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 이라는 책이 있읍니다.

이 책은 1990년~1998년 ...약 8년에 걸쳐서 중국학자5명과 일본학자7명 그리고 그 외 일본사관학교 (육사.해사) 장교및 중국인민박물관장. 한국해군사관학교장교들의 도움으로 총 32권으로 발권 된 책이죠

이 책은 크게 이순신 장군 생애를 다룬 5권.(이순신은 누구인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2권 . 명나라가 본 이순신1권.

1500~1600년시대의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나라 10권.
이순신과 임진왜란 5권. 토요토미 대 이순신 2권.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내용이 25권.
그리고 역사적 근거로 가설을 부친 내용이7권으로 나누어 진 책입니다.

이중에서 좀 특이한 것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장군님에 관한 책이 2권이나 된다는 것인데... 이순신 장군께서 난중일기를 남기시듯.. 일본장수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서적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와키자카와. 도도. 등등 .....특히 이 두 사람은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기록이 유별 나다고 합니다...아마 같은 수군이라서 그랬겠지요...

1. 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전에 kbs1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와키자카 후손들이 매년 이순신 장군님 탄생 때 온다는거....와키자카가 이순신 장군님을 알게 된 건 한산도 대첩 때인데... 와키자카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성격이 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바라보는 것과 일본에서 바라보는 건 차이가 있겠지만...아무튼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였는데, 명예를 중요시하였으며, 차를 좋아했으며, 함부로 살생하기보다는 덕을 베풀어서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뭐 랄까 그런 묘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2천의 군사로 약 5~10만명(정확한설은 없음. 우리역사에는 5~6만 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이라고 함)정도 되는 조선육군을 물리친 명장 중에 명장입니다... 그러한 명장이 듣지도 못한 장수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를 하였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한 예로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 였을 거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갔다.)

2천의 군사로 5만 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 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 번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지만 와키자카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글이죠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이순신 장군님 탄생일 때 오는가 봅니다

2. 명의 사신이 본 이순신

그리고 "운덕 " 이라는 명나라의 사신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후일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하루는 어두운 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 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 듯 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 속을 통제사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 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 바람 속으로 거닐고 있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한번 따라가 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 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현장으로 가는 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 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 중 효행 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이더라...10살 의 어린 나이에 병사가 되어 왔음에 이 아이가 포로가 된후 이를 딱히 여긴 통제사영감이 별도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10살에 포로가 되었으니 벌써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왜군의 아이는 조선말을 배웠으며 간간히 통제사 영감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사람을 보면 누가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내가 본 저 두사람은 조선 장수대 왜군이 아닌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통제사 염감이 저러하다면,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3. 명의 도독 진린이 본 이순신

명나라의 황제 신종(만력제)은 조선에서 진린도독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는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튀어날 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루 지닌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 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 하옵 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 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 척 만이 남았으며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 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 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황제 폐하 바라 옵 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 이순신 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 폐하게 충(忠)을 다 할것이 옵니다.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4. 책의 저자인 쟝웨이링 교수가 본 이순신

1990년 3월 하북에서 제1차 중.일 합동 연구회(이순신)를 가졌다. 이순신??? 내가 알고있는 이순신은 조선시대 임진 왜란때 장수였던거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이 연구회엔 나의 절친한 동료학자의 권유로 참석하였으며 그해에 그저 잠시나마 자리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사실 조선의 역사에 대해선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던터라, 나는 그저 일본교수진들의 말만 들을뿐..... 그러한 내게 작으나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화면 가득 보여지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북선이라고 불리는 배였다. 저런 배가 400여년전에 있었단 말인가...(본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시각으로 보고있었다. 아무리 나라가 다르다지만... 그 시각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고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차이는 중일간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보는 것.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이 아닌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을 보는 것이었다. 일본교수진들은 이 연구회를 이순신이라고 붙였다.

즉.. 임진왜란 자체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서 바라보고 찾고 연구하고 가설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 중국 어느 누구에게도 연구해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는 그 학술회가 끝나는 데로 일본교수의 도움으로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한 책자를 얻을 수 있었다. 7권으로 이루어진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관한 책이었고. 나는 그7권을 단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으며, 책을 손에서 놓은뒤 내게 있어서 가느라한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순신....참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은 인물.지금까지 우리 중국학자들은 임진왜란은 일본의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조선의 왕 선조는 그들을 막지 못하고 의주로 몽진을 하여 우리 명나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명나라는 국력을 소비한 나머지 지금의 청에 의해 멸하고 만다. 이것은 우리 중국과. 한국 북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도 별 차이 없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날 연 학술회에선 이 모든 것을 흔들어버리는 아니 뒤엎는 가설을 내 놓은 것이다. 바로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5. 장웨이링 교수가 말하는 우리의 거북선...

