꽃 시장, 그 꽃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 길에 아무도 살지 않는 숲에 누워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지저귀던 새 시장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의 시장은 시장 골목 양 옆을 차지한 난전 형태의 골동품 시장인데 옛 것에 대한 안목이 있다면 꽤나 값어치 있는 골동품을 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물건들이 많다. 그 시장에서 19세기 후반대의 1달러짜리 동전을 구했는데 안목은 없지만 꽤나 값어치 나가는 물건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보관 중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선 것은 범선 시절에나 사용했을 법한 나침반이었다. 그저 북극성만으로 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열망을 마구 헤집어 놓았지만 왠지 여행 막바지의 여흥과는 맞지 않아 손에서 놓아버렸다. 아마도 그 길이 떠나는 길이였다면 나침반을 샀을 것이다.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잠시나마 돌아오고 싶은 길이었다



<유람선 선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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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10-06-0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북극성만으로 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열망을 마구 헤집어 놓았지만 왠지 여행 막바지의 여흥과는 맞지 않아 손에서 놓아버렸다. 아마도 그 길이 떠나는 길이였다면 나침반을 샀을 것이다.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잠시나마 돌아오고 싶은 길이었다.]
홍콩다녀오셨군요. 전 홍콩하면 쇼핑과 아경 이 둘뿐인데.. 역시 잉작가님의 눈으로 바라본 그곳의 풍경은 남다르네요.
건강하고 좋아보이시네요.^^

잉크냄새 2010-06-05 11:05   좋아요 0 | URL
어차피 다시 떠날 길임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때 살걸 하는 후회를 종종 하곤 한답니다. 범선의 선장실에 가끔 등장하는 그런 류의 나침반이었는데 영화에서 볼때마다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때 쭈그리고 앉아 나침반을 바라볼때는 왠지 이걸 사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것만 같더군요.

비로그인 2010-06-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스텔에서 지난 주 한 뉴욕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젊은 브라질 출신의 아가씨와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브라질인의 생김새의 편견을 보기 좋게 벗어나 지극히 미국적인 모습의 친구였는데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는 다시 미국으로 가기전에 잠깐 독일에 여행을 온 친구였어요.

아시아인인 제가 여행을 다니며 겪게 되는 난감한 인종편견의 일들 몇가지를 이야기 했더니 원래 자신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으면 더 그런 경우가 많은거라고, 그리고 불어를 잘 못해 프랑스인들에게서 무시당했던 이야기들도 해주더라구요.

저는 지난주 우체국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과 싸웠었어요. 여자였는데 아주 기본이 안된 여자였죠.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한국남자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참 많은데 그 여자도 상대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할 수 있는 기본됨을 상실한 사람이어서 "너 독일인 맞니?" 그랬더니 "그래 "라고 그러길래 "대부분 독일인 들은 너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다들 예의를 갖출줄 알고 겸손하지..너같은 행동을 하지 않거든"이라며 따졌더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급 공손하고 친절해지더라구요..
아주 뭐 같은 경우였는데 브라질 친구와의 대화에서 제가 그랬죠.. 한국을 와본 적이 없는 이들이 꼭 한국을 무시하더라. 아시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긴 아시아안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좀 잘사는 국가가 못사는 국가를 무시하지요-여자는 무시하면서 유럽인이 아시아인인자기를 무시했다고 열내는 적지않은수의 한국남자들 보면 좀 웃겨요>>

개인을 한 인간으로 존중할줄 모르는 사람들이 언제고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까봐요..이부분 아주 할이야기가 많아요.. 저도..

잉크냄새 2010-06-05 11:20   좋아요 0 | URL
개인을 한 인간으로 존중할줄 모르는 사람들은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입니다. 스스로 뒤돌아보고 넓게 보지 않으면 그 틀을 깨고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인도 맥그로드간즈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가 초대해서 10명 정도의 서양인들이 참석한 술자리에 잠시 동행했었는데 유독 미국과 영국 출신들이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더군요. 아마 그들의 역사적 배경이 무의식중에 유전처럼 전해져온 것일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근데 왜 우리는 같은 피해자의 입장으로 서로 연대하고 아파하고 역사와 미래를 고민해야할 동남아를 그렇게 비하하는지... 1세기만에 식민지,동족간 전쟁,독재,산업화,무늬만 민주화,자칭 선진국 등 유래를 찾을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어 진정한 문화를, 우리를 돌아볼 기회가 없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군요.

