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집이나 마구간, 양 우리, 헛간의 지붕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있었다. 정면이 넓은 이 곳의 집은 멋진 청동빛의 떡갈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황금빛을 띠는 녹색의 이끼, 붉거나 푸르거나 노란빛을 띠는 짙은 라일락 그레이의 땅, 자그마한 밀밭의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녹색, 느슨하게 매달린 채 황금색 비에 소용돌이치듯 휘날리는 가을잎, 그 속에 우뚝 서서 검은색으로 젖어 드는 포플러나무, 자작나무, 라임오렌지나무, 사과나무.....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듯 빛이 스며드는 게 보인다. 그 색채는 얼마나 인성적이던지.

 고요하게 밝게 빛나는 하늘은 라일락 색조를 간신히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부유스름하다. 그것은 빨강, 파랑, 노랑이 떨리면서 반사되는 흰색이면서도, 아래쪽에 있는 옅은 안개와 흐릿하게 뒤섞여 섬세한 회색빛을 띠고 있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p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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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도 썼듯이 그는 늘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는데, 하나는 물질적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이다. 살아 생전 단 한 점의 작품만이 400프랑에 팔릴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유화에 필요한 물감 수급에 항상 목말라했고 그 금전적인 부분을 동생 테오가 책임지고 있었다. 그 미안함이 많은 편지에 스며 있다. 색에 대한 그의 눈이 타고난 것인지 탐구에 의한 후천적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림이나 글을 보면 그는 우리가 인지하는 색의 스펙트럼뿐 아니라 그 바깥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관찰력과 글과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력 이라니! 그가 표현한 색의 범주는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범주가 아니라 색의 결합과 대조를 통하여 사랑과 희망과 떨림과 열정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장마 기간 간간히 얼굴을 내미는 햇살이 불완전한 대기를 형성하는 육칠월은 그 동안 우리가 관념화한 노을의 빛깔마저도 낯설게 만들곤 한다. 작년 이맘때쯤 마주친 너무 생소한 빛깔의 노을 앞에서 난 문득 고흐의 색을 떠올렸으나 일반적인 색의 스펙트럼 안에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난 그저 감탄만 연발할 뿐이었다.  "와, 죽인다"



- 21년 7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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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7-06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그렇군요! 낯설고 신비로운 색입니다. 장마가 싫어서 이런 것들은 관심도 두질 않았는데 부끄러워집니다. 그래도 어제 달빛이 참 오묘하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

잉크냄새 2022-07-07 12:35   좋아요 1 | URL
들꽃뿐 아니라 뭐든 자세히 보아야 보이나 봅니다. 가끔 만나는 저런 낯섬이 참 좋네요.
 

대부분의 철학 이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사유하는 이론은 거의 없다.(동물의 권리 등을 논하는 응용윤리학이 몇 안 되는 예외다) '인간과 동물의 인간적인 관계'를 사유하는 분야는 전혀 없다. 많은 철학자들이 반려동물의 의미를 사유하는 데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반려동물의 존재가 철학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반려동물은 인간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인간은 반려동물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 한다. 이것이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신기한 점인데 "이런 감정이 사실은 인간 관계를 '확장'해서 얻게 되는 착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의 기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조금 전 나는 가족은 혈연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현실에는 혈연 관계가 아닌 가족이 많이 존재한다. 아니, 이런 비혈연적이면서 가족적인 관계야말로 사회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애당초 국민 국가 자체가 '비혈연적 가족'의 전형이다. 인간은 다양한 존재를 가족으로 여길 수 있다. 이처럼 가족 개념에는 강력한 확장성이 있다. 오히려 피로 연결된 가족이 특수한 사례다. 반려동물에 관한 사유는 이렇게 우리를 넓은 지평으로 이끌어준다. 

<느슨하게 철학하기> -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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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처음 키운 이후 삶의 변화를 간단히 기술하면, 금연, 절주, 낚시 금지, 살아있는 요리 안 먹기 등 몇 가지가 있다. 창가에서 흡연시 곁에 와 한참을 기다리는 녀석의 폐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문득 든 날 실내에서 담배를 끊었다. 현관 문 앞에서 열쇠를 돌리기도 전 문 너머 어둠 속에서 새어나오던 가냘픈 울음소리를 듣던 날 일주일에 세 번 먹던 술을 한번으로 줄였다. 