1997년 10월.

한번은 내게 북경대에서 초빙을 받아서 학생들과 토의를 한적이 있었다. 제는 청나라의 멸망에 관해서 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가져 온 거북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 있냐고 묻자 250명의 학생중 단 한 명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하였다.

어쩌면 역사학자인 나도 이 거북선을 이순신 인물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처음 보았으니..학생들이 모른다고 답하는 건 어쩌면 무리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학생들이 이 거북선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볼 기회를 주고 난 후.. 나는 질문을 바꾸어서 왜 청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고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는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으며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질문을 바꾸어서 그렇다면 그 당시 전쟁에서 여러분이 아는 영웅중 단 한 명 다시 태어나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위인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학생들의 답변은 내가 예상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잠시 창 너머를 바라보았고... 한참동안이나 내가 강단의 창 너머만 바라보자. 이에 이상했는지 학생들은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나는 이에 만일 지금 또다시 지금 중국이 청나라처럼 되었고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거라고 답해주자.. 모두들 의아해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어떤 위인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고.. 나는 그 질문에 거북선을 다시 한번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데로 배다.

지금부터 400년전에 만들어진 전투함.. 이 전투함을 만든 이순신... 400년 전에 조선과 일본의 전생 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에 말한다....

많은 학생들과 같이 참석한 많은 다른 교수들도 의아해 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저기서 이순신이 누구냐고 서로 묻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간단히 임진왜란에 대해서 30분 정도 시간을 내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당시 일본과의 전쟁에서의 활약상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순신을 선택한지 아느냐고 물었으나 이 역시 학생중 단 한 명도 알지 못하였다.

단지 어느 한 학생이 교수님 이순신은 해군 아닙니까? 나는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해주었다. 바로 해군이기 때문에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가 망한 건... 아편 탓도 있고.. 황제 탓도 있다.. 정치적 이유도 맞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유능한 해군장교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수군장수 이순신은 5000명도 안 되는 군사와 50척도 안 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도 없이 모두 승리를 이끌어 조선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청국과 같은 처지였다... 당파싸움에 휩 쌓여 있었고.. 병력이라야 5만도 안 되는... 그러한 조선을 이순신장군이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안에는 바로 이 거북선 전투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들은 모두 육지에서 뛰어난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 중국역사에는 세계에 내 놀만한 수군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중국은 대륙국가였다... 하지만 대륙만큼이나 우리 중국은 바다가 넓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들며.. 교수님 그렇다면 주유가 있지 않읍니까? 라고 말하였고 나는 그에 질문에... 주유는 훌륭한 지휘관이다.. 그러나 주유는 이순신 장군과는 격이 다르다.... 주유는 양쯔강에서 활약한 장수지 진정한 해상 지휘관은 아니다..

영국을 보라.. 네덜란드를보라 스페인을보라.. 그들은 나라는 작아도 바다를 가졌기에 그리고 그 바다를 점령하였기에 세계 최고의 국가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청나라는 거대한 대륙국가 이였지만 바다를 몰랐기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년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바다로 바다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열렸던 임진왜란 모의전쟁에서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국에 점령되었다... 라는 결과를 말해주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거북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순신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이 거북선은 내가 여러분에게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그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 거북선은 나대용 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거북선을 생각하고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수군은 임진왜란 1년 전 만해도 허약한 병사들이었으나 그 허약한 병사를 단 1년 만에 40만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나서도 1시간정도 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아보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까지도 하면서....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쟝웨이린 교수님은 1989년에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는 주요 책임자중 한분이 였으며, 1990년 이 학술회를 시작으로 해서 연구하시던 중 1995년 고구려 역사 편입하는 작업에서 손수 물러 나셨다고 한다. 쟝웨이린 교수님은 이 책 머릿말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역사학자란 후세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란 두 가지의 부끄러움이 있다. 한 가지는 숨기는 것이다. 히틀러가 200만 유태인을 죽인 것 보다 그 역사를 감추려하는 역사학자들이 더 부끄러운 것이다. 나의 조국의 부끄러움보다 역사 앞에서 그 진실을 숨길 때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또 한가지의 부끄러움을 말한다면,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정한 위인은 자기가족만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전한 위인이란 모든 만인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이며.. 나는 그 위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6. 일본의 아리모토라는 역사가가 본 이순신

세계의 전쟁영웅은 피로 만들어진다. 전쟁영웅은 만인들에게 우러러 보게끔 만든다. 알랙산더 대왕도 그러했고 케사르도 그러하였고, 징키스칸도 그러했고, 나폴레옹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이러한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크리스챤인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그분.... 이순신 장군을 볼 때면 문득 그분이 떠오른다.... 두 분다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순신 장군은 단순히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피로 혁명을 일으키기보다는 바로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시고 가셨다.