비로그인 2010-06-06 10:09   좋아요 0 | URL
엄밀히 말하면 같은 피해자는 아니죠. 아시와와 유럽이라는 카테고리로만 따지자면 그럴지 모르지만 그 안에 또 여성과 남성이 있지요. 아시아인이면서 여성.. 그건 굉장한 의미를 함축한다는 걸 여행을 다니면서 저는 더 배운 것 같아요. 그나마의 같은 피해자 선이 아닌 엄밀히 말하면 여성은 그 더 아래에 있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성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는 한국의 남성적 문화가 있지요.

여행오면 한국남자들이 꼭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있어요. 유럽여자들이 아시아 남자들은 남자로 취급도 하지 않는다고.. 그나마 아시아 여자에게는 환상이라도 있다고.. <그 환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저에게는 이런말 또한 실실 웃으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내뱉는 한국남자들이 황당할따름이지요>-가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망을 보아요. 너희는 머리만 빈게 아니라 가슴도 비었구나.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지요

잉크냄새 2010-06-06 16:27   좋아요 0 | URL
전 여행중에 특별하게 차별받은 경험은 없었던것 같아요.남성인 영향이 크겠죠. 여행중 만난 몇몇 여성 여행자에게서 그런 이야기들을 전해들은 적은 있어요. 한국의 남성적 문화...한국 근대 교육과 군사문화의 잔재.저도 그 때가 아직 상당부분 습성처럼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한가지 위안이 되는건 그것이 그릇된 것임을, 벗어던져야할 잔재임을 알고 의식적으로 변하고자 하는 의지라 생각됩니다.

yamoo 2010-06-0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가을에 홍콩을 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여행 많이 다니는 후배 따라가는 건데, 가본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네요..포스팅보니 가고싶은 마음이 무럭무럭~~ㅎ

잉크냄새 2010-06-10 10:35   좋아요 0 | URL
네, 여행으로 가볼만한 곳입니다.
재래식 시장쪽으로 한번 가보세요. 홍콩 야경이나 쇼핑보다 더 기억에 남을듯 합니다.
좋은 여행되시길...

비로그인 2010-06-1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서재에서 가끔 뵈었는데 처음 인사드립니다. 여행작가이신가요?
글이 읽기 유연하십니다. 홍콩사진을 보니까 출장으로 몇 번 갔던 기억이 나서 아는체를 해 봅니다. 지금은 중국에 계신가봐요?

잉크냄새 2010-06-21 09: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이 늦어버렸네요.
이곳 중국은 단오절이 휴무랍니다.
여행작가는 아니고요, 그냥 일반 직장인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3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하기야 두 나라로 갈라질 때 엄청난 유혈충돌이 있었지요.

잉크냄새 2010-06-24 10:1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여행할 즈음에 발생한 뭄바이 테러로 인하여 인도-파키스탄의 암리챠르 구간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카슈미르 지방에는 총격이 공공연히 발생한다고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4 17:07   좋아요 0 | URL
인도는 중국과도 국경분쟁이 있고 또 타밀족 문제도 있고...굉장히 유혈충돌이 많은 나라지요.