낚시는 딱히 좋아하거나 즐기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그 하지 않는 이유가 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시간 아까워서 라든지, 모기가 싫어서 라든지 하는 이유였다면 지금은 생명이라는 가치에 반하는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어업 행위를 제외한 취미로서의 낚시는 생명을 한낱 유희의 대상으로 여기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비슷한 이유로 밥상에서 생명이 요리되는 음식도 끊었다. 채식이니 육식이니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밥상에서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내면의 잔혹성을 재료의 신선함이라는 이유로 포장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반려동물을 보면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철학 이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사유하는 이론은 거의 없다.(동물의 권리 등을 논하는 응용윤리학이 몇 안 되는 예외다) ‘인간과 동물의 인간적인 관계‘를 사유하는 분야는 전혀 없다. 많은 철학자들이 반려동물의 의미를 사유하는 데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반려동물의 존재가 철학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반려동물은 인간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인간은 반려동물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 한다. 이것이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신기한 점인데 "이런 감정이 사실은 인간 관계를 ‘확장‘해서 얻게 되는 착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의 기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조금 전 나는 가족은 혈연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현실에는 혈연 관계가 아닌 가족이 많이 존재한다. 아니, 이런 비혈연적이면서 가족적인 관계야말로 사회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애당초 국민 국가 자체가 ‘비혈연적 가족‘의 전형이다. 인간은 다양한 존재를 가족으로 여길 수 있다. 이처럼 가족 개념에는 강력한 확장성이 있다. 오히려 피로 연결된 가족이 특수한 사례다. 반려동물에 관한 사유는 이렇게 우리를 넓은 지평으로 이끌어준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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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23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피로 연결된 가족이 특수 사례라는 인용문에 저도 점점 동의하게 됩니다. 반려동물이랑 살게 되면 적지 않은 게 변하고 바뀝니다. 잉크냄새 님도 그러시네요. 너무 좋아 보여요. 따뜻해집니다.

잉크냄새 2022-06-24 11:09   좋아요 2 | URL
애완이란 용어에서 반려라는 용어로 변한 것도 가족 개념의 적용이 아닌가 싶네요. 반려동물은 키워보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지 못할 것 같아요. 저부터도 그랬으니까요.

icaru 2022-06-23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재에 복순이언니라는 닉네임을 주었던 반려견이 지금은 추억 속에서 살아 있는데요 ㅎ 참 인간관계의 기원과도 같은 녀석이었습니다 ㅎ 그나저나 이 책 동하네요! 철학을 ‘익힌다 배운다‘가 아니라 철학을 ‘한다‘는 제목, 게다가 느슨하게 라니 너무 끌리는데요? ㅋ

잉크냄새 2022-06-24 11:14   좋아요 1 | URL
서재 초기에 복순이를 사진으로 봤던 것 같기도 하네요. 세월이 이리 흘렀으니 반려견의 한 생애가 훌쩍 지나갈 시간이기도 합니다. 근데, 복돌이님도 반려동물에서 딴 걸까요?? ㅎㅎ

이 책은 철학 맛보기 개념으로 읽었는데 읽기 괜찮은 것 같아요. 일상의 용어로 풀어낸 칼럼 성격의 글과 조금 전문성이 엿보이는 장으로 나누어 있는데,,,전 벌써 다 까먹었어라...
 

거미


- 이면우 -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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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다 문득 열 아홉, 스물 아홉, 서른 아홉, 마흔 아홉의 나를 돌아본다. 숲 전체를 흔드는 잠자리 투명한 날개의 파닥거림에 가슴 아파했을 것이고, 잠자리와 거미가 들이미는 모순이 힘들어 그냥 거미줄을 밀고 나갔을 수도 있고, 홀로 필사의 그물짜기로 밤을 지샌 가을 거미의 외로움에 누구보다도 공감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앞선 세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가지 못하고 아직 거미줄 앞에 서성거린다. 내 안에는 아직 모든 시절의 내가 서성거리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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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5-25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마흔아홉이 되면 거미줄을 짜는 거미의 외로움도 헤아려보게 될 수 있군요. 전 항상 거미줄을 보면 경이롭다... 어떻게 실 하나로 이렇게 완벽한 그물을 짜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ㅎㅎ 거미에게 잡아먹힐 잠자리가 불쌍했던 건 아주 어렸을 때였던 것 같고, 언젠가부턴 이런 게 자연계의 법칙이지라는 시선으로 봤던 것 같아요. 나는 안 바뀌는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조금씩 바뀌어있네요.^^

잉크냄새 2022-05-25 20:58   좋아요 1 | URL
누구나 큰 차이 없이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여리고 가냘픈 것들의 시선이었다가, 약육강식의 밀림 정글속 냉정한 어느 야수의 눈빛이었다가, 킬리만자로 표범의 고독한 눈빛이었다가...우리는 다 그 어느 눈빛 앞에 서 보았던 것 같아요.