이순신 장군은 그 처절한 전쟁 속에서 忠.孝.義.愛.善 을 가르치신 분이 섰다.그러고 보니 한국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영웅 이순신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성웅 이순신"


7. 장군님의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1996.4월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중에서 14부인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 중에서 .....

< 혁 명 과 죽 음 >

이순신의 혁명..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수많은 전공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는 단 한번이라도 혁명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먼저, 우린 만일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이순신 장군은 혁명에 성공과 함께 조선의 멸(滅)과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 장군에겐 2만여명의 수군과 약 5천여 명으로 추정 대는 의병.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이남. 경상도 부근에 이순신을 따르는 군(軍)의 수는 1만 여명에 이른다. 총 3만 5천 여명에 다다르고 이 군대에 대응할 조선의 군대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순신에겐 두 가지의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심과 명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명나라의 군대였다. 명나라 군대 역시 이순신에 대한 반감이 컸으며, 명나라의 장수 유정은 바로 곧 명나라의 황제를 대신 하는 것이기에 이순신에겐 유정을 넘어서야 1차적인 혁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혁명 후 명나라 황제의 질타를 과연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였다.

조선의 왕 선조는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키자 바로 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을 것이다. 명나라의 황제가 도와준다면 이순신의 군대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자신을 도와줄 군대가 올거라 생각지만, 뜻밖에도 명나라에서는 군대가 아닌 사신이 온다.

조선 조정으로가 아닌 명나라의 장수 유정에게........ 명나라의 황제는 조선의 왕 선조가 아닌 이순신 통제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왜 였을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였다. 그 당시 명나라의 국력은 임진왜란(정유)으로 인하여 국력이 크게 약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북으로의 오랑케(훗날 청)의 견제가 심해져 있었으니.. 전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강력한 이순신 군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일 일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나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이미 조선의 민심 역시 이순신에게 있는 것을 알기에)
바로 이순신에게 손을 들어 주는것.. 이것은 또한 명나라에게도 커다란 이득인 것이다...

힘없는 선조가 조선의 왕이 되기 보다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이순신을 도와 그에게 왕의 자리를 주고 그 이순신의 군대로 하여금 후에 명(明)을 위협하는 오랑케를 견제 하자는 것이다.

명나라의 문록(文錄)을 보면. 조선으로 건너간 명나라 장수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에 의하면.. 폐하 이 전란이 끝나면 즉시 조선의 수군 통제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부르소서 그로 하여금 북의 오랑케를 견제토록 하소서.. 이순신 통제사는 능히 우리 명(明)의 후환을 없애 줄 것이라 신(臣) 진린은 굳게 믿사옵니다....등등) 이에 명(明)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의 군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자 라는 대신들의 논의(論議)가 이었음 알 수 있었다. 이는 이미 명나라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 선조에게 우리 명(明)의 도움을 받았으니 조선도 명(明)을 도우라...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오라 하라. 이미 각본은 짜여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혁명을 하든 안 하든... 이미 명나라에서는 훗날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혁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 이었다. 왜였을까? 중국역사 조선의 역사..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런 한 일에는 반드시 쿠테타든 혁명이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니면 토사구팽이라도....그런데 이순신은 쿠테타도 혁명도 토사구팽도 모두 거절하였다. 이순신은 오직 죽음만을 선택 한 것이었다. 이순신 과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에서는 명나라가 이순신장군님을 끌어들여서 북의 오랑케(훗날 청나라)견제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들은 단순히 이순신 장군께서 혁명을 이룩하면 조선이 발전되었을 거라고 단정을 내리곤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정세란 매우 이해관계가 복잡한 일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어쩌면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셨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일으키고 명나라가 이순신을 도와줘서 낭떨어지에 몰린 조선왕 선조와 조정대신(이순신의 반대파세력)들이 뜻밖에도 일본과 손을 잡게되고 비밀 협약을 한다면...과연 조선은 어떻해 되었을까 하는? 혹시.. 이순신 장군은 그러한 모든 과정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이순신 장군은 너무나도 치밀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드라마를 보고 흥분해서 가설을 내세우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정확히 아셨던 분이십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 장군님께 질문을 던져 봅니다. 장군님 당신은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도 두려워셨읍니까? 조선이 피로 물들여질 것이라는 걱정이 그리도 두려우셨읍니까?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신 건가요?