잉크냄새 2010-06-24 18:39   좋아요 1 | URL
국경문제와 관련된 그런 사항을 접하면 인도는 또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진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5 16:23   좋아요 1 | URL
하하하...두 얼굴이야 인간이 사는 곳이면 다 있다고 봐야죠.우리는 일본이 이중적인 나라라고 하는데 주한외국인들은 한국인이 이중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잉크냄새 2010-06-25 17:20   좋아요 1 | URL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린 이중성은 일반 여행자들이 느끼는, 혹은 책을 통하여 소개된 인도인 특유의 가치관과 달리 저런 국경분쟁이 일어나는 부분이 더 큰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부분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5 18:53   좋아요 1 | URL
맞아요.우리나라에도 인도에 대해서 류시화같은 분이 소개한 것만 생각하면 갠지스 강의 구도자가 어쩌구...하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좀 살벌한 것 같아요.저는 민족분쟁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인도에서 무서운 일이 많이 일어난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잉크냄새 2010-06-26 10:06   좋아요 1 | URL
네, 한국에 소개된 바와 같이 인도인의 가치관은 특이합니다. 일반 대중의 가치관은 분명 다른 문화와 비교할수 없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분쟁을 일삼는 정치인은 세계 어디나 똑같나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0-07-25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가 고파서 그런가요~
소동파가 생각난다고 하려고 했는데,동파육이 생각난다고 할 뻔했어요~^^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이 구절,가슴에 담아가요.

잉크냄새 2010-07-26 17:08   좋아요 1 | URL
동파육이 뭐죠? 전 못먹어본 음식 같네요.
어설픈 넋두리가 님의 가슴속에서 더 옹글고 아름다운 의미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양철나무꾼 2010-07-28 02:14   좋아요 1 | URL
일종의 돼지고기 장조림인데 뜨겁게 먹는 음식이예요~
동파육과 짝을 이뤄 얘기되는게,오향장육이구요.
떠남과 돌아옴,얘기를 해서 동파육과 오향장육의 대(댓)구를 떠올렸었어요~
(Hot dish&cold dish)
입장의 다양함에서 인종의 다양함으로 생각이 뻗어나갔고,
그 어디 쯤에서 님의 말랑말랑한 영혼(마리여사 마냥~^^)을 엿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10-07-28 12:52   좋아요 1 | URL
그런 음식이 있었군요.
말랑말랑한 영혼이라는 단어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항조우에서 개최되는 기업 투자 설명회에 참석하였다. 원래 내가 참석할 자리는 아니었으나 사장님이 급한 사정이 생겨 대타로 참석하게 되었다. 장소는 항조우였으나 실질적인 주관은 안휘성 정부 주관이었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도착하니 아직 참석자는 몇 보이지 않았다. 기배정된 자리를 옮겨 제일 졸기 편한 위치로 이동하였다. 잠시후 정부관료인듯한 사람이 도착하였고 각 자리에 배정된 대표이사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으며 다가왔다. 대타 참석이니 내 명함도 아닌 사장님의 명함을 주며 명함을 건네 받았다. 흰 바탕에 빨간색 명칭이 다소 촌스럽단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쳐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듯한 표시이다. 붉은 낫에 붉은 망치, 중국 공산당 이라고 붉게, 선명히 찍힌 명함이었고 그의 직책은 당서기였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지만 공산당원이 차지하는 위치를 볼때 상당한 권력가라 할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70명 가량 참석한 대표이사중 한국인이 한명 있다는 것이 자신의 지역으로 기업을 유치하는데 나름 홍보거리라 생각했는지 연설을 할때마다 한국인을 언급하곤 했다. 또 하나의 악재는 어차피 잘 안들리는 중국어, 잠이나 자자 하고 옮긴 자리가 그의 뒷자리(자리 배정이 한국과 좀 다르다) 였다. 졸지도 못하고 당서기 사진의 뒷배경으로 사진만 무수하게 찍혔다. 설명회가 끝난후 오찬 자리에서도 그는 나름의 홍보거리인 가짜 사장에게 다가와 건배를 제의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겼다. 당서기가 인사하니 대표이사들이야 가만 있겠는가. 줄줄이 사탕으로 딸려 들어오는 사장들과 건배하느라 비싼 음식은 제대로 못먹고 쥬스로만 배를 채웠다. 아까워. 오찬이 끝난 후 "짜이찌엔"하고 악수를 하고 떠나려니 한국어로 헤어질때의 인사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어늘한 말투로 "안녕히 가세요"하고 말하는 그와 악수 대신 가벼운 목례를 하고 헤어졌다.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규정하는 일 ( 한때 대한민국의 위대한 교육은 그들을 뿔 달린 악마로 인식시키지 않았던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싶다. 