2022-06-30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30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이란 한마디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폭탄 공격을 당하는 쪽의 고뇌와 고통을 상상하는 힘은 전쟁에 저항하고 평화를 쌓기 위한 기초적 능력이다. 따라서 이런 기초적 능력을 결여한 채 젊은이들이 사회로 나가는 것이 나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p36-


그대들 말대로 타자의 고통이나 과거의 고난에 대한 상상력을 지니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그런 상상력이 있다고 간단히 얘기하는 건 불성실하며 심지어 위선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상상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자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방기하는 순간 시니시즘(냉소)이 개가를 올리고 참극은 반복된다. -p265-


우리는 대부분 자신을 '정상'이라는 관념의 틀 안에 가둬놓음으로써 안심하고자 한다. 그런 우리는 언제든 '이상'한 것을 배제하고 학살하는 폭력의 가담자가 될 수 있다. -p328-


아이덴티티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건 맞지만, 실제로는 어떤 타자와의 관계이든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가 작용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 소수자와 다수자 모두 그렇다. 그것을 무시하고 마치 순수하게 대등한 관계가 존재하는 듯한 전제를 까는 건 잘못된 것이다. -p217-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이란 한마디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폭탄 공격을 당하는 쪽의 고뇌와 고통을 상상하는 힘은 전쟁에 저항하고 평화를 쌓기 위한 기초적 능력이다. 따라서 이런 기초적 능력을 결여한 채 젊은이들이 사회로 나가는 것이 나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 P36

그대들 말대로 타자의 고통이나 과거의 고난에 대한 상상력을 지니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그런 상상력이 있다고 간단히 얘기하는 건 불성실하며 심지어 위선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상상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자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방기하는 순간 시니시즘(냉소)이 개가를 올리고 참극은 반복된다. - P265

우리는 대부분 자신을 ‘정상‘이라는 관념의 틀 안에 가둬놓음으로써 안심하고자 한다. 그런 우리는 언제든 ‘이상‘한 것을 배제하고 학살하는 폭력의 가담자가 될 수 있다. - P328

아이덴티티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건 맞지만, 실제로는 어떤 타자와의 관계이든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가 작용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 소수자와 다수자 모두 그렇다. 그것을 무시하고 마치 순수하게 대등한 관계가 존재하는 듯한 전제를 까는 건 잘못된 것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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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action)’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inaction)’로 구분해야 한다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의 닐 로스(Neal J. Roese) 교수는 주장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 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바닷가 작업장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p60~ 61


세상에서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 <바닷가 작업장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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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4-10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하지 않은 일들‘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잉크냄새 2022-04-10 19:01   좋아요 2 | URL
남녀의 차이도 있다고 합니다. 남성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 를 많이 하고 여성이 ‘한 일에 대한 후회‘ 를 많이 한다고 하네요.

프레이야 2022-04-10 14: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정운 글 좋아합니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에 대한 생각에 공감해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ㅎㅎ
불필요한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봄날입니다 잉크냄새 님.

잉크냄새 2022-04-10 19:04   좋아요 3 | URL
작년 한해 김정운의 책을 대부분 읽어 보았는데, 좋은 글이 많더군요.
봄날은 후딱 갑니다. 어여 즐기시길...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5-15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저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저 말에는 공감합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면 일단 ˝go!!!˝ 그리고 외로워야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관계에서도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숙성되는 법이니까요. ^^

잉크냄새 2022-05-17 20:39   좋아요 1 | URL
책에서도 언급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일단 go 성향이 짙다고 하네요. 사랑을 놓고봐도 여성은 일단 사랑하고 남성은 사랑을 재어보는 경향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도 해보지 않은 남자들이 사랑을 더 떠드는 건지도 모르죠.

Vanessa 2022-05-15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맞아요. 맞습니다

잉크냄새 2022-05-17 20:3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