2000년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장군님도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건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일을 주관 하셨지만 미약한 인간의 몸이셨던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당신 앞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립니다...장군~~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책이 총32권... 그것도 한국 학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학자들에 의해 저서가 된 책...... 그들은 우리를 알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린 저들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역사에 대해서 만큼은 더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참고: 이순신 장군 가계 (참조글 주소 참고)

그의 가계는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로부터 내려오는 문반(文班)의 가문으로, 이순신은 그의 12대손이 된다. 그의 가문은 4대 때에 조선왕조로 넘어오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5대조인 변(邊)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와 홍문관대제학을 지냈고, 증조부 거(#거21)는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할아버지 백록(百祿)이 조광조(趙光祖) 등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주장하던 소장파사림(少壯派士林)들과 뜻을 같이하다가 기묘사화의 참화를 당한 후로는 아버지 정도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던 만큼 이순신이 태어날 즈음에 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그러하였음에도 그가 뒤에 명장으로 나라에 큰공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유년시절에 어머니 변씨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때문이었다. 변씨는 현모로서 아들들을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가정교육을 엄격히 하였다. 그는 위로 희신(羲臣)·요신(堯臣)의 두 형과 아우 우신(禹臣)이 있어 모두 4형제였다. 형제들의 이름은 돌림자인 신(臣)자 위에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에서 복희씨(伏羲氏)·요(堯)·순(舜)·우(禹)임금을 시대순으로 따서 붙인 것이다. 그의 시골 본가는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백암리이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생가인 서울 건천동에서 자란 듯하다

(출처 : Tong - kennith60님의 kennith60님의 기본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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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8-03-1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더라도 굵은색 부분은 꼭 다시 읽어보세요. 왜 이순신 장군이 흔한 영웅이 아니라 인간이고 성웅이라 일컬어지는지 새삼 느끼실겁니다.

Mephistopheles 2008-03-1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고 요즘 열심히 방송하는 조선조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보면서 과연 조선이란 나라의 존재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때의 조선과 별반 다를 바 없어보여요..쩝.

마노아 2008-03-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 보니 전율이 흘러요. 이 글 처음 쓰신 분은 이거 다 쓰느라 고생하셨겠어요. 별찜이에요!

하얀마녀 2008-03-1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역시 저분은 알면 알수록 흠모하게 된단 말이지요.

잉크냄새 2008-03-1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차장님 / 요즘은 그 당시의 정치권과 같은 더러운 세력은 존재하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의로운 이는 없는 상황이네요.

살청님 / 이순신 장군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어요. 김훈의 칼의 노래가 열풍을 일으킨것도 그런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춤인생님 / 전투를 앞둔 날, 잠자리에서 식은땀을 흠뻑 흘리며 두려움을 느끼던 사내이기도 하죠. 칼의 노래는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마노아님 / 그렇죠. 저도 가벼운 떨림이 있더군요.

마녀님 / 한번이 아니라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곤 하죠.

2008-03-15 0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17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짱 2008-03-2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안에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만물이 기운생동하는 소리에 마음이 절로 들썩거리는 나날입니다.^-^
때늦은 수험생 흉내를 내느라 알라딘을 자주 찾지 못해 오늘은 봄안부를 전합니다.
잉크냄새님이 계신 남쪽은 벌써 만물이 활짝 피지 않았나요.
그냥 까닭없이 설레일 수 있어 좋은 계절입니다.^-^

잉크냄새 2008-03-24 13:09   좋아요 0 | URL
저번주 남도여행을 다녀왔어요. 올해 날씨가 늦게 풀린탓인지 아직 봄의 화사함보다는 겨울 끝물의 음산함이 남아있더군요.
그냥 까닭없이 설레일수 있다는건 행복이 아닐까 싶네요.
 