설명회가 개최된 장소는 시후 옆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오찬이 끝난후 통역으로 동행한 부장과 시후 호수를 걸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항조우로 가는 것이 귀찮아 투덜거리던 나와 달리 그가 콧노래에 흥겨웠던 이유는 항조우에 깊이 남아 있는 추억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유학한 그가 대학 졸업후 중국 내륙 배낭여행을 할때 항조우에서 만난 여인과의 추억이다. 그들이 만난 장소가 시후 호수의 "똰챠오찬쉐(短桥残雪)"였다. <백사전>의 주인공인 빠이냥즈와 쉬씨엔이 갖은 고난 끝에 다시 상봉한 다리로 유명하며 눈이 내린후 잔설이 녹을때 마치 다리가 끊어진듯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도 그녀를 그 다리 입구에서 만났다고 한다. 저녁 일몰을 품고 자전거를 타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는 전설속의 여인을 보았고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한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지만 당시만 해도 같이 할수 없는 그들의 운명을 안 여인이 "인은 있지만 연은 없다(有因但是没有缘分)"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는 약 두달을 그 헤어짐의 아쉬움으로 앓았다고 했다. 그 다리를 건너다 가슴이 좀 두근거리냐고 물으니 씨익 웃으며 그저 덤덤하단다. 그가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기를 빌었지만 다리를 다 건널때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도 추억은 오늘 하루 그를 아주 행복하게 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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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은 있지만 연은 없다" 는 말이 가슴에 박히네요. 영화 '호우시절'처럼 혹여나 그 인연들에게도 또 한번의 연이 올지 모를 일이지만은요...

읽으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는데 다들 재미없다는 영화를 저는 잘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다리 어디쯤 잉크냄새님만의 또 다른 멋진 로맨스도 기대해봅니다. 사람일은 모르니까요..^^

잉크냄새 2010-06-02 19:27   좋아요 0 | URL
그 다리 말고 시후 호수에 또 하나의 유명한 다리가 있습니다. 소동파가 만들었다고 하는 "쑤띠" 라는 다리입니다.
호수 한쪽을 관통하는 엄청나게 긴 다리이니까 오히려 그 다리가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겠죠.ㅎㅎ
이제는 늙어가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그 뭐시기 다리가 문득 생각납니다.

털짱 2010-07-1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신문 기사에서 사진을 찾아 올리셔야지요!!!!

잉크냄새 2010-07-15 09:47   좋아요 0 | URL
안후이성 지역 신문이라도 찾아봐야하겠네요.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찌할수 없이 해이해짐을 동반한다. 그 해이함으로 인하여 여권을 분실하였다. 여행 초기 침낭 속에까지 넣고 잠이 들던, 잃어버리면 여행 끝이란 생각으로 소중히 다루던 여권이었다. 중국 생활 6개월, 몸에 배기 시작한 익숙함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여권이 이 나라에서 나를 증명할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을 잊게 만들었나보다. 분실신고를 위해 찾아간 공안국 직원이 나에게 "헌 마판(겁나게 귀찮을꺼야)" 이라고 말할때만 해도 이리 귀찮은 행보가 이어질지 몰랐다. 북경의 한국 영사관 - 천진 공안국 - 저장성 근무지로 이어지는 장거리 루트를 따라 여행 아닌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북경 - 천진간 3차례 고속철도 왕복, 천진-상해간 1차례 기차 왕복, 북경-항조우 1차례 기차 편도, 버스를 탄 구간을 포함한다면 대략 8000KM에 윽박하는 거리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는 아니더라도 해저 이만리에 버금가는 거리이다. 지금 신규 발급 여권은 천진 공안국에서 거류허가 대기중이니 미친 척하고 직접 받으러 올라간다면 엄마 찾아 삼만리도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리 귀찮은 행보도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여행이라 생각하고 다녔는데 최고의 기차 여행은 상해-천진간 19시간 완행이었다. 원래는 상해-단동간 36시간 완행이지만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천진이 종착이었다. 인도여행시 탄 델리-자이샬메르 구간도 19시간이 걸렸지만 침대칸이었다. 이번 기차는 잉쪼우(딱딱한 의자)인데 말 그대로 딱딱한 의자에 2명/3명 앉아 가는 기차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외국인은 나 혼자인듯 싶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윗통을 벗고 카드를 치는 중국인부터 노트북 영화를 빙 둘러싸고 마치 동네 하나뿐인 티브이를 보는 모습을 연출하던 중국인까지 기차안의 풍경은 나름 흥미로왔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문화를 접하더라도 멈춘듯 흐르지 않는 시간은 지겨운가 보다. 졸리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여도 시간은 죽은듯 멈추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 건 가끔씩 멈추어서던 역사뿐이었다. 해질녘 도착한 역사는 중국의 베네치아 수조우였고, 한밤중 단잠을 깨운건 일본 제국주의 학살의 현장 난징이었다. 겨우 잠이 들었다 깬 아침 나를 맞이한건 타이샨이었고, 다시 돌아오던 길의 아침 나를 깨운건 호수도시 항조우의 아침 햇살이었다.   