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당신께 감사드리고 싶군요. 한가족의 생명을 짊어지고 닭장 같은 방제공장으로 내몰려 청춘의 모든 감정을 철저히 외면당한채 살아온 젊은 여직공들의 삶을 그리도 안쓰럽게 바라본 당신의 마음에 감사드리고 싶군요. 밤새 새벽길을 걸으며 아낀 버스비로 빵 하나를 건네던 당신의 손길이나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런지요. 당신이 분신한 후 십년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형공장으로 구두공장으로 먼 길을 떠난 내 누이들의 삶도 그러했을가 싶은 마음에 가슴 한켠이 울컥하더군요. 철없던 시절의 일이라 누이들의 마음 하나 보듬지 못한 어리석은 나를 대신해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슴을 어루만진 당신의 손길에 감사드리고 싶군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비단 당신의 분신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노동 환경의 부조리로 인하여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에 눈뜨기 시작하던 시기의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순수했던가요. 인간이 희망인 세상을 꿈꾸던 당신의 가슴은 또 얼마나 희망으로 벅차 올랐던가요. 그런 당신의 순수성의 한계를 알기에 서글펐고 결국 삶의 부조리란 인간 자체의 부조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의 억압과 폭력구조라는 사실에 좌절하던 모습이 아직도 가슴 아프게 남아있네요. 어쩌면 당신의 분신은 절망의 마지막 표출이고 항거였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절망의 끝자락에 남은 희망을 바라보는 시각을 우리들에게 던져주었죠. 그러나 진정으로 서글픈 것은 당신이 떠난 지 삼십 년이 훌쩍 넘은 이 사회가 그런 절망으로부터 희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이고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농민의, 노동자의 분신이 단순히 개인의 이기적이고 비겁한 선택으로 비춰지는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당신이 던져준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부끄러운 우리가 되어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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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3-05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부끄러워요. 저분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데.. 현실은 변한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요.

파란여우 2008-03-05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목만 보고 제 얘긴줄 알았어요.
(진지한 리뷰에 펑 폭발하는 댓글)

암흑의 시절, 등불을 밝히신 분들에게 우리는 모두 빚을 지고 살지요.
최소한 지금이라도 의도적 방관자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잉크냄새 2008-03-06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차장님 /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세태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여우님 / 예전에 제 선배가 숫자로 인간을 분석하는 저의 전공에 치를 떨 날이 올것이라는 말에 지금은 공감하고 삽니다. 그저 살아가는 한 방편이라고 말하기에는 스스로의 일이 참 거시기한때도 많네요.의도적 방관자,수동적 방관자...모두 같은 의미일것 같습니다.

icaru 2008-03-0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슴다~~!

2008-03-06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8-03-07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얼마만의 잉작가님표 리뷰래요?^^
한자한자 눌러쓰신듯한, 진한 잉크향이 묻어나는 묵직한 리뷰 고개숙여 잘 읽고갑니다.

털짱 2008-03-0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은 추천 한방 날리고...
모처럼 잉크냄새님의 리뷰를 읽으니 좋군요.^-^

제가 제 친구 하얀마녀님을 "몇 살 더 어린 잉크냄새님"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는데...
잉크냄새님도 제 친구 하얀마녀님을 닮았을 것 같아요.
다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이 아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잉크냄새 2008-03-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언제던가 님의 리뷰에서 조영래 선생에 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가물 가물.

속삭님 / 하하, 별말씀을 좋은 음악 잘 듣겠습니다. 내 마음이 빚진 것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춤인생님 / 요즘은 리뷰 쓰기가 쉽지 않아요. 예전처럼 슥삭슥삭 쓰고 싶은데, 요즘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자꾸 부여하려고 하나봐요.

살청님 / ^^

털짱님 / 오랫만에 복귀하신 하얀마녀님이 친구이시군요. 두분을 생각하니 예전 밤새 릴레이 달리던 댓글이 떠오르네요. 누군가 절 닮았다는 사람, 문득 궁금해집니다.

하얀마녀 2008-03-14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저에겐 칭찬이지만 잉크냄새님껜 별로 아닌 듯...
같은 책을 읽었는데 결과물은 많이 다르네요.
이 리뷰를 읽으니 책을 한 번 더 읽은 느낌입니다.

잉크냄새 2008-03-18 09:00   좋아요 0 | URL
ㅎㅎ 전태일 평전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님께서 쓰신 짧은 리뷰 읽어보았답니다.

털짱 2008-03-2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마녀님(을 감히 제 친구라 했지만, 사실 저보다 연장자세요)과 잉크냄새님의 가장 큰 공통점은 두 분다 알라딘마을사람들이 사랑하는 서재주인이라는 점이겠지요? ^-^

아주 가끔씩 게으르게 들어오지만, 두 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참 반갑습니다.
마음에 온돌을 깐 느낌이랄까...ㅋㅋㅋ (에구, 촌스러...)

잉크냄새 2008-03-24 13:08   좋아요 0 | URL
비주류 서재에 그런 찬사를 해주시다니요.
<마음에 온돌을 깐 느낌> 이런 따스한 표현이 또 어디있다고 촌스럽다니요.ㅎㅎ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 정현종 -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

문득 인간은 과거의 어느 한 트라우마에 고착되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신공장 이전후
한시간의 출퇴근 버스속에서 상념에 잠기다 보면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는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제는 잊혀진 기억이라 생각했는데,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비 개인 저녁 나절의 국밥집, 그저 허기진 배를 뜨끈한 국물로 채웠다는 원초적인 포만감
만으로도 쉽사리 놓고 오던 우산같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퇴근버스의 차창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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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9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짱 2008-03-0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을 많이 그리워하던 살청님께서 가장 좋아하시겠군요.
살청님은 서재를 잠시 닫으신다고 하시던데.
다시 뵐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잉크냄새 2008-03-03 13:25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뵈어서 기쁘네요. 이제 자주 인사드리죠.

2008-03-02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3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8-03-0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초적인 포만감만으로 쉽사리 뭔가를 두고 나오던 저도 많이 공감요~

춤추는인생. 2008-03-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박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 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엔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 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페이퍼를 읽다보니 다시 생각났어요. 박성우의 <건망증>이.
덕분에 저도 고즈넉한 이밤에 가만가만 읇어보고가요.




잉크냄새 2008-03-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오랫만이네요. 뭔가를 쉽사리 놓고 오시나봐요.ㅎㅎ

춤인생님 / 이 시 언젠가 저에게 선물하셨던 시인데, 다시 읽어도 맘에 와 닿네요.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운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나봐요.
 



출처 : daum 아고라 gamebox님

2MB가 미리 알았더라면...
건설업체 컨쇼시엄 구성하고 민자 유치하면 5년이면 됩니다.
물류 수송에 실패할 경우 여름에는 수중미끄럼, 겨울에는 스키로 관광객 유치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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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0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레끼가 없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겠으나 2메가바이트에게는 너무나도 어울리는 프로젝트군요..ㅋㅋㅋㅋ

보석 2008-02-0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중미끄럼 좋아요.ㅎㅎ

털짱 2008-02-1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박하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잉크냄새님, 설은 어디서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한해 잉크냄새님과 교제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기쁜 일 중 하나였습니다.

올 한해도 알라딘마을에 잉크냄새님의 문자향을 자주 느낄 수 있게 해주시길 바라며

항상 건강하시고 건실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털짱 2008-02-19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청님께서 잉크냄새님의 무소식을 걱정하면서도 "무소식이 희소식"이길 기대하시는 말씀을 전해듣고 저도 잠시 들렀습니다. 잉크냄새님, 바쁘시고 잘 지내셔서 알라딘에 출입하지 못하시는 걸로 짐작만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언제 어디서나 화이팅! ^0^

잉크냄새 2008-02-2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식 늦었습니다. 한분 한분 댓글 못드려 죄송하네요.
잘들 지내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좀 자주 뵙도록 할께요.
 

어느 시인은 잘 빨아서 다리미로 잘 다리기까지한 와이셔츠를 세탁기에 집어놓고 돌리는 순간, 어디론가 떠난다고 한다 . 문득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을 카운트하는 날이라도 되는냥 마음이 부산스러운 날, 그날의 햇살이 다른 날과는 분명 다를것이라 느껴지는 날, 난 어디론가 떠나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듯 아침부터 짐을 싸고 그렇게 예정되지 않은 곳으로 떠났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인생도 있고, 아무런 준비없이 즉흥적인 인생도 있고, 내 여행이 그러하듯 또 그런 인생도 있는거다. 즉흥적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음 여행은 기필코 준비하고 떠난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하지만 결국은 또 다시 주섬주섬 옷가지만 챙기고 바람부는데로 떠나는 여행을 반복한다.


( 사천성 성도 시내버스 터미널 : 어디로 갈까?)