음,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럴때가 아닌듯 하다. 여권이 없는 지금 공안의 검문이라도 받는다면 철창 신세를 져야할지도 모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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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5-29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헉
정말 말도 안되게 귀찮네요! ㄷㄷㄷㄷ
말도 안되, 말도 안되;;;;;;;
잉크냄새님 몸생각도 하셔야지ㅠㅠ 19시간 앉아서 가는 기차라뇨! ㅠㅠ 제 허리가 다 아파옵니다. 휴.. 특히 중국은 아무리 가도 창밖 풍경이 다 똑같다던데; (정말인가요??)
여튼 고생하세요.. ㅠㅠ
중국은 뭐든간에 스케일이 다르구만요 ㅎㅎ

잉크냄새 2010-05-29 09:17   좋아요 0 | URL
귀찮죠. 뭐, 다 제가 저지른 일의 결과니까 받아들여야 하지만요.
중국 기차는 허리는 안 아픈데 엉덩이가 아프답니다. 옆에서 밀치고 들어오는 중국인 엉덩이 방어도 쉽지 않고요.ㅎㅎ
중국 기차 풍경은 제가 동부만 다닌것이라 뭐라 말씀 드리기 힘드네요. 인도만큼 다채롭지 못한것은 사실입니다.

2010-06-02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2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늦게 퇴근한 밤 삐거덕 하고 열리는 현관문을 향해 토하듯 달려드는 어둠만큼 외로운 기분이 또 있을까. 기분이라도 우울한 날이면 그 기분은 몇곱절이나 커지곤 한다. 가방을 던지고 소파에 털썩 앉아 켠 텔레비젼마저 중국어로 도배되어 나오면 그 기분이 쉬 가라앉지 않곤 한다.  어느날 나보다 조금 늦게 중국에 나오신 오래전부터 같이 일해온 부총경리와 술을 한잔 하는 도중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더군요. 

잉크 : 부장님, 아무도 없는 집 퇴근하기 싫은 날이 있는데 강아지나 한마리 키울까요?  

부총 : (한참 보더니) 혼자 있으면 키우지마. 

잉크 : (한잔 쭈욱 마시고) 왜요? 

부총 : (한잔 쭈욱 마시고) 강아지가 외롭잖아. 그냥 너가 외로워져. 강아지를 외롭게 할순 없잖아. 

세상은 그런것 같더군요. 누구나 다른 누군가의 외로움에 기대어 자신의 외로움을 잊어버리려 합니다. 그저 나의 외로움에 난 강아지의 외로움은 생각하지 못한것이더군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의 외로움만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외로움에 눈길을 건네지 못하고 살아온것 같더군요. 어느 시인이 그랬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강아지는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강아지도 외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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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1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1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5-2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장가를 가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3=3=33

잉크냄새 2010-05-21 18:54   좋아요 0 | URL
전 나중에 또 먼길을 여행할 생각인지라....
 