사천성으로의 긴 여정. 공항에서 비자카드 현금서비스가 막힐때 뭔가 눈치를 채었어야 했다. 사천성 자체가 중국 국내카드만 허용되고 국제비자카드는 사용이 제한된다는 것을 안것은 사천성에 도착한후 하루가 지나서였다. 4원짜리 중국음식을 찾아 먹으며 주머니속 돈을 계산하면서도 유일하게 비자카드가 가능한 700원짜리 4성 호텔에서 잘수밖에 없는 상황. 무일푼이 될 상황인데도 영사관이나 한국식당에서 몇푼 꾸면 되지 싶은, 마치 돈빌리기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도 되는냥 근거없는 자신감이 팽배했다는 것은 참 웃기는 일이었다. (사실 카이사르는 달변을 떠나서 크라수스가 돈을 빌려주지 않을 상황으로 몰고 가는것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한다. 나도 그 상황까지 몰고가면 어딘가 숨통이 틔이지 않겠는가) 결국 주머니에 31위엔(한화 4000원 정도)이 남아서야 극적으로 중국은행에서 돈을 찾을수 있었다.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강이 푸르니 갈매기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 산이 푸르니 꽃은 타는 듯 붉네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올 봄도 타향에서 보내니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어느 날에나 고향에 돌아 갈고

(파란여우님 댓글에서)

(두보초당 : 시심이 절로 생기지 않는가? )

두보초당. 두보가 시를 지으며 살던 곳이다. 이 곳에서 한면에는 두보의 얼굴이 그려진, 한면에는 그의 시가 쓰여진 부채를 샀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찾지는 않았다. 그냥 삼십대 초반의 어느 감정을 긁고 넘아갔을 뿐이다. 나를 떠날 것들은, 인연이 없는 것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식으로든 기필코 그 길을 가고야 만다는 것. 그러기에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그 뒷모습을 지켜주어야한다는 것.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애처롭지 않도록.

   
    
(뚜쨩엔 : 도교의 영향으로 처마마다 동물 문양이 장난 아니다. 댐은 안 찍고 사찰만 찰칵)

도강언(뚜쨩엔)은 진시황제의 만리장성에 필적하는 건축물이라 한다. 만리장성이 피눈물의 건축물이라면 뚜쨩엔은 태평성대의 산물이라 한다. 그 시대에 지어진 댐이 아직까지도 단순 고대산물이 아닌 댐 본연의 역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의 한축이었던 성도의 젖줄이었고 무역로였던 곳으로 모택동을 필두로 등소평,주은래 등이 부임초기에 다녀갔다. 그 나라의 관개시설이 그 나라를 대표라도 하는듯 싶다. 강변을 따라 지어진 도교 건물은 사천성을 위시한 촉의 땅이 도교의 영향아래 오랜 세월을 지내왔음을 대변하고 있다.  

   
   
   
    
   
   


1) 짜장면 4원 - 돈이 없어서 이거 먹으며 다니다.
2) 자전거 택시 - 중국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나 뭐라나. 
3) 티벳 여인 - 인디언을 닮은 듯 싶다.
4) 불법 오토바이 택시 - 불법이지만 싸다. 도심 한복판을 벤츠와 나란히 달리는 기분, 괜찮다. 단, 너무 위험하다.
5) 술집 - 강변에 자리한 술집. 못간 것이 한이다.
6) 관우상 - 한때 관우가 전사한 맥성의 장군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7) 먹거리 - 양꼬치를 엄청시리 먹더군.
8) 꽃진 자리 - 연꽃진 자리만큼 허전한 곳도 없을듯 싶다.
9) 골목 - 저 모퉁이를 돌면 내 어린 시절과 만날것 같은 기분.
10) 골목2 - 하여간 골목은 정겹다.
11) 둥근 문 - 둥근 문은 왠지 나를 향해 열린듯 포근하다.
12) 한겨울의 꽃장수 - 겨울에도 꽃잎이 시들지 않는, 향기가 찐한, 그래서 방향제로 쓰이는 나무다.
13) 술 - 쭈악 마시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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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0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퉁이 사진 좋아요. 으헤헷 (>_<)
뚜짱옌은 꼭 가보고 싶군요. 사진이 너무 작아서 아쉬워요.^^

깐따삐야 2008-01-09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보초당. 멋집니다!
저도 작년에 중국 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돼지비계를 다시 간장과 기름에 볶아먹는 것을 보고 기함했죠. ㅋㅋ

마노아 2008-01-09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옆에 붙어서 같이 다녀온 기분이에요. 오늘 시심(?)에 젖으셨군요!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

춤추는인생. 2008-01-09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떠날 것들은, 인연이 없는 것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식으로든 기필코 그 길을 가고야 만다는 것. 그러기에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그 뒷모습을 지켜주어야한다는 것.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애처롭지 않도록...` 잉작가님. 저도 오늘 뒷모습에 대해 몇자 끄적이다 말았는걸요.. 중국도 한겨울인가봐요. 사진속에 서늘한 한기같은게 묻어납니다.. 특히 광대뼈가 도드라진 인디언을 닮은 여인네의 사진이 그래보이네요. 골목길이. 참 아득해요.