“바른 정(正)의 한 획을 그으며” 

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그가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의 낙인과도 같은 문신에 대한 글인데, 그들을 사회 약자의 위치에 놓고 바라본 이야기이다. 그들의 문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카멜레온의 보호색과도 같은, 가난한 이들의 자기 보호색으로 보는 시각이 흥미로웠던 글이다. 네팔에는 분따 라는 특별한 행태가 존재한다. 과거 마오이스트들이 트래킹 대상자들을 상대로 길을 막고 통행료를 받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는데 그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분따로 인하여 여행 일정이 종종 연기되곤 하는데, 네팔인들이 하루 동안 특정 도로를 막고 통행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행의 불편함을 뒤로하고 그들이 분따를 일으키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국 가난한 이들의 서글픈 이야기들이다. 같은 마을 사람의 장례식 비용 마련을 위하여, 가진 자의 폭정에 항거하여 그 억울함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넘어가는 히말라야의 언저리에서 버스를 가로막는 분따를 만났다. 몇몇 사람이 직접 쓴 비뚤비뚤한 현수막을 들고 길을 가로막고 몇몇 사람이 운전석으로 다가가면 운전수는 일정량의 통행료를 지불한다. 버스 승객 모두 그 행위에 그저 일상의 일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그 작은 항거에 대한 동병상련 때문일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통행료를 지불하던 젊은이마저 환하게 씨익 웃는다.



<박타푸르 더르바르 - 리틀부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더르바르(광장)에는 쿠마리가 산다. 네팔의 미신적인 풍습에 의하여 선발되는 4세의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다.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하여 선발되면 여신으로 추앙받는데 그 마지막이 서글프다. 어린 시절을 저당 잡혀 살며 어떤 교육이나 사회화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초경이 시작되면 불경하다는 이유로 결국 쫓겨나는데 일반인으로 돌아온 쿠마리를 맞아들이는 가족은 단명한다는, 쿠마리와 결혼한 남자는 단명한다는 나쁜 속설로 인하여, 쫓겨난 쿠마리는 평생 홀로 살아가며 생계를 위하여 거리의 여자로 살아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쿠마리는 카트만두 시내 더르바르의 한 건물에 살고 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는 여행자에게 이층 창문으로 살며시 얼굴을 보여주는 쿠마리는 운명의 서글픔을 알고는 있을까. 결국 보지 않았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서글픈 운명이 겹쳐진다면 그 운명의 무게로 발걸음을 띄지 못할 듯 싶었다. 더르바르 광장 뒷골목을 서성이다 여염집의 이층 창문에서 쿠마리 또래 인듯한 아이들을 보았다.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그들의 모습 위로 보지도 못한 쿠마리가 자꾸 겹쳐져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왠지 근접할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지던 박타푸르 광장의 노인>

로컬 버스에 흔들리며 찾아간 박타푸르 더르바르는 흡사 중세 시대로 귀환한 듯한 느낌이었다. 온통 흙색의 도시이다. 인도의 자이살메르가 풍기던 황금빛의 찬란함과는 다른, 흙만이 줄 수 있는 아늑한 온화함이 굴절된 빛으로부터, 막 응달로 접어든 벽으로부터 스며 나와 차분하게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듯한 탑과 사원의 웅장함, 그 사원의 주변에 형성된 민가의 단촐함에서는 대조적인 이분법적 의미보다는 오랜 세월 품고 살아와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조화로움이 느껴졌다. 그러한 골목을 거닌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가장 호사스런 경험일 것이다. 아득한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을 따라 걷다 보면 흡사 내 몸의 일부가 골목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하여 그곳을 벗어나 아득히 먼 길을 떠난다 해도 그 온화함에 살며시 눈을 감고 골목을 걷던 평화로움은 언제나 내 기억의 한 조각을 이루어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 골목은 언제나 포근하다> 