잉크냄새 2008-01-09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청님 / 그 소설이 무엇인지요? 그런 날이 있어요. 어느날 아침 문득 일어날때 왠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날, 그런 날은 그냥 떠냐야 제 맛이죠.

엘신님 / 모퉁이 사진은 참 아늑한 느낌이 들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속의 나에게로 간듯한 느낌. 금방이라도 꼬맹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나타날듯 해요.

깐따삐야님 / 두보초당에 멋진 곳이 참 많았는데, 그날 마침 밧데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단 하나의 사진만을 찍을수가 있었다죠. 참 아쉬운 일이네요.

마노아님 / 워낙 준비성 없는 인간인지라. 다음 예정지는 그때 가봐야 알듯 싶네요.

춤인생님 / 류시화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종종 있어요. 근데 삶이란게 가정법이 통하지 않으니, 직접 겪고 아파하지 않으면 결코 내것이 될수 없는 것들이다보니 이제는 가정법을 쓰지 않아요. 이미 다 내것이 된것들이잖아요. 사진을 다시 보니 서늘하네요. 인디언을 닮은 여자도 슬퍼보이고요.

Mephistopheles 2008-01-0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중국의 지명임에 틀림없고 잉크냄새님 페이퍼도 그러할텐데..
왜 저는 그 옛날 야한 마작게임이 생각나버릴까요?
(막 쌓여있는 마작 짝맞추는 게임)

잉크냄새 2008-01-09 21:49   좋아요 0 | URL
역시, 메차장님다운 발생입니다.
사진을 더 작게하여 마작처럼 만들어볼까요?ㅎㅎ

파란여우 2008-01-0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강이 푸르니 갈매기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 산이 푸르니 꽃은 타는 듯 붉네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올 봄도 타향에서 보내니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어느 날에나 고향에 돌아 갈고

어느 날에 가긴, 술동에 술이 떨어지면 가는거지.ㅎㅎㅎ

잉크냄새 2008-01-09 21:50   좋아요 0 | URL
아, 역시 여우님이 이렇게 운치있게 한자락 뽑아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천성에도 파란 여우는 살지 않는다는 슬픈 전설이...
술동 떨어지면 저 위에 술동 한자락 짊어지고 꽃가지 휘두리면 찾아갈께요.

털짱 2008-01-10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두분이 만나시니 절로 시가 떨어지네요.

전 변사또 잔치상에 낑겨앉은 이몽룡마냥

옆에서 떨어지는 고물이나 주워먹을랍니다...

프레이야 2008-01-1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꽃 진 자리처럼 허전한 곳도 없을 성 싶다..
잉크님 멋진 여행 하셨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8-01-1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잉크님의 사진이 보고 싶어요.호호호호

은비뫼 2008-01-11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좋아하시나 봅니다. ^^ 두보초당 좋군요.
산세가 다르긴하네요. 덕분에 간접여행하네요.

잉크냄새 2008-01-1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 그 자리에는 항상 털과 술과 시가 난무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국어사전)고물은 주워서 먹는게 아니라 고물상에 파는겁니다.

혜경님 / 옆지기님처럼 멋진 사진을 찍을줄 알았다면 더 많은 풍경을 담아왔을텐데, 제 눈의 사각으로 놓쳐버린 풍경들이 아쉽습니다.

마음님 / 어, 올렸는데 못보셨나요?
저 밑에 꽃가지 들고 가는 사람이 접니다.

은비뫼님 / 두보초당에서 밧데리만 떨어지지 않았다면,ㅠㅠ
산세가 달라서 사람이 다른건지, 사람이 달라서 산세가 다른건지...사람도 산도 닮아가는것 같기도 합니다.

털짱 2008-01-2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한국은 눈이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하루종일요.

눈때문에 잉크냄새님의 서재에 마실 왔습니다. ^-^

잉크냄새 2008-02-01 10:55   좋아요 0 | URL
털짱님도 눈으로 인사드리네요.
이래서 눈이 하얀색인가 봅니다.
이리 안부를 물어오는 님들의 마음을 닮아서.

2008-01-28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01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1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01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小米 2009-12-0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呵呵,看到介绍我们中国四川的一些旅游地,感觉好亲切也好高兴,欢迎有空的时候再到我们中国来旅游。