 
내가 머물던 숙소는 한국 여성이 운영하는 네팔짱 이라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카트만두에서 유명한 곳인데 식사를 위하여 찾아 들어간 부속 식당에는 꽤나 유명한 인사들이 히말라야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 들어 남기고 간 사진들로 가득했다. 우연히 그곳에서 포카라에서 막걸리 으로 만난 여행자를 만났다. 하루 일찍 네팔을 떠나는 그와 마지막 을 마시고 들어온 날 우리도 하나의 사진을 붙였다. 포카라에서 만난 네 명의 여행자가 사랑코트에 올라 찍은 사진인데 나머지 두 명은 인도로 향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사진 밑에 우리의 이름을 쓰고 바를 정()의 한 획을 긋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다른 두 명에게는 메일로 통보해 줄 예정이었다. 그는 이년에 한번 정도 네팔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십 년의 세월이 걸릴 거라 말했다. 난 십 년 안에 한 획을 더 그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웃었다. 그 사실이 다소 서글펐지만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밑에는 한 획으로 표현된 우리의 추억이 굵게 가로 지르고 있었다



<바를 정(正) 자의 한 획을 그었다. 누가 또 다음 획을 그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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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4-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인도와 네팔은 언젠가,갈수있을지 모르겠어요.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배낭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벌써 안락한 여행의 편안한 맛을 봐버렸다능 ㅠㅠ

역시 한 번 간 김에 다 돌고 왔어야 했는데..

전 여행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가는중인데 어쩜 잉크냄새님의 여행기는 묵히면 묵힐수록 점점 따뜻하고 깊어지는지요.

잉크냄새 2010-04-11 21:24   좋아요 0 | URL
가슴에 품은 열망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그 길위에 서리라 믿어봅니다.
아직 많은 도시가 남아있어요. 이제 1년의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눈만 감아도, 그 지명만 들어도 그 거리의 모습과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아마 평생동안 그 모습들은 잊혀지지 않을것 같네요.

비로그인 2010-04-1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마리 같은 여인들의 모습은 즉, 형태만 다를 뿐 여성을 학대하고 이용하는 그 근본에서는 공통인 모습은 그러나 21세기라는, 현대의 이세계 모든 도시들에서도 볼 수 있지요. 가장 진보했다는 서유럽에서조차 저는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요..
그 자식들에게 fuck you를 날리기도 했고 때려도 보았고 고함도 지르고 거리 한복판에서 미친여자처럼 싸워도 보았어요. 여자도 사람이라는 걸 시위해야 한다는 건 비참한 일이예요..

잉크냄새 2010-04-11 21:28   좋아요 0 | URL
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악습이죠. 의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 악순환의 고리를 결코 자를수 없겠죠.
시리아에 있을때 발생한 명예살인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다마스커스가 추해보이고 중동인들마저 비겁해보여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와버렸죠.

춤추는인생. 2010-04-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장의 노인사진 참 좋으네요. 뼈만 앙상한 사람을 보면, 미적으로 참 정갈하다 라는 느낌이 들어요.왜 이병률 시인이 시중에 순정 있쟎아요. 살이 붙어 흉이 많다고.
때론 뼈밖에 없는 저 정갈한 사진에는 가릴것 하나도 없는 투명함이랄까. 그런데서 오는 숙연함이 있는것 같네요.
인도에 대한 여러작가의 글들이 있지만. 잉크냄새님 글 참 좋죠.^^
화이팅이예요.!

잉크냄새 2010-04-11 21:3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저 사진 제가 찍은 참 많은 사진중에서도 아끼는 사진입니다. 박타푸르 광장 초입에서 만난던것 같은데 저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보았어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갔지만 결국 노인을 만날수 없었죠. 하지만 그 잔상이 한동안 남아있더군요.

paviana 2010-05-1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부지런했다면 이 글을 한달전에 벌써 읽었을텐데...
아래 사진 속에 잉크님 계신거지요? 어떤 분일지 궁금하네요.
근데 글을 점점 더 잘 쓰시는거같아요. 사진도 그렇고. 비결이 혹 있으신가요? ㅎㅎ

잉크냄새 2010-05-18 15:1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재초기부터 꾸준히 방문해주시잖아요.ㅎㅎ
글은....가슴에,추억에 남아있는 여행의 느낌을 풀어내기에는 전 너무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